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령도와 강화도/ 2박3일 역사의 현장 ○… 출발 ‘백령도 스타일’ 아침 7시20분에 연수원에 모였다. 지난 8개월 넘게 여러번 1박2일, 2박3일 여행은 다닌터라 '단거리 짐싸기'에는 달인이 된 선수들 아닌가. 강의를 들을때 가끔 교수님들이 '행정의 달인'인 여러분께 무슨 말을 해야할지 걱정이 앞선다고 말한다. 그 말을 들을때 내가 행정의 달인인가 자성해 보곤 하는데 결론은 달인이기 보다는 숙련공이라는 판단을 하곤 한다. 하지만 짧은 기간 짐싸기 만큼은 방송이 끝난 '김병만의 달인'에 근접할 자신감이 넘친다. 요즘 김병만은 달인을 넘어 통달인이 되어서 오지마을에서 맨손으로 장어를 잡고 집을 짓고 폭우와 싸우며 이른바 '병만족'의 명실상부한 족장이 되었다. 미상불 오늘 오전에 국제회의처럼 정확한 시간놀이를 할 줄은 꿈에도 모른채, 그리고 잠시후에 닥쳐올 대 사건의 전조현상인 태풍의 눈속의 평화인줄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채 느긋하게 버스에 올라 의자를 젖히고 잠을 청했다. 그리고 서해북쪽 우리의 군대 대한민국의 아들이 지키는 해병의 섬 백령도의 모습을 그리며 잠깐 잠이 들었다. 심상치 않은 속도를 느끼며 잠에서 깨어보니 우리의 버스는 막 고속도로를 벗어나고 있었
공직 간부에 실장이 있고 공조직 책임자로는 본부장이 있다. 경기도청에 근무하면서 받은 느낌은 기획관리실장, 기획조정실장이라는 부서가 소속 공무원에게는 참으로 귀찮은 조직이었고 기획팀은 잘난척하는 직원만 가득한 곳이었다. 그런데 퇴직후에 돌아보니 반드시 필요한 조직이었다는 점에 공감을 하게 된다. 이른바 기획부서, 기업의 비서팀이 공조직이나 공공기관, 기업에서 중요한 이유는 늘 조직 전체를 놓고 기관 전체를 넓게 보면서 고민하고 검토한다는 점에 있다 할 것이다. 공직의 예로 팀이나 과에서는 자신들이 담당하는 분야에는 정통하지만 타부서와의 접점이나 융합력은 떨어질 것이다. 다시 과장이 정한 정책이 국장실에서는 또 다른 검토사항과 만난다. 좀 더 거시적으로 보면 과에서 결정한 정책의 추진과정에 걸림돌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미 다른 조직에서 유사한 사업을 추진중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공직내내 수많은 사업을 재검토하고 다른 부서, 기관의 상황을 접목해 수정하곤 했다. 공공기관에서 추진하는 사업의 경우에도 담당자에게 임무와 의무는 쌓이는데 이를 처결할 권리, 권한, 예산은 부족하다. 공직에서도 늘 하는 말로 예산, 인력을 주면 무슨 일이든 한다고 항변한다. 맞는
직장에서는 상하좌우간의 소통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소통은 인체 혈류와 신경계다. 필요한 정보와 자료, 소재와 원재료가 적기에 공급되고 부족한 곳을 채우고 넘치는 곳은 가감해야 한다. 이 같은 경우는 봄날 농촌의 ‘판장모판’에 비유되기도 한다. ‘판장모’란 논에 일정한 간격으로 줄을 설정하고 그 안에 못짐을 넣은 후 한 명씩 들어가서 모내기를 하는 농사일을 말한다. 아주 고달픈 방식이다. 좁은 공간에서 주어진 일을 홀로 다 마무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업무능력이 떨어지는 모내기 초보자에게는 이중고의 부담을 주는 일이다. 반면 작업속도가 느린 초보자는 못짐이 모자라면 여러발짝 후진해서 가져와야 하고 남아도는 경우에는 일일이 뒤편으로 이동시키면서 모내기를 해야 한다. 그러니 모내기를 잘하는 전문가라면 남는 못짐은 뒤편으로 밀어내면서 작업을 하되 옆자리의 못짐 배열을 감안하여 적정한 배치를 하는 관리자가 되어야 하는데 농촌의 농사일에서는 딱히 고수도 없고 하수도 별로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판장모 이야기를 현대 행정기관의 어느 부서에서 견주어 보고자 한다. 어느 기관이나 과단위 부서에는 과장과 4명의 팀장이 있고 각 팀에는 대략 6명씩의 팀원이 근무한다. 각 팀
모두가 잘 아는 바, 기우제에 탁월한 능력이 있다는 평가를 받는 인디언 추장이 있었다. 그가 기우제를 지내면 반드시 비가 내리니 다른 부족에서도 기우제 제관으로 초청을 받게 되었다. 주변 사람들이 효험있는 기우제를 지내는 비법을 추장에게 물었다. 추장의 답은 간단했다. “나는 비가 내릴 때까지 꾸준히 기우제를 지냅니다.” 그는 아마도 1년 내내 기우제를 지냈거나 때로는 1년 이상 비가 내리기를 소원하는 기도만 했을 수도 있겠다. 추장이 사는 동네의 건너 마을 유행어는 "아이 하나를 키우기 위해서는 온마을 사람의 손길이 필요하다"라는 말이다. 우리로 말하면 복지를 말하는 것이다. 사실 일반행정은 문서 한 장을 기안하여 여러 부 복사하여 뿌리면 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복지는 문서 한 장에 한 사람씩 붙어서 복지사무, 행정업무를 수행한다. 복지행정은 그냥 서류를 배포하면 실현되는 일이 아니라 각기 다른 복지요구에 맞게 음식과 옷을 먹이고 입히고, 편안한 잠자리에 재워야 한다. 우리나라 1970년대로 가보면 ‘마을 입구 논농사’는 온 동네사람이 함께 짓는다는 말도 있었다. 이 말은 과거 행정력이 농촌 농사에 집중하던 ‘농정 최선의 시대’에 생겨난 요즘 청년들의
요즘 공직사회에서 퇴임식을 보기 어렵고 동시에 훈장을 전수하는 행사도 거의 열리지 않는다. 기관장은 바빠서 훈장 전수식을 준비하지 못하고 부단체장은 기관장의 눈치 보느라 퇴직 간부의 훈장을 전하는 행사를 주관하지 못하는 것 같다. 더구나 명퇴하고 한 두 달이지, 6개월이 지나면 또 다른 인사발령으로 그 부서의 서무담당, 주무팀장, 과장이 바뀌고 국장급 인사는 더 자주 발표되므로, 막상 훈장을 받으러 근무한 기관이나 부서에 가기에도 쑥스럽다는 것이 퇴직 공무원 대부분의 공통적인 이야기이고 퇴직 공무원의 훈장 전수식 참석을 기피하는 것이 먼저인가, 기관에서 행사를 준비하지 않아서 참석하고 싶어도 못 가는 것인가는 '닭이 먼저인가 계란이 먼저인가'를 논하는 것과도 같다. 헌법 제80조에 “대통령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훈장 기타의 영전을 수여한다.”고 규정했다. 소중한 훈장은 퇴직후 6개월, 1년후에 택배로 보내기도 한다니 훈장이 명예가 아니라 서무담당자에게는 애물단지가 되고 있다. 도지사 일정, 시장의 일주일이 매일매일 30분 단위로 이어지는 접견과 회의에 바쁜 것도 이해하지만 그래도 상반기, 하반기에 단 하루 20분 1,200초만 割愛(할애)해 주시기 바
1963년 법률 제1538호로 서울 광화문에 자리한 경기 도청의 수원이전이 결정되었고, 1967년에 팔달산에 청사를 짓고 서울에서 수원 팔달산으로 도청이 이사했다. 당시 공무원들은 289만 경기도민과 함께 산기슭에 뽕나무를 심어 그 잎으로 누에를 쳐서 고치를 수출하여 외화를 벌어들이고 통일벼를 심고 논보리로 이모작을 하면서 식량증산에 헌신했다. 춘궁기를 이겨내기 위해, 그리고 안보적 차원에서 통일벼를 심었다. 1980년대는 공직은 물론 사회 모든 분야에 있어 변혁의 시기였다. 88올림픽은 우리 국민의 자부심이 되었고 IMF는 힘들었지만 극복의 과정에서 국민의 저력과 국가의 힘을 확인했다. 이후 2002년월드컵, 평창동계올림픽을 치르면서 발전하고 사회가 변화하고 공직사회에도 크나큰 변혁의 시대를 맞았다. 최근의 잼버리대회로 인한 논란도 있었지만 경기도와 시군, 타시도의 광역, 기초자치단체 공무원의 참여와 범 정부적인 대처로 오히려 국민에게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고 해외에서도 대한민국 국민과 정부와 공직사회의 저력을 크게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지난해에 경기도청 청사가 광교로 이사했다. 팔달산 도청사 55년 동안 수많은 공무원이 밤늦게까지 일하고 도정을 고민하
요즘 공직사회에서 갑질이라는 문제가 더 크게 부상하고 있는 듯합니다. 갑질로 인한 피해는 당장 필드에서 갑질로 어려움을 겪은 이들의 고통이 있었고 이를 지적하는 감사부서의 조사와 징계위원회의 논의, 그리고 당사자가 조직으로부터 징계조치를 받은 이후의 긴 시간을 징계의 굴레를 쓰고 감내해야 하는 과정으로 이어집니다. 갑질은 시대적으로 그 느낌이 다르다고 봅니다. 1980년대 공직사회라면 평범한 일상이었을 일이 오늘날에는 갑질이 되고 더러는 큰 잘못으로 확정이 됩니다. 과거 군대에서 밤 12시까지 몽둥이 구타를 당하지 않은 날은 더 불안해서 잠이 오지 않는다 했다지요. 사실 과거 도청의 공직사회 모든 사무실에는 한두 명 잔소리, 험담을 해대는 사무관 계장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변의 공무원들은 이들이 잔소리를 시작하면 ‘저 양반 또 시작이군’ 하면서 귀를 닫았습니다. 내용을 들어보면 그렇게 큰 잘못이 아닌데 게딱지 후벼 파듯이 소속 공무원의 업무행태를 비판하곤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요즘의 시각으로 보면 엄청난 갑질을 한 그 당시의 간부들은 평온하게 승진하여 서기관에 이르고 더러 몇 명은 국장급 3급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업무에서 갑질을 하고 문서를 내던
군수님 집무실을 그때에는 官房(관방)이라 불렀습니다. 관방을 “벼슬아치가 일을 보거나 숙직하던 방”이라 사전에서 풀어줍니다만 1960년대 군수실을 관방이라 불렀고 방 주인은 ‘군수영감’이라 칭했습니다. 令監(영감) 이라는 호칭은 지금도 공식, 비공식적으로 쓰이는 줄 압니다. 그 관방의 부속실 벽에는 관청의 모든 부서 사무실을 밝히는 작은 5촉짜리 등불을 켜고 끄는 스위치가 있었습니다. 부속실 스위치에 연결된 5촉 전구는 각 과 사무실의 천정 구석에 붙어있어서 아침 8시반에 군수 출근시각에 켜지고 저녁 6시반 퇴근시에 꺼졌습니다. 주로 낮을 밝히는 전구입니다. 비서실에 스위치는 있는데 비서실에서는 불빛이 보이지 조명장치이고 각 사무실 입장에서는 스위치가 없는데 알아서 켜지고 꺼지는 '공무원들의 출퇴근을 지휘하는 등대 같은 등불'이라 할 것입니다. 오래된 청사의 천정에는 지금도 남아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 전구(사진)의 숫자는 12가 아니고 1과 2 입니다. 1은 군수실 비서가 스위치를 내리면 꺼지는 등불이고 2는 부군수실 비서가 전원을 OFF되는 전등입니다. 저녁 6시20분부터 많은 공무원들이 저 숫자 1, 2 또는 12를 바라보면서 1번이 꺼지기를 기다렸고
1988년 이후 2000년까지 언론인의 취재방법은 참으로 다양했습니다. 자료를 요청하여 내용을 검토하고 이것을 바탕으로 다른 이해당사자의 주장을 첨가하여 기사를 완성합니다. 방송기자의 경우는 화면이 중요하므로 은밀하게 화면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즉 몰래카메라가 있습니다. 평소 친밀한 관계에 있는 기자가 정색을 하고 목소리를 고추 세워 업무에 대해 묻는다면 녹음일 수 있습니다. 방송기자가 사무실에 왔는데 테이블에 올린 카메라의 센서 바늘이 툭툭 튀고 있다면 지금 녹취되고 있는 것이고 카메라 렌즈가 무엇인가를 촬영하고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몰래카메라에 의한 보도내용을 보면 신발, 구두, 빈 의자 등이 주인공이 됩니다. 두유업계를 뒤흔든 오산 잔다리(細橋)마을 두유 홍보에서도 서울의 초등학교 급식 심의위원이라며 시설을 둘러보고 갔는데 다음날 전화로 취재동의를 요청해 왔습니다. 방송 나가는데 동의하겠으니 당장 찍으러 오시라 했습니다. 하지만 어제 안경에 장착된 카메라로 다 찍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언론인을 만날 때 결정적인 단어를 쓰지 말아야 합니다. 아주 정확한 발음으로 원론적인 이야기를 이성적으로 말해야 합니다. 감정을 담지 말고 사정하지도 말고 부탁하지도
언론인은 지속적으로 중앙 지향적입니다. 경기도내 지방 언론인으로 들어와 중앙 방송국의 간부가 된 경우가 있고 중앙신문사 부장급이 된 사례도 많습니다. 중앙사에서 퇴직하면 지방사 국장타이틀로 출입처를 담당하기도 합니다. 같은 지방지 간에도 많은 언론인들이 오고가고 신문기자가 방송으로 가고 방송기자가 신문으로 통신으로 인터넷신문으로 자리를 이동한다. 경쟁사 기자로 건너가서 승승장구하는 케이스도 더러 있습니다. 잘 아는 K기자는 지방지에서 장기근속 후 경제지에 있다가 다른 지방사에서 다시 최초 근무하였던 회사에 복귀한 경우도 있습니다. 그룹 이동의 경우도 있는데 이는 아마도 끈끈한 선후배의 정으로 뭉쳐진 독수리 5형제의 경우로 보아야 한다. 우리는 함께 간다는 말이입니다. 1988년에 Y사 중견급 기자 3명이 지방사 創刊(창간)간부로 갔다가 얼마 후 다시 복귀한 사례도 있습니다. 언론사 에이스로 활동하다가 퇴직한 후 다른 신문사 부국장으로 가는 코스는 마치 공무원이 정년을 앞두고 산하기관 본부장으로 가는 경우와 유사하합니다. 젊은 시절 신문사 차장 부장을 거쳐 국장을 하신 분들이므로 언론에 대한 경륜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것입니다. 공무원은 내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