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군청 군수님의 5급을류, 오늘날 9급 공무원 발령을 받으러 갔습니다. 고등학교 졸업후 재수생으로 학원을 다니는 중에 연락을 받고 흰색 T-셔츠에 끈 없는 운동화를 신고 내무과에 들어갔습니다.
당시 내무과장, 행정계장은 모든 ‘공무원의 헌병’이어서 이른바 ‘산천초목’이 벌벌 떨었던 시절인데,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고 발령장 받을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한 채 겁 없이 호랑이 굴에 들어갔던 것입니다.
예상 밖의 불량하고 미흡한 발령 대상자를 본 당시의 목이 짧은 행정계장님은 ‘복장불량’을 호되게 지적했습니다.
“당신은 뭐요?”
“발령장 주신다고 해서 받으러 왔습니다.”
“그런데 그 복장이 뭐요? 발령자 준수사항을 읽지 않았소?”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는 1977년5월16일 오전 10시 화성군청 내무과의 싸한 분위기입니다.
그 당시에 서울의 광화문 학원을 다니다가 곧바로 오산읍 소재 화성군청에 들어갔던 바이니, 시골집에 등기로 도착한 발령자 준수사항을 읽어볼 겨를도 방법이 없었던 상황이었습니다. 아마도 발령대상자 준비사항에는 복장단정, 용모단정, 시간준수 등 행정적인 전달사항이 있었을 것입니다.
세월이 흘러 경기도청에서 8급, 7급 발령장을 받으려면 발령장을 주는 시각에서 1시간 전부터 회의실에서 기다렸습니다. 줄을 세우고 연습을 했습니다.
한명 한명 발령장을 받은 후 일행의 뒤로 돌아가서 앞사람이 앞으로 가면 한 칸씩 전진해서 처음 발령장을 주기 시작할 때의 본인 자리에 도착하면 전체 200명 발령장 전달이 마감되는 것입니다.
인사발령 발표는 ‘나발’로 불었습니다. ‘나발을 분다’는 인사발령을 청내 스피커로 알리는 것인데, 민원인을 만나던 공무원조차도 대화를 멈추고 방송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리고 누군가의 이름이 호명되면 “와아”하며 반색을 하고 다른 어떤 이의 승진에는 ‘오~우’하면서 동의하지 못한다는 의성어를 내기도 했습니다.
40년 동안 28장 발령장을 받으면서 공직을 마치고 어쩌면 마지막일 수 있는 경기도 공기관의 상임이사로 발령을 받아 근무했습니다. 부시장, 상임이사가 되어서 소속 공무원과 공기관 직원들에게 발령장을 주었습니다.
요즘 공무원 면접대상자, 발령받는 신규임용자는 어떤 기획사의 指導(지도)를 받는가 봅니다. 남성 공무원은 검정이나 곤색의 정장에 탤런트를 닮은 헤어스타일로 나타납니다. 여성 공무원은 항공사 乘務員(승무원)처럼 머리를 망사로 단아하게 장식하고 투피스 정장에 굽이 낮은 단화를 신고 옵니다.
남양주부시장 때 복지직 9급 25명에게 발령장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회의실에 준비된 발령장 교부장소를 해당 공무원의 책임부서인 복지정책과로 바꾸자고 인사부서에 제안했습니다.
6급이 될 때까지 업무지도를 받게 될 복지과장 앞에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서서 첫 발령장을 받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여기에 약간의 이벤트를 준비했습니다.
발령장 25매중 3장을 과장님 테이블 신문 아래에 숨긴 것입니다. 그리고 발령 순서지에 맞춰진 발령장 순서를 흩트리고 그 속에서 임의의 한 장을 꺼내어 발령 대상자를 호명했습니다. 자연스럽게 둥글게 자리한 임용대상자 중 한 명이 나와서 발령장을 받습니다.
발령장을 읽는 것이 아니라 발령의 내용을 설명하고 근무지를 알려주었습니다. 홍길동씨는 남양주시 퇴계원읍에 발령되었으니 읍사무소 복지계에 가서 말석 서무담당자에게 이 발령장을 제시하고 인사를 하면 팀원, 팀장, 과장, 읍장에게 인사를 하도록 안내할 것입니다.
복지정책과에 발령되는 대상자에 대해서는 복지정책과장님이 발령장을 주시도록 했습니다. 내일부터 근무할 복지정책과 사무실에서 담당 과장님으로부터 발령장을 받는 것은 크나큰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발령장 교부를 마치자 발령장을 숨겨둔 3인이 아직 저편에 남아있습니다. 이를 알면서도 익숙하고 평온하게 ‘이상으로 발령행사를 마친다’고 말했습니다. 놀란 토끼처럼 화들짝 큰 눈을 뜨고 부시장을 바라보던 3명의 표정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어렵게 재수, 삼수해서 들어온 공무원인데 발령장이 없다는 것은 정말로 놀랄 일이었을 것입니다.
“아차! 여기 3장이 더 있었군요.”
경기도 공기관에 근무할 때에는 발령대상자와 본부장님을 1층 로비에서 만나 영진·영전을 축하한다는 현수막을 걸고 법인카드로 주문한 커피와 음료잔을 들고 인사발령 행사를 진행했습니다. 발령장은 키 높이 테이블에 쌓아놓도록 했습니다.
몇 사람은 소속 본부장님이 발령장을 주시도록 하면서 부서를 이동하는 발령자의 그간 성과를 칭찬하고 앞으로의 발전을 기원하는 덕담을 나눴습니다.
청년시절 발령장 하나를 받기 위해 50분 이상을 기다리느라 무릎 연골이 뻐근했던 추억을 회고하면서 나이 들어 임용장을 전하는 입장이 되어서는 발령행사가 직장에서의 축제가 되고 멋진 근무를 이어간다는 다짐의 장이 되도록 하고자 작게 조금 노력했습니다.
아마도 자연스럽고 기분 좋은 발령장을 받은 이들은 이후에 보다 더 소통하면서 최선을 다해 조직발전과 자신의 미래를 위해 노력하였을 것이라고 자부합니다.

이강석 (李岡錫)
출생 : 1958년 화성 비봉
경력 : 경기도청 홍보팀장, 경기도청 공보과장
동두천·오산시 부시장 / 경기도균형발전기획실장
남양주시부시장 /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현직 :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저서 : '공무원의길 차마고도', '기자#공무원 밀고#당기는 홍보#이야기' 등 수필집 53권 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