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대학 강의자료 만들기

이강석 전 남양주시 부시장

3개월후 6월24일 비봉노인대학 강의를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는 터이기는 한데 그 이후 5개월, 총 여덟달 후 11월11일에 수원시 팔달구노인대학에서도 오후2시로 날짜는 물론 시각까지 2시간으로 결정해서 출강을 하라 하십니다. 화성과 수원이니 연결성은 없어보이는데 두곳 모두 1년치 일정계획을 잡는 것, 강의제목을 정하는 일, 그리고 강의계획서를 내라는 말씀이 공통됩니다.

 

대한노인회노인회 경기 수원시지부, 경기 화성시지부, 그리고 각각의 비봉면 분회와 권선구 분회에서는 아마도 중앙의 지침에 따라서 시로부터 보조금을 받고 노인대학 강의를 하는 줄 추론을 해 봅니다. 비봉노인대학의 경우 3번 출강한 바여서 노인대학장님이 다음번에는 다른 소재, 주제로 준비해달라는 당부를 하신 바입니다.

 

다음주 화요일에는 수원시 팔달구청 공무원 100명을 모시고 "슬기로운 행사진행"에 대한 두시간 강의를 앞두고 있습니다. 1개월전에 시잘된 강의안 만들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PPT작업은 끊없는 개미지옥입니다. 한페이지를 만들면 이에 파생되는 다른 이야기를 떠올리기 때문입니다. 과거의 사진을 찾아보거나 생각에 접근하는 사진을 구하기 위해 인터넷을 돌아다니게 됩니다.

 

일단 펼치고나서 애니메이션을 추가하기도 하고 사진배열을 바꾸거나 크기를 조절하기도 합니다. 본래 하고 싶은 이야기가 중심되는 것이 아니라 주변의 곁가지 사진자료가 더욱 기승을 부리는 강의자료로 흘러가는 것을 보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정신을 차리고 몇마디 단어를 추가하고 나면 이 내용을 설명할 그림이나 자료사진을 찾게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시연하듯이 PPT를 구동시키면서 이야기의 흐름이 매끄럽지 못하므로 중간 자막을 첨가하거나 스토리를 조금 바꾸기도 합니다. 하지만 지난번 부시장을 위한 강의에서도 경험한 바대로 여러날 긴 시간동안 PPT를 준비해도 당일에 강의실 분위기가 강의의 성패를 좌우합니다. 그날 부단체장들은 공감력이 낮은 분들이었습니다. 

 

강의를 하면서 왠지 자신들과는 동떨어진 이야기를 듣는 표정이 더러 있었기 때문입니다. 중간에 더 급한 일정이 들어와서 이석하는 분도 있었고 수강중에 문자에 답하느라 정신없이 바쁜 경우도 보였습니다. 준비를 열심히 깊이있게 잘하는 것도 강의의 성패에 영향을 주는 요소이겠지만 수강자를 잘만나는 행운도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팔달구청 공무원의 경우 평균 27세라면 40년전 사람을 만나서 자신들의 8급, 7급, 그리고 6급 공무원의 역할에 대한 비교평가를 듣는 것이 기분좋을 것 같지 않습니다. 8대의 버스와 5대의 승용차가 있다면 세대차이가 난다는 조크를 이들이 받아줄 여지가 없어보입니다. 자신만의 세계에서 나만의 공간에서 일하는 요즘 MZ세대에 이끌여서 아기 사탕먹이듯 입맛에 맞는 이야기만 할 수는 없는 일이고 그런 능력도 없고 경험도 가지고있지 않습니다.

 

사전에 강의를 논의하면서 윗사람이 압박하는 듯 느껴지는 의전이라는 용어는 맞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제목을 바꿨습니다. 슬기로운 행사진행. 공무원사회에서 지켜야 할 의전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기존의 사회에서 박제되어 내려온 의전을 타파하는 이야기를 준비했습니다. 

 

실제로 강의안에서 의전이라는 단어를 지웠습니다. 5단어를 지우니 강의안에서 의전이라는 말은 씨도없이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불필요한 의전을 버리고 시대에 맞는 앞서가는 의전에 관심을 갖자는 이야기뿐입니다. 그런데 네이밍, 강의 작명에서 부족함이 발견된 것입니다.

 

의전타파라는 말도 맞지 않습니다. 불요불금한 의전을 타파하자는 강의 제목에서조차 의전이라는 말을 버리자는 제안을 하는 것입니다. 오로지 합리적인 행사진행을 위해서는 과거이 관행적인 절차를 생략하는 대신에 젊은세대, 새시대가 바라는 무대진행 시나리오를 완성하자는 제안을 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표창장, 감사패, 발령장을 집행부 진행팀이 기관장, 수여자에게 서빙하는 관행부터 버리자는 주장을 합니다. 연세가 있으시고 바쁜 일정이니 전달하는 각종의 자료 순서를 실무팀이 챙기는 것은 필요한 일이나 무대위에서조차 굽신거리면서 겨드랑이 아래로 표창장, 감사패, 발령장을 서빙, 서브하는 것이 이시대에는 더이상 필요하지 않음을 강조합니다.

 

행사장 테이블에 순서대로 배치해 놓으면 수상자를 불러서 한사람 두사람 순서대로 전달하면 될 것입니다. 혹여 진행하다가 실수로 순서가 바뀌어도 소비되는 물품이 아니고 음식도 아닌 것이니 행사후에 본인의 것으로 교환하면 될 일입니다. 수상자들도 무대에서 자기 이름이 아니라고 동동거리지 말고 부드럽게 진행하고 나중에 정리하는 여유를 가져 주시기 바랍니다. 

 

젊은 공무원을 위한 의전 이야기는 이리저리 완성되었고 비봉노인대학, 권선구 노인대학의 어르신을 위한 이야기를 준비할 차례입니다. 우선 식당에서 서두루지 마시라는 이야기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경기도 이천에서 지인과 식사를 하는데 노인 두분이 오셔셔 주문하신 후 젊은이 4명이 들어와서 식사를 청했습니다. 잠시후에 청년들의 음식이 나왔습니다. 탕이었습니다. 탕이란 이미 준비된 가마솥에서 국자로 퍼담고 그위에 파, 고추가루 등 고명을 얹으면 완성되는 대중적 음식입니다.

 

이때 노인중 한분이 버럭 화를 내셨습니다. 우리가 먼저 주문했는데 저들의 음식이 먼저나온 것은 잘못이라는 말씀입니다. 순간 주인과 주방장은 크게 놀랐습니다. 옆에서 식사를 하던 우리 일행도 무슨일인가 관심을 가졌습니다. 주인은 사과를 표했습니다. 

 

하지만 잘못만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인은 변명도 못하고 바쁜 주방, 홀서빙을 이어갔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어르신 두분의 식사가 나왔습니다. 우선 반찬이 6가지가 넘고 생선, 두부, 공기밥 등 화려한 식단입니다. 차리는데 시간이 걸리겠습니다.

 

이제 해설, 해석이 됩니다. 주방에서는 주문이 들어오는 순서대로 조리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두분 어르신의 메뉴를 준비하는 동안에 젊은이의 탕 4개도 동시에 진행되었을 것입니다. 조리시간이 짧은 탕은 곧바로 완성되었을 것이고 어르신들의 요리는 생선튀김, 두부조림 등에 더 긴 시간이 필요할 것입니다.

 

 

 

결국 설명은 명쾌합니다. 두팀의 주문을 동시에 주방에서 시작했다하여도 젊은이의 탕은 5분안에 나온 것이고 어르신의 요리는 10분이 소요되는 것입니다. 어르신의 요리에 조금 더 집중했어도 결과는 젊은이의 탕 4그릇이 먼저나오고 어르신의 요리는 그 다음번입니다.

 

여기에서 주인장, 주방장의 실수를 지적합니다. 기본찬을 미리 드렸어야 합니다. 그리고 젊은이들의 탕이 나가기 전에 어르신께 사전 설명을 했으면 더욱더 좋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주방장, 찬모, 주인은 어르신들이 다 이해하실 것으로 기대하였나 봅니다.

 

인생도, 세상살이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소통하고 설명하고 공감하면 다 이해되는 일인데 일면만 보고 판단하면 오류를 범하게 됩니다. 동영상에서 엉뚱한 상상을 하게하고는 크릭수를 늘리는 이른바 낚시촬영이 많이 보입니다. 제목에서는 엄청난 일이 벌어진줄 생각하고 들어가보면 신변잡기, 단순한 사건을 침소봉대하고 있음을 알게됩니다. 

 

급이 떨어지는 매체에서 특히 낚시기사가 심한 줄은 이제 우리모든 독자, 시청자들이 간파학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궁금하여 들어가게 되는 인터넷 시대의 자화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은 그렇게 강의 준비를 하면서 느낀 삶의 소소한 이야기를 적어보았습니다. 

 

 

이강석 (李岡錫)

출생 : 1958년 화성 비봉

경력 : 경기도청 홍보팀장, 경기도청 공보과장

         동두천·오산시 부시장 / 경기도균형발전기획실장

         남양주시부시장 /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현직 :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저서 : '공무원의길 차마고도', '기자#공무원 밀고#당기는 홍보#이야기' 등 수필집 53권 발간



기자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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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오산#남양주 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