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각목버드나무 이야기입니다. 2023년 11월에 하천 중앙에 세워진 각목위에 풀이 자라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폰으로 사진을 찍어서 살펴보니 버드나무인데 한줄로 6줄기가 자란 모습으로 보아 뿌리가 걸쳐져셔 뿌리를 내린 것으로 보입니다. 개인적인 추축으로는 6년생으로 보입니다. 줄기가 6줄이어서 6년생은 아니지만 그냥 그렇게 스토리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이를 수원시청에 글을 올려서 시민, 학생들에게 생명의 신비를 알리고 시련을 이겨내는 상징으로 삼자고 했습니다. 처음 하천과에서는 이 나무를 심으면 물살을 거슬린다며 불가입장을 공문으로 보내왔습니다. 새빛민원실 베테랑 민원팀장에게 전화로 청하니 내년에 보자했습니다. 2024년 3월에 팀장 4인이 달려와서 각목째 쑥 뽑아서 인근의 공원 물가에 심었습니다. 버드나무는 물을 많이 필요로 하는 나무의 특성이 있다고 합니다. 이후 베테랑 민원팀장, 영통구청 팀장과 함께 버드나무에 물을 주고 지주목을 세웠습니다. 7년 동안 척박한 각목위에서 힘들게 살아온 이 버드나무는 흙에 뿌리를 내리고서는 1년새에 7년간의 키를 넘게 성장했습니다. 싱싱한 잎새를 바람에 흔들며 5년내에 시민의 관심을 받고 10년안에 건실한 시민의 나무
팔탄면 총무계장님과의 일화는 다음과 같습니다. 산업계장님이 총무계장으로 이동하였습니다. 아마도 팔탄면 역사에 최초사례일 것입니다. 그리하여 총무계 회계로서 새로 오신 계장님의 첫번 결재에서 결재에 쓰실 도장을 미리 개인돈으로 새겨서 주머니에 넣고가서 결재 셋팅을 한 후에 도장을 드리면서 결재를 청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총무계장이 되심이 가문의 영광인 상황에서 회계담당이 도장을 새겨와서는 결재를 청하므로 기분이 참으로 좋으셨나봅니다. 밝게 웃으시며 결재를 시작하시던 모습은 지금도 기억합니다. 이후 1년반을 근무하고 다른 곳으로 전근을 하였고 월급날이 다가오느로 버스를 3번 갈아타고 면사무소에 와서 급여서류를 준비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버스환승 카드가 없어서 1,000원짜리 종이돈을 내던 시절인데 용케도 버스를 갈아타고 면사무소로 출퇴근하고 낮에는 새로운 임지에서 일했습니다. 이후 총무계장님은 칭찬 전문가가 되셨습니다. 외부에서 연결되는 공무원을 만나면 팔탄면 회계담당을 칭찬했습니다. 계장님의 칭찬은 긍정의 파도가 되어서 물결치고 모든 사람들에게 긍정의 아이콘이 되었습니다. 그 긍정의 힘이 두고두고 공직발전의 에너지로 작용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세상사
흔히 오래전 이야기를 일러 쌍팔년도 이야기라 합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쌍팔년도라고 하면 1988년을 떠올립니다. 88올림픽이 열린해이니까요. 그런데 70세의 어르신에게 쌍팔년도는 1955년입니다. 6.25정전 2년차정도의 혼란스러운 시기입니다. 서기 4288년-2333년으로 계산하면 1955년이 나옵니다. 그래서 "쌍팔년도 이야기하네"라는 수필집을 냈습니다. 그 안에는 엿기름, 호랭이, 곰사냥, 참새잡기, 엿, 감주 등 1950년대 어린시절에 들은 이야기를 정리해 두었습니다. 다음은 독도 이야기입니다. 2008년 8월 7일에 경기도의회 의원 40명과 공무원 8명이 울릉도를 거쳐 독도에 가서 일본의 교과서왜곡을 규탄했습니다. 일정은 순탄하게 진행되었습니다. 이 행사를 준비한 총무담당관은 독도를 방문하는 기간에 여름휴가를 떠났습니다. 지난 주에 휴가를 다녀온 제가 의원님을 안내하는 책임자가 된 것입니다. 여름에 울릉도, 독도여행을 보내주니 휴가 후 보너스 휴가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미스매칭으로 인한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2박3일 일정을 각자 해석하다보니 안양 여행사는 강원도 속초에서 1박, 울릉도 1박으로 준비했는데 울릉도 여행사는 울릉도 2박으로 알고 돌아
두 번째 이야기는 수원 화성의 4대문입니다. 동서남북에 문이 있습니다. 남문은 팔달문, 북문은 장안문, 서문은 화서문, 동문은 창룡문입니다. 그리고 화성의 아름다움을 대표하는 화홍문이 수원천 중심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용지와 방화수류정이 어울림을 선사합니다. 초중시절에 아이들끼리 떠드는 이기속에는 북문은 부서지고 남문은 남아있고 서문은 서있고 동문은 도망갔다했습니다. 그리하여 남문으로 알고있는 팔달문에 당도하여 문패를 보니 팔달문이라 적혀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남문으로 아는 문의 세글자를 ‘나암문’이라 읽었다 했습니다. 그러하다면 장안문은 ‘부욱문’으로 읽어야 했을까요. 이 장안문에 6.25당시 소련제 인민군의 탱크 2대를 숨겼다는 정보, 첩보를 입수한 미군이 폭격기를 보내서 탱크를 부수는 과정에 장안문도 반쪽이 파손되었다고 합니다. 1951년 1월 25일의 사진입니다. 이후 1968년경 처음으로 영화동에 와서 보니 석조부분만 남아있고 목조는 사라졌으며 그 위 황토밭에 망촛대가 무성했습니다. 흔히 쑥대밭이라 합니다. 쑥과 대나무는 황무지에서도 잘 자라나 봅니다. 그리고 1972년에 정부에서 화성을 대대적으로 보수하였습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현충사의
그럼 이야기 10개중 첫 번째 소고기 반 근을 이야기하겠습니다. 대부분 5대조 조상님 제사에 삼적을 올리는데 어적, 육적, 봉적이 있습니다. 어적은 조기를 쪄서 올리는 것이고 봉적은 닭을 잡아 삶아서 실고추, 홍지단, 백지단으로 치장을 해서 상에 올립니다. 그리고 육적은 소고기를 익혀서 역시 빻은 마늘, 실파, 실고추로 데코레이션해서 드리게 됩니다. 조기는 소금에 저려두면 수개월이 가고 닭은 늘 뒷곁에서 평온하게 조상님 제삿날을 기다립니다만 농사의 핵심인 소를 잡는 것은 금지된 시절이고 허가를 받은 일부만에게만 도축이 허용되었던 시절입니다. 요즘에도 소 한 마리를 잡아 제사를 올리는 경우가 거의 없으니 소고기 반근은 읍내 정육점에서 사오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요즘에야 마트에 차 타고 가면 다양한 크기와 부위의 소고기를 고를 수 있습니다만 1968년 비봉면 자안리에는 정육점이 없고 국개장터 비봉 양노리에 나와야 소고기를 살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의 심부름으로 소고기 반근을 사러 나온 10살 초딩은 윤재의 사장님이 부리부리한 눈으로 어린 손님을 맞이하고 소고기 반근을 잘라내어 종이에 포장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옆의 칸을 열고 흰 덩어리를 더 크게 베어내어 역시
1977년 5월 16일에 화성군수님으로부터 비봉면 근무 발령장을 받았습니다. 군청 행정계에서 타자로 작성된 발령장입니다. 그리고 40년이 흘러서 정부의 훈장을 받았습니다. 공직을 마치면 국가는 헌법에 의거하여 훈장을 줍니다. 홍조근정훈장. 경력에 따라 조금씩 이름이 다릅니다만 이름보다는 포괄적으로 훈장을 받은 것이 훈장입니다. 훈장 이야기를 하는 차에 대한민국의 국새를 보여드립니다. 여러번 새로 새겨서 쓰고 있지만 모양새는 비슷합니다. 그리고 역대 대통령이 써온 대통령직인입니다. 이전의 윤보선 대통령과 이승만 대통령의 대통령 도장은 각각 다른 글씨체입니다. 다음은 경기도지사의 직인이고 화성시장의 직인도 소개해 드립니다. 이어서 제 이름을 새긴 도장입니다. 공직생활중 쓴 도장이 10개가 넘습니다. 인영을 찍어서 언제 새긴 것인가를 기록해 두었습니다. 그냥 개인기록을 남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공직동안 받은 44매의 발령장을 묶어서 인쇄하였습니다. 40년동안 받은 발령장중 17매가 중복됩니다. 44-17=27입니다. 40년동안 27부서에 근무하였으니 평균 1년6개월간 각각 근무한 셈의 결과가 나옵니다. 하지만 공보실의 경우에는 쭉 이어서 7년간 근무하기도 했습니다
차량 랜드로바를 몰고 수원시내를 활보하던 바로 그 즈음에 홀로 한계령을 올랐습니다. 초등학교, 중학교 친구인 이규주와 이훈구가 같이 가기로 했지만 수원 터미널에 두 사람 모두 나타나지 않기에 홀로 여행을 시작하였고 3박 4일간 치열한 여정에 나홀로 이어갔습니다. 첫날에 소양호를 거슬러 올라가 양구의 낚시터에서 1박하고 원통면으로 가서 비봉면에서 1년간 근무하고 고향인 강원도로 전출한 최만수 선배를 만났고 교회터에서 하룻밤을 보냈습니다. 7인용 텐트를 짊어지고 갈 때는 무거웠지만 이를 풀밭에 펼치니 아늑한 집이 되었습니다. 세상사 평소에는 불편한 일이 위기에는 큰 힘이 되는 경우를 많이 만나게 됩니다. 아침에 먹고 남은 밥은 한계령 초입에서 점심으로 먹으면서 정상부근의 도로변에서 다시 노숙하여 3박을 보냈습니다. 원통면에서 한계령 정상부근에 오르는데 꼬박 하루가 걸렸습니다. 소승폭포와 대승폭포를 구경하고 누군가가 물속에 담가둔 커다란 참외를 발견하여 맛나게 먹었습니다. 이후 평생에 먹은 참외 중 대승폭포에서 우연히 얻은 참외맛을 능가하는 과일을 만나지 못하였습니다. 전쟁통에 어렵게 구한 도루묵이 맛있으므로 ‘은어’라는 이름을 하사하였지만 임금은 다시 궁궐에 돌
비봉면 자안1리 208번지에서 태어나 청룡초등학교와 비봉중학교를 졸업한 이강석입니다. 비봉면의 여러 어르신을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수 개월전에 안희창 노인대학장님이 오늘의 강연을 예약하셨습니다. 수 개월동안 여러 어르신을 뵙고 드릴 말씀에 대해 매일매일 생각하면서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10가지 소재를 가지고 어르신에게 인사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10가지 소재는 주변의 자연스러운 이야기입니다. 제가 평생을 공무원으로 근무하였으므로 특별한 이야기보다는 삶 속의 일상적인 스토리를 전해 드리려 합니다. 우선 어르신에게 꽃다발을 한 아름 드림니다. 꽃은 늘 아름답고 향기롭고 주변에 희망과 기쁨을 줍니다. 받는 사람도 즐겁고 주는 이도 행복한 것이 膳物(선물)을 드리는 일이고 그중에서도 꽃은 그 종류와 송이 등이 다양하므로 膳賜(선사)하기에 참으로 편안합니다. 우리 비봉면에는 비봉초등학교, 청룡초등학교가 있고 과거에 유포리에 분교가 있었습니다. 1906년에 보통학교가 세워졌다하고 1926년에는 심상학교, 그리고 1941년부터 국민학교라 불렀는데 1996년에 이를 초등학교로 개칭하게 되었습니다. 요즘에 아이들에게 국민학교라고 말하면 이내 ‘초등학교’라고 대꾸를 합
자료를 검색해 보니 차관정치란 일제의 조선통감이 임명한 각부 일본인 차관이 대한제국의 실권을 장악하고 직접 집행하던 정치라고 설명한다. 즉, 1904년의 제1차 한일협약 이후, 조선에서 이른바 ‘고문정치(顧問政治)’를 행하며 재정 ·외교문제 등에 내정간섭을 해온 일제는 1907년 7월 ‘헤이그특사사건’을 구실로 한일신협약(정미조약)을 강제로 체결하였고 조선통감부는 입법 ·사법 ·행정 전반에 걸쳐 조선의 통치권을 전담하였다고 한다. 차관정치가 시행됨에 따라 대한제국 정부의 중요한 관직에는 모두 일본인이 임용되어, 모든 관청에는 일본인 관리가 없는 곳이 없을 정도가 되었던 것이다. 정부의 각부에는 1~2명의 차관이 있다. 장관을 보좌하고 소관의 공무원을 지휘하는 자리다. 아마도 2차관제를 두는 이유는 행정내부의 공무원으로 임명하는 1차관과 달리 외부인사를 채용하기 위해 마련한 제도로 보인다. 대표적으로 문화체육관광부에는 역도선수 출신의 장미란 차관이 근무중이다. 평생의 직업공무원이 아닌 그 분야의 전문가를 차관으로 임명하여 새바람을 일으키겠다는 의미로 보인다. 사실 지방자치제 이후에 광역과 기초자치단체장들이 원하는 인사를 임명하기위해 이른바 외부전문가를 들인다는
어린시절에 들은 이야기입니다. 아침에 우유를 배달받아 마시는 사람보다 새벽에 우유를 배달하는 이가 더 건강하다는 말입니다. 매일매일 우유를 주문해서 마시면 영양적으로는 건강할 수 있지만 더불어 적정하게 필요한 운동을 해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다른 이보다 더 일찍 일어나서 농장에서 우유를 받아 맑은 공기를 마시며 각 가정을 돌면서 우유를 배달하는 사람들은 새벽운동을 하니 건강에 좋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느 농부는 새벽에 일어나 왼손에 삽을 들고 먼 거리에 있는 논의 벼를 살피고 돌아오는 길에는 오른손에 삽을 쥐고 집으로 돌아온다고 합니다. 벼논을 돌보는 일도 운동을 병행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벼는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잘 자라고 농부는 아침저녁으로 논에가서 벼를 살피며 건강을 관리하는 것입니다. 세상사 모든 일에 의미를 부여하고 긍정의 마음을 갖게되면 얻음이 더 크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골퍼들은 돈을 내고 골프장에 올라가서 힘들게 골프공을 때려서 홀컵에 넣고, 골프장 관리인은 같은 코스를 걸어다니며 잔디를 돌보고 임금을 받습니다. 하지만 골프장에서 일하는 분들은 같은 골퍼들이 운동을 하는 골프장 공간에서 작업을 하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