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장난 벽시계

이강석 전 남양주시 부시장

대중가요 가사중에 고장난 벽시계 이야기가 있습니다. “세월아 너는 어찌 돌아도 보지 않느냐. 나를 속인 사람보다 니가 더욱 야속 하더라.”

 

그리고 마무리는 더욱 심오합니다.

 

“고장 난 벽시계는 멈추 었는데 저 세월은 고장도 없네.”

 

 

어디 세월이 고장나겠습니까. 요즘에 나오는 시계는 건전지만 충분하면 끝없이 돌아갑니다.그리고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면 벽시계는 아침 그 시각을 가르키고 있습니다. 새벽 5시경입니다.

 

어제저녁에 잠들기전에는 밤 10시30분이었고 잠이 들었다가 새벽에 기상하기까지 대략 6시간반동안 분침, 초침이 틀리지 않고 그 자리를 돌고돌아 새벽, 아침 그 시각을 알려줍니다. 우리가 시계에게 한 일이라고는 동드란 작은 건전지하나 끼웠을 뿐입니다.

 

참으로 대단한 일입니다. 시계주인이 보든 아니보든 시계의 초침은 1분에 한바퀴를 돌아 60초를 완성하고 그 시각에 분침은 그만큼 움직이고 시침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자정을 넘어서 새벽에 이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스마트폰이나 워치는 주인이 잠시 자리를 비우거나 잠들면 자기들도 숙면을 합니다. 물론 마음속 시간의 흐름은 무의식으로 관리하다가 주인이 목이말라 새벽에 깨면 잠을 안잔 것처럼 표정관리를 하면서 번적거리고 야단법석을 합니다. 스마트폰도 스스르 눈을 감고 잠을 자다가 주인이 문지르면 불침번인양 번쩍하고 관등성명을 말합니다.

 

아나로그 시계는 주인이 없어도 있어도 부지런히 일하는 개미와 같은 상황이라면 디지털은 베짱이입니다. 주인앞에서 열심히 연주를 하다가 주인이 자리를 비우거나 잠들면 자기들도 휴식을 취한단 말입니다.

 

최근 미국에서는 양하원합동연설 등 대통령과 정부의 수뇌부가 동일장소에서 행사를 하는 경우 장관급중 한사람을 ‘지정생존자’로 정해서 군부대의 보호아래 제3의 장소에서 대기한다고 합니다. 대기하는 동안 핵무기 관리, 정부기능의 중요코드를 익히는 등 실전으로 근무한다고 합니다.

 

과거에도 지정생존자 시스템이 가동되었지만 백악관 어디에서 휴식을 취하는 정도였다고 하는데 911사태이후에 지정생존의 역할이 진중해졌고 구체적인 역할을 실전처럼 운영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영화에서나 가능한 일이지 미국 백악관이 적의 수중에 들어가거나 상하원합동회의장에 폭탄이 터지는 일은 거의 가능성이 희박합니다.

 

하지만 지정생존자는 가능성이 거의 제로인 상황에서도 정해진 시스템속에 들어가서 실전처럼 임한다고 하니 역시 미국이라서 다르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에게도 지정생존자와 유사한 일들이 많습니다. 과거 어르신들은 어설픈 일로 밤을 새우는 것을 보고 ‘죽은말 지킨다’라고 평했습니다.

 

과거에 말은 사람이 타거나 짐을 싣고 옮기는 역할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최근에는 말고기를 식용으로 하고 말의 뼈를 갈아서 골다공증을 예방하는 식재료로 쓰고 있습니다. 하지만 말을 식용으로 하지 않았던 기마민족의 입장에서는 말이 죽으면 더 이상 쓸모가 없어지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죽은말을 지킨다고 했습니다. 차라리 누가 죽은 말을 가져가도 좋다는 생각이었을 것입니다.

 

을지연습으로 밤을 새운 공무원들이 스스로 죽은 말을 지켰다는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새벽까지 초소에서 근무해도 적군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밤새워 순찰을 돌아도 강도나 도둑은 보이지 않습니다. 망루에서 밤을 지새웠지만 불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이 일을 지속해야 하는 것이 국가의 기능입니다.

 

주인이 잠든 시각에도 초침, 분침, 시침이 일정하게 움직여서 새벽 5시를 맞이하고 7시 전후의 바쁜 출근준비를 하는 주인님이 볼때마다 빵끗하고 시계는 웃어주면서 무언의 격려를 해야 합니다. 전철은 내가 잡아둘 것이니 천천히 식사하고 차분하게 넥타이를 매고 구두끈을 고쳐맨 후에 아내에게 아침인사를 하고 부드럽게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고장난 벽시계는 울지 않고 하루에 두 번은 맞더라는 농담이 있습니다만 고마운 우리의 시계는 잠을 자는 동안에도, 외출해서 밖에 있는 시각에도 어김없이 따박따박 자신의 초, 분, 시간을 관리하고 있습니다.

 

거듭 말씀드립니다. 나라의 정치인, 공무원, 국회의원, 대통령, 국무위원이야말로 벽시계처럼 움직여야 합니다. 주인이 잠든사이 같이 잠을 자서는 안되고 밖에 나간 사이에 게으름을 피우다가 주인이 돌아올 시각에 맞춰서 급하에 초침, 분침, 시침을 정리하는 일은 더더욱 없어야 합니다.

 

주인이 잠든사이에도 열일하는 시계를 신뢰하고 어느날 문득 시계가 멈추면 건전지를 새로 갈아주는 주인과 시계 사이처럼 국민과 정치인은 상호간의 큰 신뢰를 바탕으로 연결되어야 합니다. 국민이 군인을, 경찰을, 소방공무원을, 세무공무원을, 내무공무원을, 그리고 중앙정부의 모든 공무원을 신뢰하도록 국가가 믿음을 주어야 합니다.

 

시계가 건전지 한 개로 수개월을 버티듯이 국가는 국민 개개인이 내는 적은 세금을 국가와 국민을 위해 알뜰살뜰하게 활용해야 합니다. 마구마구 던지는 예산이 아니라 초침, 분침으로 나누어서 필요한 곳에 예산을 집행하는 그런 국가가 되어야 합니다.

 

 

이강석 (李岡錫)

출생 : 1958년 화성 비봉

경력 : 경기도청 홍보팀장, 경기도청 공보과장

         동두천·오산시 부시장 / 경기도균형발전기획실장

         남양주시부시장 /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현직 :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저서 : '공무원의길 차마고도', '기자#공무원 밀고#당기는 홍보#이야기' 등 수필집 53권 발간



기자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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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오산#남양주 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