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청과 경기도의회의 언론담당관, 그리고 남양주시청, 오산시청, 동두천시청에서 부시장으로 근무한 이강석 전 경기테크노파크원장이 언론 기고문 중 100개를 모아 편집한 본인의 세 번째 책 ‘보리차 냄새와 옥수수 향기’를 2020년 출간한 바 있다.
그는 경기도에서 42년간 재직한 공직자로 공보부서에서 11년 6개월간 근무하면서 언론과 인연을 맺었고 도청 균형발전기획실장, 부시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으로 근무하면서 꾸준히 언론에 기고했다.
또한 경기도테크노파크 원장으로 공직을 마감하면서 ‘언론사의 도움을 받은 바 크다’면서 신문사에 퇴임 인사를 다녀간 친 언론공무원 중 한 명으로 평가받고 있다. 신임인사는 많이 오지만 퇴직자가 언론사를 방문한 예는 드물기 때문이다.
뉴스폼에 게재하는 '이강석의 세상만사'는 책 '보리차 냄새와 옥수수 향기'를 토대로 스마트 시대를 사는 요즘 사람들에게 스토리텔링을 통한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는 코너다.
사람들은 아마도 이쯤에는 나이를 먹어서 자신들의 삶이 중요하고 내 나이가 60세 후반에 이름을 알고 지난날을 추억하면서 나이 70과 80세의 미래를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내가 1960년대에 태어나 2030년대를 향해 간다는 점에 대해 큰 느낌과 돌아봄이 시작될 것입니다. 그리고 살아온 세월에 대한 반성과 아쉬움 한가득한 어느날 오후의 나른한 시간을 보낼 것입니다. 혹시나 세월이 더 흐르면 뇌가 약해지고 마음도 흐려져서 자신의 존재를 알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긴 세월이 그렇게 흐른 이후에는 차분히 가정으로, 집으로 돌아오고 자신이 태어난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 되돌아가는 과정에서 서서히 문학적 소양이 깊어진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작가는 70세부터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하는 것이 맞다는 생각을 합니다. 30대 작가의 작품이 심사위원의 높은 평가를 받은 것으로 수상하였다면 뭐라할 수 없겠습니다만 실제로 70에 쓰신 작품이 큰 상을 받지는 못했어도 그 작품의 의미는 더 크다는 생각을 해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응용과학에서만 신경을 쓰다보니 과학분야 노벨상을 받은이가 없는데 기초과학에 장기간 큰 연구비를 지원한 일본에서는 수십명이 노벨상을 수상하고 있습니
얼마전에 20,000원 가까운 큰 돈을 주고 산 발판을 절하는 방석 대용으로 쓰고 있습니다. Made in U.S.A. 미국에서 제작한 발판이어서인지 초콜릿색입니다. 다만 발판용이니 절하기에는 조금 짧습니다. 폭은 맞는데 길이가 짧으니 발을 맞추면 손이 나가고 손을 맞추면 발이 밖으로 탈락을 합니다. 그래서 아예 손을 짚는 머리부분을 밖으로 나가게 하고 발디딤과 무릎의 쿠션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1.5배 정도 길었으면 합니다. 발도 자리를 잡고 이마와 손을 닿고 짚는 자리도 적당하게 기분좋은 이 큐션을 만나면 좋겠습니다. 방석이 좋은 것이어서 절하기에도 신이 납니다. 낮은 쿠션이 일어나고 내려갈때 힘을 실어준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골프채가 자꾸만 비싸집니다. 11년째 68만원짜리 성남에서 구매한 e2로 파도 몇번 했습니다. 버디를 못한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언젠가는 파4홀에서 드리아버 한번, 세컨샷에 이은 어프로치, 퍼팅으로 홀컵에 뎅그렁 하는 날이 올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말이 있습니다. 목수가 연장탓을 한다는 말 말입니다. 이 말은 참으로 부족한 말입니다. 목수의 역할은 굽은 나무를 펴서 쓰고 더 굽은 나무는 설계에 없는 부분에 활용하는 창의적 능력을
스티븐호킹 박사의 인생을 설명하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사랑에 대한 모든 것"이라는 제목인데 본인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그를 사랑한 부인의 숭고한 정성이 크게 부각되는 영화입니다. 아마도 대학생 시절에는 걷기에 불편함이 있었고 박사학위가 통과될 즈음에는 목이 굽고 팔다리가 많이 불편했습니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3남매를 낳고 교수활동을 이어갔습니다. 친구들이 편하게 대화하고 맥주를 마시며 일상을 살고 있지만 영화의 1부 마지막 장면, 가족이 스티븐호킹 박사의 부모님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아내가 많이 힘들다 말하였고 2부는 다른 프로그램을 보느라 마져 시청하지 못했습니다. 인터넷을 검색해4보니 스티븐호킹은 1941년 1월8일 영국에서 태어나 케임브리지대학교 대학원 물리학 박사가 되었고 1977년에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 수학과 중력물리학 교수, 1979년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 루카스좌 석좌교수로 강의와 연구활동을 하였습니다. 1988년 울프상 물리학부문 수상을 하였고 2009년에 미국 대통령 훈장을 받았습니다. 요즘 노벨상 발표시기인데 아마도 스티븐호킹 박사에게는 주어지지 않았나 봅니다. 1965년 제인 와일드와 결혼하여 3자녀를 두었고 1991년에 이혼했습니다
사람에게는 인연이라는 것이 있어서 질긴 경우에는 저승에서도 만나고 웬만하면 평생에 한두번은 목도하게 될 것이라는 만남의 기회를 다시금 생각하였습니다. 어제 저녁에 행사에서 만나뵌 분은 사마천이 쓴 중국의 사기를 연구하는 교수님으로서 2012년 지방행정연수원 장기교육에서 2시간 강의로 만나 뵌 이후 6년만에 식사자리, 행사장에서 다시 뵈었습니다. 뵙자마자 지방행정연수원 2012년 사마천의 사기 강의를 들었다 말씀드리니 참으로 반가워하십니다. 바로 옆에는 이 강의 8시간을 들으신 사마천의 사기를 사랑하는 모임의 후원회장님이 자리하셨습니다. 보람차고 반가운 인연의 현장이었습니다. 그래서 2012년 사마천의 사기에 대한 강의내용을 여기에 잠시 옮겨 둡니다. 사기의 인간학 / 중국 사마천학회 金瑛洙 사마천을 2시간에 이야기하는 것은 어렵다. 한번 읽어볼 책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이 시간에는 사성어를 중심으로 이야기하고자 한다. BC145년에 사마천이 탄생했고 55세에 史記를 완성했다. BC90년부터 2,100년이 지난 현재까지 이 같은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예는 없다. 그동안 사마천을 정신적 멘토로 삼아 공부했다. 1992년 이후 반세기 내에
오늘 아침에 우체통에 대한 글 하나를 추가하였습니다. 전국 坊坊曲曲(방방곡곡)에서 만날 수 있었던 친근한 우체통이 줄어들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빨강 우체통 지키미] 軍事郵便(군사우편)이라는 청색 스탬프가 찍힌 편지를 처음 본 것은 50년 전이다. 옆집 할머니께서 흰 손수건에 곱게 쌓인 ‘군사우편 찍혀있는 고운 편지’를 가져와 읽어 달라 하셨다. 철없던 아이는 국어시간에 교과서 읽듯 낭송하였고 할머니는 돌아앉아 살짝 눈물을 닦으시고 편지를 곱게 접어 치마 품에 감추셨다. 꽃 속의 나비처럼 편지를 간직하셨다. 할머니의 막내아들이 논산서 힘든 훈련 마치고 두 달만에 보낸 편지다. 글을 읽지 못하시는 할머니가 아들이 그리워 철없던 초등 2학년 아이의 눈과 목소리를 빌려 군대 간 아들을 만나는 눈물겨운 情景(정경)이다. 겨울날 어느 밤에 군대 가서야 철든 아들은 내무반 차디찬 침상에 엎드려 급하게 적었을 것이다. 엄마가 어머니가 되었다. 군대 간 아들이 입대해서 가장 먼저 배우는 말이 ‘어머님 전상서’다. 요즘쯤인 가을이면 참으로 편지쓰기가 좋다. 요즘 제법 쌀쌀한 날씨에 아버님, 어머님! 기체후일향만강(氣體候一向萬康)하옵신지요. 不肖(불초) 소자는 부모님 염려덕
새로운 요가매트를 설치한 이후에 절하기가 많이 편해졌습니다. 마음껏 허리를 펴고 팔을 끝까지 밀어도 180cm요가메트는 모은 몸동작을 받아줍니다. 마치 동해상에 올라온 항공모함 로럴드 레이건호와도 같습니다. 그 항공모함 한 척이 어느 중견급 보통나라 군사력의 규모와 비교된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10년간 쓰는 원자력 엔진, 3년간 먹을 물, 1년치 부식 등 평소 우리가 쓰지 않는 어휘와 형용사를 물 쓰듯이 활용할 수 있는 기자의 신바람을 일으키는 항공모함 이야기는 볼수록 재미있습니다. 실제로 전투기 20대가 탑재되어 있고 헬기 5대, 자체 함포 등 화력, 3,000명의 병사들이 이 항공모함에 있다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처럼 넓은 항공모함 같은 요가매트위에서 108배를 하다보니 과속을 하였고 나중에 정산해 보니 총 115배를 올렸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몸은 모든 것을 기억한다고 하던데 중간에 끊어서 다시 하나부터 시작하여 108배의 절반인 54배를 하고 조금전 올린 절을 합하여 115배가 나왔는데 그 54배를 올리던 중 40번대에서 이마에 땀이 흘렀습니다. 숫자는 염주에서 90을 세고 다시 19를 세고 14를 채웠는데 몸은 이런 숫자놀이에 전
가을을 알리는 징조는 여러가지가 있겠습니다만 저는 우선적으로 귀뚜라미를 꼽고자 합니다. 아마도 귀뚜라미들은 한여름을 애벌래로 열대야와 뜨거운 오후의 태양을 온몸으로 감당하여 투명한 애벌래의 옷에서 검정 정장으로 바꿔입고 일찌감치 풀섭 깊은 자리에서 가을을 기다리나 봅니다. 그래서 초저녁 서편 하늘과 해안에서 한판 석양이 놀다가 사그라질 밤 10시즈음부터 서서히 한 두마리씩 나타나서는 이제부터 우리들의 시간임을 알리기 시작합니다. 10시에 시작된 귀뚜라미 합창단의 가을노래는 새벽 1시경에 정점에 이릅니다. 그리하여 끝날듯 마감되지 않는 대중가요 중 하나인 '사랑으로'처럼 귀뚜라미 대대병력, 연대, 사단, 여단 군단급 장정들이 밤을 새워 아침이 하얗게 나타납니다. 그리고 먼동이 틀 즈음까지 이구동성 힘을 모아 팔과 가슴깃을 비벼서 노래합니다. 긴 더듬이는 지휘봉이 되고 짧은 앞다리가 미안한 만큼 길고 굵게 장식된 허벅지 풍성한 뒷다리를 악기삼아 지난 밤을 밝혀 갑니다. 아마도 밤새 연주한 귀뚜라미의 곡을 다 합하면 마리당 CD 3장씩만 배당하여도 풀섭 주변에는 수만개의 음악CD가 쌓일 것입니다만 음은 땅과 공기와 풀섭의 억새사이를 지나 밤새도록 하늘에서 은하수가
오늘 뭉게구름이 하늘을 장식하였는데 오후에 이르러 하늘에 구름과 태양이 遭遇(조우)하여 가을 날씨를 연출한 가운데 소나기가 잠시 내렸습니다. 참으로 기이한 일기현상입니다. 이런 기상을 보면 여우가 시집을 간다고 했습니다. 호랑이가 시집을 간다고도 했습니다. 아주 번잡스러운 일이겠지요. 하늘은 맑은데 뭉게구름만 지나가는데 내가 서있는 이 자리에는 소나기가 내린다는 말입니다. 부천-서울-수원-안산으로 이어지는 길에서도 비가 내렸을 것입니다. 부천을 출발한 비가 서울 교대역으로 갔고 수원에서 떠난 전철이 교대역에 도착하였는데 소나기가 내렸을 것이고 안산을 출발한 전철도 구로를 거쳐서 교대역으로 환승할 즈음에 소나기를 만났을 것입니다. 엄청난 천둥, 번개, 낙뢰 등 수많은 스토리가 전개되었습니다. 구름은 양전기와 정전기가 만나서 충돌하고 결합하면서 양쪽에 머금은 구름에서 수증기가 뭉쳐지면서 땅위로 떨어지니 이를 비가 온다하고 따스한 겨울날에는 높은 곳에서 비행기가 구름을 흔들어 눈이 내리고 진눈깨비가 오기도 하고 눈이 녹아 빗물이 되어 땅에 흐리기도 한다 했습니다. 어떤 물이든 눈이든 우박이든 기상상황에서 발생하는 수준의 기체, 고체, 액체상태의 어떤 흐름은 기상상
어제는 토요일로서 테크노파크 과학축전이 열리는 날이라서 부부가 안산에 갔습니다. 행사장을 재미있게 구경하고 일행들과 구내식당에서 5,000원짜리 중고생들이 좋아하는 갈비탕에 쏘시지가 곁들여진 점심을 잘 먹고 일정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시간이 좀 있으니 시화호 방조제를 가보자 했습니다. 넓고 시원하고 탁 트인 바다를 보는 것도 일상에서 탈출하여 새로운 세상을 보는 일이 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리하여 시화호 방조제를 절반쯤 달렸을때 불현듯 충남의 어느 장소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차 네비게이션을 바꾸니 그 노선은 수원 집으로 가는 길에 봉담으로 내려가서 평택을 달려 충남으로 가는 국도 41입니다. 전에는 고속도로인 줄 생각하면 서 달렸던 길인데 다시보니 국도입니다. 국도가 고속도로급으로 업데이트 되었다는 생각을 하면서 애초에 목표한 현장에 당도하였지만 오늘은 일을 볼 수 없었습니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가 생각하다가 내려오던 길에 본 마곡사라는 교통표지판이 생각나서 부부는 일단 네비게이션에 의지하여 마곡사까지의 거리와 방향을 확인해 보았습니다. 좀 거리는 있지만 수원을 향해 가는 길에 있는 것 같습니다. 다음부터 차에 지도를 한권 두고자 합니다.
여주에 소재한 신륵사는 고려 말 우왕 5년(1379) 각신(覺信)·각주(覺珠) 스님에 의해 중창되었고, 세종 22년(1440)에 중수했다고 하는데,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28호로 지정된 지금의 극락보전은 정조 21년(1797)부터 3년에 걸쳐 완공한 건물이라고 한다. 2018년 10월 27일 토요일에 이강석 최경화 부부가 두 손을 잡고 이곳 신륵사를 찾았습니다. 오전 11:55분 집을 출발하여 영동 고속도로에 진입하였는데 강원도로 향하는 차량이 가득하고 용인에서 고속도로를 하차하여 광주, 이천을 거쳐서 우회하여 여주에 이르러 세종대왕께 우선 인사를 드리기 위해 얼핏 보이는 '세종대왕릉역'을 왕릉으로 착각하고 갔다가 다시 네비게이션을 고쳐서 12km를 달려 세종대왕릉 관리소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박물관급은 아니지만 세종대왕 관련 자료 전시관을 둘러보면서 양령대군, 효령대군, 그리고 세종대왕이신 충령대군에 대한 설명문을 읽어보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세종대왕릉은 보수작업을 한다고 합니다. 이곳에서 1시간30분 걸리는 왕복 도보관람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지난해 병우회 모임에서 다녀온바 있고 해서 그냥 산쪽으로 바라보고 마음속으로 인사만 드린 후에 차를 돌려 여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