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원공무원의 독점세일

이강석 전 남양주시 부시장

민원을 상담하다보면 공무원의 기본적 자세의 중요성을 안타깝게 논의하곤 합니다. 말한마디로 천냥의 빚을 갚은 사례가 있을까요. 아마도 있을 것입니다. 일부가 무너져 피해를 입은 편의점 앞에 눈치우기 장비인 굴착기를 세우고 들어온 기사님이 라면을 주문하였습니다. 폭설로 퇴근하지 못하고 있던 종업원이 한쪽을 정리하여 라면을 먹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었고 식사를 마친 굴착기 기사님이 편의점 앞의 눈을 말끔히 치웠다는 기사가 있습니다.

 

말한마디로 10만원 상당의 눈치우기 수혜를 입은 것입니다. 아마도 시청과 계약을 한 업체에서 나온 기사님의 눈치우는 장비일 것입니다. 이분들의 임무는 넓은도로, 사거리, 골목길 입구 등 폭설로 인한 교통소통 취약지의 눈을 우선 치우도록 메뉴얼이나 작업명령를 받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편의점 직원의 친절한 배려에 감동하여 편의점 앞의 눈을 치웠다는 것이 기사가 된 것입니다. 직원도 크게 감동하여 언론에 제보하였던 것이지요.

 

요즘에는 민원 온라인이 활성화되어서 주민등록등초본, 인감, 호적, 졸업증명서 등을 주소지가 아닌 다른 관공서에서 발급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만 그래도 토지, 건축, 위생, 환경 등 여러 분야의 업무는 주소지나 토지건물의 소재지 읍면동, 시군구청으로 방문해야 가능합니다. 그래서 시민과 공무원은 독점적 관계에 있습니다. 시청에 3,000명 공무원이 근무해도 이분의 그 민원은 이 사람 김#이#박 주무관이 담당하고 있습니다.

 

민원인 업무에 도움을 주는 일을 하다보면 억울해하는 민원인이 있습니다. 공무원이 자의적으로 규정을 해석한다거나 불쑥 할 말만 하고 돌아서는 경우에 막막하여 말이 나오지 않았다고 회고합니다. 다른 대안이 있음을 나중에 알았는데 그 순간에는 민원을 취하하는 길밖에는 보이지 않았다면서 담당 주무관의 부족한 설명을 원망하기도 합니다. 

 

민원 처분당시에 조금만 친절했다면, 친절이 아니라 약간만 불친절하지 않았다면 민원인은 공무원을 신뢰하고 관청을 믿고 물러날 수도 있었을 사안입니다. 하지만 2% 부족하거나 과한 담당 주무관의 불친절로 민원인은 집에 돌아가서도 밤새 불편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고 다음날부터 민원처리에 대한 항의를 시작합니다. 그래도 풀리지 않으면 행정심판, 그 다음은 행정소송으로 갈 수도 있습니다.

 

조금만 친절했다면, 규정속에서 가능한 대안을 제시했다면 민원조차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고 항의할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나아가서 행정심판이 들어오면 구구절절 그간의 서류를 꺼내어 반론하고 설명해야 합니다. 아마도 행정심판에 이르기까지 주무관이 행한 민원인과의 대화나 과정에 대한 보고는 없을 것이고 필요서류에 대한 검토보고서 결재를 받고는 행정심판을 수행할 것이고 나중에는 소송수행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도 민원인에게 설명합니다. 민원인은 혼자서 전체 민원을 진행하지만 공무원은 2년이내에 발령나면 후임자가 다시 연찬하고 행심이나 소송을 수행합니다. 공무원은 근무시간에 소송을 수행하고 여비를 청구해서 비용을 쓰게 됩니다만 민원인은 오롯이 내 시간, 내 돈으로 행정심판이든 소송이든 진행해야 하므로 정신적인 부담이나 비용발생을 스스로 감당하게 된다는 점을 상세히 설명합니다. 

 

하지만 민원인은 동의하지 않습니다. 민원인을 불편하게 한 부서의 과장에게 당신의 억울하고 속상했던 바를 전달하겠다고 제안해도 굴복하지 않습니다. 여기까지 왔으니 끝장을 보겠다는 말을 합니다. 공무원, 민원공무원의 말에 큰 상처를 입은듯 보입니다. 하지만 안타까운 현실은 이처럼 큰 상처를 준 공무원은 전혀 그런 기억조차 없다는 사실입니다. 민원인 혼자 상하고 힘들어하는 상황인 것입니다.

 

 

결국 민원인이 행정심판이나 소송에 이르게 된 발단은 소통의 부족, 2%친절의 부족, 적극행정의 부재 등에서 기인합니다. 그리고 쟁론의 절차는 김치의 숙성 이상으로 긴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후임자에게 큰 부담을 안기고 다른 부서로 떠나게 됩니다. 아울러 민원인은 시간비용을 쓰게됨은 물론 행정에 대한 불신이 늘어납니다. 이는 행정에 대한 국민의 인식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줍니다.

 

심판이나 판결에서 공무원이나 기관의 잘못을 적시하지 아니한 경우에 담당 주무관에게 별다른 조치가 내려지지 않습니다. 주무의 판단으로 불허처분된 사안에 대하여 행심이나 판결에서 민원인의 손을 들어주었다면 이같은 비용을 유발한 주무관에게는 징계의결서를 교부해야 할 일이고 동시에 민원인에게는 허가장을 교부해야 할 일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행정심판기관이나 법원에서 그리하라니 그리하겠다가 전부입니다. 판결에서 이기셨어요. 그럼 허가합니다. 이것은 바른 길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승소해서 행정기관으로 달려가도 민원을 완성하는데는 아직도 5단계 이상이 남아있습니다. 소송을 수행한 공무원의 손으로 이후 단계의 과정을 진행하게 될 경우도 있고 다른 부서에서 또다른 허가나 승인을 받아야 민원인의 목적사업이 최종 완성되는 현실입니다. 그래서 민원을 제기하는 분들에게 반드시 설명을 합니다. 오늘 민원에서 이겨도 다음단계에서는 역시 공무원이 갑의 입장일 것입니다. 조금 참으시고 후일을 기약하시지요.

 

퇴직 공무원으로서 양심에 거리낌이 있습니다. 독점하고 있는 행정력에 민원인이 대항하기에는 역부족인 제도속에 우리 국민이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공무원은 법과 제도를 지키고 행정처분의 균형을 유지해야 합니다. 민원을 적극행정으로 처리하라 하지만 그리하다가 형평성 논쟁에 몰릴 수 있습니다. 불친절하다는 말을 듣는 것이 차라리 특혜시비에 휘말리는 것보다 나을 것이라는 가정도 해볼 수 있습니다. 

 

인허가부서의 주무관은 절대적인 권력을 갖습니다. 그 권력을 제대로 수행하면 공정한 행정이 되지만 그리하지 못하면 갑질이 되고 독점의 폐해로 비난을 받습니다. 인허가부서 공무원과 간부들은 담백하면서 균형된 감각을 유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공무원은 직무수행이라 하지만 민원인은 목숨을 걸고 생업으로 추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앞에서 말한 편의점 직원은 라면을 팔고나서 빈 공간에서 드시도록 안내했을 뿐인데 손님은 이에 감동하여 편의점 앞길을 시원하게 정리해 주었습니다. 돈을 주어도 해주지 않을 일인데 자리를 마련한 배려의 힘으로 큰 결과를 이끌어냈습니다. 공무원이 근무하는 민원실에서는 편의점 알바생이 라면을 드시는 굴착기 기사님에게 베푼 성의있는 행동보다 더 기분좋게하는 친절가 배려와 행정적 안내를 할 수 있습니다.

 

민원 공무원의 친절은 민원인을 행복하게 하고 부정적 민원을 줄이며 행정의 신뢰를 증진하게 됩니다. 공무원은 늘 자신의 업무가 독점이며 지금 만나는 민원인이 다른 기관에 가서는 이와 관련한 허가장을 받을 수 없음을 알고 좌우명으로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2% 부족함으로 인해 행정심판이나 소송으로 번질 수도 있음도 가슴에 새겨야 합니다. 민원실은 독점세일도 아니되고 바겐세일도 해서는 안됩니다. 오로지 친절하고 객관적이고 형평에 맞는 민원처리를 호소합니다.  공무원, 주무관의 분발을 바랍니다. 수고하십니다. 

 

 

이강석 (李岡錫)

출생 : 1958년 화성 비봉

경력 : 경기도청 홍보팀장, 경기도청 공보과장

         동두천·오산시 부시장 / 경기도균형발전기획실장

         남양주시부시장 /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현직 :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저서 : '공무원의길 차마고도', '기자#공무원 밀고#당기는 홍보#이야기' 등 수필집 53권 발간



기자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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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 오산, 남양주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 행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