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리는 수원천의 초가을 경치가 아름답습니다. 오늘은 다행스럽게 지렁이 살리기를 하지 않아도 됩니다. 맑은 날, 뜨거운 낮에는 시멘트 산책길을 힘겹게 횡단하는 지렁이를 발견하게되고 아직 목숨이 붙어있다면 진흙과 물이 있는 삶의 터전으로 돌려보내주었습니다. 남양주시 홍유릉길에서 시작된 지렁이 구하기는 수원천에서도 이어지고 있으며 정확한 기록을 하지는 않았지만 구해낸 지렁이는 어림잡아 50마리에 이를 것입니다.
사실 지렁이는 낚시의 미끼로 쓰입니다. 조사들은 진흙속에서 꿈틀거리는 지렁이를 반으로 잘라 바늘에 돌려끼운 후에 저수지 떡붕어와 잉어를 향해 던져넣습니다. 바늘이 허리를 관통하여 찔렸어도 모진 생명력으로 꿈틀거리고 그래서 물고기의 표적이 되는 것입니다. 물고기는 반토막 지렁이를 먹기위해 무모하게 달렸다가 5m낚시대에 걸려서 어망으로 들어가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맑고 더운 날에 땅속의 지렁이는 아마도 몸을 식히기 위해, 또는 좀더 나은 땅을 찾아서 길을 떠나는 듯 보입니다. 하지만 인간이 만든 시멘트길, 아스팔트길을 건너는 것은 지렁이에게 있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거리도 멀거니와 메마른 흙길에 몸이 마르고 그 길에는 수많은 인간의 발길로 인해 지렁이가 밟혀죽게되고 자전거, 오토바이는 인정사정없이 지렁이의 몸을 으깨어 풍비박산으로 죽임을 당합니다.
그래서 시멘트길 초입에 들어선 지렁이를 작은 막대기를 이용하여 풀밭이나 물로 보냅니다. 생명을 지켜내라고 물가로 던져줍니다만 개천 한가운데에는 두루미와 황새들이 먹잇감을 찾기위해 동그란 눈을 더 크게 뜨고 긴 다리를 이용하여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동시에 물속을 들여다보면 통통하게 살찐 잉어가 잠수함처럼 은밀하게 움직입니다. 지렁이 한마리는 뻐끔 한 번으로 입안에 끌어들입니다.
독수리가 새를 벼르고 새가 사마귀를 벼르고 사마귀가 벌레를 노리는 형상입니다. 먹이사슬입니다. 지렁이는 작은 물고기의 먹이가 되고 작은 물고기는 황새와 비둘기의 표적이 되고 있습니다. 수원천이야 작은 하천이니 생태계의 간명한 먹이사슬이라 하겠지만 이땅의 자연속 인간과 동식물은 다단계의 먹이층을 형성하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수원천 물속을 상세히 들여다보면 먹이의 시작은 프랑크톤이라 하고 더러는 생활하수에서 영양을 공급받기도 할 것입니다. 하지만 하천관리를 철저히 하고 있어서 음식물 등 유기물의 유입은 적을 것으로 봅니다. 잉어가 살찐 이유는 혹시 시청 수산과에서 먹이를 주기 때문일까 생각해 봅니다.
지렁이와 하천생태계속 먹이사슬에 대한 이야기를 장황하게 하는 이유는 바로 지렁이가 어쩌면 이땅의 원주민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입니다. 화산이 터지고 화산재가 말라서 수원땅을 덮고 있었을 오래전에 나타난 지렁이가 화산돌을 먹고 녹여서 오늘의 진흙을 만들어내고 식물이 자라고 채소를 심을 수 있는 밭과 벼농사를 짓는 토양을 형성했을 것이라 가정해봅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지렁이 수억, 수조마리가 돌을 녹여 흙을 만들고 흙을 반죽하여 옥토를 조성했다는 가정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지렁이는 곤죽속에서 살고 있나봅니다. 그런 지렁이의 터전을 인간이 하천정비를 한다며 시멘트길, 아스팔트 돌길을 만들었으니 지렁이의 삶의 터전이 줄어들렀고 그 위를 횡단하다가 이땅의 주인인 지렁이는 무참히 밟혀서 죽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상상과 생각으로 길을 걷다가 횡단하는 지렁이를 보면 즉시 안전한 곳으로, 삶의 터전으로 보내주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임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한 사람 두 사람이 지렁이 살리기에 나선다면 이 땅을 옥토로 만들어준 지렁이들이 또다른 인간의 삶의 터전과 무대를 만들어 낼 것이라는 상상도 하고 있습니다.
늘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신세를 지고 산다는 마음가짐으로 살면서 길을 잃은 지렁이른 만나면 즉시 삶의 터전으로 보내주고자 하며 더 많이 동참하는 분들이 늘어나기를 기대합니다. 물로 보내서 두루미의 먹이가 되고 잉어의 흡입력에 희생될지라도 인간이 만든 아스팔트위에서 으깨지는 지렁이의 처참한 모습을 그대로 보고 있을 수는 없다는 점에 공감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강석 (李岡錫)
출생 : 1958년 화성 비봉
경력 : 경기도청 홍보팀장, 경기도청 공보과장
동두천·오산시 부시장 / 경기도균형발전기획실장
남양주시부시장 /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현직 :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저서 : '공무원의길 차마고도', '기자#공무원 밀고#당기는 홍보#이야기' 등 수필집 53권 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