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교산에 다녀와 힘을 내서 37권째 수필집 원고를 완성하여 인터넷으로 부크크에 보냈습니다. 3일 안에 편집상태를 점검하고 간부의 결재를 받아 책으로 완성해 줄 것입니다.
지난주까지는 부크크에도 코로나가 와서 잠시 업무가 지연된 바 있습니다. 이제는 어느정도 안정을 찾았을 것으로 기대를 합니다.
출판사를 하는, 나의 책 2권을 멋지게 편집, 발간해서 출시해준 김재엽 사장에게 3권부터 지금까지 인터넷, 부크크에서 발행을 한다고 하니 책이란 정석으로 출간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37권을 모두 출판사의 보통의 방식으로 저렴하게 발행한다 해도 500만원을 37번하면 1억8500만원이 필요합니다.
팔리는 책이면 몰라도 그냥 편집해서 간직하는 개인서점, 개인도서관인데 큰 돈을 들일 수 없고 마침 시대를 잘 만나서 인터넷 방식의 책을 내는 것이니 그리 이해해 달라 부탁했습니다.
퇴직해서 출판사를 거쳐 2권의 책을 냈고 공무원 연수기간중에 2권의 자료집을 낸 것으로 아나로그 인쇄는 다 한 듯 생각합니다.
이처럼 인터넷으로 출간할 수 있는 시대에 태어난 것이 고마운 일이고 눈뜨면 머리속을 스치는 생각들을 문자로, 글로, 문장으로 저장하고 이를 갈무리해서 한 권의 책 형태로 완성하는 과정을 진행할 수 있는 적극성을 가진 것으로 고마워하는 바입니다.
부모님, 조상님의 지혜를 나눠 받아서 문장을 조립하고 60대에 인터넷 시대를 제대로 만나서 파일로 저장하고 필요할때 인쇄하여 책으로 출간하는 것입니다.
그동안 내놓은 책을 돈내고 사간 사람은 저자 이외에는 없을 것이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이니 입금하고 책을 택배로 받아볼 희박한 숫자의 독자를 위해 편집과 출간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 자세로 50권을 향해가는 38권을 꾸준히 힘차게 編著(편저)해 나가고자 합니다.
이번 38권에서는 지나간 이야기를 넣기보다는 미래를 생각하는 글을 상상의 구름에서 비로, 우박으로, 안개로 받아들여 들판을 달리는 시냇물이 되게 하렵니다.
위에 떠 있는 상념의 모습을 일부라도 긁어내서 풀밭으로 떨어지도록 하고 그 이슬처럼 맺힌 글과 문장을 연꽃을 피우는 너른 잎새를 깔때기 삼아서 한 방울 두 방울 모아볼 생각입니다.
시냇물, 강물, 바닷가의 파도역시 한 방울 두 방울 물방울이 모여진 것임을 알기에 서두르지 않고 작은 아침이슬 매달린 풀잎에서 출발하여 졸졸졸 흐르는 물, 돌돌돌 달리는 시냇물, 그리고 소리치는 폭포수, 느긋하게 좌우 뚝방을 거느리는 강물에 이르기까지 그 구성은 한 방울의 이슬, 한 컵의 물, 한 동이의 액체인 것입니다.
그러니 물방울 하나만으로도 수만, 수억의 글이 나오고 아침에는 영롱하다는 이슬로 말하고 점심에는 일렁이는 강물의 잔파도로 설명하고 저녁에는 서해 바다 검은 바위에 온몸을 부대는 파도로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마음으로 다시 오늘을 시작하고 내일을 맞이하겠다는 다짐을 합니다.
隱喩法(은유법)을 쓰고 擬人化(의인화)도하고 더러는 사람을 무생물에 비유하면서 할 말을 직접 던지기 보다는 조금은 돌리고 연착륙시키는 여유를 배워가야 합니다.
그날그날의 느낌과 그로부터 얻어낸 생각의 이야기를 스토리텔링으로 완숙, 醱酵(발효)시켜서 나름의 아름다운 조각작품을 만들고 말을 글로 튀겨내고 다시 소스를 뿌려서 맛갈스런 요리가 되게 하는 그런 노력을 지속하고자 합니다.
아마도 그냥 생각을 쓰면 글이 되고 글을 모으면 책이 되고 이를 부크크에 보내면 출간되는 심플한 시스템속에서 作家(작가)라고 자부하는 글 쓰는 이는 매일매일 시간을 내서 일상의 생각중에서 글로, 문장으로 저장하고 싶은 부분을 이렇게 남기면 되는 것입니다. 고민하지 않습니다. 밤새워 담배 3갑을 피우면서 쓰는 글이 아닙니다.
원고지를 수없이 구기고 지우고 다시 새 종이를 꺼낼 필요가 없습니다. 키보드를 통해 들어가는 무한의 인터넷 공간에서 맘대로 쓰고 수정하고 추가하고 옮기고 복사해서 활용하면 글이 되고 문장이 완성되고 한 권의 수필집이 엮어지는 것입니다. 문장의 흐름에 고민하지 않습니다.
책이 두꺼워도 얇아도 지금 읽는 그 페이지를 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동시에 볼 수 있는 책은 단 2페이지입니다. 좌측에 한 면, 우측에 다른 면이 있어서 좌측의 글을 읽고 오른쪽으로 이동하는 것이 독서의 가장 일반적인 방법입니다.
이는 마치 화장실의 두루마리 화장지와도 같은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해줍니다. 책을 동시에 다 읽을 수 없는 것처럼 두루마리 화장지를 덩어리로 쓸 수 없습니다. 얇은 막을 사르르 풀어서 사용합니다. 더러 책을 베고 잠을 청하는 것처럼 소품이 없는 경우 두루마리 화장지를 베개 삼아 잠을 청했던 기억도 있습니다.
그리니 모든 물품은 쓰임새가 있는데 그 전체로는 쓰이지 않고 부분으로 나눠야 용처에 맞는 경우가 많습니다. 치약은 짜서 치솔에 올릴 때 그 기능을 다하는 것이고 면봉은 봉투에서 꺼낸 단 1개만이 그 역할을 합니다. 면봉을 동시에 여러개 잡으면 코나 귀를 시원하게 정리하는 면봉 고유의 기능을 다할 수 없습니다.
어려서 피곤하면 설탕을 타서 마셨습니다만 설탕이 일반화되기 전에는 압축된 성분의 단맛을 내는 '당원'이라는 알약같은 제품이 있었습니다.
아주 단단한 재질이어서 이를 반으로 쪼개려면 칼과 도마가 필요했고 과감하게 내리치면 산산조각이 나고 큰 덩어리가 바닥으로 떨어져서 낭패를 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 당원이 쪼개진 가루 한두 개를 입 안에 넣으면 쓴맛이 났습니다. 달달한 성분이 농축된 것이기에 단맛의 강력한 맛은 쓴맛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 당원 분말을 물에 타서 여러번 젓가락으로 휘저은 후 한모금 마셔보면 차가운 물속에서 단맛이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비슷한 시기에 일본에서 온 '아지노모도'라는 조미료가 있었습니다. 훗날에 핵산조미료, 미원, 미풍으로 발전한 우리나라 주부 주방의 신기루 같은 맛의 비방이었습니다.
[자료검색] 지금은 흔치 않은 원형의 창문과 타일로 마무리된 외장은 한눈에 봐도 상당히 오래된 건물임을 알 수 있는데, 바로 이곳은 MSG(글루탐산나트륨)를 세계 최초로 상업화한 일본 '아지노모도(味ⓑ素, AJINOMOTO)'의 조선영업소였다.
당대에 우리나라에서도 미원과 미풍의 판매전쟁이 벌어졌다고 합니다. 주부들은 김치찌게나 국물의 맛을 내는데 조미료를 쓰게 되었는데 초기에는 미원과 미풍이 비슷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경쟁을 통해서 미원이 승리했습니다. 미원이 미풍을 이기는데 큰 공을 세원 젊은 사원의 제안은 간단했습니다.
"조미료 병의 구멍을 크게 합시다."
당시 조미료 포장은 네모난 비닐포장, 동그란 유리병 포장 두가지가 출시되었습니다. 그런데 조미료가 담긴 유리병의 뚜껑을 열면 그 안에는 19공탄 연탄처럼 구멍이 뚫린 플라스틱 막이 있습니다. 조미료 병 뚜껑을 열고 국물이나 찌게에 두 세번 뿌려주었던 것입니다.
이 연탄구멍의 갯 수가 두 회사 모두 19개 정도였나 봅니다. 그런데 미원회사의 젊은 사원이 같은 크기의 병마개에 구멍수를 19에서 10개 정도로 줄이자는 제안을 한 것입니다. 같은 크기의 병마개에 19개 구멍보다 10개의 구멍을 뚫어주니 1개의 구멍크기가 커졌습니다.
이 병은 뜨거운 수증기가 올라오는 국물 위에서 뿌려주게 되므로 물기가 엉겨서 조미료 병의 구멍을 막게 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조미료 병을 한번 흔들어 줄 때 나오는 조미료의 양이 줄어들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애초부터 구멍이 작으니 조미료가 새어 나오는 양은 적었을 것 입니다.
이에 구멍을 넓게 크게 뚫어준 조미료 병에서는 이전보다 더 많은 양이 내려왔고 조미료의 양이 많으니 국물에서 느끼는 MSG의 맛이 풍성해진 것입니다.
조미료 한 병을 사서 몇 번을 쓰는 가는 모르겠고 그냥 국물, 반찬위에 서너번 뿌려주는 습관은 지속되었으니 구멍이 많은 미풍은 맛이 덜하고 구멍이 큰 미원은 맛이 올라갔습니다.
조미료의 성분은 큰 차이가 없었을 것인데 조미료병의 구멍 갯수에 따라 두배정도의 양이 뿌려진 미원의 맛이 더 좋았던 것입니다. 이리하여 당시의 주부들은 마트나 슈퍼에서 미풍을 들고도 미원이라 했고 미원도 미원이라 했습니다.
당시 미풍은 삼성의 제품이었는데 천하의 이병철 회장이 3가지 이루지 못한 소원이 있으니 아들 중에 서울대가 없고, 당대에 자동차 산업에 진출하지 못하였고 마지막으로 미풍이 미원에게 패했던 것입니다. 아마도 이 세 가지 이외에는 모든 것을 이룩함이라는 이야기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조미료 전쟁 - 미원 VS. 미풍 (쇠고기 다시다)
일제 강점기때 일본의 아지노모토가 한국 조미료 시장을 독점했다. 해방이 되고 1956년 대상이 미원 (발효 조미료) 를 출시하자 대성공을 하고 전성기를 누린다. 발효 조미료는 사탕수수 원단을 미생물로 발효한 것인데 MSG (글루타민산 나트륨)이다.
1963년 삼성 계열의 제일제당이 일본 아지노모토와 기술 제휴를 하고 미풍을 출시하나 미원과의 전쟁에서 연전연패한다. 1975년 제일제당이 복합 천연 조미료인 쇠고기 다시다를 출시하면서 전세는 연적된 제일제당이 시장을 앞서 나간다.
쇠고기 다시다는 쇠고기. 생선, 마늘, 양파등 천연 재료를 섞어 만든 조미료로 쇠고기 맛을 낸다는 점에서 소비자를 열광시킨다. 제일제당은 새로운 게임 판을 짠 것이다. 제일제당은 김혜자를 모델로, 대상은 고두심을 모델로 한다. 전원일기 주인공들이다.
1980년 화학조미료 유해론이 언론에 집중되자 다시다의 판매가 급증한다. 1982년 미원이 맛나로 대응하나 CJ제일제당의 쇠고기 맛나의 아성은 단단하다. 1998년 대상의 창업주 임대홍의 손녀 임세령과 삼성 이재용이 결혼하면서 두 가문의 전쟁이 끝나나 싶었는데 2009년 둘은 이혼한다.
이병철이 말했다. "세상에 내 마음대로 안되는 것이 3개인데, 골프, 자식, 그리고 미원이다."
[출처] 조미료 전쟁 - 미원 VS. 미풍 (쇠고기 다시다)
마음대로 안 되는 것이 자식이라 말씀하셨다니 다양한 의미를 지닌 것으로 해석되는 바이지만 서울대학을 보내지 못한 것이 안타까움중 하나라고 들었습니다.
삼성그룹 회장님도 책을 쓰셨을 것이지만 10권까지는 아닐 것으로 추정합니다. 그런 면에서는 만 64세에 38권을 쓰고 있는 것으로 회장님보다 나은 분야도 있다는 자부심을 가져 봅니다.
대통령보다 더 편하게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으며 사장보다 월급을 더 받는 사원도 여러 명 있다고 합니다. 혹시 정부안에 대통령보다 월급을 더 받는 직종이 있을 것입니다.
1985년경에 경기도청 과장님은 행정사무관 5급이고 계장님 4분은 지방행정사무관 5급이었습니다. 봉급표에는 국가직, 지방직의 차이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럼 과장님은 직위만 과장이고 월급은 계장님과 동일하다면 과장님은 결재만 하실뿐 급여에서는 차이가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봉급 시스템을 상세히 살펴보니 과장님은 관리업무수당이라고 본봉의 20%정도를 추가하여 수당으로 지급했습니다. 그리고 업무추진비 20만원, 정보비 20만원이 있었고 부서운영비 5만원이 나중에 편성되었습니다.
정보비, 업무추진비 합해서 40만원은 매달 현금으로 드렸는데 정보업무와 업무추진을 위해 얼마나 쓰셨는가는 과장님께 문의하지 않았습니다. 훗날 과장급 서기관부터 연봉제로 바뀌면서 이 돈들은 연봉금액에 녹아든 것으로 추정합니다.
일부 극히 이례적으로 부서운영비 5만원을 과장님 몫이라 주장했다는 쫌팽이 국비 사무관이 있었다는 말을 복도 한구석에서 들은 바가 있지만 정말로 그러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정말로 업무추진비, 정보비를 카드로 지출하는 이른바 ‘법카’시대의 과장이라면 사명감과 자신감으로 집행했을 것입니다. 그만한 직위에 있으니 이 정도의 공금을 자신의 판단으로 집행하라 내준 돈입니다.
그러니 자신의 양심에 거리낌이 없으면 어찌 집행했는가는 불문에 붙일 일입니다. 더러는 사무실에서 멀리 떨어진 집 근처 경양식집에서 오전 11시 50분에 4만원이 결재되었다면 4인가족이 돈까스를 먹은 것인가 합리적 의심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어떤 7급 직원이 과장님의 토요일 법인카드 집행에 제동을 걸었고 지출을 거부했다는 해프닝도 들었습니다.
돈이라면 엄나무 가시위에 매달아 두어도 그것을 잡으려고 가시에 찔리면서 올라가더라는 말이 있습니다만 공금에서 청렴하면 마음도 상쾌하고 기분이 편안합니다.
외국의 사례를 어렴풋하게 들은 바가 있어서 소개하고자 합니다. 중진국의 장관이 호화생활을 하기에 그 비법을 물으니 별장에서 건너다 보이는 다리와 도로를 보라 했답니다. 그리고 장관이 비법을 말했습니다.
정말로 건너편에 다리와 도로가 건설되어 있습니다. 그 장관이 말했습니다.
“저 도로와 다리를 제가 예산 따서 제가 건설했습니다.”
공사과정에서 수익을 챙겼다는 말입니다. 공사비 중에서 일부를 개인돈으로 着服(착복 = 옷을 입음. 남의 금품을 부당하게 자기 것으로 함)한 것으로 이해했다고 합니다.
이번에는 후진국의 장관이 부유한 생활을 하므로 그 방법을 물었습니다. 그 장관도 자신이 사는 별장의 건너편 늪지대를 가르키면서 저 다리와 도로를 자신이 예산을 받아서 집행했다고 말했답니다.
하지만 늪지대 어디에도 교량도 없고 도로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리와 도로가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장관이 답했습니다.
“저 보이지 않는 다리와 없는 도로공사를 제가 집행했습니다.”
다시말해 예산을 통으로 장관이 자기 주머니에 넣었다는 말입니다. 장관이 손으로 알려준 늪지대에는 도로도 교량도 없었고 다리와 길을 낼 형편이 아니었습니다. 악어가 나오는 깊은 뻘위에 다리를 건설하기도 어렵거니와 이곳에 도로가 필요한가 의구심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로부터 나라를 훔친 자는 영웅이 되고 재물을 훔치면 도둑이 되는 것입니다. 아예 통으로 다 가져오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혹시 우리의 1960년대에 이같은 일이 우리나라에서도 벌어진 것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들은 이야기로는 외국의 돈을 빌려온 기업들이 1%의 이자를 부담하면서 은행에 예치하면 1.5%의 이자를 받았다고 합니다. 앉아서 0.5%의 이자수입을 올렸다는 말입니다. 건설사들은 官納(관납)으로 받은 철근 등 쇠덩어리의 잔여분을 팔아서 이익을 얻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요즘에는 관납 철근이나 H빔 등의 고철값을 공사비로 대체하기도 한다 합니다만 초창기 회계제도 속에는 기업에 유리한 조건이 있었고 공무원들이 막걸리 한 사발에 이익을 넘겨준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와 걱정을 해 봅니다.
이제 2023년을 편안하게 시작하면서 정의, 청렴, 봉사, 소통의 다양한 화두를 제시하면서 2022년 사자성어로 過而不改(과이불개)가 선정된 것에 대해 큰 걱정을 합니다.
이를 올해의 사자성어로 정한 사람들은 우리나라 지도층 인사들의 정형화된 언행을 이 말이 잘 보여주기 때문이라며 여당이나 야당 할 것 없이 잘못이 드러나면 ‘이전 정부는 더 잘못했다’ 혹은 ‘야당 탄압’이라고 말하고 도무지 고칠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정말로 법 개정이 필요한데 본회의 불참, 판단 미스 등으로 과반에 미달하여 부결된 법안이 있다면서 올해 안에 다시 법안을 상정하여 가결하겠다 합니다. 이 법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면 내년에 전기요금이 크게 올라야 한답니다.
도무지 정치인들이 정신을 차리지 않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후 정부 입법이 한 건도 통과되지 못하여 이른바 ‘시행령’정부라는 말을 듣습니다. 시행령은 법률의 집행을 위한 구체적인 사항을 국무회의에서 의결하여 대통령이 공포한다고 합니다.
여소야대의 정국이 보여주는 안타까움이기는 하겠으나 야당이라 해도 크게 보면 국민을 위하는 일이라면 여당과 협력해야 하고 여당도 야당의 의견을 듣고 조정하고 협력하는 것이 정치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행정적으로 안 풀리면 정치적으로 해결한다고 합니다. 행정은 시행령이라면 정치는 법인데 오히려 시행령에서 해결할 일을 법으로 올라가서 따지는 것은 합리적인 처사가 아닙니다.

이강석 (李岡錫)
출생 : 1958년 화성 비봉
경력 : 경기도청 홍보팀장, 경기도청 공보과장
동두천·오산시 부시장 / 경기도균형발전기획실장
남양주시부시장 /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현직 :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저서 : '공무원의길 차마고도', '기자#공무원 밀고#당기는 홍보#이야기' 등 수필집 53권 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