동두천시 보산동에는 동(洞)이 하나 더 있으니 그 이름은 '걸산동'입니다. 사실 걸산동은 보산동 7통지역으로 61세대 124명이 살고 있는 '걸산마을'입니다. 실거주자는 100명 내외의 장년층이고 학생은 5명으로 고등학생 2명, 중학생 1명, 초등학생 2명입니다.
과거 이곳에 미군이 지어준 걸산분교(초등)가 있어 25회 116명을 배출했으나 1999년 폐교되었고 얼마 전 교실도 철거되었습니다. 그래서 요즘 이 마을 학생들은 매일 아침 미국을 거쳐 한국땅 동두천에 나갔다가 오후에는 미국 캘리포니아를 거쳐 부모님이 사시는 걸산동 집으로 돌아옵니다. 승용차, 버스, 전철을 이용해 등하교합니다. 비행기를 타지 않고 미국땅을 넘나드는 아이들입니다.
걸산마을 학생들은 하굣길에 시간이 남으면 미국땅에서 미군의 생활상을 구경하고 우리 돈으로 아이스크림을 사 먹을 수 있으며 오가는 미군과 영어로 대화합니다. 네이티브 스피킹입니다. 그런데 부러워하실 일이 아닙니다.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이곳 걸산마을에 가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미군과 영어를 쓰는 이를 만나 대화할 수 있고 식사하고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 있습니다. 카드로 계산하면 캘리포니아 가게이름이 찍힙니다. 이래저래 자신의 영어 실력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영어 테스트 현장이기도 합니다.
걸산마을 면적은 여의도의 3.5배(990만여㎡)이며 섬마을 여의도와는 달리 높고 아름다운 산으로 둘러싸인 산촌입니다. 여의도는 인구 34만명, 걸산마을 인구 124명입니다만 여의도 건물보다 아름다운 산봉우리와 구름과 나무와 바람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더구나 걸산마을 일출은 게으르고 땅거미는 부지런합니다. 모든 것이 느리게 진행되는 사람이 사는 행복한 마을입니다. 흔히 우리의 전통음식을 '슬로푸드(slow food)'라고 해서 건강식품으로 부각되듯이 이곳 걸산마을이야말로 '슬로라이프(slow life)'입니다.
삶 자체가 여유롭고 평화롭습니다. 새 차를 뽑았지만 달리지 않고 비가 쏟아져도 어른 아이 누구도 뛰어가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바쁘게만 돌아가는 도심의 초중고생과 그 학부모들이 한번 눈여겨볼 일입니다.
1박2일 일정으로 휴대전화, 페이스북 등 문명의 기기를 각자의 방에 던져버리고 작은 가방 하나 들고 동두천시 걸산마을에 오시길 바랍니다. 시간이 멈춘 곳, 원시자연이 존재하는 아름다운 세상으로 들어가 보는 새로운 체험을 권합니다.
얼마 전 이곳 걸산마을에 '행복학습관'이 문을 열었습니다.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아이를 안고 부녀회원들의 농악에 맞춰 어깨춤으로 개관을 축하했고 오세창 동두천시장도 빨강점퍼를 입고 박수를 보냈습니다. 아이는 걸산동 마을의 미래이고 붉은 색은 걸산동을 향한 정열입니다.
행복학습관에는 전문강사들이 1주일에 한번씩 미군부대를 거쳐 방문하여 요가, 한지공예, 컴퓨터를 지도합니다. 주민들에게는 작은 소망이 있습니다. 첫째는 70넘은 할머니가 외지에 나간 손녀에게 이메일로 소식을 전할 날이 오기를 소원합니다.
둘째는 걸산동 주민이 한 명 늘어 124명에서 125명이 되는 날이 머지않기를 소망합니다. 이 새벽, 걸산마을 산봉우리에서는 찬란한 태양이 떠오르고 계곡 깊은 곳에서는 천년을 기다린 맑은 샘물이 살며시 조심스레 흘러내립니다.
[약력]
-1958년 화성 비봉 출생
-경기도청 홍보팀장, 공보과장
-동두천·오산·남양주시 부시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화성시 시민옴부즈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