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령도#강화도 여행

이강석 전 남양주시 부시장

▤ 7. 백령도#강화도#역사 ▤

백령도와 강화도 2박3일 역사의 현장 / 공직연수 참가기

<2012. 10. 17 - 10. 19>

 

o... 출발 ‘백령도 스타일

아침 7시20분에 연수원에 모였다. 지난 8개월 넘게 여러번 1박2일, 2박3일 여행은 다닌터라 '단거리 짐싸기'에는 달인이 된 선수들 아닌가.

강의를 들을 때 가끔 교수님들이 '행정의 달인'인 여러분께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걱정이 앞선다고 말한다. 그 말을 들을 때 내가 행정의 달인인가 자성해 보곤 하는데 결론은 달인이기 보다는 숙련공이라는 판단을 하곤 한다.

 

 

하지만 짧은 기간 짐싸기 만큼은 방송이 끝난 '김병만의 달인'에 근접할 자신감이 넘친다. 요즘 김병만은 달인을 넘어 통달인이 되어서 오지마을에서 맨손으로 장어를 잡고 집을 짓고 폭우와 싸우며 이른바 '병만족'의 명실상부한 족장이 되었다.

未嘗不(미상불), 오늘 오전에 국제회의처럼 정확한 시간놀이를 할 줄은 꿈에도 모른 채, 그리고 잠시 후에 닥쳐올 대 사건의 전조현상인 태풍의 눈속의 평화인 줄을 전혀 예상 하지 못한 채 느긋하게 버스에 올라 의자를 젖히고 잠을 청했다.

그리고 서해북쪽 우리의 군대 대한민국의 아들이 지키는 해병의 섬 백령도의 모습을 그리며 잠깐 잠이 들었다.

심상치 않은 속도를 느끼며 잠에서 깨어보니 우리의 버스는 막 고속도로를 벗어나고 있었고 누군가가 말하길 길을 잘못 들어 시간이 촉박하니 내릴 준비를 하란다. 시계를 보니 7시20분에 출발하였는데 8시30분이다. 배 출발시각은 8시50분.

60분이면 충분하다면서도 90분전 출발한 것인데 30분을 삥~ 돌아서 왔다는 것이다. 하지만 원망할 일이 아니다. 수도권 교통사정은 예측이 불가능하므로 늘 내가 가는 길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편하다. 사실 지금 ‘이 길이 지름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맞는 지도 모를 것이다.

승객들이 웅성거리는 상황이지만 버스기사 사장님은 신호를 지켜가면서 인천광역시 중앙을 가로질러 안전하게 선착장에 버스를 운행하였고, 출발 5분전에 짐을 챙겨 가까스로 배에 올랐다.

버스 기사 사장님은 돌아가는 길에 혼자말로 되뇌였을 것이다. "사회생활 20년만에 가장 힘든 순간이었다"고. 우리의 삶이나 사회생활 중에도 위기는 있다.

하지만 대부분 차분하게 그 어려운 상황에서 이런저런 해결방안이 나오고 시간이 흘러 상처는 치유된다. 그래서 자녀에게 투자하는 것 중 중요한 것 하나를 '여행'이라고 하나보다.

 

우리의 배는 인천여객선 항구에서 가장 큰 것이었고 2층에 교육생 1년간의 학생번호로 예약이 되어 L9번에 착석하였다. 마음 조리며 버스를 달려 승선한 것은 대이변을 연출하기 위한 전주곡이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배경음악이 없다면 그 어려운 상황이나 위기를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이 버스가 아예 10분정도 늦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다.

그냥 드라마 땡치고 말았을 것이다. 차라리 버스가 늦어서 백령도행 배를 타지 못하고 다른 일정을 진행하였다면 그처럼 힘들고 어렵고 여성에게는 무섭기까지 한 사건을 몰랐을 것이다.

그 사건은 배멀미이다. 멀미를 지나 대 모험의 6시간을 경험하지 않았거나 느껴보지 못하였을 것이다. 이건 뭐, 간장 없는 찐만두요 새우젓 빠진 삼겹살구이였을 것이다.

 

o... 일단, 배는 출~바알!

우선은 4시간이 소요될 것이라는 당초의 예상과는 달리 배가 우리의 오늘 목적지인 백령도에 접안한 시각은 오후 2시로서 총 6시간이 걸렸다. 2시간 늦은 것이 아니라 파도에 맞추어 운행하느라 배의 속도를 2시간 늦춘 것이다.

인천여객선 터미널을 빠져나갈 때까지 우리의 배는 지난 번 독도와 울릉도를 방문하고 돌아올때의 그 뱃길처럼 평온했다. 스르르 미끄러지는 질감에 역시 큰 배는 다르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인천대교를 지나 주변의 해안선은 모두 떠나고 정말로 ‘茫茫大海(망망대해)’ 서해바다로 나오자 좀전의 바닷가 물결은 사라지고 파도가 높아지는가 하였더니 출항 한 시간 쯤 지나자 정말로 ‘집채만한’파도가 몰려든다.

도대체 어디에서 생성된 파도인지 뿌연 유리창 밖에서 우리를 향해 돌진하는 파도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조차 두려웠다. 하지만 다행이다.

우리의 캡틴, 김 선장님은 말씀 하신다. 오늘의 일기상황에서는 이 배만이 갈 수 있단다. 이건 뭐 자랑이야 신뢰감이야 자신감이야! 처음에는 자랑으로 들렸지만 파도가 커지고 배의 흔들림이 심해질수록 이제는 우리의 선장님 ‘金 캡틴’을 믿고 버틸 밖에 다른 도리가 없지 않은가.

지난번에 울릉도 들어갈 때는 배의 흔들림에 몸을 맞추면서 좌우로 같이 움직이면 배멀미가 덜하다는 ‘미확인’ 정보에 따라 그리한 결과 멀미약 ‘귀미태’의 도움을 보태 무난히 통과했었던 바다.

하지만 ‘네가 동해 바다 만큼 크더냐?’ 하며 얕잡아본 서해 바다의 파도는 배멀미를 걱정하는 단계를 벗어나 앞 의자를 잡은 손가락에 붉은 자국이 새겨질 정도로 꽉 잡고 몸을 버텨야 하는 강력 단계인 것이다.

 

o... 용솟움치는 우리의 배는 ‘쿼바디스?’

"쿼바디스 도미네!"/ "주님 어디로 가시나이까?" 배가 잠시 우측으로 흔들리며 올라가는가 하면 덤프트럭이 육교중앙기둥에 측면 충돌 할 때 날 법한 굉음을 내면서 내려 앉는다.

비포장 도로를 달릴 때 ‘타타타’거리던 1970년대 시골 완행버버스급 진동이다. 도대체 맑은 물위를 가는 배에서 이런 진동이 날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고 지금 생생하게 체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뱃길에도 비포장 도로가 있단 말인가? 비행기 길에도 제주가는 길과 김포공항 올라오는 길이 다르다기에 그럼 서해 하늘위에 비행기 안전하게 다니라고 ‘비행기 중앙선’을 그었냐며 웃었던 기억이 난다.

인천-백령도 뱃길에도 아스팔트포장은 '스르르' 가고 시멘트 포장길은 '타르르' 가고 오늘 가는 길은 비포장이어서 '타타탁' 간다는 말인가.

비포장 충격이 심하여 버틸 수 없다면 지금 그 시골 완행버스를 타고 있다면 ‘기사님 저 어지러워서 내릴래요...’하면 해결될 일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서해안에서 수십㎞ 떨어진 육지는 보이지 않고 오로지 4m가 넘어 보이는 파도만이 四方八方(사방팔방)둘러싼 ‘삶의 체험’현장에서 ‘진행자 조영남’도 없는 가운데 우리끼리 한 배를 타고 있는 것이다.

마치 놀이기구에 탄 아이처럼 오로지 안전바를 잡고 있는 소녀처럼 500여 승객들 대부분은 바다 한가운데 부평초 같은 배의 흔들림에 본인 의사와 관계없이 동참하고 있는 형상이다.

o... 캡틴 김선장

승객들의 말을 들어보니 ‘얼굴없는 金캡틴 선장님’은 노련한 분인가 보다. 큰 배를 운항하면서 파도를 살펴서 이리저리 핸들을 돌리더란다. 파도를 피하고 돌아서 백령도를 향해 운항한 것이다.

하지만 화불단행(禍不單行)이라고 겹쳐서 달려드는 파도를 다 피하지는 못할 것이니 가끔 ‘쾅쾅쾅’하고 배를 때리는 파도의 격랑을 온몸으로 맞으며 나아가는 것이었다.

그래, 세상을 조금 살아보니 그 사람이 ‘틀린 것’이 아니라 나와 의견이 ‘다른 것’임을 이해하게 된다. 그 사람도 나보다 더 많은 고민과 연구와 생각을 하고 그런 결정을 하였을 것인데 단순히 나와 의견의 방향이 조금 다르다는 이유로 ‘네가 틀렸다’라고 결론 내린 일은 없는지 반성할 일이다.

배가 흔들리고 요동치고 쇳소리를 내며 쾅쾅쾅거릴 때 무슨 배운전 초보인가 소리쳤지만 우리의 캡틴은 지금 최선을 다하고 있었던 것이다. 선주님은 오늘 치는 3배로 쳐서 월급날 계산해 주시기를 바라는 바이다.

 

o... 서울 아주머니가 주신 과자

어떤 서울 아주머니가 과자 한 봉지를 주셨다. 주변의 일행들과 나누어 먹었다. 뭐 대단한 일은 아니다. 배가 서해바다 중간지점에서 파도와 싸우고 있을 정점의 시각에 내가 앉은 의자 옆 통로에 아주머니 한분이 정말로 ‘나무토막’이 쓰러지듯 넘어지신다.

그리고 오른쪽 다른 아주머니의 의자를 잡고 정신을 차려보려 애쓰시는데 멀미에 넘어진 충격에 한동안 혼절하신 듯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괴로워 하신다.

와중에도 구토가 나오니 ‘화불단행’이다. 해서 비닐봉지를 드리고 물티슈를 여러 장 여러 번 손에 쥐어드리고 비닐봉지를 받아 다른 큰 봉투에 넣고 쓰신 티슈를 받아 비닐봉지에 넣은 후 검정색 대형비닐에 버렸다.

화장실을 가시는 길이었는데 배의 흔들림이 심하고 나도 속이 약간 불편할 기미가 있고 해서 화장실에 모시고 가는 것은 쉽지 않았다. 결국 젊은 승무원 2명이 5분여를 기다려 정신을 차리신 후에 화장실로 이동하였다.

그리고 우리배의 첫 번째 도착지 소청도는 접안하지 않고 패스했다. 썰물 때 이어서인지 배가 해안선에 갈 수 없단다. 그런데 아까 그 아주머니가 밝은 표정으로 오셨다.

아까 휴지주고 도와준 아저씨! 하면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신다. 아예 배 타면 힘든 일이 있다는데 다 그렇지요 뭐. 30분이 지나서 또 오셨다. ‘야채 크래카’ 한 줄을 주신다. 10개 이상 들어있어서 주변 동료들과 나누어 먹었다.

우리의 배는 대청도에 들어섯다. 바다는 잔잔하다. 풍랑이 잦아진 것 같다. 도착시간은 오후2시가 조금 지났다. 나중에 들으니 오후 5시에 풍랑주의보가 해제되었다고 한다.

교육생중 지난번 울릉도 독도 여행에서 배멀미로 고생을 한 분이 있었는데 오늘 빡쎄게 흔들리는 배멀미가 아니라 '배요동치기의 최고봉'을 경험하였으니 더 이상 배를 타도 배 멀미 걱정은 하지 않도록 체질 변화가 왔기를 바라는 바이다.

 

o... 백령도표 ‘굴 순두부찌게’

토하고도 먹어야 한다. 토해내고 나면 배가 고프다. 토하느라 쓴 에너지가 얼마이더냐? 그리고 배멀미는 배에서 내리는 순간 사라지고 배 타기 전의 일상으로 돌아온단다. 마치 악몽에서 깨어난 사람처럼 말짱해서 돌아다닌다. 토했으니 배고프고 그래서 먹어야 한다.

우리의 때늦은 점심 메뉴는 굴순두부찌개. 백령도 콩으로 오늘 아침에 만든 순두부 찌개에 자연산 굴이 들어간 담백한 메뉴인데 맛있다. 땡긴다.

주인 아주머니 65세쯤으로 보인다. 섬에 사시는 분들의 나이는 가늠하기 어렵다. 젊은 분은 아니지만 민증 보면 놀랄 수도 있겠지.

이 아주머니께서 어제 따오신 생굴이란다. 잘잘한 통게장 조림도 맛있고 감자조림도 맛갈난다. 김치는 적당히 숙성되었고 콩나물무침은 조금 야스럽기조차 한데 감칠 맛이다. 우리가 다음 주에 조리학원에 가는데 ‘백령도 스타일’식단도 한번 생각해 보자.

 

o... 토탈 여행사 사장님

이곳의 버스기사님은 운전만 하는 분이 아니다. 모두 다 사장이다. 모텔 하나, 식당 하나, 관광버스 몇 대를 가지고 있는 포털사이트, 토탈 여행사 사장이다. 황해도 사투리가 살짝 가미된 안내 멘트에 정감이 간다. 결론은 뻔한데 스토리텔링이 전문가 수준이다.

이곳 백령도의 공기는 맑고 특히 산소량이 서울의 10배가 넘는단다. 그래서 시원하고 건강에 좋고 특히 술을 마셔도 쉽게 깬단다. 알콜 분해속도가 빠르다는 것이고 다음날 아침에도 머리가 편안하고 가슴이 상쾌하다는 주장을 하신다.

그리고 말씀의 끝자락에는 '거에요~~이잉'하면서 약간은 책임을 피하고 남들이 다 그러더라는 듯한 표현으로 '구렁이'처럼 넘어가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늘 듣는 이들의 마음이 편하고 기분을 좋게 하는 마력을 가진 분이라 생각하였다.

이분으로 말씀 하나 더 드리면, 작년 어느 날 어떤 손님 서너명이 1.1㎏광어 한 마리 잡고는 기분이 업 되어서 8시간 계약한 바다낚시를 2시간만에 마치고 돌아왔단다.

이 말씀을 5분이상 돌려서 어휘를 구사하신다. 정답을 앞에 놓고도 바로 직진하지 않고 이러지러 돌린 후에 결론을 내는 구렁이 가이드인 것이다.

귀에 걸린 마이크에 말하는 여행사 사장이면서 손발은 버스기사이고 지금 머릿속으로는 다음 코스를 진행중인 멀티플레이언 것이다.

 

o... 천안함 46용사 위령탑에서

억새풀 흰 수염이 바람과 대화를 나누는 산 언저리를 지나 소나무 빼곡히 자리 잡은 S자길 언덕을 올라간 우리는 ‘천안함 46용사 위령탑’을 만난다. 부사관과 사병들만 전사한 천안함 사건.

병사들의 얼굴이 하나하나 새겨진 탑에 일행모두가 숙연한 마음으로 헌화하고 영혼을 위로했다. ‘작가 강사님’ 강의 중에 나무를 보면서 8단계에, 이 나무아래 머물고 간 사람을 상상해 보라는 부분을 회상해 보았다.

지금 우리는 이 탑과 아들의 부조가 새겨진 저 자리에서 많은 어머니, 엄마가 울부짓는 모습을 보고 있다. 어금니를 꽉 물고 눈물만 흘리시는 아버지, 아빠를 보고 있다.

2010년 3월26일의 서해 심연의 차가운 물속에서 영문 모른 채 숨져간 용사들의 마지막 모습을 이 탑에서 우리는 함께 보고 있는 것이다.

이어서 서해안 평택에서 만난 천안함의 두 동강 난 영상위에 저 46용사의 모습이 겹치고 다시 흰 옷을 입으신 엄마와 누이동생, 검정 양복의 아빠와 큰형의 모습이 겹친다.

이처럼 아름다운 이곳 서해바다의 해안가에서 왜 우리는 참으로 가슴 아픈 ‘천안함 46용사 위령탑을 보고 가슴아파해야 하는 것일까? 그리고 그 해답은 우리 각자의 가슴속에 각각의 모습으로 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날 저 바다 2.5Km지점에서 그렇게도 큰 일이 있었고 온 국민의 가슴속에 큰 멍울을 지게 한 아픔을 겪게 한 사건이 발생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 밤도 엄마, 아빠, 누이, 동생은 아들을 그리워하고 오빠와 형을 그리며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고통을 그들만이 겪고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o... 자연산 광어 꽃게 성게 그리고 바람

한적한 바닷가 길을 되돌아오니 맛있는 자연산 횟감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인간의 욕심인가, 점심 젓가락을 내려 놓은게 3시경인데 6시가 되기 전에 또다시 국물이 땡긴다.

자연산 ‘백령스타일’ 음식이 우리를 반긴다. 놀래미, 꽃게, 성게, 매운탕 등이 재료인데 모두가 신선하다. 회 좀 먹어본 사람이면 회 한점이 혀에 감기고 씹히는 감촉과 소리로 신선함을 안다. 그리고 초장과 함께 돌아가는 횟 맛을 감상하는 것이다.

숙소에 돌아오니 이곳에서 태어나 이곳에서 간부로 근무하시고 함께 교육에 합류하신 최oo선배가 정말로 ‘한상’차려 놓으셨다. 털조개, 해삼, 홍어에 하수오.

하수오는 ‘흰 머리카락을 검게 한다는 명약’이란다. (何首烏). 이른바 선수급 10여명이 둘러앉아서 신선한 해물과 명주 하수오주를 함께 먹으며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버스를 내리기 직전 토탈가이드 사장님 말씀이 한 번 더 이어진다. 이곳은 서울에 비해 10배의 산소용적량을 자랑하는 곳이니 평소의 주량에 2배를 마셔보고 내일아침 그 산소효과를 확인하란다.

하지만 확인할 필요가 없는 것 같다. 이미 저녁에 먹은 술이 백령도 고농도 산소작용으로 다 사라지고 가슴속에 상쾌함만이 남아있으니 이를 어찌할꼬.

참으로 오랜만에 평안한 기분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밤하늘을 올려다보니 온통 별인데 도대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위에 저렇게 많은 별들이 있었단 말인가.

그럼 그동안 뭔 일이 바쁘고 무슨 급한 일이 있어 하늘한번 쳐다보지 못하는 각박한 세상을 살았단 말인가? 이제 백령에서의 두 번째 이야기를 시작할 참이다.

 

o... 백령도 아침 미역국

백령도에서의 아침이 밝았다. 어제저녁 여행사 사장님 말씀대로 이곳 백령도의 산소량이 서울의 10배인가를 실험해 보자. 어제 먹은 술이 풀어지는 정도를 평소와 비교해보면 알 일이다. 개운하다.

어둠이 걷히기도 전에 룸메 김국장님과 함께 길에 나섰다. 그리고 잠시 후 밝아오는 가울날 아침에 두 사람이 서있다. 좌우에 펼쳐진 가을을 준비하는 나뭇잎새 단풍이 하늘거리는 코스모스와 조화를 이루며 일행을 반긴다.

그래 이곳은 많이많이 북쪽이다. 더구나 어제 그토록 강한 바람을 맞으며 배를 타고 올라왔으니 하룻밤 새라도 가을의 전령들이 수백발자국은 옮겨 자리를 잡았을 것이다. 이제 이 여세를 몰아 곧 지방행정연수원의 모든 나무들이 일제히 가을 옷을 꺼내 입을 판이다.

사뿐한 산책을 마치고 식당에 가니 아직 5분전이란다. 그런데 식당에는 60은 조금 넘기신 아주머니께서 혼자 한식뷔페를 준비하신다. 10가지가 넘을 듯 한 반찬을 펼쳐 미역 말리듯 진열하셨으니 도대체 오늘새벽 몇 시에 자리에서 일어나 주방에 오신 것일까.

여하튼 시간이 되어 아침을 먹었다. 미역국이 부드럽고 심심해서 2그릇을 먹었다. 그리고 손님들이 우리뿐 아니다. 70명은 되나보다. 식사를 마치고 나니 심심하다.

다음 스케줄까지는 50분 이상 남은 자유시간이다. 손님들에게 미역국을 퍼드리고 간간히 추가 보충해 드렸다. 미역국의 효능에 대해 아는 지식 다 동원가면서.

오후 2시에 버스를 내려 다시 인천으로 가는 ‘하모니 풀라워’호에 오를 즈음, 여행사 사장님 버스기사님이 아침에 식당 아르바이트하신 손님께 드리라 했다면서 식당 아주머니께서 주신 다시마 한 상자를 전해 주셨다. 뭐, 아, 송구스럽게. 고맙게 받았다.

할머니께 편지를 드렸다. ‘백령도 아일랜드 캐슬호텔’ 홈페이지를 찾아보니 네티즌 방문이 많지는 않은데 아주 깔끔하게 정돈된 사이버 공간이 깨끗하고 친절한 호텔, 식당처럼 자리하고 있었다.

 

[편지]

10월17일 호텔에 묶고 18일 아침에 뷔페를 먹은 여행객 ooo입니다.맛있게 아침을 먹고나니 할머니 사장님 혼자 주방을 관리하시느라 조금 바쁘신 것 같아서 저는 그날 함께 온 동료들에게 미역국을 재미삼아 퍼 주었습니다. 아주 보람차고 재미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버스를 타고 오후 2시배를 타러 갔을 때, 관광버스 기사님을 통해 보내신 다시마 한 뭉치를 받았습니다. 할머니의 정성을 듬뿍 받았답니다. 송구스럽기도 하고 죄송하기도 하고 마음한편에 행복함이 솟아나고요.....

저는 할머니 사장님의 정성과 마음이 담긴 선물을 행복한 마음으로 받아 가슴에 안고 배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큰 냄비에 다시마 넣고 무우 넣고 생선묵 넣고 간 맞추어서 맛있게 먹었습니다.

앞으로 1년 내내 먹어도 남을 것 같습니다.그리고 인터넷을 통해, 자료를 통해본 결과 이 다시마가요, 모든 이에게 모든 분야에서 참 좋은 음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할머니 사장님.

가까운 장래에 다시 뵙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하겠습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할머니 사장님!!!

수원에서 이강석 드림

 

 

o... 頭武津#심청#잠수함’

두무진은 서해바다 파도와 해풍, 그리고 시간이 조각한 걸작이다. 어느 예술 작가가 이런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단순한 조형물이 아니라 바다와 해안과 바람, 그리고 서해를 지나가는 태양의 위치까지 참 정확하고 멋지게 조화시킨 작품이다.

우리의 한류가 조금 일찍 세계무대에 올려졌다면 그 유명한 빠삐용(1974년작품)의 해안절벽 낙하장면을 이곳에서 촬영하였을 것인데 참 아쉽다. 소녀시대, 배용준과 최지우, 가울동화, 가수 싸이 중 누구 한명 어느 한작품 만이라도 40년만 일찍 태어나고 만들어 졌다면 말이다.

아침을 먹고 곧바로 유람선에 올라 두무진을 보러간다. 어제는 육지에서 바라보았고 오늘은 해상에서 육지방향의 두무진을 만나러 가는 것이다.

같은 물체도 보는 사람, 각도, 시간, 감정의 굴곡에 따라 다 다르게 보이는 것 아니겠는가. 두무진(頭武津)은 마치 장군들이 머리를 맞대고 회의를 하는 것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서해의 해금감이라 불릴 정도로 웅장미가 아름답고 기묘한 奇巖怪石(기암괴석)들이 펼쳐져 있어 백령도의 백미를 자랑하고 있다.

선대암(광해군이 ‘늙은 신의 마지막 작품’이라고 극찬한 바위), 코끼리 바위, 형제바위가 있고 특히 선장님이 조크를 날리시는데 ‘심청이 잠수함 바위’가 있다.

정말로 잠수함이 깊은 바다를 항해하다가 잠시 숨을 쉬러 수면에 올라온 모습이다. 그 위에 물개들이 편안히 쉴 법도 하겠는데 파도가 높아 오늘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면 백령은 무슨 뜻인가?

<백령면 자료> 옛날 황해도에 살던 선비와 사또의 딸이 사랑을 하게 되었으나 사또는 선비를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두 사람이 계속 만나자 딸을 몰래 구양 보냈고 애를 태우던 선비의 꿈에 백학이 그녀가 있는 곳을 가르쳐 줬다.

훗날 사람들이 ‘백학이 알려 줬다’ 하여 ‘백학도’라 부르다가 오늘날 白翎島(백령도)라 부르게 되었다. 인구 5,087명, 면적 51㎢, 인천에서 228㎞, 북한 황해도 장연군과 17㎞, 해발 184m.

 

o... 콩돌해안 / 심청각 / 냉면 / 사곶천연비행장

콩돌 해안은 아주 특이하다. 콩알 만한 돌부터 조금 더 큰 돌이 함께 모여 해안가를 장식하고 있는데 그 모양은 서로서로 비슷비슷하다. 이곳의 파도가 만든 작품인지 돌의 구조가 이런 콩돌인 것인지 알 수 없는 자연의 신비함이다.

그 개수를 알았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수학자와 토목공학자 형제가 있다면 과학적으로 이곳에 자리한 콩돌해안 돌맹이 수를 헤아려 보았으면 한다. 대략 60억개 정도가 아닐까?

현재 지구에 살고 있는 사람숫자보다는 많을 것 같다. 위에 보이는 것 뿐 아니라 깊이를 알 수 없는 바다 속까지 계산해보면 더더욱 재미있을 것이다.

심청전의 배경무대인 백령도에는 심청각이 있다. 심청이가 인당수에 뛰어드는 순간의 모습을 동상으로 만들어 세웠다. 저 바다 가운데 장산곶이 있고 그 앞에 인당수가 보인단다.

물에 빠져 용궁에 도착한 심청을 태워 보낸 연꽃모양의 지형이 배를 타고 인천항으로 가는 길 오른쪽에 보인다고 한다.

점심은 냉면인데 먼저 나온 돼지고기 수육이 맛깔스럽고 적당히 익은 김치를 함께 먹으니 더 맛있다. 깍두기와 김치가 잘 익었는데, 이곳 유산균은 순종균인가 보다. 도시나 사람과 동물이 많이 오가는 도시근교의 경우 균들도 많이 섞여서 순수함을 잃었을 것 아니겠는가.

하지만 이곳 섬마을의 균들이야 고려말이나 조선시대나 항상 김치를 익히는 균은 그 일만 하였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더구나 음식 맛이 좋은 이유는 오늘 점심을 먹은 시골칼국수 여사장님은 군청 행사라면 빠지지 않고 적극적이시란다. 인천에 행사한번 참가하려면 2박3일이 필요하지만 식당문을 닫고라도 열성적으로 나가신단다.

음식에 대한 열정과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또순이’스타일인데 우리 일행 식사 중에 테이블을 오가며 이런저런 반찬을 서빙해 주면서 음식 맛을 돋구어 주었다.

사곶 천연 비행장은 1960년대까지 수송기가 이착륙하던 곳이다. 아주 고운 모래가 해안가를 장식하고 있는데 바닥이 단단하여 승객을 가득채운 버스가 달려도 살짝 표시만 날뿐 바퀴자국은 거의 나타나지 않은 단단함이 특징이다. 세계적으로 나폴리와 백령도 단 두 곳 뿐이라고 한다.

 

o... 돌아오는 배는 ‘고요함’

돌아오는 배는 고요했다. 어제 어지간히 몸부림을 친 바다는 오늘하루 잠시 쉬기로 한 모양이다. 오전부터 그리고 점심시간에 먹고 식사를 조절하면서 배멀미를 걱정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리는데 백령도-대청도-소청도에 이르기까지 바다는 조용하다.

섬을 연결하는 과정이니 바다에 막혀 바람과 파도가 잔잔한 것이라 생각도 하고 본격적으로 넓은 바다로 나가면 상황은 달라질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차분히 시간을 보낸다. 병장계급의 군인들이 타고 각양각색의 행장을 한 사람들이 오르고 내린다.

배를 타자마자 한구석에 자리를 잡고 길게 누워버리는 아주머니들은 아주 노련한 ‘멀미꾼’이다. 어제 백령도에 들어올 때 보니 멀미에는 잰틀맨도 멋쟁이도 없더라. 다만 생존이 있을 뿐이고 오로지 배멀미하는 이들이 바라는 것은 배에서 내리는 것이라고 했다.

다행이다. 모두를 위해서 다행인 것은 오늘 배가 참으로 조용하게 흘러간다는 사실이다. 이 상황은 지난 5월31일 독도-울릉도에서 강원도 묵호항으로 돌아올 때 보다 조용하다. 세상에 이런 바다도 있을 수 있다. 나중에 인터넷을 보니 같은 시각에 이명박 대통령께서 연평도에 다녀가셨다.

배는 평온하지만 절대적으로 4시간은 기다려 주어야 인천항에 데려다 준다. 그래서 승객들은 여유롭게 삼삼오오 모여서 대화를 나누고 음료를 마신다.

소주도 몇 잔 마시고 과자, 옥수수만두, 던킹도넛을 먹었다. 아까 배를 탈 때 아주머니 몇 분이 배에 올랐다 바로 내렸는데 이분들이 이 배에서 파는 도넛을 사 가시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육지의 맛을 보여주기 위한 엄마의 마음이 여기까지 발걸음을 한 것이다. 대한민국 어머니 파이팅이다.

드디어 대한민국의 자랑 인천대교를 지난다. 하늘에서 본 인천대교가 아름답다면 바다에서 올려다보는 인천대교는 위용스럽다.

바다 한가운데 깊은 뿌리를 내리고 하늘높이 들어 올린 두 팔의 거인이 서있고 작은 거인들이 걸리버 여행기 주인공처럼 줄에 묶인 채 둥둥거리며 바다를 건너가고 있다.

영종도 국제공항을 출발하여 낮게 시작한 다리는 점점 더 허리를 세우고 간격을 넓히더니 이내 인천항 중앙에 커다란 ‘동대문’을 만든 후 이내 키를 줄여서 인천광역시 도심으로 향한다. 건축에 있어서 신이 사람들에게 허락한 지혜와 용기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o... 역사의 현장 강화군

강화군은 단군시대 이래 우리민족의 역사와 함께해오면서 점점 더 자라난 섬이고 삶의 터전이다. 삼랑성이란 단군이 3명의 아들에게 성을 쌓도록 명하여 축성된 것이고 정족산성으로 불리기도 한다.

산성 안에는 전등사가 소나무 숲에 편안하게 자리하고 있다. 부지런한 연수생들은 전등사를 거쳐 동문을 지나 삼랑성을 한 바퀴 돌았다. 1시간10분 동안의 아침산행이 싱그럽다. 아침 해장국이 더더욱 맛있다.

전등사는 현존하는 한국 사찰 중 가장 오랜 역사를 가졌으며, 부처님의 가피로 나라를 지킨 호국불교 근본도량으로 역사와 권위를 간직한 사찰이다.

<세종실록지리지>에 기록된 바와 같이 삼랑성은 단군이 세 아들(三郞)을 시켜 쌓았던 고대의 토성이었고, 삼국시대에는 토성 자리에 석성을 쌓아올려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삼랑성 안에 자리 잡은 전등사는 세 발 달린 솥을 거꾸로 엎어놓은 모양을 가진 정족산(鼎足山)과 더불어 강화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문화 유적으로 유명하다.

전등사가 창건된 것은 서기 381년(고구려 소수림왕 11년)으로 전해지고 있다. 우리나라에 불교가 처음으로 전래된 것이 서기 372년이므로 지금은 그 소재를 알 수 없는 성문사, 이불란사(375년 창건)에 이어 전등사는 한국 불교 전래 초기에 세워진 이래,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도량임을 알 수 있다. 건립당시에는 ‘진종사(眞宗寺)’라 하였다.

대웅전은 다른 사찰에 비해 볼 때 크지 않았지만 기둥을 포함한 목재에서 세월의 느낌이 강하다. 특히 부처님을 모신 기단부분은 검은색 목재로 만들어진 고풍스러운 문양에서 가늠할 수 없는 시간과 역사의 연륜이 느껴진다.

일행을 안내하는 문화 해설사님은 강화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신다고 자신을 소개하였다. 소개하는 목소리의 톤에는 교육자의 경륜이 묻어나는 듯했다.

끝까지 해설사 이전의 직업을 여쭙지는 아니하였으나 여러 동료들이 이분 해설사를 교육자로 상상하고 있었다.

 

<해설의 요지> 오래전부터 강화섬에는 6시간동안 물이 들어오고 6시간동안 물이 빠져나갔다고 한다. 그리고 한강, 예성강, 임진강이 합류하면서 한강 하구에 모래를 쌓았다.

초기 강화지역은 3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간척사업을 통해 3개의 섬이 하나가 되었다고 한다. 특히 몽고의 침입이후 왕이 피신하거나 아예 항쟁하기 위해 假闕을 지었다.

전등사 경내에 가궐터라는 안태판이 보인다. 결론적으로 이곳 강화에서 우리의 조상들이 외세에 항전하지 않았다면 우리의 국가는 없었을 것이다. 중국의 소수민족으로 남았거나 역사에서 사라졌을 것이다.

고인돌 공원에 자리한 그 고인돌은 비스듬하게 자리한 두 개의 받침돌이 부분 금이 갈 정도로 오랜 세월을 버텨왔다. 세계문화유산이기도 한 감화의 고인돌은 이곳 강화섬이 사람들에게 참으로 살기 좋은 곳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군청 공무원들이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가꾼 공원이다. 억새풀도 적절하게 심어서 역사속 고인돌의 분위기를 더욱 ‘역사스럽게’ 하고 있다.

점심으로 묵밥을 먹었다. 웰빙식품이 아니던가. 심심한 듯 삼삼한 간이 마음에 든다. 순무김치는 강화의 특산품 아니던가? 강화도가 오랜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면서 근세 개항, 개국의 역사를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알게 되었다.

 

o... 조금 길게 느낀 2박3일

2박3일 여행은 두 번 잠자고 삼일 째 귀가하는 여행인데 지금 우리의 느낌은 3박4일은 지나고 4박5일에는 못 미친다. 일단은 길게 느껴지는 것이 백령도 가는 뱃길이 1년에 한 두 번 뿐이라는 철선 굵은 철판이 신음하는 최악의 상황을 겪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어렵게 도달한 백령도에서 맑은 공기 속에서 호흡하며 산과 바다와 들판에서 신선하고 귀한 음식을 많이 먹어서 그러한가 생각한다. 또한 북녘 땅을 마주보고 있는 아픈 현실에 마음속 세월이 많이 흘러갔을 것이다.

더구나 역사의 현장인 강화도에서 고인돌을 만나고 단군과 3명의 아들의 손길을 느끼고 근대사속 아픈 역사를 보았기에 가슴속 세월이 쏜살같이 흘러갔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역사 속으로 마껴졌던 몸과 마음을 돌려서 고향으로 향한다. 3명은 인천항에서 고향으로 달려가고 일부는 김포공항에서 비행기와 귀향버스에 몸을 실었다. 다시 막히는 고속도로를 달리고 돌아 도착한 연수원은 3일새에 훨씬 성숙한 가을을 준비하고 있었다.

모든 나무들이 가을이라며 색색으로 옷갈아입기 경연을 하고 있고 뒷산에서도 가을잔치가 벌어지고 있다. 고향에서의 2박3일을 보내고 오면 가을은 더더욱 무르익을 것이며, 1주일간 ‘주방장 스타일’로 요리를 배우고 돌아오면 지방행정연수원은 깊을 가을 속에 빠져있을 것이다.

정말로 생사고락을 함께한 동료들과 연수원 관계관 여러분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 교육을 지원하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2012년 11월말 제주도 2박3일에서 다시 뵙겠습니다.

 

 

이강석 (李岡錫)

출생 : 1958년 화성 비봉

경력 : 경기도청 홍보팀장, 경기도청 공보과장

         동두천·오산시 부시장 / 경기도균형발전기획실장

         남양주시부시장 /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현직 :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저서 : '공무원의길 차마고도', '기자#공무원 밀고#당기는 홍보#이야기' 등 수필집 53권 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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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 오산, 남양주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 행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