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이중곡가제는 폐지되었고 이제는 자율적인 양곡거래로 바뀌었습니다. 소비자들은 마트에서 슈퍼마켓에서 마음대로 쌀을 사서 먹습니다. 최근에는 쌀 소비가 줄어서 하루에 1공기반 정도의 밥을 먹는다 합니다.
서양식 식단과 분식이 늘어난 것 같습니다. 실제로 밥을 먹지 않고 부식으로만 한 끼니를 먹는 날이 많습니다. 갈비를 먹고나서 공기밥으로 마무리하던 식습관이 크게 바뀌고 있습니다.
1978년에 정부는 통일벼를 장려했습니다. 강제로 심으라 했습니다. 그래서 면사무소 공무원들이 볍씨를 담근 농가를 방문하여 농가의 논면적에서 30%정도 인가만 일반미로 맞추고 나머지는 통일벼를 심도록 강권했습니다.
담당 직원과 응원하는 공무원이 몰려가서 초과된 일반미 볍씨에 통일벼 볍씨를 섞었습니다. 소독제가 든 침종 항아리에 맨팔을 넣어서 휘휘 저어댔습니다.
못자리 면적도 체크해서 일반벼 면적을 조절하기 위해 못자리를 훼손했습니다. 중앙정부의 암암리 지침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행동대장으로 현장에서 못자리를 훼손했던 아픈 기억이 있습니다.
이 사건은 그해에만 딱 한 번이었고 다음 해부터는 더 이상 아픈 사건이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정부의 행정 지도력이 최고봉을 달리던 시절이었지만 ’이것은 아니다‘라는 판단을 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후에도 가을 논갈이는 현장지도의 핵심이었습니다. 가을 농사를 마치고 논을 갈아두어야 겨우내내 토양이 활성화되어 다음 해 농사가 잘 된다는 행정지도입니다.
당시에는 농림부의 간부들이 지방을 날아다녔습니다. 모내기철에 현장을 점검하고 농약 뿌리는 곳에 달려나오고 피살이에 학생을 동원했습니다.
농림부장관이 시찰을 나갈 구간에는 5번 정도 선발대가 나옵니다. 군청에서 지나가고 도청 사무관이 순찰하고 농림부 간부가 다녀갑니다. 군수님이 미리 점검한 후에 도청 국장을 대동한 농림부 고위층이 나타납니다.
당시 어린 공무원의 시선에서는 공무원의 과시일뿐 농사일을 돕겠다는 출장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농약을 적기에 뿌려야 하는데 선발대가 올 때마다 작업을 했습니다.
나중에는 맹물을 뿌렸다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농민들의 원성이 커졌습니다. 농사일을 돕는 것이 아니라 작물을 망치려 한다는 비난이 거셌습니다.
분무기용 연료인 휘발유는 무상으로 나오지만 농약값은 지원되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전착제라는 성분을 섞어서 뿌리는데 시찰단 지나가는 길가에서는 필요 이상으로 방제작업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논에 벼가 아닌 잡풀을 뽑아내는 작업을 ’피살이‘라 합니다. 잘 자란 돼지는 더그럭 거리는 화물 오토바이를 타고 온 돼지장수가 사갔습니다. 근으로 달아서 단가를 곱하여 가격을 정했습니다. 이때 피를 뺀다는 말을 합니다.
살아있는 돼지를 사가는데 피를 뺀다니 가능한 일인가 걱정을 했습니다. 하지만 누구도 생돼지의 피를 빼지는 않았고 그렇게 거래를 마쳤습니다.
알고 보니 아침에 먹인 돼지죽, 다리를 묶은 새끼줄의 무게 등을 공제한다는 말입니다. 부동산 거래에서 피(fee)는 사례금이라 해석합니다.
고스톱에서 피는 겁찔이니 10장이면 1점, 11장이 2점입니다. 비광을 포함한 광2점과 함께 3점, 4점을 달성합니다.
그런데 가축을 거래할 때 중복되는 부분을 공제하는 것을 피를 뺀다 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6개월간 공들여 키운 돼지는 무게를 달고 화물용 오토바이에 실려서 떠나갑니다. 이후의 행방은 알 수 없습니다.
혹시 면소재지 비봉정육점 붉은 색 형광등이 켜진 유리통안에 잠시 전시되었다가 2근 3근으로 잘려서 팔렸겠지요. 그 고기를 우리 집으로 다시 사오는 운명적 만남은 없었기를 바랍니다.
논에 나는 잡풀인 피를 뽑는 ’피살이‘작업에는 초중생들이 동원되었습니다. 아이들은 앞에서 걸어간 자리를 따라서 지나갑니다. 피살이보다는 논 가운데에 아이들이 지나간 길이 생겨났습니다.
벼를 보호하기 위해 잡풀을 뽑는 작업으로 인해 밟히는 벼가 더 많으니 손해가 납니다. 그래도 벼보다 크게 자라나는 피를 제거해야 했습니다.
이번에도 농약을 뿌리는 작업처럼 중앙의 높으신 어른이 오시기 때문입니다. 군청 농산과장은 잔꿰의 대가입니다. 중앙관리들이 낮은 승용차를 타고 온다는 점에 착안합니다.
비슷한 차량을 타고 길가를 지나면서 시선에 걸리는 논을 체크합니다. 그리고 학생들을 오리 몰 듯이 그 논에 집중해서 작업을 지시합니다.
그래서 전시행정이라 합니다. 레이건 대통령이 휴전선부근 전방부대를 방문하여 북측의 건물을 보고 영화 셋트장 같다고 말했습니다. 자신이 영화배우인 점을 응근히 강조한 것인가 생각했습니다.
마찬가지로 고위층의 눈에 들어올 만한 곳에 행정력이 집중되었습니다. 관절이 아파 침을 맞습니다. 아픈자리에 침을 놓는 것이 아니라 그 양쪽에 침이 들어갑니다.
침이 들어오면 몸속의 저항력이 반응을 하고 두 곳에 집중되면서 아픈 상처부분을 치유하게 된다는 논리입니다. 가을 논갈이, 모내기, 벼병해충 방제, 피살이 등 농사행정은 보여주기 위한 행정놀이의 무대였습니다.

[약력]
-1958년 화성 비봉 출생
-경기도청 홍보팀장, 공보과장
-동두천·오산·남양주시 부시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화성시 시민옴부즈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