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하루 이틀 일주일 한 달이 참 쉽게도 내달리고 있습니다. 다라나는 기차 같기도 하고 흐르는 강물처럼 가는 듯 보이는 세월이 이렇게 흐르고 쌓여서 62년을 채웠습니다. 그 동안 흘러간 세월이 참으로 많은 만큼 맞이할 시간도 그만하다 생각을 하기로 하고 마음 느긋하고 평온하게 살아가렵니다. 가수 보아의 오빠는 40세인데 3~6개월 생존한다는 진단서를 공개하면서 열심히 관리하면서 살아간다고 밝혔습니다. 뱃속의 복막이 아프다하는데 그 고통이 심하다고도 합니다. 그냥 암으로 생존할 날이 길지 않다는 것도 힘든 일인데 그 암이 고통을 수반한다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40세 나이면 그동안 준비한 인생을 바탕으로 자신의 삶을 크게 넓게 펼쳐나가는 시기인데 말입니다. 어느 인생이나 40이면 아름다움의 최고봉이지요. 20까지 공부하고 28세까지 군대 다녀오고 배움을 바탕으로 자신의 삶을 꾸려나가는 나이이지요. 정말로 40세를 돌아보니 참으로 바쁘기도 하였지만 삶의 황금기였음을 이제야 알게 됩니다. 그런 기간을 바탕으로 열심히 노력하겠다는 신념을 바탕으로 살아온 바 오늘 이 같은 글을 쓰고 있다는 것도 참 고마운 일입니다. 사실 평생 신문에 글 하나 쓰지 않은 분,
최양락 팽현숙 부부의 삶을 알려주는 초코양락 까페에 회원이 되었습니다. 어제 24,846명이었는데 오늘 아침 6시27분에는 25,600명입니다. 100,000만 회원가입의 날이 멀지 않은 듯 보입니다. 100만명 회원이 되면 그 자체로도 큰 힘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최양락의 아내 팽현숙은 게그우먼으로 유명했고 한식, 중식, 일식, 양식 모든 조리자격증을 받았다고 합니다. 열정과 노력의 주인공입니다. 그래서인가요 남편을 대하는 모습은 우리 주변의 '궁서체' 에게는 익숙하지 않습니다. 김치, 파로 싸대기를 치고 머리끄댕이를 잡아당기는 등의 모습이 안타깝습니다. 나름 캐릭터인가는 모르겠으나 조금은 과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경기 가평군의 청평소재 대 저택에서의 생활모습을 보아도 궁서체들은 어렵습니다. 해서 조금은 톤을 낮추고 서로 양보하면서 존중하면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언제까지나 긴장을 하면서 그렇게 사시기 보다는 조금 여유를 가지고 릴렉스하면서 차분히 각자의 삶을 존중하고 나름의 여유를 가져 보시기 바랍니다. 지금의 모습은 60세 이전까지만 유지하시고 이후에는 조금 넓은 마음의 정원을 가꾸시기 바랍니다. 어제 재방송에서 팬 까페 만드는 과정에서
경기도청 공보실에서 11년간 근무하고 퇴직한 이강석(64) 전 경기테크노파크 원장은 페이스북 글을 통해 도와 시군의 행정홍보를 위한 여러 가지 준비사항 중 도지사, 시장, 군수의 사진은 밝은 사진, 결의하는 모습, 걱정하는 표정 등 3가지 이상의 사진을 준비해야 한다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말했다. 그는 보도자료와 관련해서 “주무관이 국민교육헌장처럼 매끄럽게 만들어낸 보도자료보다는 원시자료를 제공하는 것이 시정홍보에 보다 더 효율적”이라고 강조하고 “그 이유는 절임배추와 채썬 무를 제공하면 김치라는 하나의 반찬이 나오지만 무와 배추를 통으로 받은 주방장이 김치는 물론 소고기뭇국, 겉절이, 배추전, 해장국, 깎뚜기 등 다양한 반찬을 만들 수 있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이강석 전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보도자료는 식재료, 조리하지 말고 제공하라" "기관장 사진은 3가지 컨셉으로 준비하라" "언론은 비판·비평적, 공직자로서 이해해야" 이어서 “원재료를 받은 언론인들도 다양한 형태의 보도를 통해 행정홍보를 지원하게 된다”고 강조하고 “언론은 우리 행정을 돕고 시정발전을 위해 협력하는 역할을 하지만 언론인은 늘 비판, 비평의 시각을 가지고 있으니 여기에 맞는 공직
▩ 기고문에 대한 소고 현직 공무원으로 근무할 때에는 가끔 기자분들이 기고문을 청탁하기도 하고 스스로 글을 써서 보내면 일주일안에 신문에 멋지게 나와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퇴직 이후에는 글을 쓰는 의욕도 줄었거니와 어쩌다가 파삭하고 떠오른 소재를 가지고 글을 써보아도 어느 신문 누구에게 기고문을 보낼 것인가부터 고민이 됩니다. 그래서 글을 쓰는 의지가 더더욱 약화되고 써놓은 글을 고치면서 이 글을 누가 받아줄까 걱정을 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기고문을 보내면 인사치례로 고맙다고 답을 합니다만 편집회의에서 밀려났는지 신문지면에 오르기가 쉽지 않습니다. 최근에도 두편을 두 언론사에 보냈지만 하나는 2주, 다른 글은 1주일을 넘겨도 신문기사로 나오지 않습니다. 혹시 신문에는 나오지 못해도 인터넷에 올려주었을까 하는 기대로 검색어를 넣어보아도 과거의 다른 글이 떠오를 뿐 최근의 글로 나나타지 못하고 있습니다. 누군가 선배에게 퇴직후 힘이 빠진다고 고백하니 앞으로 내려놓을 것이 더 많을 것이라면서 아직도 어깨의 불필요한 힘이 남았다고 지적을 합니다. 어깨의 힘을 빼야 퇴직 후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나 봅니다. 힘빼기로 말하면 공직과 골프입니다. 어깨의 힘을 빼야 성공하
▩ 대통령의 의자 ‘빙글빙글 도는 의자 회전 의자에 임자가 따로 있나 앉으면 주인인데 사람 없어 비워 둔 의자는 없더라~’ 가수 김용만 선생의 노래 ‘회전의자’ 머리가사입니다. 1966년에 나온 곡이니 오랜 세월 인구에 회자(膾炙)된 유행가입니다. 미국 사회에서는 승용차가 그 사람의 신분을 나타낸다고 해서 점점 커졌다고 합니다. 우리 사회에서 의자는 과시와 자랑의 상징이었습니다. 회사의 사장이 되면 큰 소파를 사들이고 하루종일 놓여있을뿐 별로 앉지도 않는 검은색의 큰 의자를 세워둡니다. 읍·면·동사무소 회의실에는 좁은 회의실에 비해 과하게 큰 의자가 불편함을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군청에 가면 초콜릿 색의 둔탁한 나무 의자가 회의실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도청에는 1980년대까지 이른바 VIP용 의자가 창고에 보관되어 있었습니다. 대형 주머니에 머리를 동여맨 초콜릿 형태로 포장된 의자를 본 기억이 있습니다. 과거 권위주의 시대에 대통령이 도청에 초도순시를 오면 2시간 정도 쓰고는 다시 창고에 보관하였습니다. 지방에서 열리는 대통령 행사장에서 경기도의 어공(어쩌다 공무원) 간부들이 도지사 의자 배치를 놓고 청와대 의전팀과 실랑이를 벌이는 모습을 옆에서 안타까운
▩ 언론과 친해지기 <리더십역량 강화 - 미디어> [강의 시나리오] 9급 퇴직 공무원 이강석입니다. 네이버에 이름을 치면 빙상선수 이강석 다음에 제 이름이 나옵니다. 그리고 1937년생으로 1960년4월에 사망한 이강석도 있습니다. 이기붕 부통령의 아들이고 이승만 대통령의 養子(양자)였습니다. 1960년 4.19때 육군사관생도였는데 권총으로 자살한 것으로 알려진 인물입니다. 그리고 가짜 이강석 사건으로도 유명합니다. 이승만 대통령의 양자로 들어간 이강석을 흉내 낸 인물이 있었습니다. 그는 1957년 8월 30일에 경주경찰서에 가서 아버지(이승만)의 밀명으로 풍수해 피해상황과 공무원의 기강을 알아보려 왔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경주경찰서장, 경주시장이 맨발로 뛰어와서 “귀하신 몸”을 극진히 대접했다고 합니다. 이어서 영천, 안동으로 가서 같은 상황을 연출하고 3일 후에는 대구에 도착하여 경북도지사 관사에 머물게 됩니다. 하지만, 경북도지사(이근직)는 이강석과 안면이 있고 진짜 이강석과 도지사 아들이 서울대학교 동창이어서 가짜임이 확인되어 가짜 이강석 행세를 한 인물은 도지사 관사에서 체포되었습니다. 경찰은 사건을 조용히 덮으려 했지만 매일신문 기자가
▩ 자연을 바라보는 방법 先山(선산) 들녘에 대한 기억은 유년의 추억이 더해져서 무난하고 편안합니다. 이유를 알지 못한 채 접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새록새록 돋아나는 것도 고향이라는 마을의 평온한 정경입니다. 그 묘역에서 하루종일 풀을 깎으시던 할아버지가 생각납니다. 반백의 반대머리 할아버지는 숯돌에 무쇠 조선낫을 솔솔솔 삭삭삭 갈아 시퍼런 날을 세운 후에 이른 아침 이슬이 마르기 전에 선산에 가셨습니다. 점심까지 짧은 잔디를 조금씩 잡아당겨 깎아낸 풀은 뒤에 내려놓고 잡은 풀 중 한 줌을 다시 가져가서 풀깍기를 이어가십니다. 그 모습은 마치 지하수를 퍼 올리는 펌프를 작동하기 전에 물 한 바가지를 부어 넣는 것과도 같습니다. 철과 고무로 만든 펌프는 스스로 물을 퍼 올리지 못하고 압력을 늘려줄 물을 반쯤 채우고 펌프질을 해야 지하 10m속의 물을 끌어 올려 촤르륵 하고 시원하게 뿌려줍니다. 여기, 물을 퍼 올릴때 미리 부어주는 한 바가지 물을 ‘마중물’이라 합니다. 손님이 오시는 날 미리 동네 어귀에 나가서 모셔오는 것을 ‘마중’이라 합니다. 지하에 고여있는 물을 이끌어 올리는데 쓰이는 물이니 마중을 나가는 것이고 그래서 마중물이라는 멋진 표현을 하게 된
▦ 절하기 좋은 계절 직장생활이나 사회생활에서 동료와 협업을 하는 방법에 대한 견해를 정리해 보았습니다. 흔히 공직 선후배간에 누군가를 거명하면 "내 밑에 있던 직원"이라고 합니다만 같은 부서, 조직에 함께 근무한 것이지 상하관계로 일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직위와 급수가 다르고 업무관계에서는 실무관과 지휘자의 관계는 존재하겠으나 누군가의 위, 아래에 존재했던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래서 같은 부서에서 일하거나 연관성을 갖게되는 부서와 협력하면서 일을 할 때 상대방을 대하는 마음속의 자세가 참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상대가 나를 위해 도움을 주는 사람이라는 전제를 바탕으로 대해야 합니다. 내 마음대로 지휘할 상대가 아니라 나의 의견을 가미하면서 함께 같은 방향을 향한 목표를 지향하는 동반자임을 알아야 합니다. 협력부서의 경우도 그들과 우리 부서가 힘을 합쳐서 좋은 일을 이룩해내고 성공시키는 과정의 동반자, 조력자임을 공감하고 인식해야 합니다. 상하관계를 설정하는 즉시 그 프로젝트(project)는 성공하기 어려울 것이고 성공한다 해도 다음 사업으로 연결되는 시너지효과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함께 일하면서 토론을 하는 것은 좋으나 논쟁할
▦ 절하기의 미덕 홍보강의에서 기자와의 식사는 평생의 자동차 보험과 같다는 말을 했습니다. 자동차 보험을 가입하면서 사고가 나기를 바라지 않는 것처럼 기자와의 식사에서 나쁜 보도를 기대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평범하게도 언론인과 식사하고나면 우리 부서가 언론에 불리한 상황에 노출될 때에 작은 도움을 받을 것이라는 기대를 합니다. 하지만 평생의 직장생활에서 한 두번은 언론의 도움을 받거나 언론의 비판을 받게 되는 상황에서 이를 적정하게 조율하고 비판의 수위를 낮추는 기회가 있을 것이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즉, 언론을 통해서 좋은 기사를 내보내서 고객들의 칭찬을 들 을 수 있고 매출에 도움을 얻게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동시에 어떤 잘못된 사건이 기사로 나갈 때 기사의 水位 (수위) 조절이 가능할 것이라 생각해 봅니다. 1989년경 태풍이 심해서 비상상황으로 일찍 출근하는 길에 수원세무서의 현판이 바람에 날아간 것이 보였습니다. 아마도 "내가 낸 세금 나를 위해 쓰인다"라는 내용의 홍보판으로 생각되는데 후반부의 절반이 강한 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날아간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낸 세금 바람에 날아갔네"라는 사진기사로 쓰임새가 있겠다 생각했습니다. 당시 국
오늘 아침에는 절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생각이 많았습니다. 시간대도 좀 늦은 바이므로 삶의 잘잘한 일들이 겹치면서 절하기에 집중하지 못했습니다. 불가에서는 이른 새벽에 일어나 새벽예불을 올립니다. 아침에 할 일이 없는 새벽 4시에 절을 하고 부처님께 인사를 드립니다. 이른바 잡념이 들어갈 자리가 없습니다. 하지만 아침 6시가 지나면 뉴스가 나옵니다. 오늘은 코로나19 상황이 어떠한가 고민해야 합니다. 출근, 등교 시간도 보아야 합니다. 그냥 아침 6시는 참 바쁜 시각입니다. 그러니 새벽 4시에 기상하여 절을 해야 하겠습니다. 6시가 되도록 2시간동안 주변 상황에 영향받지 않고 오로지 정진할 수 있는 2시간을 즐길 수 있습니다. 오늘 아침 화두는 절하기의 방식입니다. 손을 짚고 절을 하는데 정법으로는 무릎으로 내려가 절하고 다시 두 다리로 온전하게 올라와야 맞습니다. 손을 짚고 손으로 튕겨서 올라오는 절하기는 정법이 아닙니다. 하지만 쉽지 않습니다. 정법으로 절하면 아직도 후들거립니다. 그래서 살짝 가끔 팔의 도움을 받는 것입니다. 그래도 다행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매일아침 절하기의 열정이 살아난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고마운 생각을 합니다. 스스로에게 감사하는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