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청 과장은 대략 4~5개 팀을 운영하고 5급 사무관이 팀장인 팀에는 6급 1명과 7급 3명, 8급 2명 등 대략 6명의 주무관으로 구성되어 차석의 총괄, 7급의 실무, 8급의 지원업무를 담당하게 된다. 1980년에는 40세의 6급과 30대의 7급 공무원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중앙에서 배치된 고시출신 젊은 5급 사무관이 팀장, 계장직을 담당하기도 했다.
1980년대 어느해 어느날에 경기도청 서무계 차석 6급 주사와 7급 주사보가 지금의 행정안전부인 내무부에 출장을 갔다. 서울 광화문에 회색의 꼿꼿한 20층쯤 되는 건물의 상층부에 내무부가 있었다. 가장 높은 층까지 올라가 국무회의장을 본 기억이 있다.
광화문 정부종합청사의 내무부에 업무를 마친 6급 차석과 7급 주사보는 오전 11:50분경에 엘리베이터를 타고 건물 1층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점심시간이 되었으므로 좁은 엘리베이터 안네는 넥타이를 맨 사람들이 빼곡했다. 인원이 점차 늘어나자 7급은 6급 차석에게 말했다.
"차관님! 이쪽으로 조금 오시지요"
작은 목소리로 말했지만 좁은 철제의 엘리베이터 안이라서 주변의 공무원들이 모두다 이 말을 알아 들었다. 잠시후 그 좁디좁은 엘리베이터 안이 모세의 기적처럼 갈라졌다. 촘촘하게 서있던 공무원들이 두사람 경기도청 직원을 피해서 옆으로 몰아선 것이다. 그리고 정적의 시간이 흘렀고 중간에 추가로 타는 공무원들도 그냥 두사람의 반대편에 몸을 움추리고 서있더란다.
그렇게 1층에 당도하여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두 사람, 경기도청 공무원은 가장 먼저 내려서 현관의 대리석 현관으로 걸어나왔다. 크게 놀라기도 하고 긴장했던 두 사람은 정부청사 정문을 나서면서 둘이 서로서로를 마주보켜 크게 웃었다고 한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차관님'이라 호칭하였으니 안에있던 공무원들은 정부의 어느부처의 차관님으로 알았고 공무원의 예의상 좁은 공간을 조금씩 쪼개서 두 사람에게 내주었던 것이다. 우연히 엘리베이터에 동행하게 된 국가공무원들이 보기기 키가 크고 시원한 얼굴에 이마가 번쩍이는 분은 중앙부처의 차관이고 그 옆의 젊은 7급은 수행비서가 된 것이다.
이 일로 인한 것은 아닌줄 알지만 어느해에 행정자치부(전, 내무부)의 공문에 일부 시도에서 6급 차석을 '차관'으로 호칭하는 것은 옳지 않으니 이 말을 쓰지 말라는 권고 공문을 받은 바가 있다. 그래서 스스로 '차관'에 대한 해설을 해 보았습니다. 팀을 총괄하는 6급 직위이니 사무관 계장 다음의 차석입니다. "차기에는 사무관"을 줄이면 '차~관'이 됩니다.
하지만 내무부에서 근무하다 경기도 부지사로 오신 분이 있었는데 외국인이 오신 행사를 수행하던 중 새마을계 7급이 6급에게 '차관님~~'하고 부르자 깜짝놀라서 뒤를 돌아보더랍니다. 정말로 내부부 차관이 왔는가 생각했던 것이지요. 그래도 저래도 경기도청 6급은 대부분 차기에는 사무관이 되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월급은 7급으로 받아도 일은 6급으로 하자는 주장은 계속 강조하는 바입니다.
이강석 (李岡錫)
출생 : 1958년 화성 비봉
경력 : 경기도청 홍보팀장, 경기도청 공보과장
동두천·오산시 부시장 / 경기도균형발전기획실장
남양주시부시장 /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현직 :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저서 : '공무원의길 차마고도', '기자#공무원 밀고#당기는 홍보#이야기' 등 수필집 53권 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