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서 오늘까지

이강석 전 남양주시 부시장

1958년 12월 15일에 이강석은 비봉면 자안리 208번지에서 태어났습니다. 1965년에 청룡초등학교에 들어갔습니다. 김재엽군의 회고를 보겠습니다.

 

 

[초등학교 동창 김재엽 친구의 글]

이강석 친구가 기억을 더듬어 상세하게 기술하였는데, 약간의 수정을 가하자면 1971년도에는 중학교 1학년 시절이니까 서울 여행은 1970년도 4월 하순으로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비봉까지 걸어간 것이 아니고 첫날에는 대절버스로 청룡초등학교에서 이동하여 인천 자유공원 맥아더동상 앞에서 단체사진 찍고 곧바로 서울 창경궁으로 가서 식물원 구경하고 식물원 마당과 계단 등에서 싸간 도시락을 먹었었죠.

 

당시에 우리 어머니께서 김밥을 난생 처음으로 싸본 실력이 참으로 어이없었다고나 할까요. 쌀밥에 그냥 구운 김을 둘둘 말아서 잘게 썰지도 않고 새로 나온 나무도시락에 하나 가득 담아주셨죠.

 

그야말로 반찬 하나 첨부되지 않은 순수김밥을 먹으려니 참으로 싱거워서 하나도 못 먹고 있었는데 마침 지호친구가 하나 바꿔먹자고 제안해 와서 계란부침도 들어가고 시금치나물도 들어간 진짜 맛있는 김밥을 먹었던 기억이 생생하네요.

 

그리고 역시 맛없는 내 김밥을 억지로 먹으면서도 맛있다며 밝게 웃어준 지호친구가 참으로 고마웠습니다.

그리고 그날 저녁에는 삼일빌딩 옆 삼일고가도로가 그대로 내다보이던 청계천2가 관철동 소재의 광산여관에서 하루를 묵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남산중턱에서 생전 처음 케이블카를 타고 남산 꼭대기 팔각정 앞에서 단체사진 찍고 또 내려오면서 야외음악당 대형 콘크리트 구조물 앞에서도 단체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나네요.

 

특히 당시 처음 본 하드가 10원에 두 개였는데 음악당광장 한 귀퉁이에서 살까말까 오래도록 머뭇거렸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리고 전날 묵었던 여관 바로 옆 블럭에 있던 31층짜리 삼일빌딩이 그 당시 가장 높은 건물이라는 사실도 새로 알게 되었습니다.

 

암튼 야외음악당에서 험악한 계단길을 타고 회현동까지 내려와 서울역으로 향한 다음 그곳에서 다시 인천송도를 거쳐 야목까지 기차를 타고 온 것으로 기억되는데 아마도 야목역에서는 버스가 대기하기로 약속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회사사정으로 다른 곳에 투입되어 많이 늦은 저녁시간에 아쉬운 대로 삼륜차를 급히 섭외했었던 것 같고, 그 조그만 짐칸에 50명 가까이 승차했었던 것이 지금 생각해 보면 아찔하네요.

 

그리고 1971년 2월에 78명이 졸업했는데 비봉중학교에 42명이 입학하고 상기리 송재일, 이상원 친구가 봉담쪽으로 진학했었죠.

 

1965년 3월에 93명이 입학해서 입학 다음날에 북양리 광산주인집 윤인섭 친구는 자퇴하고 3학년 올라갈 때 김순중 교장선생님 아들인 김선엽 친구는 4학년으로 월반해 가고 상당수의 친구들이 전학가거나 자퇴하더니 상기1리에서 정찬현 친구가 유일하게 전학 와서 졸업식 때는 78명이 졸업했죠.

 

그러고 보니 65입학 동기들 중에 유명을 달리한 친구도 적지 않네요. 이동순, 이나규, 이찬원, 노순호, 조성상, 조성열, 이우원, 이영항, 이은희, 김양겸 등 10명이나 되네요. 이들 친구들께 다시금 명복을 빌면서 우리 친구님들 건강관리 잘 하고 체력유지 잘 해서 오래도록 만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당시에는 오늘날의 초등학교를 국민학교라고 했는데 2반이었고 3학년쯤인가에 한 반으로 줄었고 결국 졸업생은 78명이었다는 기록을 얻었습니다.

 

동창 중에는 작고한 이우원이가 공부를 잘해서 시험에서도 일등이고 각종 경연대회에 고정멤버로 출전했습니다.

 

다른 반 선생님이 진행하시는 글짓기 대회 출전에 따라가서 원고지를 제출한 기억도 있습니다.

 

갑자기 다른 반 선생님이 불러서 시를 지으라 하시기에 어디에선가 읽은 기억이 내용을 바탕으로 '새장'이라는 시를 지었습니다.

 

하늘은 하늘은

새장인가봐

하늘위에서

새가 날아다니지

 

하늘은 하늘은

놀이터 인가봐

우리가 뛰어가면

하늘도 따라오고

우리가 달려오면

하늘도 뛰어오지

 

하늘은 하늘은

도화지 인가봐

잔디에 누워서 바라보면

구름을 끌어다

그림을 그리지

 

하늘은 하늘은

바다인가봐

파란 파도가 거꾸로 치지

그 파도가 흔들려

소나기가 내리지

 

하늘은 하늘은

새장이라서

예쁜 새가 날아가면

멀리 가지 말라고

포근하게 감싸주지

 

대략 이 정도의 이야기를 원고지에 적어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중학생때도 원고지에 한 벌만 적어 과제물로 제출한 글은 사라지고 당시의 기억과 추억만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그런 시절이 있음을 기억하는 것으로 유년을 추억해 봅니다.

 

초등학교 동창 모임에서 수학여행을 간 것도 기억하지 못한다며 자신의 머릿속 저장장치를 탓하는 친구도 있으니 이런저런 유년의 기억을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는 것도 작은 행복이라 생각하기로 합니다. 그런 시절이 있기에 이렇게 장년의 시기를 맞이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니까요.

 

아마도 과거에 대한 추억은 날이 갈수록 나이먹을수록 진해질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니 최근이 기억도 10년이 지나면 추억이 되리니, 작은 일이든 큰 사건이든 아름다운 일들을 많이 쌓아 올려서 나이들어 하나 둘 꺼내 보는 초등학생의 그림일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생일이 소중한 이유는 하나 더 있습니다. 방송대학교 증명서를 받아야 하는데 학번을 찾아내는데 생일이 필요합니다. 인증프로그램에 수없이 여러번 581215를 치고 핸드폰 번호를 입력하고 문자로 날아오는 <78*78*> 6자를 입력하였지만 매번 그런 아이디가 없거나 비밀번호가 틀렸다고 합니다.

 

결국 비밀번호 5번 틀리면 10분 '빠떼루'가 주어지는 것을 몰랐습니다. '빠떼루'는 레슬링에서 반칙을 한 선수에게 불리한 자세를 취하도록 하고 상대선수가 유리한 상황에서 공격을 시작하도록 하는 심판의 권한중 하나입니다.

 

전에 오산시장에 출마하였던 레슬링 해설자의 말씀 중에 "빠쩨루를 줘야 합니다!"만 기억나서 이분이 '빠떼루 아저씨'가 된 바가 있습니다.

 

더 여러 번 581215를 입력한 결과 ID와 패스워드를 찾아냈고 원하는 홈피에 들어가서 원하는 바를 모두 이룩하였습니다. 다른 경우와 달리 4시간 이상을 방송대 홈페이지에서 투쟁을 하였습니다.

 

결국 기계, 사이버에서 고집을 부리는 것은 자신의 성격만 상하게 하는 일이라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니 앞으로는 인터넷에서 문제가 풀리지 않으면 잠시 휴식시간을 갖기로 했습니다.

 

나이 들어가면서 고집을 줄여야 한다는 생각은 하면서도 언제부터인가 고집스러워졌음을 스스로 인식합니다.

 

1958년에 태어났다 하니 그런 줄 알고 학교에 다니다가 인지가 늘어서 서기 2000년에 42세가 된다는 계산을 했습니다. 그리고 2000년 밀레니엄 시대를 맞아 999와 1999, 그리고 2000이라는 숫자를 컴퓨터가 혼동을 해서 큰 사건이 날 것이라 예측을 했습니다.

 

실제로 1902년생과 2002년생의 주민등록번호 구성 방법이 다르다고 합니다.

[설명자료] 현행의 주민등록번호는 단순한 숫자의 조합으로 이 루어진 것이 아니라 일정한 생성원칙을 가지고 있으며 사람의 출생, 외국인의 귀하, 미신고자에 대한 사후신 고 등에 의해 새로이 발급할 필요가 있을 때 이 원칙 에 따라 각 개인에게 유일한 번호가 생성된다. 주민등 록번호는 총 13자리로 앞의 여섯 자리는 백 년대를 뺀 생년월일로 이루어지며, 뒤의 일곱 자리 숫자는 출생 연대와 성별, 최초 주민등록번호 발급지 등으로 조합 된다.

 

예를 들어 1980년 1월 1일 생은 백년대인 19를 제외하고 나머지 월일을 두 자리 수로 변환하여 800101이라는 주민등록번호 앞자리를 가지게 된다. 뒤의 일곱 자리 가운데 첫 번째 숫자는 출생연대와 성 별을 나타낸다.

 

즉 하나의 숫자 안에 두 가지 정보가 들어있는데, 1800년대에 태어난 남자는 9번, 여자는 0번, 1900년대에 태어난 남자는 1번, 여자는 2번, 2000년대에 태어난 남자는 3번, 여자는 4번이 부여된다.

 

또 한 이 자릿수의 5~8번은 외국인에게 부여되는 번호이다. y 9 : 1800 ~ 1899년에 태어난 남성 y 0 : 1800 ~ 1899년에 태어난 여성 y 1 : 1900 ~ 1999년에 태어난 남성 y 2 : 1900 ~ 1999년에 태어난 여성 y 3 : 2000 ~ 2099년에 태어난 남성 y 4 : 2000 ~ 2099년에 태어난 여성

 

<주민등록번호 개선방안 비교연구 김선주, 이경호, 고려대학교 정보보호대학원>

그래서 어떤 제도를 만들때에는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도 필요합니다. 자동차 번호판이 바뀌고 수년만에 자동차가 늘어나서 앞번호 2자리를 3자리로 변경한 바 있습니다. 통계를 공부한 공무원이라면 번호판을 변경할 때에 앞번호를 3단위까지 올려야 한다는 예측을 해야 합니다.

 

순열과 조합을 배우면 현재의 정보의 미래 모습을 추론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동차 번호를 컴퓨터로 관리할 수 있는 숫자로 정하는 것이 필요한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현재의 자동차 번호판 체계로 담을 수 있는 번호판의 수를 세어보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우리는 아라비아 숫자를 쓰고 있습니다. 10진법이란 1에서 9를 지나 0으로 가고 다시 1로 이어집니다. 10개의 숫자로 지구상의 모든 수량을 표현합니다. 지수로그 함수가 비교적 늦게 나왔다고 하는데 과거 천문학을 연구하는 학자는 진즉에 지수로그가 나왔다면 자신의 宇宙(우주) 연구에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 말했습니다.

 

어떤 과학자는 어느 행성의 움직임으로 보아 지구에 충돌하여 멸망할 것이라는 예측을 수식으로 계산했다 합니다. 하지만 이 과학자가 주장한 시각에 지구에는 충돌사고가 발생하지 않았으므로 다시 검산에 들어갔습니다.

 

종이 위에 행성과 행성간의 거리를 쓰기위해 동그라미 000,000,000을 수없이 그렸는데 수식에서 동그리미 0 하나를 빼는 바람에 수식의 결과치가 빗나갔다는 것입니다. 덕분에 지구와 행성의 충돌을 피했답니다.

 

결과는 충돌이 없는 것이지만 계산과정에서 틀려서 다행이지 계산결과 대로 행성이 움직였다면 그동안 인류가 축적한 지식, 수학, 과학, 문명은 일거에 사라질 뻔 한 사건이 되었을 법합니다.

 

지금 지구상에 쌓인 문화수준, 지식, 과학, 상상, 도서관, 박물관 등은 그 크기와 가치를 계산할 수 없는 것이겠지만 지구 100분의 1 크기의 행성이 달려와 충돌한다면 순식간에 사라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혹자는 인류가 축적한 지식과 정보는 수개월마다 두 배로 증식된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주변에서 보면 페이스북, 카카오톡, 다른 SNS를 통해 오가는 정보의 양이 폭증하고 있습니다.

 

1997년에 동두천시청 동장으로 근무를 할 때에 삐삐를 받았습니다. 벨트에 매달아 차고 출장을 가면 더러가끔 삐삐가 울립니다. 버튼을 눌러 들여다보면 사무실 전화번호가 찍혀있습니다.

 

사무실에서 연락이 필요하다는 전갈을 해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무실에 전화를 하면 통화중입니다. 다른 통화를 하는 것입니다.

 

급히 귀청하면 도청에서 손님이 오셨습니다. 수원에서 100km떨어진 동두천시청에서 일하느라 수고한다며 지나는 길에 들러주시고 양주까지 왔다가 귀청하면 될 일을 일부러 20km, 왕복으로는 40km를 달려와 주십니다.

 

이런 고마운 정담을 나누는 기회는 당시에나 가능했습니다. 요즘에는 국내는 물론 해외에 있어도 손안의 스마트폰, 손전화기로 시간, 공간을 초월하여 대화할 수 있습니다. 이제는 말로 소통하는 것은 구시대 방식이고 문자, 동영상, 사진으로 의사전달을 합니다.

 

정말로 지구촌이라는 말이 실감납니다. 사실 어려서 초등학생때는 집과 산을 넘어가서 만나는 학교와 학생, 선생님이 우리의 우주였습니다. 거기에 하늘과 산과 들이 있고 가끔 구름 사이로 언뜻 보이는 '낮에 나온 반달'과 흰 연기를 뿜으며 지나가는 비행기가 우리의 세상이었습니다.

 

라디오에서 떠드는 사람들이 그 안에서 밥 먹으면서 지내는 줄 알았습니다. 서울 한강 여의도에 라디오 방송국이 있는 줄 몰랐습니다. 여의도에는 TV가 있는 것이고 HLKV는 호출부호로서 서울에서 나가는 방송임을 알리는 것입니다.

 

어른들은 20분 단위로 나오는 라디오 드라마 시간을 기억하고 사이클을 돌려서 성우들이 출연하는 드라마를 청취했습니다.

 

어린 기억에 6.25전투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도 있습니다. 화력은 약하지만 높은 명중율을 자랑하는 병사들이 인민군 탱크를 파괴하는 내용입니다.

 

애국심에 불타는 국군장병들은 대포의 좌표를 정확하게 맞추고 포를 쏘아서 북한군 탱크의 바퀴를 명중시켜서 파괴하는 작전을 펼치는 내용을 聲優(성우)와 음향효과를 활용하여 리얼하게 연출했습니다.

 

정말로 지금 진지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는 느낌을 받게하는 방송이었습니다. 어쩌면 방송의 탤런트는 성우라고 생각합니다.

 

TV에 나오는 탤런트는 움직이는 연기를 통해 어떤 스토리를 전달하지만 성우는 오로지 목소리, 대화를 통해 설명을 합니다. 그러니 성우의 역량이 오히려 온몸으로 연기하는 탤런트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태어난 생일을 맞이하여 581215에서 유추되는 지난날의 이야기와 앞으로 살아가야 하는 길에 대한 생각을 적어보았습니다. 평생을 함께할 581215 생일 64주년을 맞이하여 더 큰 미래를 향해 일취월장 발전해 나가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올해 생일 아침을 맞이합니다. 

 

 

이강석 (李岡錫)

출생 : 1958년 화성 비봉

경력 : 경기도청 홍보팀장, 경기도청 공보과장

         동두천·오산시 부시장 / 경기도균형발전기획실장

         남양주시부시장 /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현직 :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저서 : '공무원의길 차마고도', '기자#공무원 밀고#당기는 홍보#이야기' 등 수필집 53권 발간



기자정보

프로필 사진
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오산#남양주 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