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 주례사

이강석 전 남양주시 부시장

짧은 결혼식 주례사 

 

 

이제 3번째 주례로 나서는 날 아침입니다. 두달전에 주례 요청을 받고 그리하겠다 약속을 하면서 꽤 먼 날의 일정이라 생각해 두었는데 그 날이 오고야 말았습니다. 주례는 단지 이정도의 마음으로 2개월을 보냈습니다만 자녀의 부모님, 당사자, 주변의 일가친척, 지인들은 마음씀이 다양했을 것입니다.

 

우선 당사자 신랑과 신부의 바쁜 준비와 골똘한 생각이 얼마나 많은 신경씀이 축적되었을까 생각합니다. 서로가 마음이 통하여 사귀고 결혼에 이른 사이인데 정작 결혼식을 준비하면서 서로 다른 생각에 갈등과 충돌이 일어난다는 말을 주변에서 더러가금 듣는 바가 있으므로 오늘의 행복한 신부와 신랑에게는 그런 작은 파장이 없었기를 바라는 마음 가득입니다.

 

다음으로 딸을 시집보내는 엄마의 마음씀이 클 것이고 자당엄친이라지만 딸 출가는 준비하는 아버지의 배려와 사려깊음도 아주 크다 할 것입니다. 아버지는 돈걱정이 가장 큰가 모르겠습니다만 이보다도 결혼해서 행복하게 낳아 키운 딸을 시집보내는 아버지의 마음도 우리가 살펴 드려야 할 부의 정이라 생각합니다.

 

그래도 들은 경험적으로는 아들을 결혼시키는 아버지 어머니는 상대적으로 부담스러움이 적었을 것입니다. 더구나 요즘의 젊은이들은 스스로 결혼을 준비하고 결혼절차, 신혼살림 등에 대해 주변 친구들의 사례를 참고하면서 어른스럽게 준비한다고 합니다. 20대 중반에 결혼하는 남녀들인데도 이미 결혼을 결정하기 전부터 배우자의 직업을 생각하고 살 곳을 정하는데도 결혼후 출산한 아기를 돌보아줄 분의 여건과 상황을 파악하여 그 지형지세를 정한다 들었습니다.

 

본가에서 아기를 돌보아줄 여건이 되는 경우에는 신랑 부모님집에 가까운 곳에 살림을 차리고 신부 부모님이 육아에 유리한 상황인 경우에는 처가 인근에 자리를 잡는 것입니다. 양가 모두 아기를 돌보기 쉽지 아니한 여건이라면 자신들의 직장 중간에 신접살림을 차리게 되는 것입니다.

 

신혼살림집을 정하는데에 이같은 기본원리가 적용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결혼식에 참석하는 친구도 사전에 큰 그림으로 정한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특히 신부의 경우에는 알리되 예식장에 오지 않아도 되는 친구, 반드시 와서 신부 친구로서 사진을 촬영하는데 예식장 앞 정면으로 나와야 하는 친구가 정해진다는 말입니다.

 

대도시의 고급져서 비싼 예식장의 경우에는 아예 초청장으로 보내면서 참석을 확정받기도 합니다. 10만원 축하금을 내고 15만원짜리 식사를 하게되면 혼주가 5만원을 더 부담하게 된다합니다. 식사 한끼의 원가가 135,000원이고 이윤이 15,000원은 아닐 것입니다.  15만원 식비에는 예식장 사용료와 도심에 위치한 예식장 건물의 감가삼각비를 포함하고 있다는 가정을 해보는 바입니다.

 

그렇게 비싼 예식장비를 내는 것은 물론 거기에 더하여 웨딩촬영도 해당 예식장의 스튜디오를 써야하는 경우가 있고 촬영비용이 비싼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신랑은 3장만 찍자는데 신부는 7장을 촬영하자 하니 지난 3년간 행복하게 사귀고 결혼에 이른 남녀가 사진촬영으로 싸움이 일고 양측 부모간의 갈등으로 번지기도 한답니다.

 

사랑으로 맺어진 결혼식장의 넓은 문짝이 상행위과 자본주의의 홀림으로 고난을 시작하는 고난의 문이 되고 마는 경우가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인가 오래전부터 이어온 관행으로 결혼식 식사비용, 예식장 비용은 양측의 결혼축하금 접수책임자들이 현장에서 50:50으로 지불하기도 합니다. 양가 부모님이 관여하지 아니하고 제3자가 객관적으로 처리하게되면 논란이나 갈등은 최소화할 것이니 참으로 잘 만들어진 사회적 규약이라 생각합니다. 

 

약 1시간이 안되는 결혼식을 위해 지난 1년 넘는 세월동안 준비를 했을 것입니다. 그 중차대한 혼사의 결혼식 주례로 선택되고 결정된 것은 스스로에게도 영광스러운 일이고 신랑과 신부, 그리고 양가부모님에게도 중요한 초청객이 될 것이라 봅니다. 그래서 서둘러 일찍 예식장 인근으로 달려가서 교통여건을 파악한 후에 반경 4km이내의 지역에서 부부가 나름 관광을 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결혼식이 오후 4시이니 3시까지 식장에 도착하여 대기하였다가 미용실, 이발소에 다녀오시는 신랑신부의 부모님께 인사드릴 것입니다. 신랑과 신부는 결혼식을 시작하는 시각에 볼 수 있습니다. 주례가 신부대기실에가서 인사를 하는 경우는 있는지 없는지 확인이 필요합니다. 

 

주례사는 미리 작성하여 검토를 받았습니다. 느리게 말하면 6분, 빨리 진행하면 4분정도 입니다. 전에 시청의 임원추천위원으로 위촉되어서 면접을 주관한 경험이 있습니다. 12분중 1분간 자기소개, 10분간 질문답변, 마무리 1분으로 최종발언 시간을 줍니다. 중간의 질문에 단답으로 끝내는 분이 있고 장황하게 설명을 이어가는 분이 있습니다. 마무리 1분은 면접 위원장이 조절합니다. 질문시간이 남으면 추가질문을 하고 모자라면 1문 마무리발언으로 유도합니다.

 

결혼식 주례는 주례 혼자서 말하는 시간입니다. 길면 지루하고 짧으면 성의없는 주례사라고 평가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객들은 주례사의 이야기를 듣지 않습니다. 가끔 YouTube에 신랑 아버지의 주례사, 신부 어머니의 축하말씀이 나옵니다. 하나같이 재미있습니다. 하객들은 게스콘서트 방청객이 됩니다. 참으로 말잘하는 재야의 고수가 많습니다. 그런 재능을 집안살림에만 쓰시는 것은 사회적으로 아쉬운 일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재미있게 주례사를 진행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전에 글로 말한대로 '할머니 시의원'발언이 될 수 있습니다. 60을 넘기신 여성시의원님을 '할머니 시의원님'이라고 칭하는 실수를 반성합니다. 더구나 결혼식의 주례는 엄숙하게 결혼식을 진행해야 합니다. 절대로 웃음기를 유도하려 하면 안됩니다. 흥미롭고 신나는 절차는 주례사 이후에 있습니다. 신랑신부의 결혼을 축하하는 노래, 격려인사 등 나름 요즘 젊은이들은 이벤트를 합니다.

 

다만 오늘 결혼하는 신랑과 신부는 공무원입니다. 그러니 공무원의 틀을 벗어나는 이벤트는 아닐 것이고 야구경기 투수로 말하면 공직자급의 어떤 변화구를 줄 것으로 기대합니다. 주례는 주례사 후 뒤로 물러나 있다가 마무리 사진촬영에 다시 얼굴을 내밀게 됩니다. 3번의 경험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객으로 참석한 경우 풀타임으로 결혼식 진행과정을 모두 다 모니터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주례로 나서는 것은 나름의 좋은 경험이랄 수 있습니다.

 

아주 오래전에 초중고 동창의 결혼 함진아비와 사회자를 겸직한 바가 있습니다. 자취방에서 같이 결혼전날을 보내고 아침에 같이가서 결혼식을 진행했습니다. 당시에 대부분의 신랑들은 결혼식날 아침에 이발소에 가서 이발하고 면도하고 머리감고 머리에 약간의 오일을 바른 후 쓴 빗어넘기면 신랑입장 준비가 마무리되었습니다. 요즘에는 신랑도 웨딩화장을 합니다. 결혼사진을 미리 촬영하니 이를 웨딩촬영이라 해서 친구를 불러서 함께 사진을 찍습니다. 세상이 많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1985년 11월 9일 토요일에 결혼했습니다. 아침에 사무실에 출근하여 근무하고 오전 11시에 사무실 구내이발소에 가서 결혼한다 말하고 이발을 부탁했습니다. 평생에 처음 머리에 기름을 발르고 머리카락을 고정하는 스프레이를 뿌렸는데 앞머리가 늘어진 것을 바로잡지 못한채 결혼기념 사진을 찍었습니다. 일가친척 가족 하객 아무도 신랑의 머리카락에 신경쓰지 않는 시대였습니다.  요즘이라면 이 사진을 보고 화가나서 재촬영을 해야할 정도입니다.

 

그래도 결혼식 며칠전에 예식장에 가서 신부 드레스를 골랐습니다. 신부를 단상에 올리고 신랑은 단하에서 신부를 바라보았습니다. 흰 드레스에 부케를 든 신부를 올려다보니 그 자태가 아름답습니다. 혼자서만 마음에 간직하고 있는 웨딩드레스를 입은 아내의 모습입니다. 아름다웠습니다. 그래서 가끔 아내가 불편한 말을 하면 그때의 모습을 떠올립니다. 아름답던 아내가 신랑과 남편과 아이들과 세월과 나이로 인해 힘들어하는 것을 미안하게 생각하기 위함입니다. 

 

1980년대 결혼식을 회상해 보면 참으로 바쁘게 지나갔습니다. 그런데도 주례사는 길었습니다. 연세드신 주례선생님은 누구나 아는 이야기를 참으로 길게 늘여서 주구장창 주례사를 이어갔습니다. 더러는 우우하는 소리가 나도 초지일관입니다. 아마도 과하게 표현하면 다음순번 신랑이 입장을 준비하고 있는 그 순간에도 주례사는 이어졌습니다.

 

도대체 주례 선생님은 신랑과 신부에게 무슨 이야기를 그리도 하고 싶은 것일까요. 그러실 요량이면 차라리 미리 신랑신부와 저녁식사시간을 잡아드려야 하는 것일까 생각해 보디고 했습니다. 자세한 말씀은 신혼여행 후에 점심시간을 오전 11시로 잡을 터이니 그날 오셔서 조곤조곤 소삭소삭 말씀해 주셨으면 좋겠다는 말을 마음속에서 문장으로 구성해 보기도 했습니다.

 

축가도 없고 축하이벤트도 따로 없이 예식장에서 수년전에 인쇄하여 문구점에서 비닐커버에 압착한 식순에 따라 신랑신부는 결혼을 하고 신혼여행을 떠났습니다. 요즘 신혼부부는 본가에서 하루를 묶은 다음날에 비행기타고 유명 여행지로 갑니다. 사진촬영은 그들만의 축제입니다.

 

당시의 결혼식에서는 접수하면 혼주와 인사하고 식당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래서인가 요즘 예식장에 가면 식권이 다르게 인쇄되었거나 식사시각이 정해져있습니다. 일시에 손님이 몰리는 경우 식당에서 이를 다 수용하기 어렵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당시에는 하객들은 피로연 식당에서 소주를 드시고 담배를 피웠습니다. 예식장 식당에서 식사를 하면서 담배를 피우는 모습은 낯설지 않은 풍경이었습니다. 당연한듯 받아들이던 끽연 지상주의시대입니다. 그렇게 예식장 식당에서 이벤트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술취한 하객이 주저앉아도 별일이 아니었으니까요. 

 

결혼당일에 많이 힘들고 시간도 맞지 않는다면서 신혼부부는 신부의 집 또는 신랑의 본가로 갑니다. 키워주고 결혼에 이르도록 보살펴주신 부모님을 위하는 마음에 본가에서 하루를 묶는다면 크게 박수를 보내고자 합니다만 사실은 본인들이 피곤해서 그런가 여겨집니다.

 

이 시대에 애간장이 끊어지는 친정과 본가 부모님의 이별의 아픔을 달래드리고자 진정코 그리하는 것이기를 바랍니다. 그리하는 신혼부부가 있다면 이 시대에 흔하지 않은 궁서체집안인 것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신랑과 신부의 입장에서 정해진 새로운 결혼풍속도일 것입니다.

 

궁서체 집안이란 조선시대의 유교와 가풍을 이어받음을 말합니다. 한글워딩의 글자체중 조선시대 궁서, 예서, 행서체를 닮은 활자체가 궁서체입니다. 정확한 표현은 어렵겠지만 어느체이든 붓으로 쓴 것이니 모두다 한학이고 유교이고 조선시대 이야기입니다. 조선시대 글자체를 글로 표현하는 것은 어렵군요. 하지만 궁서체라는 표현속에는 현대적인 관념보다는 유교적인 생각, 지난날의 모습인 것은 연상이 됩니다.

 

흔히 말하기를 초중고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인생의 항로를 정하거나 새롭게 정립한 학생은 많습니다. 어리고 힘든 시절에 만난 담임선생님, 그 선생님의 따스한 배려와 사랑으로 바른길을 가고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하여 큰 인물이 된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말입니다. 주례사 선생의 이야기를 듣고 인생의 의미를 깨달았다는 말과 글을 들어보지 못했고 읽어본 바도 없습니다.

 

가끔 신랑신부 어머니의 주례, 아버지의 결혼식 명연설 등이 인터넷에 회자됩니다. 하지만 그 내용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주시는 덕담이기는 한데 다른 집 결혼전 자식들이 인생의 항로에 쓸말한 좌표나 풍향계는 되지 못하는 듯 보입니다. 그러니 길게 말할 것도 아닌 것이 결혼식 주례는 짧아야 합니다.

 

하객들은 이미 주례사 이후의 이벤트, 축가 등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기대에 찬 초롱초롱 눈빛을 보이고 있습니다. 거듭 강조하는 바인데 주례사는 짧아야 합니다. 오죽하면 대부분의 결혼식에 주례가 사라졌습니다. 주례없은 결혼식이 더 멋지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우리 세대 1980년대에는 결혼식에 주례가 없다면 신랑신부 없는 결혼식으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과거 한옥 현관에 김대중 이희호 두분의 문패를 달았습니다. 사람들은 파격이라고 놀랐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많은 분들이 부부문패를 달고 있습니다. 아파트에 문패가 없는 것은 서글픈 일입니다. 이웃간의 단절입니다. 이사와서 수개월이 지나도 옆집을 모릅니다. 특히나 젊은 옆집은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도 인사를 피합니다. 이럴수가.

 

이후 공무원 선배님중에 부부명의로 청첩을 보내고 부부명의로 감사의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1980년대 남성 간부공무원들은 이런 청첩과 감사편지를 받고는 피식하고 웃었습니다. 하지만 요즘의 대부분은 부부명의로 청첩을 하고 감사편지를 보냅니다. 물론 당대에서 아버지 누구, 어머니 누구의 아들과 딸이 결혼을 한다고 청첩장에 보냈습니다.

 

하지만 결혼식에 와주신 답례, 축하금을 보내주신데 대한 감사의 편지는 아버지의 이름으로 보냈습니다. 부부의 이름으로 보내기 시작한 그 선배님은 선각자였지만 당시의 5년정도 자리를 잡기까지는 조금 오버하는 분으로 평가를 받은 것은 사실입니다. 나중에는 부부명의 감가편지가 일반회되었으니 이분은 가정의례준칙 혁신의 효시인인 것입니다.

 

오늘 주례는 결혼식의 2%이내입니다. 절대로 나서지 말고 자신에게 주어진 100중 2의 비중으로 4분내외의 짧은 인사를 하기 바랍니다. 마치 전광석화와 같이 진행될 주례사 원고에 신랑이 오산시청에, 신부는 남양주시청에 근무하는데 두곳에서 근무한 바 있는 주례라고 장황하게 말하는 것도 사실 민폐하객, 민폐주례가 되는 것은 아닐까 걱정을 합니다.

 

신랑과 신부의 행복한 결혼을 축하드립니다. 아들과 딸을 잘 키워내시고 오늘 결혼식에 이른 양가 부모님의 그간의 노고에 감사드리고 앞으로더 더 큰 사랑의 사위와 며느리를 사랑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들과 딸의 행복을 이끌어 주시기 바랍니다. 

 

 

이강석 (李岡錫)

출생 : 1958년 화성 비봉

경력 : 경기도청 홍보팀장, 경기도청 공보과장

         동두천·오산시 부시장 / 경기도균형발전기획실장

         남양주시부시장 /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현직 :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저서 : '공무원의길 차마고도', '기자#공무원 밀고#당기는 홍보#이야기' 등 수필집 53권 발간



기자정보

프로필 사진
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 오산, 남양주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 행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