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리암 향일암 진주산성 ▤
2018. 8. 16 ~ 8. 18 하계휴가를 이용한 사찰 탐방입니다. 보리암, 향일암, 쌍계사에 갑니다. 다른 관광지는 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세곳을 가기로 했고 숙소도 미리 정하지 않았습니다.
숙소 때문에 일정이 혼란스러운 경우가 있으므로 오후 4시경에 당일을 숙소를 정했습니다. 인터넷과 전화가 있으니 가능하고 멀어도 차로 찾아가면 되니 다행입니다.
그리하여 휴가를 가서 할 일은 名刹(명찰)에 가서 열심히 절을 올리는 것입니다. 휴가는 휴식이 아니라 마음의 평정을 얻는 기회입니다.
일상의 업무에서 잠시 새로운 공간에서 색다른 방식으로 시간을 보내보는 것입니다. 식사, 잠자리, 이동 수단이 바뀌면 참으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여행은 배움이고 여행은 비움이고 여행은 배려입니다.
먕향, 정안알밤, 여산, 황전. 고속도로 휴게소 이름입니다. 지역에 맞게 잘 지었습니다. 작명이 절반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이름만 잘 지어도 식당이 잘되고 회사가 수익을 올리고 모임에 회비가 쌓입니다.
이름으로 성공한 회사를 개인적으로 지목하면 본죽, Home Plus, E-마트, 다이소 등 많습니다. 강가의 돌 이강석도 좋은 이름입니다.
보리암은 바다와 바위와 섬과 암자가 어우러진 거대한 부처님의 무대입니다. 남해 금산과 보리암에 대한 남해군 홍보물입니다.
[자료] 금산(해발704m)은 한려해상 국립공원 내의 유일한 산악공원으로 38경이 있으며 온갖 전설을 담은 기암괴석이 금강산을 빼어 닮았다 하여 소금강 혹은 남해금강이라 불린다.
고려말 태조 이성계가 이곳 소금강에서 백일기도를 한 뒤 조선을 건국하게 되어 보은한다는 뜻으로 산 이름을 비단 錦이라 바꿔 부르게 하였다.
또한 신라 신문왕때 원효대사가 세웠다는 보리암은 금산의 기암 절벽 영봉에 자리잡고 있는 우리나라 3대 관음기도처 중 하나이다.
보리암은 암자가 아니라 해안가의 큰 사찰입니다. 이곳 보리암 암자 한 켠에서 이마의 땀이 방석을 적시도록 108배를 올렸습니다.
두터운 수건을 대고 절을 하였습니다만 그 땀이 흰 수건을 스며들어 회색의 보리암 방석에까지 흔적을 남겼습니다. 108배를 열심히 올린 성과품이라는 자평을 하였습니다. 다시 이리저리 다니다가 해수관음상을 만났습니다.
조금전 108배는 실내였습니다만 해수관음상 앞은 오전 11시 뙤약볕입니다. 처음에는 불쑥 발바닥이 뜨겁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이내 절을 시작하니 오히려 푹 땀이 흐르면서 시원함을 줍니다.
以熱治熱(이열치열) 모든 것이 부처님의 뜻에 따라 덥고 시원함이 있는 것이고 이를 느끼는 중생의 마음 또한 부처님의 마음에 따라 뜨거운 물을 마시면 시원하고 뜨거운 온탕안에 들어서도 시원하다 말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조금전에 다녀간 아들은 기막힌 현실주의자이니 뜨거우면 뜨겁다 하고 차가우면 차갑다 합니다.
오늘 세번째 108배를 마치고 입구로 돌아가는 길에 "태조 이성계 기도하신 곳 200m"라는 표지판을 만났습니다. 아내와 아들을 격려하여 가파른 돌계단을 내려가고 올라가기를 반복하여 비석앞에 도착하였습니다. 도착한 곳은 선은전입니다.
[인터넷 자료] 태조 이성계에 얽힌 전설 : 금산의 본래 이름은 보광산이었으나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한 뒤 금산으로 바꿔 불렀다.
이성계는 전국의 명산을 찾아 다니며 자신이 왕이 될 수 있게 해 줄 것을 기도했고, 백두산과 지리산에 들어 갔지만 산신령이 소원을 들어 주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이곳 보광산에 들어 왔는데 이때 100일 기도를 하면서 “내 소원을 들어 주면 그 보답으로 이 산 전체를 비단으로 감싸 주겠다”는 약속을 했다.
그 같은 원력으로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는 약속대로 산 전체를 비단으로 감싸려했으나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약속을 지키지 않을 수도 없어 고심하는데 한 승려가 “비단으로 산을 감싼다는 것은 나라 경제가 허락하지 않으니 이름을 금산으로 지어주는 것이 좋겠다”는 묘안을 내 산 이름에 비단 ‘錦(금)’자를 넣어 ‘비단산(錦山)’이라 부르게 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극락전 아래에는 지금도 이성계가 100일 기도를 했다는 선은전(璿恩殿)이 있다.
간곡한 마음으로 3번 절하고 지전을 올렸습니다. 아빠의 돈은 안쪽 문고리에 걸리고 아들의 돈은 선은전 가마위 지붕에 떨여졌습니다.
대부분의 지전 동전이 바닥에 떨어져 있는데 부자의 지전은 두곳에 오르는 행운이 있으니 아버지와 아들이 이미 부자가 되었으니 더 큰 부자되게 해 주시기 바랍니다.
여수 이순신 대교 홍보관에 들렀습니다. 여수에는 대형 현수교가 섬과 육지, 섬과 섬을 연결합니다. 이순신대교, 거북선대교가 있습니다. 섬이 작아도 서로간의 거리가 멀면 다리도 길어집니다.
섬이 커서 다리가 큰 것이 아닙니다. 이순신 대교 홍보관에 오르니 주변의 경관이 제대로 조망됩니다. 아름다운 남해의 섬과 해안선과 그것을 연결하는 대교의 어울림을 감상하였습니다.
하멜기념관을 관람하였습니다. 네덜란드 사람으로서 제주도에 표류하였다가 여수에서 살았습니다.
[인터넷] 1653년 8월 16일 헨드릭 하멜(Hendrik Hamel, 1630~1692)이라는 네덜란드인이 스페르웨르(Sperwer)호를 타고 일본 나가사키로 항해하는 도중에 태풍을 만나 제주도에 표착했다. 조선 효종임금 때였다.
그는 1666년 9월 4일 여수에서 탈출할 때까지 13년간 조선 땅에서의 억류생활을 기록으로 남겼다. 이름하여 「하멜 표류기」다. 그의 일지는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그 외 여러 문집등의 기록과 거의 일치해 사료로서의 가치도 높다.
독일마을에서 광부와 간호사의 어려웠던 시절을 알게 되었습니다. 소품을 기증하신 분들 덕분에 당시의 상황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어서 감사드립니다. 독일 탄광의 막장같은 전시실 컨셉도 공감이 갑니다.
소중한 자료를 잘 보관하신 당시의 광부, 간호사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사실 이분들이 당시에는 인텔리층이었다고 들었습니다. 국내의 좋은 직장을 내놓고 독일에 가서 참으로 엄청난 고생을 하신 분들입니다.
저녁식사는 삼합입니다. 문어, 조개, 해물라면이 맛있었습니다. 해안가 식당중 손님이 적을 것 같은 식당으로 정했습니다. 우리 뿐입니다.
요즘 불경기에 열대야라는데 정말로 손님이 적기는 여기도 마찬가지인가 생각하였습니다.
걱정이 많습니다. 일자리를 많이 만드는 방법에 대해 온 국민, 정치권, 공무원 모두가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게스트하우스는 2층침대 1개와 일반 1인침대가 있습니다. 여기는 전라남도 여수시 공화북4길 1번지(여수시 공화동 723-3)입니다. 마침 게스트하우스 앞에 주차공간 1개가 있어서 편하게 주차를 했습니다.
후진 알람이 ‘빼배백’을 지나 빽 할 때까지 밀었더니 30cm정도 남았습니다. 근접주차 최고 기록치입니다. 방은 좁으나 침대가 셋이고 샤워실의 시설이 출중합니다. 침대마다 전기코드가 연결된 것은 요즘 젊은이들의 배낭여행에 깔 맞춤한 듯 보입니다.
잠시 부부가 바닷가 산책을 나갔습니다. 낮에 본 모습과는 다른 야경입니다만 스산한 바람, 시원한 바람이 생각보다 강하게 불었습니다. 파주에는 비가 왔다고 하고 수원 집에도 강한 바람이 분다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바다는 보이지 않고 바닷바람만 만난 후 다시 숙소쪽으로 돌아와 조금전에 보아둔 치킨집으로 갔습니다. 젊은 부부가 운영하는 가게인데 시어머니인듯 할머니와 주인 부부의 딸 6살 아이가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게스트 하우스 손님 4명이 맥주 한잔 하고 있습니다. 500cc 맥주를 주문하고 치킨 중에 날개, 다리 복합세트를 달라 했습니다. 맥주 한잔에 치킨, 윙, 그리고 흰무 깍뚜기, 야채를 안주로 먹었습니다.
저녁 식사를 단촐하게 하였던 바 안주도 맛나고 맥주도 시원합니다. 이번 여행의 특징은 과식을 피하는 것입니다. 라면 하나를 셋이 먹고, 산채비빔밥을 세그릇으로 나누어 먹고, 자장면 곱빼기도 셋이서 먹었습니다.
남은 치킨을 들고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왔습니다. 아들이 반갑게 맞이하더니 다리 2개, 윙 2개를 먹습니다. 맛있다 합니다. 아들아, 치킨집에서 방금 튀근 보글사각거리는 치킨은 더 맛있더구나.
음식은 타이밍도 중요합니다. 아니, 세상사 모든 것이 타이밍입니다. 여행도, 노는 것도 시간과 때가 있으니 말입니다.
젊은이들이 기차를 타고 와서 게스트하우스를 이용합니다. 아침에 만난 젊은이는 얼마 전 제대를 하고 동료들과 여행을 왔답니다. 2학기 복학을 하므로 잠시 시간을 냈다고 합니다.
일산에서 여기까지 왔다고 합니다. 젊어서 여행은 평생에 도움을 줍니다. 아침은 토스트에 계란, 우유를 마십니다. 간편하게 식사를 마치고 차를 몰아 향일암으로 향합니다. 보리암-향일함-쌍계사로 이어지는 휴가 사찰 여행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사실은 어제 하루에 보리암에 이어 향일암까지 도전하려 했지만 향일함 해안가 주변에서는 숙소 잡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가족회의 결과를 바탕으로 여수에서 게스트 하우스를 정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좀더 여유롭게 준비하고 정리하면서 토스트 아침 식사후에 향일함으로 출발하였습니다.
향일암은 암벽의 틈새를 지나서 만나게 됩니다. 뚱보는 살을 빼고 찾아와야 관음상을 만날 수 있습니다. 정말로 뚱보가 향일함에 왔다면 밖에서 3,000배를 드려야 뱃살이 빠져서 바위틈을 통과하여 암자를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는 길에 갓김치 3박스를 구매했습니다. 1kg 10,000원(택배포함)입니다. 고들빼기도 구매했습니다. 이틀동안 차안에서 잘 숙성되어 먹기 좋게 익을 것입니다. 맛있는 음식을 사고 배달시키는 것도 행복의 하나입니다. 집에 가서 택배오기를 기다리는 행복도 있습니다.
여러 길을 돌고 돌아 식당을 정했습니다. 골목에 주차를 하고 시장을 한바퀴 돌아 다시 주차인근의 식당으로 왔습니다. 중국식입니다. 새우요리, 탕수육에 짜장면 곱빼기를 3인이 나누어 먹었습니다.
새우요리가 맛있습니다. 탕수육도 방금 주방장의 국자를 떠나 접시에 담겨 나왔기에 사각사각 맛집니다. 역시 음식은 식당 주방 가까이에서 자리잡고 먹어야 합니다. 이영자 프로에도 나왔습니다. 식당에 가면 주방장이 보이는 아주 가까운 자리를 잡아야 합니다.
먼저 본 두 암자 보리암과 향일암이 바다와 해안절벽 암벽과 조화를 이루는 사찰 암자라면 쌍계사는 산속 대나무와 어우러지는 고찰입니다. 쌍계사 비석을 등에 짊어진 거북은 나이가 들어 수염이 났습니다.
향일암 입구에 최근에 제작되어 세워진 흰색 대리석 거북도 수염을 기른 모습입니다. 1,000년을 산다는 거북을 통해 불로장생을 기원합니다.
쌍계사에서는 잠시 휴대폰을 꺼두셔도 좋습니다. 그래서인가 충전이 부족하여 전원이 꺼졌습니다. 사진을 찍지 못하여 아들의 사진을 얻었습니다.
108배를 올리는 중에 부동산 경매사이트를 소개하는 전화가 왔습니다. 휴가중에도 전화는 바로 받아야 합니다. 늘 전화를 받아야 하는 현대인들의 애환을 어찌 풀어야 할지요. 조선시대 옛날 이야기에는 3년만에 돌아온 남편에게 바로 인사하지 못하고 옷고름만 배배 꼬고 있다는 대사가 있습니다.
참으로 평온한 대나무길이 멋드러집니다. 오른쪽 탬플스테이 건물도 아름답게 평온합니다. 이 곳에서 일주일을 보내면 선사가 될 듯 합니다.
나이들어 틀어진 나무들이 자리하고 은행나무는 계곡 바로위에 자리하니 이미 600년, 앞으로 1,000년을 이어갈 듯 보입니다. 바르게 올라간 대나무도 잘 어울립니다.
대나무는 한번 자리고 올라간 그 몸통과 키로 평생을 산다고 합니다. 그래서 雨後竹筍(우후죽순)입니다. 대나무는 비온 다음날 한방에 하늘 끝까지 자란 후 평생동안 야물어진다고 합니다.
화개장터는 쌍계사 입구에 있습니다. 가수 조영남 작사작곡 노래입니다. 어제 조영남 그림관련 재판에서 무죄를 받았습니다. 이 기회에 화개장터가 더욱 더 활성화되기를 기대합니다.
장터에 자리한 조영남 사진과 노래비가 다시한번 빛을 발해서 경상도와 전라도를 가로지르는 화개장터 제2의 전성시대를 이어가기를 바랍니다.
대하소설 토지의 작가인 박경리(1926~2008) 선생의 '박경리 문학관'에서 많은 생각을 하였습니다. 1969~1994년까지 토지를 집필했습니다. 원고지에 펜으로 눌러쓴 육필 원고를 보면서 참으로 힘든 시절의 작가이시구나 생각했습니다.
물론 펜으로 만년필로 200자 원고지에 적었기에 명작이 나왔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요즘처럼 키보드로 마구 쳤다면 깊이있는 글이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육필을 보니 원고지에 고치고 첨삭한 고민의 흔적이 보입니다.
글기둥 하나잡고 내 반평생 연자매 돌리는 눈먼 말이었네. 그래 글기중 하나 붙잡고 여기까지 왔네.
박경리문학관은 평사리 최참판택과 같은 공간에 있습니다.
최참판댁에 문학관이 지어진 것입니다. 구례와 하동이 갈라지는 섬진강 줄기를 바라보는 야산 중턱에서 내려다본 경치라 멋집니다.
쌍계사는 다음 기회에 다시한번 와볼 곳입니다. 바닷가 사찰도 멋집니다. 지난해 다녀온 부산 해동용궁사도 바다와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자리하고 있습니다.
보리암도 암벽을 잘 잡고 서 있고 향일암도 역시 암벽사이를 거쳐서 만나게 됩니다. 향일암 미륵불 옆에는 합체목이 있습니다. 1,400년동안 암벽을 지켜온 나무는 각각의 몸이었다가 합체되었다고 합니다.
시루떡과 바나나를 얻었습니다. 불가에서 행사를 마치고 보시를 하십니다. 2개씩 얻었으므로 4인가족 아들에게 주었습니다. 6살쯤 되는 아이는 절대로 남이 주는 음식을 받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빠에게 허락을 받으니 마지못해 받습니다. 요즘 아이들 교육이 잘 된 것인지 잘못된 것인지 반성을 합니다.
저녁은 만찬이라고 합니다. 불고기를 먹어야 만찬스럽습니다. 농협에서 운영하는 갈비집에 갔습니다. 이것저것 부위별 소고기를 주문하여 숯불에 구워 먹었습니다.
미디움으로 먹었습니다. 고기한점 두점 구워서 쌈싸서 먹었습니다. 가족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는 것도 행복입니다.
무인텔에는 사람이 없습니다. 기본 요금에 아들 추가 10,000원을 우체통처럼 생긴 박스에 넣었더니 주인이 냉큼 가져갔습니다. 산 중턱에 자리한 숙소는 맑은 공기를 마실 수 있는 참 좋은 자리를 잡았습니다.
수도권에서는 입지하기 어려운 자리입니다. 게스트하우스와 요금은 비슷한데 공간이 넓습니다. 호텔급입니다. 이리저리 움직이면 저렴하고 수려한 숙소를 만날 수 있습니다.
이제 토요일 아침입니다. 사천시의 항공우주박물관에 도착했습니다. 비행기의 역사를 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 전용기에 올라가 보았습니다. B-29항공기는 히로시마와 나카사키에 원자탄을 투하하였습니다. 이 크기의 비행기에 원폭을 장착했습니다. 1945년의 일입니다.
이번 여행의 두번째 맛집은 '박군자 진주냉면'입니다. 11:30분이라 줄서지 않고 비빔1, 물냉면2을 주문했습니다. 내용물이 풍성하고 국물이 시원합니다. 냉면 국물이 시원하다는 말은 차갑다는 뜻이 아닙니다.
국물을 우려내는 비법을 느끼는 것입니다. 유명 냉면집의 국물 비법은 창고속 자물통으로 잠겨있습니다. 자식에게만 늦은 나이에 알려줍니다.
진주성에 들었습니다. 진주성은 김시민 장군이 나라를 지키다 전사한 곳입니다. 충무공 이순신, 충무공 김시민. 충무공은 나라를 지켜낸 분들에게 왕이 내리셨습니다. 충무공은 고려에 2분, 조선에 9분이 있습니다.
의암은 임진왜란때 논개가 왜군 장수를 끌어안고 강에 뛰어들어 함께 죽은 바위입니다.
[인터넷] 임진왜란 때 진주성이 무너지면서 패하자 스스로 목숨을 버린 남편과 나라의 원수를 갚기 위해 논개는 기생으로 가장, 왜장을 끌어안고 진주 남강변, 현재의 의암으로 불리는 바위로 유인해 함께 목숨을 끊었다.
그 바위에 올랐습니다. 물에 빠질까 걱정하는 아내의 만류를 뿌리치고 그 바위에 올라가서 주변을 살펴 보았습니다. 아들에게 담력을 내서 뛰어 건너라 했습니다. 그리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왜장을 수장시킨 논개의 애국정열을 조금 더 강열하게 느껴 보았습니다. 이 나라에 살면서 나라와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조금 더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천안휴게소입니다. 돌아오는 길에 호두과자를 삿습니다. 집을 지키는 딸에게 줄 선물입니다. 그러고 보니 딱 한번 향일함에서 마음에 드는 염주 하나를 15,000원에 구매했습니다.
염주알 사이에 실 매듭이 있으므로 절을 하면서 한 알씩 이동하는 손가락 넘김이 좋습니다. 수많은 분들이 108배를 하면서 염주의 손가락 감촉에 대한 고민과 생각이 있었을 것입니다. 참으로 잘 만들었습니다. 휴게소를 떠나 수원 영통으로 들어와서 현대식 부대찌게집 맛집을 만났습니다.
부대찌게의 맛, 소시지의 식감, 라면의 부드러움으로 세식구 저녁을 먹었습니다. 2박3일동안 양보하고 배려하며 열심히 다녔습니다. 600km를 달린 것입니다.
아들에게 인생을 이야기하고 세상살이에 대해 경험을 전했습니다. 2박3일의 사찰투어 하계휴가를 이렇게 마치고자 합니다. 수고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강석 (李岡錫)
출생 : 1958년 화성 비봉
경력 : 경기도청 홍보팀장, 경기도청 공보과장
동두천·오산시 부시장 / 경기도균형발전기획실장
남양주시부시장 /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현직 :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저서 : '공무원의길 차마고도', '기자#공무원 밀고#당기는 홍보#이야기' 등 수필집 53권 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