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차문

이강석 전 남양주시 부시장

1996년 9월1 1일 우리 가족 앞에 나타난 승용차 번호는 경기 30 라6085입니다. 크레도스(기아) 1996년식입니다. 대형은 아니고 중형으로서는 좀 크다할 1998cc 차량으로 오토메틱 기어 전륜 구동식입니다.

처음에는 경차를 마련하려 했는데 당시 6살이던 아들 현재가 우리도 외삼촌과 같은 차를 사자고 졸라서 크레도스 중형으로 결정했습니다. 지금도 당시의 상황을 가족 모두 기억하고 있습니다.

 

 

1996년은 경기도인재개발원에서 사무관 승진을 준비하는 기간이었습니다. 4월 3일에 교재연구담당관실에 배속되어 근무 중인데 승진교육 대상자가 넘쳐나서 교육대상자 선발 기준을 3월말로 정하는 바람에 6개월을 더 기다려 11월23일에 교육 마치고 사무관 승진 발령을 받았습니다.

6085 크레도스를 구입과 등록, 제세 납부 등에 대략 2천만원 정도를 지출했습니다. 그리고 1997년 2월13일에 동두천시 생연4동장이 되면서 만 2년 동안 크레도스는 매주 토요일에 수원으로 왔다가 월요일 새벽에 98km를 달려 동두천시청에 도착하여 방제환 시장님 주재 회의에 참석했습니다.

 

 

동두천시에 근무하던 1998년에 큰 수해가 발생했습니다. 그 날은 휴가 3일차로서 내일은 어디를 갈까 의논하며 저녁을 먹고 있는데 동두천시 생연4동 시민 어르신(목영달 사장님)이 전화를 주셔서 물난리가 난 것을 알았습니다.

즉시 차를 몰아 달리는데 의정부를 지나면서 큰 비가 온 것을 알았고 양주를 지나는데 크레도스 6085가 물에 둥둥 뜨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렇게 달리고 달려서 양주-동두천 경계에 이르자 경찰 통제선을 만납니다.

더 이상 들어가지 말고 오늘 밤을 여기서 기다리라 합니다. 저는 시청직원이라서 가야한다 했지만 안 된다 합니다. 경찰관이 다른 곳을 보는 순간에 차를 몰아 신천 강변우회도로를 타고 달렸습니다.

 

밤 01:30분경에 일어난 상황 입니다. 동사무소 앞에 급하게 주차를 하고 사무실에 들어가니 1층 바닥은 28cm 침수되었고 주민등록, 인감 등 자료를 2층 회의실로 이동했습니다. 사무장에게 직인과 인감자료를 잘 보관하자고 당부했습니다.

그리고 상황을 지켜보면서 밤을 새우고 그동안 새벽에 도착해서 동사무소 앞에 세워둔 크레도스는 반 이상 물이 들어차고 여울목으로 흐르는 물살에 떠내려온 나무등걸이에 이리 치이고 저라 차이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우리의 크레도스는 일주일 동안 그 자리에 방치됩니다. 온통 물난리중에 보험회사 관계자가 연락을 해서 침수된 차량은 절대 시동을 걸지 말고 기다리면 끌어다가 수리를 해준다 했습니다.

 

당시에 95만원어치 수리하고 차주에게는 5만원을 부담시켜서 참으로 고마웠습니다. 크레도스의 첫 번째 시련은 그렇게 마무리 되었습니다.

이후 1999년 다시 수원으로 전근되어 4km 안 되는 거리를 운행하게 됩니다. 한겨울에 눈이 쌓이면 대략 치우고 달리면 사무실에 도착할 즈음에서야 눈이 녹아 내리기 시작합니다.

이후 공보실 7년 근무 내내 잔 고장 한번 없이 버텨 주었습니다. 다시 의정부 북부청사로 발령이 났으므로 매주 80km를 운행하며 기록을 쌓아 갔습니다.

여름 휴가철에는 아이들을 태우고 아이스박스 싣고 침낭을 쿠션 삼아 정약용의 茶山草堂(다산초당), 보길도 윤선도 유적지, 김정희 고택 등을 달렸습니다. 서해안고속도로를 달려 목포에 가서 露積峯(노적봉)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존경하는 성웅 충무공 이순신(李舜臣)장군을 만났습니다.

 

달리고 달린 우리의 크레도스는 145,000km를 기록하고 이제 퇴역을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가족과 함께 한지 20년입니다. 1996년에 만나서 2016년까지 함께 했습니다.

냉각수를 다시 넣기 위해 강력히 뿜어 넣었으나 실패하였고 이후 물만 보충하였는데도 겨울 내내 얼지 않았습니다.

오디오는 잔 고장이 있어서 조금 불편했지만 장거리 여행을 하는 아이들 떠드는 소리로 대체했습니다. 오토 기어는 반질반질 광채를 내며 늘 반겨줍니다.

판이 넓은 브레이크는 발만 들어도 제동을 걸어주는 ABS시스템입니다. 묵직한 핸들은 속에 들어있는 철골이 만져질 만큼 부드러운 고무재질로 감싸져 있습니다.

 

안타까운 사건이 몇 번 있었습니다. 이천시 물류창고 붕괴사고 현장을 다녀오다가 새벽 2시30분경 신호대기 중 트럭이 추돌하여 190만원 상당의 수리를 했습니다. 운전석 의자를 바꾸고 뒤편 트렁크를 통으로 교체하였습니다. 4주 진단으로 1주간 입원했습니다.

차 구매 12년 차에 차가 덜컹거려 서비스받으러 가니 타이어 耐久(내구)년수가 지났다면서 4바퀴모두 교체했습니다. 배터리가 약해져서 새로 바꿔서 장착했습니다. 플러그를 교체하고 배선도 새것으로 셋팅했습니다.

타임 벨트라는 것이 있다고 합니다. 두 번 바꿨습니다. 하부 미션오일 계통을 수리했습니다. 2014년에는 두 눈을 바꿨습니다. 최근에는 앞바퀴 왼쪽의 동력 전달 축을 교체하였습니다.

 

이 차가 많은 일에 동참하고 차주의 人格(인격)을 高揚(고양)시켜 주었습니다. 2007년 연수원 교육 중 금요일에는 타시도 교육생들을 수원역에 태워다 주었습니다. 경부선 열차 승차 시각이 임박한 교육생을 위해 고속으로 달린 날도 있습니다.

무거운 짐을 싣고 달려도 불평하지 않습니다. 110kg 손님이 타도 불평하지 않습니다. 늘 그 속도 그 소리를 내며 가자는 대로 가고 다시 왔습니다.

최근에 시내를 달리면서 자가용 승용차에 ‘경기30라6085’를 달고 다녀도 창피하다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크레도스 동지를 만나면 반갑게 인사를 했습니다. 아마도 1996년 이후에 나온 크레도스 동생일 것입니다.

 

7살 아이들을 병원에 데려가고 수능 고사장으로 대학으로 기숙사로 가자면 가자는 대로 불평 한마디 없이 따라 주었습니다.

비탈에 세워두면 그대로 몸 구부려 밤을 새우고 아침에 키를 열면 어김없이 부르릉~ 힘든 목구멍 소리를 내면서 방끗 웃어 주었습니다. 시내버스에 범퍼를 들이 맞고도 움찔 몸을 한번 틀어본 후 말없이 돌아섰습니다.

시내버스 추돌 상처는 5년 후 용인 추돌사고 수리 할 때에 함께 치유되었습니다. 5~6년 상처를 달고 다니자 주변에 흰 꽃이 피어났습니다. 優曇鉢羅(우담바라)는 아니고 검은 페인트 속에 흰 속살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은 늘 필요로 하면 나타나는 크레도스 승용차에게 의인화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우리 도스’라는 애칭을 붙인 것입니다. 일주일 만에 돌아오면 시동을 걸어서 표정을 봅니다.

지난겨울 유난히 추운 날이 여러 날 겹치자 배터리가 방전되고 말았습니다. 보험 아저씨가 와서 다른 배터리 연결하고 시동 걸어 20분간 에너지를 저축하였습니다.

이제 우리 가족은 도스를 보내야 합니다. 강아지, 고양이, 새 등을 기르지 않은 아이들에게 도스는 친구입니다. 초등학교 다니던 아이들은 저녁을 먹으면서 오늘은 도스가 아파트 뒤에 있다 말하고 어느 날에는 앞에서 보았다 이야기를 합니다. 할아버지께서 수건으로 먼지를 닦아 주셨다고 말합니다.

 

우리의 도스를 보내는 날에 핸들을 분리해서 가족이 보관하고 싶어 합니다. 집안에 잘 보이는 벽면에 걸어두고 매일매일 지난 20년 세월을 추억하고자 합니다. 아이들의 초중고와 대학 시절을 함께한 크레도스도 아이들의 추억이 될 것입니다.

저 핸들을 돌리고 돌려서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인생의 방향타 같은 핸들입니다. 더도 덜도 아니고 그렇게 수 천만번을 돌려서 온 것입니다.

핸들 각도가 한 번도 틀림이 없으므로 앞차에 충돌하거나 다른 차량과 접촉사고를 당하지 않았으니 저 핸들이 얼마나 중요한 일을 20년간 해왔습니까. 브레이크 또한 그 역할을 아주 잘 해주었으므로 追突(추돌)사고를 막아준 것입니다.

 

액셀레이터만 일하는 크레도스가 아니라 브레이크, 핸들, 엔진, 바퀴 등 수 만가지 부품과 기기가 모여서 크레도스를 구성하고 거기에 운전자와 가족이 함께 하기에 완성되는 가족과 같은 존재인 것입니다.

크레도스를 보내면서 인생의 의미를 되새겨 봅니다. 지나간 모든 것들이 우리의 삶을 지탱해 줍니다. 수많은 선택과 경우의 수를 지나왔습니다. 그리고 오늘 20년 만에 도스를 보내는 것입니다.

이제 146,000km를 함께한 크레도스를 본래의 모습인 ‘鐵(철)의 나라’로 보내고자 합니다. 함께한 인연은 글과 사진과 마음속 솔기에 간직한 추억으로 남기고 그 몸체는 한 덩어리 라면 박스만하게 졸라매어 새로운 철들을 만나서 미지의 세계로 여행을 떠날 것입니다.

 

아마도 한동안은 다른 차를 들이지 않을 것입니다. 떠나가는 도스에 대한 작은 예의라고 생각합니다. 수고한 도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우리의 친구 도스는 2016년 3월8일 오전에 다른 鐵鋼(철강) 친구들을 만나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다음번에 만나는 인연은 좀 더 멋진 곳이 될 것입니다. 더더욱 강한 스포츠카의 몸체와 핸들을 만드는 재료가 되어서 느린 주인을 떠나 아주 빠른 새 주인과 해외 F1 경기장을 달리게 될 것입니다. 얇게 연마되어서 컴퓨터 부품으로 거듭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제 철의 여행을 시작하게 될 것입니다. 20년 동안 함께한 세월속에서 아이들이 성장하고 사회로 한 발 더 나서는 과정에 있습니다. 고맙다 도스야. 수고했다 도스야!!!

 

 

 

이강석 (李岡錫)

출생 : 1958년 화성 비봉

경력 : 경기도청 홍보팀장, 경기도청 공보과장

         동두천·오산시 부시장 / 경기도균형발전기획실장

         남양주시부시장 /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현직 :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저서 : '공무원의길 차마고도', '기자#공무원 밀고#당기는 홍보#이야기' 등 수필집 53권 발간



기자정보

프로필 사진
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오산#남양주 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