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사와 광고] 언급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언론사의 광고는 곧 생명과 같습니다. 신문사나 방송사가 광고 없이는 운영이 어렵습니다. 광고가 없다면 운영이 불가능할 것입니다. 공영방송 KBS는 시청료를 받아 운영한다고 하지만 경영수지에 맞게 인상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듯 보입니다. 신문사는 매일 같이 수 십 건의 광고를 실어야 하는데 광고주는 신문사 광고국에 전화를 하지 않습니다. 그런가 하면 광고가 잘되는 신문사 광고부장은 광고주를 피해 다니고 광고가 잘 안 되는 신문사 광고부장은 광고주를 따라 다닌다는 말이 있습니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영업이 잘되니 광고를 싣는 것인지 영업실적을 올리기 위해 광고를 내는 것인지가 모호한가 봅니다. 광고효과가 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이번 광고가 얼마만큼 매출에 효과를 올렸는지를 평가하기는 참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언론사는 늘 자신의 독자와 시청자를 자랑하지만 광고주는 그만큼 인정하는 눈치가 아닌 듯 보입니다. 그래서 광고를 내는 광고주가 나서기 보다는 광고매체인 신문사가 광고에 앞장서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 신문사에 광고를 내면 효과가 높다고 주장하십니다만 그것을 증명할 방법은 충분하지 못해 보입니다. 더구나 앞서 말한
1988년 7월4일에 문화공보담당관실에 발령을 받았습니다. 공보계 보도계 문화재계 문화계 등 네 부서가 있는데 각각의 업무에 열중하는 가운데 보도계장님과 차석은 기자실을 사무실처럼 쓰시고 우리가 근무하는 사무실의 자리에 앉으시는 시간은 아침 점심 합쳐서 30분 정도 입니다. 공람문서에 싸인 하시고 회계문서에 결재하시는 시간 이외에는 늘 기자실입니다. 기자실에 사신다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릴 것입니다. 젊은 직원들은 아침 일찍 출근하면 칼과 자를 전쟁터의 총칼처럼 꺼내들고 '경기도 記事(기사)'를 오리기 시작합니다. 스포츠면에 난 '競技(경기)'라는 한자만 보아도 깜짝 놀라 驚氣(경기)를 하던 시절입니다. 중앙지에 난 명함 크기의 기사도 잘라서 복사지에 여러 장을 첨부한 후 기사보다 큰 신문명 고무인을 찍고 (9)면이라고 적습니다. 지방지는 면톱의 경우 복사지를 넘게 차지하므로 밖으로 삐져 나가는 제목의 일부를 접어야 합니다. 그래서 스크랩하기 편하게 박스 처리한 기사가 참 좋습니다. 사설 2건이 행정 관련이면 편리합니다. 데스크 컬럼도 스크랩에 적합합니다. 공무원 간부들의 기고문도 환영입니다. 이런 기사가 사진과 함께 나는 과정은 쉽거나 재미 있습니다. 아침에
이유가 있겠습니까만은 그래도 한밤중이 지나면 새벽이 오곤 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생각해 보니 새벽이 오지 않으면 아침도 없고 아침이 없으면 점심이 존재하지 아니하며 이후 저녁까지 이어질 명분이 없을 것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가 아 있다고 합니다. 아이가 자지러지게 우는 것을 달래다보니 팔뚝에 핀이 꼽힌 것을 발견하였고 어머니는 급한 마음에 핀을 빼면서 날카로운 바늘을 안전하게 관리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고 오늘날 옷에 꽂은 후 바늘을 숨기는 옷핀을 발명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이니 이 세상에 모든 좋은 일의 구심체는 어머니이고 야단치는 사람은 嚴親(엄친)이라 해서 아버지입니다. 대신에 어머니는 자애로운 분이니 慈堂(자당)이라 합니다. 돌아가신 자신의 아버지는 先親(선친)이라하고 남의 아버지는 椿府丈(춘부장)이라 하는데 이는 장수를 기원하는데서 유래합니다. <검색결과> 춘부장과 자주 헷갈리는 단어로 선친(先親)이 있는데 이건 자녀가 자신의 돌아가신 아버지를 남에게 일컫는 단어라 남이 "자네의 선친께서는~" 식으로 쓸 단어가 아니다. 선친은 망자의 자녀가 "저의 선친께서는~"처럼 자신의 아버지를 일컬을 때만
70세 이전에 수필집 70권을 출간하겠다는 버킷리스트를 강조해온 이강석 작가가 5월초 본인의 63번째 수필집 ‘2024계엄#2025대선’을 출간했다. 수필 제목에 <계엄과 총선>을 넣었지만 실제로는 이와 관련한 글은 없고 수필집을 출간한 시기가 2024~2025년에 쓴 수필을 집대성한 것임을 강조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작가는 밝혔다. 이번 수필집에서 이강석 작가는 풀무원 현장을 방문한 소감을 상세히 적어 올렸고 2년전 우연히 발견한 버드나무 묘목을 이식하여 지극정성으로 보살펴오는 이야기를 담았다. 풀무원 방문소감을 보면 원경선 풀무원 원장님의 유기농에 대한 관심과 기아문제 해결, 이웃사랑, 생명을 존중하며 평생을 바친 이야기를 적었다. 동시에 장애인을 적극 고용하는 풀무원 정신에 대한 의견도 실었다. 각목버드나무는 아주 미미할 수 있는 이야기이지만 보는 관점에 따라서는 생의 의미와 삶의 가치를 고양하는 내용으로 평가된다. 2023년 11월 25일 수원 삼성전자 연구소 인근의 원천천을 산책하던 작가는 하천가운데에 외롭게 서 있는 각목위에 작은 풀이 자라는 모습을 발견했다. 궁금한 마음에 사진을 찍어 확대해보니 5가지의 가녀린 버드나무 줄기였다. 이
제주 목사 이약동(李約東, 1416~1493)선생은 지금의 경상북도 김천시 양천동인 하로촌(賀老村)에서 금오산의 정기를 받고 태어났습니다.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하고 절개가 곧았으며 김종직, 조위 등과 깊은 교분을 나누었다고 합니다. 1441년 진사가 되었으며 36세가 되던 1451년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랐으며 사헌부감찰을 거쳐 외직에 나가 선정을 베풀면서 청백리의 기틀을 다졌습니다. 이약동 선생은 1470년에 제주목사가 되었습니다. 부임하여 행정을 살피던 중 백록담 산신제를 지내는 산천단이 한라산 정상부근에 있으므로 추운 겨울에 제기와 제물을 짊어진 백성들이 어렵게 산을 오르다가 미끄러져서 다치거나 사망에 이르는 경우가 많았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약동 목사는 한라산 중턱 이라동으로 제사장소를 이동하였고 그 자리에 지금도 백성을 사랑하는 목사님의 업적을 기리는 비석이 서 있습니다. 선생이 청백리로 불리우는 여러 가지 스토리텔링중 두 가지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궤편암과 투갑연입니다. 먼저 궤편암(掛鞭岩)은 말재칙을 반납한 바위위에 새겨진 이야기입니다. 1474년에 경상좌도군절도사가 되어 제주도 근무지를 떠날 때 평소 착용하던 의복과 기물을 그대로 관아에
목표한 바가 있고 이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은 인간, 사람에게서만 가능한 도전과 노력이고 그 성취를 바탕으로 새롭게 인생을 꾸려나가는 모습은 동물의 세계에서는 만나기 어려운 상황이라 생각합니다. 가끔은 운동화끈을 풀거나 매면서 인간만이 가능한 일이라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올무줄에 걸린 동물들이 고생하는 모습을 동영상을 통해 보게되고 평범한 나뭇가지에 끼어든 사슴이 고개를 위로 들기만하면 빠져나올 것을 아래로만 움직이다가 지쳐서 죽게되는 안타까움을 목도하게 됩니다. 다른 쥐들이 본드에 붙어서 꼼짝달싹을 못하는 것을 보면서도 쥐들은 그 쥐를 밟고 나가서 다른 본드부분에 몸을 붙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미래를 향해 나가는 것을 알고 자신에게 과거가 있었고 현재에 이르렀으며 앞으로 나갈 미래가 있음을 안다는 것은 인간만이 누리는 인식이라 봅니다. 물론 식물중에도 환경이 척박하여 죽음에 이를 것을 아는 시기에 꽃을 피운다고 합니다. 실제로 승진발령으로 받은 바이된 난에서 한두달 후에 꽃이 피는 것을 보고 반가워합니다만, 사실 이 난은 관리받지 못하여 죽음을 예감하고 자손을 이어가기 위해 꽃을 피운다고 합니다. '지금 대답에 추호의 여지가 없으렸다'라며 고을 사또님이
현직에 근무하면서 예산부서에서 일할 때의 에피소드 입니다. 당시의 공무원 조직중 하나의 팀은 5급 사무관의 지휘아래 6급 선임 2명에 7급 실무 5명과 9급 인력등 9명이 함께 일했습니다. 어느날 9급이 삼석 6급인 필자에게 틀린 질문을 했습니다. 그런데 선임차석 6급은 틀린 질문을 한 9급 직원은 패스하고 질문을 받은 6급 필자에게 아주 긴 지적과 설명의 말을 이어갔습니다. 필자를 포함한 8명은 '이게 머선 일이고?'하면서 같은 마음, 동일한 심정으로 선임의 질책을 듣게 되었던 것입니다. 밝힐 이야기는 아니지만 화를 누르고 용기내어 말한다면 나이는 5살 많은 분이지만 공무원 입직 1년, 6급승진 1년여 빠른 선배입니다. 하지만 오뉴월 햇빛이 수 시간이 다르고 같은 아랫목 바닥에도 온도차가 있습니다. 더 엉뚱한 이야기로는 산부인과 오전에 태어난 아기가 오후 후배에게 선임의 메시지를 보낸다는 말도 만들어 낼 정도이고 당시의 공직에는 그 軍紀(군기)라는 것이 있었으니 이에 대해 항의하거나 불평할 일은 아니었습니다. 이후 선임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질문을 한 직원은 홍두깨 날벼락을 맞은 6급 중임인 필자에게 사과하였고 "설명을 듣고 업무에 통일을 기하게 되었
냉장고의 냉동칸과 냉장박스에 들어가면 "모든 식품이 영구히 안전하다"는 타성에 젖은 우리는 음식을 만들어서 그릇에 담아 냉장칸에 넣고 하루, 이틀, 사흘동안 꺼내어 먹고 다시 넣고 다시 꺼내는 셔틀냉장을 이어갑니다. 어느 집 냉동칸은 음식을 담은 비닐이 흰 벽을 구성하고 있기도 합니다. 식재료마다, 음식과 반찬마다에는 나름의 유효기간이 있을 것인데 우리는 그냥 냉장에 넣으면 보름은 가고 냉동에 넣으면 다시 한해가 바뀌어 그날이 다시와도 탱탱 얼어 있으니 문제없다고 생각하나 봅니다. 위생당국에서는 유효기간과 유통기간을 정하고 단속을 합니다만 이는 편의점 등 오픈된 장소에서는 수시로 행해지는 행정지도단속이지만 정작 식품을 만드는 큰 공장에서의 위생에 대해서 편의점만큼 알뜰하게 관리 하는가에 대한 확신은 부족하다 봅니다. 대형공장에서 제조일자, 유통기한, 유효기간의 일자를 쉽게 확인하기 어려운 부위에 흐릇하게 찍어내어 마트, 편의점 등에 공급하고 소비자들은 그 날짜를 확인하면서 작은 두뇌게임을 하고 있습니다. 유통기한 만료일이 임박한 제품은 진열대 앞에 놓고 조금 여유있는 물건은 뒷편의 꺼내기 어려운 곳에 전시합니다. 이에 소비자들은 일단 구매할 제품을 정하면 앞
고향마을 화성 비봉면 자안리에 비공식 이발사가 있습니다. 젊은 시절 아저씨가 군대에 가서 훈련을 마친 후에 자대배치를 받았는데 이발 기술자를 불렀을 때 얼결에 나갔습니다. 매일 밤 빠따와 얼차레가 힘들어서 이발병으로 가면 덜할까 하는 나름의 꼼수였습니다. 하지만 가위조차 잡아본 일이 없는 아저씨는 병사가 이발을 하러 오면 배가 아프다며 화장실로 도망을 치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얼결에 병사의 머리를 깎게 되었고 3년이라는 숙련의 기간을 거친 후에 고향으로 들고 온 이발기계로 동네 아이들 상고머리를 깎아주게 됩니다. 대략 50호가 사는 동네에 누가 누구의 형·동생인지 다 아는 터이므로 봄부터 가을까지 한 달에 두 번정도 이발을 한 값은 가가호호로 다니면서 1인당 벼 1말을 받았습니다. 가을 수확을 한 벼를 말리는 멍석의 한자락에서 모말로 벼 한 말을 고붕으로 담아서 가져간 자루에 담아 모아서 방아를 찧어 쌀을 받아가는 것입니다. 이른 여름에 보릿고개 때에도 가가호호 다니면서 보리 한 말을 이발비로 받아갔습니다. 아무 날이나 이발소집에 가면 부부가 이발을 합니다. 아내는 미용자격이 없지만 중학교 여학생의 단발머리를 다듬어 주고 면도를 했습니다. 이발사 아저씨는 손
화성시 동탄출장소는 동탄신도시 도심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네비를 타고 가서 지상 주자창 6층까지 올라가서 어렵게 주차를 하고 7층 옴부즈만 사무실에 도착하였습니다. 다른층에 있던 사무실에 업무량이 늘어서 옴부즈만 사무실을 7층 회의실로 최근에 이동하였습니다. 그래서 입구에는 옴부즈만이 당일 오후에 이 사무실을 사용한다는 안내문이 붙어있습니다. 오전에는 화성시 옴부즈만 5명이 시청 사무실에서 일주일간의 민원을 종합한 회의를 통해 처리방향을 정하고 이어서 전철 동탄역사에 4인 옴부즈만이 출장을 나가서 인터넷을 통해 접수된 민원의 현장을 확인하였습니다. 현장에 가보니 민원인의 말씀대로 노후시설이 방치되었고 자전거보관소는 수년이 경과하여 목조바닥이 삭아서 금방이라도 부서질 상황입니다. 담당 주무관의 설명에 의하면 이 자리는 오산시 소유의 토지이고 시설은 철도공단과 화성시가 부담하여 시설을 하였고 이후 관리비 일부를 큰 액수로 화성시가 부담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 과정에서 양 기관의 의견조율이 맞지 않아서 시설물 인계인수 등 협의조정이 되지 않은 상황에서 시설물이 방치되고 추가관리가 소홀하여 결국 화성시민들이 피해를 본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이 같은 문제는 양기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