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집이라고도 하고 미식가라는 말도 듣습니다. 조크로 이런 말이 있습니다. 맛있는 식당을 잘 알면 아저씨이고 멋진 식당을 꿰하고 있으면 오빠라는 칭찬을 듣는답니다. 아저씨들은 맛집으로 승부를 걸고 오빠들은 멋집에 빠집니다. 혁대라 말하면 아저씨이고 벨트라 하면 오빠라는 말도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맛집과 멋집만이 식당과 메뉴의 선택기준으로 필요충분조건인가에는 이견이 있습니다. 마이카시대이기 때문입니다. 거의 모든 가정에 차가 있어서 가족을 태우고 외식을 하는 경우 식당을 정하는 체크리스트에 주차의 편리함이 추가되었습니다. 출중한 맛집이라도 식당과 함께 주차장을 확보하지 못하거나 가까운 거리에 주차가 어려운 선택에서 밀립니다. 식당에 주차하고 곧바로 식탁으로 이동하고 식사후에는 바로 차를 타고 귀가할 수 있는 주차정 여건이 좋아야 만객운집입니다.
경기도 광주시의 남한산성 맛집에 갔습니다. 폭설이 내려서 길이 많이 불편했습니다. 검색한 맛집앞에 아내를 내려주고 주차장으로 향했습니다. 식당은 달랑 3면의 주차장이 있을뿐인데 이미 다른 차량이 어렵고 버겁게 주차한 상황입니다. 그래도 인근에 이른바 공영주차장이 있습니다. 하지만 폐쇄되었습니다. 폭설을 치우지 못하고 막은 것입니다. 주차장 안에는 버섯처럼 폭설지붕을 하나 더 올린 승용차들이 5일째 그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50m를 더 내려가니 주차장이 있습니다만 역시 폐쇄입니다. 폭설로 행정력이 도로와 비탈면에 집중되면서 주차장 제설작업에는 도달하지 못하는 듯 보입니다. 아마도 주차장 제설작업은 태양의 힘을 빌려야 할 것입니다. 일주일쯤 지나면 일기가 바뀌고 맑고 따사로운 날에 눈은 녹아서 졸졸졸 시냇물이 되어서 상류에서 하류로 흘러갈 것입니다.
다시 500m를 내려가니 평지에 공영주차장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9대 이상의 차량이 입차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제아무리 넓어도 차량 한대가 나가면 다음 한대가 들어가는 상황입니다. 남한산성의 식당가에 차한대 더 세울 공간이 없습니다. 하지만 오전 11시이니 여러 식당에는 빈자리가 있습니다. 손님을 기다리는 식당마다 주차장 눈을 치우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들어서지 못합니다.
어느 식당앞에도 주차차량이 적고 조금 떨어진 곳에 별도의 주차장이 있습니다. 몇자리가 비어있습니다만 양심이라는 것이 발동합니다. 이 식당에 들어가지 않으면서 주차장을 이용하는 것은 선뜻 차를 밀어넣을 용기가 나지 않습니다. 재난상황의 폭설지경이니 차한대 세웠다가 다른 식당에서 식사하고 와서 빼가는 경우 주인이 일부러 기다렸다가 비겁하다 따질 일은 아니겠으나 스스로의 마음속 착한 마음이 발동하여 주차하지 못합니다.
결국 부부는 합의에 이릅니다. 주문한 음식을 대략 포장해서 밖으로 나오면 그 자리에서 승차하여 다시 남한산성 고개를 넘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급하게 음식을 들고 고개를 넘어가서 성남시의 어느 한적한 도로변에 차를 세웠습니다. 산성고개를 오르고 내리면서 만난 스틱과 고급의 등산장비를 갖춘 분들과 조우합니다. 폭설을 즐기는 메니아입니다. 부러운 등산객입니다.
차안에서 차가운 만두를 먹었습니다. 본래 이 만두는 전열기에 끓이면서 먹도록 조리된 음식인데 만두따로, 부재로 따로 먹고 있습니다. 처량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우리는 지금 광주에서 차박을 하고있다 자부했습니다. SUV승용차입니다. 본래는 뒷좌석을 펼치면 작은 공간이 나오는 차입니다. 미리 준비했다면 산속에 주차하고 차안의 좁지만 넓게 느껴지는 공간에서 식사하고 대화하고 잠을 자는 차박을 하고있다 상상해 보았습니다.
얼결에 점심식사를 마친 부부는 두번째 합의에 이릅니다. 앞으로 여행을 가는 경우 식당을 정하는 기준은 "선주차 후주문"을 지키기로 합니다. 식당앞에 내려서 주문하고 주차하고 들어가는 위험한 과정보다는 완벽한 주차후에 들어가서 음식을 청하기로 한 것입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음식거리에는 수십개의 식당이 있습니다. 차로 이동하면서 미리정한 식당을 포기하고 주차가능한 식당에 차를 넣고 들어가서 원하는 메뉴를 정하는 것이 순리임을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인생은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사람의 경륜이 축적되는가 봅니다. 유사한 잘못이 이전에도 있었을 것인데 맛집에 대한 기대감이 앞서다보니 주차불가사태에서 아주 어렵고 난해한 만두국을 먹고 말았습니다. 거듭 반성하면서 마음에 새기기로 합니다. 선주차후주문. 주차를 잘하고 나서 메뉴를 정해도 늦음이 없습니다. 매일 세끼이상 먹으면서 한끼니를 먹으면서 메뉴선정에 그리도 지극정성해야 하는가는 반성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이강석 (李岡錫)
출생 : 1958년 화성 비봉
경력 : 경기도청 홍보팀장, 경기도청 공보과장
동두천·오산시 부시장 / 경기도균형발전기획실장
남양주시부시장 /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현직 :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저서 : '공무원의길 차마고도', '기자#공무원 밀고#당기는 홍보#이야기' 등 수필집 53권 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