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장 4등 ㅡ 고3ㅡ1976년
제목 : 코
초등학교 자연 시간에 인간의 코는 후각이라는 냄새를 구분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는데 다른 감각기관에 비하여 쉽게 마취되어 그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취약점이 있다고 한다.
나는 어려서부터 코가 약간 작은 편이어서 식구들이 농담으로 화장실등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없는 곳에서는
손으로 코를 잡아 당기라 했다. 그래서 정말로 화장실에 앉아서 코를 당겨보았지만 콧등만 빨개지고 콧날을 제대로 서지 못하고 늘 그 모습 그대로이다.
또 다른 방법 중 하나는 코에 밀가루 성형을 하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이것도 또한 농담이었는데 마음속으로 정말 콧날을 세우는 수술이 있다면 받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였다. 하지만 이 방법도 나에게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였다.
고등학교에 들어와 콧날이 엄청 크신 윤리 선생님께서 수업중에 자신의 코를 자랑하시면서 콧날의 크기와 기후에 대해 말씀해 주셨다. 콧구멍의 기능은 공기를 데워서 폐에 이르게 하는 것인데 아주 추운 러시아 지역에서는 찬 공기를 데워야 하므로 콧구멍 통로가 길어졌고 아프리카 흑인마을은 더운 지역이므로 긴콧구멍이 필요하지 않아 납짝코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 동양계 사람들의 코는 러시아 사람의 코와 아프리카인의 들창코 중간지대에 있는 적당한 크기로 이어가고 있다는 말씀이었다.
이 말씀을 들은 이후부터 코는 멋으로 매달린 것이 아니고 숨을 쉬기 위한 통로로서의 기능을 다하고 있는 것이니 거울을 보면서 콧구멍이 조금 많이 보이는 것에 대하여 불평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더구나 아버지와 어머니의 코를 보니 나의 코와 비슷한 모양이었다. 그것을 보니 형제들의 코 모습도 닮았다. 코의 모습에서 가족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리고 코는 우리 동네 사람들 대부분이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어느 섬마을에 외눈 원숭이가 수백마리 살았는데 어느날 뗏목을 타고 두눈달린 원숭이가 바다를 표류하다가 이 섬에 도착했다. 외눈달린 원숭이만 보고 자란 이 섬의 원숭이들은 두눈달린 원숭이를 보자 희한한 원숭이가 왔다고 놀려댔다.
어쩌면 얼굴은 자신에게 익숙해지기 위한 그림판일 수도 있다. 그 얼굴에 일부를 담당하는 코의 기능은 숨쉬기에 원활하면 되는 일이다. 코의 크기가 얼굴의 잘생기고 못생김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얼굴은 마음의 거울이니 착하고 아름다운 마음을 가지면 얼굴 또한 선하고 부드럽게 보일 것이다.
얼굴에서 코가 차지하는 비중이 좀 높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코가 얼굴의 전체를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 코는 나에게 아버지와 어머니가 계시고 형제자매가 함께 한다는 씨족사회의 자랑인 것이다. 그리고 자자손손 이어가는 삶속에서 아주 느리게 자신들을 표현하는 다양한 진화와 변화의 한줄기 DNA인 것이다.
꼭 40년전인 1976년 10월8일에 경희대학교에서 쓴 글의 핵심을 바탕으로 지금의 생각을 가미하여 정리한 글이다. 글 앞부분은 당시에 쓴 글과 80% 비슷하고 후반부의 이야기는 지금 지어낸 이야기이다. 하지만 긴 세월이 흘렀어도 당시에 써낸 원고지 5매에 적힌 내용은 마음속에 가슴속에 절절하게 남아있다.
이후에 20대, 30대, 40대를 보내고 50줄을 맞이하면서 이런저런 글을 써보고 짧게 쓰면 詩라하고 길게 늘리면 수필이라 칭하면서 자료를 모아왔다. 그리고 한때는 겁없이 원고지 7매 9매를 신문사에 보내 기고문으로 세상에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주변에서는 글을 쓰는 사람으로 평가한다. 친구의 도움으로 문학지에 등단을 했다. 그리고 늘 사명감 책임감으로 글쓰기를 이어왔다. 이제 정말로 정신을 차리고 글쓰기에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나게 될 것 같다. 설레이는 마음으로 그 술취한 키보드를 두드릴 그 날을 기다리고 있다.
이강석 (李岡錫)
출생 : 1958년 화성 비봉
경력 : 경기도청 홍보팀장, 경기도청 공보과장
동두천·오산시 부시장 / 경기도균형발전기획실장
남양주시부시장 /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현직 :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저서 : '공무원의길 차마고도', '기자#공무원 밀고#당기는 홍보#이야기' 등 수필집 53권 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