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부장에게 출근부는 과유불급입니다

이강석 전 남양주시 부시장

1977년에 공직에 들어와 면사무소에 출근을 하면 가장 먼저 해야하는 일이 출근부 싸인입니다. 자신의 이름 석자를 영어 필기체처럼 연결해서 서명을 하기도 하고 당시 총무계장님은 한자 李(이)를 쓰고 동그라미를 그렸는데 40년 가까이 써오신 자신의 싸인이어서 그 필체가 일정, 균일하여 마치 팽이 여러 개가 종이위에서 돌고있는 착각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1981년에 경기도청 사업소에 근무할 때에도 어김없이 출근하면 싸인을 했습니다. A4용지를 가로로 길게 잘라 만든 크기의 두꺼운 캔트지에 깔끔하게 인쇄된 출근부는 1년에 4번 분기별로 만나는 아침 인사 妖精(요정)과도 같았습니다. 공무로 2박3일 출장을 가면 2일과 3일차 난에는 ‘출장’이라는 고무인을 찍었습니다.

 

아침마다 복무담당 공무원은 각 부서의 출근카드가 담긴 나무상자를 아침 7시반경에 복도 창가에 비치한 후 지키고 있다가 정각 9시가 되면 즉각 회수해 사무실로 가져갔습니다.

 

 

출근부를 회수할 시각에 헐레벌떡 도착한 직원과의 밀당도 벌어집니다. 9시전에 왔으니 싸인을 하겠다는 입장과 늦었으니 지각이라는 주장이 격렬합니다. 결국 그날의 출근부에는 ‘지참’이라는 朱印(주인)이 찍히고 지각한 사유를 써내야 했습니다.

 

아침 출근시간에도 그러하거니와 ‘중식시간 준수’가 있습니다. 총무부서 직원은 불시에 정문과 후문에서 점심식사후 귀청하는 직원을 체크했습니다. 오후 1시에 앞뒷문으로 민원인과 공무원이 출입하는데 이중에 늦게 들어오는 공무원의 명단을 적고 본인에게 늦은 사유를 추궁하는 것입니다. 식당밥이 늦게나왔다고 변명하거나 출장에서 돌아와 늦은 점심을 먹을 예정이라는 등의 설명을 합니다.

 

공무원은 부서장이라고 하는 과장이 사무실에 함께 근무하면서 업무를 추진하고 동시에 복무를 관리합니다. 출장, 외출, 연가, 휴가를 결재합니다. 그런데 이를 총괄적으로 관리하는 복무관리부서가 또 있는 것입니다. 총무과가 복무관리를 합니다.

 

중복되는 관리이고 불편한 일이며 아침 출근부터 중식시간 준수, 저녁에 일찍 퇴근하는 직원까지 점검해야 할 필요가 있었을까 생각되었습니다. 공무원이라는 자부심을 조직에서 毁損(훼손)하는 일이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 시절에 제조회사에 근무하는 동창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하루 8시간에 잔업을 더하는 경우 10시간을 근무한다고 하면 아침에 출근부를 기계에 넣는 순간 오늘 퇴근시간이 찍힌다 했습니다. 요즘같은 컴퓨터 기능은 아니고 기계에 공무원의 출근부와 같은 단단한 캔트지 출근카드를 찍는다 했습니다.

 

기업이나 생산라인은 시간이 생산성이고 작업시간이 경쟁력일 것입니다. 그래서 일한 시간만큼 임금을 지급하고 벨트시스템으로 생산관리, 시간관리를 한다고 했습니다. 벨트위에 제품의 기본틀이 지나가면 각자가 담당하는 부품을 조립하고 마지막에 이르면 제품이 작동을 할 것입니다.

 

조립공정에서 한곳이라도 결함이 있으면 최종단계에서 제품은 작동되지 않거나 심각한 결함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그러니 벨트시스템의 제조과정에서 일한 직원의 시간과 임금은 일치한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하지만 공직은 다릅니다. 아침부터 점심, 저녁까지 하는 일은 수천명 공무원 모두가 각각입니다. 모두가 다른 일을 하면서 큰 조직을 운영하는 것입니다.

 

탈도 많고 말도 많았던 출근부가 1986년경에 사라졌습니다. 정부의 어느 간부가 혁신적으로 출근부를 폐지한 것입니다. 그래서 아침일찍 출근부를 카트에 담아 복도에 진열하는 업무, 9시 정각에 회수하면서 그때 출근한 직원과의 갈등이 사라진 것입니다.

 

총무과 직원의 업무를 덜어준 것은 외형적인 모습이고 모든 공무원에게는 큰 자부심이 생겼습니다. 출근시에 일부러 출근부가 있는 곳까지 돌고 돌아서 서명하고 다시 자신의 사무실로 걸어가던 불편이 사라진 것입니다.

 

출근부 폐지 이후에 지각하거나 무단결근한 공무원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아침 8시 전후에 전직원이 바글바글거리며 열심히 일했습니다. 9시가 다 되어 출근한다면 부서에서 별로 용처가 없는 직원으로 스스로 인정하거나 동료들이 그렇게 평가하는 경우일 것입니다.

 

최근에 공기관에 근무하는 간부를 만났습니다. 잠시 대화를 나눈 후에 간부는 15km거리의 사무실에 가서 퇴근체크를 하고 집으로 간답니다. 출근은 물론 퇴근체크를 몇 번 하지 않으면 경고를 받는답니다. 만약에 이 간부가 우연히 누군가와 저녁약속을 했다면 30km를 왕복해야 하고 퇴근시간 러시아워를 겪으며 40분 이상 운전을 해야할 것입니다.

 

생산라인이 아니고 연봉제의 적용을 받는 간부인데 출퇴근을 체크해야 한다는 점에 공감이 가지 않습니다. 간부들에게는 시간외근무 수당을 지급하지 않는답니다. 공직에서도 간부에게는 추가근무 수당지급이 없습니다.

 

출퇴근 관리는 IT가 발전하는데 따른 부작용일 수도 있습니다. 요즘 법령에 의한 각종 교육장 입구에는 달랑 종이한장이 붙어있고 여기에 바코드가 있습니다. 자신의 스마트폰 어풀을 열고 바코드를 찍어서 수업참여를 확인하고 중간에 찍고 마무리에 입력합니다. 직원 2명이 참여해도 정확한 교육참여 관리가 어려울 것인데 수강생들은 종이위 바코드의 노예가 되는 것입니다.

 

공직에서의 국장, 실장이 별방을 쓰고 공기관에서 관리자에게 넓은 사무실을 배정하는 이유는 조직의 미래를 설계하고 앞으로 할 일을 걱정하는 방으로 쓰라는 의미입니다. 이들에게 아침 9시에 출근하고 저녁 6시에 퇴근한다고 컴퓨터 기계에 기록을 하라는 것은 過猶不及(과유불급)입니다.

 

다양한 업무를 수행하는 공기관에서 사무실 출근과 퇴근을 통제하겠다는 생각은 우물안에서 하늘을 보는 격인가도 생각합니다. 본부장급 간부의 자존심에 상처만을 주고 있는 출퇴근 체크제도를 폐지해야 합니다.

 

공직 당국과 공기관장은 소속의 본부장급 간부를 포박하고 있는 출퇴근 카드를 하루 빨리 폐지해야 합니다. 현업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일하고 이 분야의 전문가인 본부장들이 더 큰 자긍심을 갖고 지혜롭게 업무에 매진하여 조직을 발전시키고 시민행복을 위해 더 큰 일을 할 수 있도록 IT화된 출근부 ‘불필요한 고삐’를 즉시 풀어 주시기 바랍니다.

 

 

이강석 (李岡錫)

출생 : 1958년 화성 비봉

경력 : 경기도청 홍보팀장, 경기도청 공보과장

         동두천·오산시 부시장 / 경기도균형발전기획실장

         남양주시부시장 /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현직 :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저서 : '공무원의길 차마고도', '기자#공무원 밀고#당기는 홍보#이야기' 등 수필집 53권 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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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 오산, 남양주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 행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