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 솜사탕! 솜사탕 같은 구름은 달콤할까? 맛은 볼 수 없겠지만 시원했으면 좋겠다!
기록적인 폭염이 이어지면서 수도권 낮 최고기온도 40도에 육박하고 있습니다. 역대급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입니다. 에어컨이 없는 거리를 한가로인 거닐 낭만도 여유를 찾기에는 너무 버거운 날들의 연속입니다. 문득 스마트폰이나 뉴스에서 이야기하는 온도를 보고 있자니 왜 저 숫자일까?라는 쌩뚱맞은 생각과 동시에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 한 구절이 생각났습니다. ‘어른들은 숫자를 좋아한다. 당신이 어린들에게 새로 사귄 친구에게 대해 말하면 어른들은 절대로 중요한 것은 묻지 않는다. ‘그 친구의 목소리는 어떠니? 어떤 놀이를 좋아해? 그 친구는 나비를 모이니? 같은 질문들 말이다. 대신 이렇게 물을 것이다. ‘그 친구는 몇 살이니? 형제는 몇 명이나 있어? 몸무게는 얼마니? 그 친구의 아버지는 얼마나 버시니?’ 그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듣고 나면 그 친구를 안다고 생각한다. 당신이 만약 어른들에게 이렇게 말한다고 해보자. ’붉은 벽돌의 아름다운 집을 보았어요. 창문에는 제라늄 화분이 있고 지붕 위에는 비둘기들이 있었어요’ 그러면 어른들은 어떤 집인지 절대로 머릿속에 그려내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어른들에게는 이렇게 말해야 한다. ‘십만 프랑짜리 집을 보았어요.’그러면 그제
짧은 장마가 지나고 열대야가 극성입니다. 열대야는 열대 지역과 같이 야간에도 밤잠을 이루지 못하는 정도의 고온 상태가 유지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기상청에서는 야간 일최저기온이 25℃ 이상인 경우를 열대야라고 합니다. 벌써 올해 전국 평균 열대야 일수는 7.1일로 1994년 6.5일을 넘어섰다고 합니다. 무더위에 온열질환자는 물론 폭염 사망자도 나오고 있습니다. 소나기가 내려 폭염을 식혀줄까 기대고 하지만, 기상청에서는 소나기가 내린 뒤 습도가 높은 상태에서 다시 기온이 올라가 무더위가 지속될 것이라고 예보합니다. 폭염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낮 시간대 외부 활동을 자제하는 것은 물론, 열대야 때문에 야간에도 간단한 산책도 자제하고 집에서 에어컨을 튼 채 두문불출하고 있습니다.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80~90년대 열대야’라는 게시물에는 길거리에 이불을 깔고 잠을 자는 사람들의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인도며 주차장에서 이불을 깔고 자는 모습이 쌩뚱맞기도 하지만, 댓글에는 공감하는 내용과 다소 과장됐다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 사진을 보고 있노라니 문득 그 시절 열대야에는 ‘우리’가 있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더운 건 마찬가지일
우리들의 삶에서 주인공은 바로 우리입니다. ‘나는 나’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살아가면서 우리가 주인공이라고 느끼는 시간이 얼마나 될까요? 아이를 키우고 있는 한 부모는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연극을 할 때 주인공을 포함한 모든 배역을 뽑기로 하는데 아이가 주인공을 뽑지 못해 속상해 하는 모습을 보며 “우리가 살아가면서 10번 중 9번은 관객의 역할을 맡게 된다. 그런데 그때 박수를 쳐주지 않으면 니가 주인공이 였다면 어떻겠니?”라고 이야기 하며 관객 역할일 때는 다른 친구들이 연기를 하는 모습을 보고 열심히 박수를 쳐주는게 어떻겠냐고 조언했다고 합니다. 그 후로 아이는 뽑기에서 관객되 어도 열심히 박수를 친다고 합니다, 한 뮤지컬 배우도 “우리가 무대에서 열심히 연기를 해도 관객분들이 제대로 즐기지 못하면 이 공연을 본 뒤의 추억은 완성되지 않으니 충분히 즐겨 주셨으면 좋겠다”고 한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살아가는 매 순간 주인공이지만, 우리 스스로 주인공이라고 느끼며 살아가는 시간이 얼마나 될까요? 우리들은 언젠가부터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의 관심을 갖으면서 나를 잊고 사는 것 같기도 합니다. 아침에 눈을 떠서 잠이 들 때까지 주변
집 밖은 위험합니다. 연일 계속되는 무더위에 조금만 걸어도 온 몸에 땀이 흥건해집니다. 에어컨 밑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TV를 보거나 책을 읽으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싶습니다. 더위도 더위지만 무섭게 내리는 장마도 걱정입니다. 며칠 전 잠깐 산책을 나왔다 가로등이 비추는 바닥에 내리는 비를 보며 잠시 ‘비멍(?)’에 빠져들었습니다. 사람들이 불멍을 즐긴다는 이야기는 들었어도 ‘비멍’은 처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사전을 찾아보니 물멍(물을 바라보거나 물소리를 들으며 아무 생각 없이 멍하게 있는 일, 우리말샘)이라는 단어도 있습니다. 문득 비에 빠져있다보니 ‘지금 만나러 갑니다’라는 영화가 생각났습니다. 2005년 개봉된 일본 영화입니다. 벌써 20년이나 흘렀습니다. 영화 내용은 비의 계절에 다시 돌아오겠다는 엄마를 기다리는 아들과 남편의 이야기입니다. 판타지 로맨스 드라마로 재미있게 봤던 기억이 있습니다. 2018년에는 국내에서 소지섭과 손예진 주연으로 리메이크 되기도 했습니다. 기억나는 장면 중 하나가 일본 풍습 중 장마가 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인형을 걸어두는 장면이 있는데, 주인공 꼬마는 인형을 거꾸로 걸어둡니다. 비의 계절에 엄마가 찾아오기 때문
도돌이표는 악보에서 어느 부분을 되풀이해서 연주하거나 노래하도록 지정하는 기호입니다. 쉽게 반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중가요에서는 후크송(훅 송)이라고 해서 한 노래에 같은 가사또는 멜로디를 여러 번 반복적으로 사용하여 만든 노래도 많습니다. 중독성이 강해 큰 인기를 얻기도 하지만 사람들의 기호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기도 합니다. 보통 우리들의 삶을 표현할 때 자주 쓰는 표현 중 ‘다람쥐 쳇바퀴 돌 듯’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하루 하루 특별한 변화 없이 똑같다고 생각할 때 쓰입니다. 우리가 지금껏 살아온 시간과 앞으로 살아갈 시간 중 똑같은 순간은 없지만, 우리는 삶의 큰 궤적에서 특별하다고 느끼지 않은 한 매 순간이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일까 타임슬립(tims slip) 영화나 드라마가 주목받을 때가 많습니다. 타임슬립은 자연스럽게 과거와 현재, 미래를 오고 가는 시간 여행(고려대한국어 대사전)이라고 정의돼 있습니다. 일본의 소설가 무라카미 류가 1994년에 발표한 소설에서 처음 등장했다고 합니다. 올해 초 방영했던 ‘판사 이한영’이나 2022년 방영했던 ‘재벌집 막내아들’이 대표적입니다. 판사 이한영은 적폐 판사가 10년전으로 회귀해 후회했던 일들
왜 집에서 나왔니? 비가 너무 많이 와서 길을 잃은거야? 집은 잘 찾아갈 수 있지? 부디 다시 집으로 돌아가길 바래! 이 비가 그치기전에 부디 당신도 길을 잃었나요? 비 때문은 아니겠죠? 그래도 우리는 돌아갈 곳이 있잖아요! 부디 힘 내세요!
이번 ‘2026 FIFA 북중미 월드컵’을 월드컵에 처음 출전하는 선수들의 유니폼은 특별했습니다. 소매 부분에 데뷔 패치를 달아줬기 때문입니다. 처음이기에 더 특별했고, 그 특별함을 상징하는 그 패치는 아마도 해당 선수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 같습니다. 어쩌면 나에게 주는 ‘훈장’ 같은 느낌일 겁니다. ‘훈장’은 사전적 의미로 나라를 위해 공을 세운 사람에게 정부가 내리는 표장(다음백과)이라고 정의합니다.그러나 우리는 일상에서도 훈장이라는 표현을 종종합니다. 어떤 일을 하다 생긴 흉터를 보통 그렇게 표현하는데, 영화 암살에서 배우 이정재의 연기가 유명합니다. 그는 독립군을 배신한 밀정 역할로 독립 후 재판정에서 자신의 몸에 총탄 자국을 마치 독립을 위해 헌신한 훈장처럼 표현합니다. 영화처럼 총탄 자국은 아니러다로 누구에게나 나만의 훈장 하나쯤을 있을 겁니다. 훈장이 주는 의미는 무언가 해냈다는 어려운 고비를 잘 넘겼다는 상징처럼 여겨집니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수많은 처음을 경험해왔고 앞으로도 그럴겁니다. 여러분은 얼마나 많은 훈장을 갖고 계신가요? 훈장의 사전적 의미처럼 거창하지 않더라도 나만의 훈장 하나쯤은 있을 거라고
‘격이 높다’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보통보다 높은 단계 정도로 이해합니다. 사람으로 비교하자면 나보다는 조금 더 높은(?) 사람 또는 품격 있는 사람 정도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격(格)’은 사전(고려대한국어사전)적으로 1. 관형어 어미나 명사 위에 쓰여, ‘셈’, ‘식’, ‘꼴’의 뜻을 나타내는 말. 2.(기본의미) 주위 환경이나 일의 형편에 걸맞게 어울리는 분수와 품위. 3. 신분이나 지위, 주위 환경 따위에 맞는 일정한 방식. 원어 격식(格式) 4. (언어) 문장 안에서 체언 또는 용언의 명사형이 주로 서술어에 대하여 가지는 자격. 국어에서는 조사가 체언이나 용언의 명사형과 결합하여 격을 표시하기도 한다. 등으로 정의 돼 있습니다. 품격(品格)은 ‘사람의 품성과 인격’, ‘사물 따위에서 느껴지는 가치나 위엄’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단어 자체로만 보면 격의 의미가 넓지만, 통상적으로 격이라는 표현은 품격으로 이해해 사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품격과 비슷한 품위라는 단어도 있습니다. 품위는 한자로 ‘品位’라고 쓰고, 사전적 의미로 사회 구성원들이 지위나 위치에 따라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품성과 교양이라로 정의돼 있습니다. 한자 위(位)는 자리 또는
연일 계속되는 폭염 속에 소나기는 한줄기 숨통을 트여줄 단비 같은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아무런 준비 없이 길을 나섰다 맞추지면 그만큼 당혹스러울 때도 없습니다. 소나기는 예보가 있더라도 언제 내릴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재밌는 속담도 많습니다. ‘어는 구름에 비가 올지 모른다’는 언제 무엇이 어떻게 될지 미래의 일은 모른다는 뜻입니다. 주역에 나오는 ‘밀운불우(密雲不雨, 구름은 빽빽한데 비가 오지 않는다)’와 일맥상통합니다. 단어 상으로는 비슷하지만, 실제로는 어떤 일의 징조나 분위기는 무르익었지만, 막상 결과가 나타나지 않아 답답하고 안타까운 상황에 사용됩니다. ‘오뉴월 소나기는 쇠등을 두고 다툰다’는 소의 등을 경계로 한쪽은 내리고 한쪽은 내리지 않을 수 있다는 뜻으로 한 부분에만 집중적으로 내리는 소나기를 비유할 때 씁니다. ‘소금을 팔러 나섰더니 비가 온다’는 말 그대로 매사에 장애가 생겨서 일이 맞아떨어지지 않고, 잘 안되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설명할 때 쓰입니다. ‘소나기 종일 오나’는 지금 한창 성한 것 같은 어떤 현상이 얼마 못 가서 사그라지거나 멎어 버리게 되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입니다. 보통 소나기는 피하는 게 상책이라고 말합니다. 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