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급과 7급 사이

동두천·오산·남양주시 부시장 출신 이강석

 

 

1980년대 공무원 8급은 영화 '7급공무원'이 되기 직전의 애벌래와도 같은 입장이다. 한여름 10일정도 신명나게 울어대기 위해 8년을 물속에서 애벌래로 기다린다는 그 매미의 사연에 딱 맞는 설명이다. 8급공무원으로 일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한번 힘차게 울어보기 위해 기다리는 하안거 스님의 심정일 것이다.

 

100일간 좁은 두평 방안에서 108배를 수없이 올리며 시간을 불살라가는 스님들의 동안거, 또는 하안거는 스스로 택할 수 있는 가장 차원높은 수련이라고 생각된다. 100일이면 한 계절이 지나가는 길이다. 그 긴 여정을 독방에서 무언, 장좌불와, 정진, 참선하는 일이라서 10년 이상 수도한 스님들만 입실한다고 들었다. 초보 스님들은 하루를 견디기 어려운 일일 것이다. 밖에서 무쇠 자물통으로 잠그는 순간의 적막함, 고독, 폐쇄공포를 생각해 본다.

 

지나친 비유였다 생각이 드는바이지만 1980년대 공직사회의 8급이 만나는 고통은 스님의 번뇌 다음쯤 간다. 일단 7급 선배들은 6급들과 함께 한다. 답배도 같이 피우고 술을 마시면서 뭔 드리도 할 말이 많은가 할정도로 '토크어바우트'에 빠지는데 7급들은 8급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더구나 한 부서에 7급은 7-8명이 되지만 8급은 1-2명이다. 동료도 없고 후배도 없고 그냥 망망대해 일엽편주다.

 

그래서일까. 8급은 열심히 일한다. 전화오면 받고 바꿔드리고 방송나오면 현장으로 뛴다. 여기서 방송이란 기획, 자치, 인사, 예산 등 이른바 '한끗발'하는 부서에서 서무담당을 호출하는 것인데 조금이라도 빨리 가면 방송을 한 부서의 7급들이 방긋 웃어준다. 자기가 방송했는데 애완견 강아지처럼 발빠르게 달려온 8급 서무가 반갑기는 한가보다.

 

 

8급 서무의 임기는 대략 2년이다. 어느날 그리도 불편하고 미웠던 청내방송에서 인사발령 '나발'을 분다. 흔히 공무원 인사발령을 '불었다'고 하고 '나발(나팔)'이라고 칭한다. 우선 방송을 통해 인사발령 내용을 발표하고 잠시후 문서를 통해 알려준다. 인사발령 내용이 적힌 종이를 '지라씨'라고도 했다.

 

드디어 방송을 통해 7급이 된다. 8급의 서러움을 한방에 날릴 것 같지만 7급이 되어서 처음 받은 업무는 각과 서무담당을 불러대는 한풀이 보직이 아니다. 서무역할은 벗어나지만 7급 말직업무는 대부분 집계, 취합하는 일이다. 여러 기관의 자료를 받고 각 부서의 수치를 모아서 1달치 통계를 만들어 보고하는 일이다. 1개월이 그리 빨리가던 시절이 있었던 이유는 그 월보 때문인 것을 이제야 깨닫는다.

 

7급은 현역이다. 7급 3년차가 되면 이사람이 날아 다닌다. 홍길동보다 빠르고 이순신의 거북선보다 당당하다. 이 세상 걱정은 다 책임질 기세다. 퇴근을 모르고 출근만 한다. 새벽에 나와 일하고 아침을 해장국으로 해결하고 다시 9시에 일하고 또 일한다. 이제는 70이 훨씬 넘으신 선배들의 7급때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리고 6급이 되어 공직에 안착하면서 서서히 변해가는 모습을 보았다. 서서히 일에 중독되어가는 그 모습이 선하다.

 

8급은 언제라도 직을 버리고 다른 직장에 갈 수 있지만 일단 7급이 되면 구두 바닥에서 본드가 흘러나와 사무실 바닥에 그를 접착한다. 6급이 되는 날 본드는 더 강하게 굳어버리고 아예 양말에 스며들어 발바닥 거친 티눈사이를 메워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공직은 사명이고 숙명이고 운명인 것이다. 우리가 받아들여야 하는 책무인 것이다.

 

 

[약력]

 

-1958년 화성 비봉 출생

-경기도청 홍보팀장, 공보과장

-동두천·오산·남양주시 부시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경기도민회장학회 감사



기자정보

프로필 사진
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 오산, 남양주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 행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