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봉면 모임

이강석 전 남양주시 부시장

1977년 5월16일에 공직 발령을 받고 비봉면사무소에 도착하니 안희창 선배가 반겨줍니다.

저에게 처음으로 이서기라는 말을 하신 분이고 근무중 홍무표 면장님 퇴임식날 저녁 회식에서 소주를 많이 마시고 회의실 천장의 서고로 올라가 써러진 이강석을 깨워서 숙직실에 재웠습니다.

술에 취해 초임 공무원의 애환과 술주정을 들어주시고 다음날 아침에 라면을 끓여주셨습니다.

 

 

어느 날 이 같은 기억을 말씀드렸지만 기억나지 않는다 하십니다만 그당시에 나눈 말씀으로는 술취해서 하는 말이 모두가 하나같이 초임 공무원의 고충이어서 공감이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당시의 선배님들을 기억하고 마음속으로 새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병무청 신체검사를 받고 군에 입대하기 위하여 휴직을 하고 면사무소를 떠났습니다.

 

1977년 5월16일부터 1979년 2월3일까지 21개월17일을 근무하고 휴직하여 14개월간 군복무를 하였고 1980년 4월14일에 軍(군) 제대후 화성군청에 복직을 신청합니다.

그런데 화성시청, 당시 군청에서 곧바로 빈 자리에 배치하지 않고 잠시 기다렸다가 교통여건이 어려운 팔탄면사무소에 배정합니다.

 

1980년 5월10일자로 발령을 받고 팔탄면사무소에서 근무를 시작하였는데 5월17일에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나고 계엄이 확대되는 격변기를 겪게 됩니다.

젊은 공무원들과 수원 딸기밭에 가는 길에 "공무원들이 집단행동을 하면 계엄포고령 위반이 아니냐?"는 말을 하였는데 옆 동료가 옆구리를 쿡 찔렀습니다.

 

우리들이 지나가는 길에 사복형사인듯 옷안쪽에 권총을 찬 눈빛 빠릿한, 머리에 참기름을 바른 정보원인 듯 보이는 젊은이가 제가 한 말을 들었나 봅니다.

자칫, 체포되면 삼청교육대라도 갈 뻔한 아찔한 사건이었지만 잘 넘어가고 1980년5월10일에 발령받은 후 팔탄면에서 14개월 10일 근무하고 1981년8월10일에 태안읍 기산리 315번지 농민교육원으로 전근을 갔습니다.

비봉면에서 공직을 처음 시작하고 선배들로부터 업무를 배우고 익힌 바가 많아서 젊은 층을 중심으로 봉우회 모임이 시작되었고 장년층에서 다시 봉우회를 확대 결성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주는 아니어도 봉우회 모임이 있으면 반드시 참석합니다. 특히 안산에서 근무할 때는 남전리 식당에서 한여름 음악축제를 열었고 참석해서 즐거운 시간을 함께 했습니다.

요즘에는 코로나19로 모임을 못합니다. 재직시에 모이던 젊은 층에 기존의 장년층이 합세하여 큰 모임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카카오톡 단톡방에서 정보를 주고받습니다. 붓글씨 궁서체 어르신들은 카톡방에 사진을 올려주십니다.

 

복잡한 글자 조합이 어려우니 문장을 쓰시기보다는 사진을 올려서 안부를 전하곤 하십니다. 모두가 건강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약력]
-1958년 화성 비봉 출생
-경기도청 홍보팀장, 공보과장
-동두천·오산·남양주시 부시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기자정보

프로필 사진
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오산#남양주 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