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시청 공식행사에서 큰 실수를 했습니다. 60대 중반의 현직 여성시의원님을 소개하면서 '할머니 시의원'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날 행사주제는 어르신들의 자부심을 키워드리는 내용이었습니다. 70세 전후의 어르신 수백명이 참석하신 행사입니다. 현역에서 은퇴하신 어르신을 위한 행사에 동년배의 여성 시의원님이 오셨으므로 상황과 분위기에 맞춰서 말한다고 고민해서 한 말이 '할머니 시의원'이었던 것입니다.
김 아무개 여성 시의원님은 여러분과 비슷한 연세로 알고 있는데 현역 시의원으로서 시정을 감독하고 시민들에게 미래의 비전을 제시하는 정치활동을 열심히 하시는 분으로 소개를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해당 시의원님과 다른 참석자들에게 '연세가 노인세대인데 현역 활동가'라는 의미로 말을 서정적으로 꾸미다보니 가장 쉽게 '할머니 시의원'으로 소개한 것입니다.
지금에와서 다시 생각해 보아도 크게 잘못된 말입니다. 실제로는 20세에 결혼하여 아들딸을 낳고 또 20년이 흐른 40세 초반에 능히 할머니가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경우는 아들딸의 아들딸을 손자손녀라 하므로 자연스럽게 호적상, 가족법상 할머니가 되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이분 할머니가 밖에 나가서 동료나 친구들에게 '나는 할머니'라고 자랑하는 경우는 적을 것입니다. 물론 적극적인 경우에는 40대초반에 할머니가 될 정도로 이 시대 저출산시대에 나라를 위한 애국활동을 하였노라 자화자찬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해당 시의원님은 이날 행사장에서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하십니다. 며칠동안 잠을 못 주무실 정도로 불편했다 하십니다. 이 행사를 치룬지 2주일쯤 후의 일입니다. 1년간 지방행정연수원에서 교육을 받고 있는 장기교육생 2명을 초청하여 저녁을 함께하는 중에 남성 시의원님이 전화로 급히 오라 하십니다. 이유를 묻지않고 식당으로 달려가보니 시의원님 여러명이 식사를 하십니다. 가면서 다시 남성 시의원님의 말씀을 들어본 바 바로 '할머니 시의원'이라는 발언에 대한 성토가 있었답니다.
식당에 들어가자마자 여성 시의원님 앞에 큰 사과인사를 드렸습니다. 의원님, 정말로 죄송합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아마도 식사중에 '할머니 시의원'발언에 대한 성토가 있은 줄 아는데도, 의원님은 담대하십니다. "뭐 그런 일을 가지고 일부러 여기까지 왔어요!" 흔쾌히 용서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1년이 흘러 정부로부터 홍조근정훈장을 받게 되어 시장님실로 가게 되었습니다. 시장님으로부터 훈장을 전수받고 몇곳 부서에 인사를 가던 중 시의회에도 방문했습니다. 의원님의 방을 순서대로 방문했지만 대부분 빈방이었는데 유독 '여성 시의원님'은 자리에 계십니다. 의원님, 제가 오늘 훈장을 받으러 왔습니다. 의원님께 감사인사 드립니다.
얼결에 인사를 받으신 시의원님의 표정이 개운하지 않습니다. 1년도 더 지난 '할머니 시의원'발언인데도 가슴속에 맺힘이 남으신듯 보입니다. 10년 가까이 지난 일이니 당시 67세이셨다면 지금은 77세이시겠군요. 이날의 실수를 전환기로 삼아서 시적인 표현, 수필적인 생각은 인사말이나 연설에서는 피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출간한 책에서 사회자의 흔한 실수를 지적한 것도 이날의 시의원님 소개 실수에서 기인한 것인가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는 절대 '할머니 시의원'이라는 표현을 하지 않겠습니다. 어느 행사장에서 누구를 소개할 일도 없을 것이니 일상의 대화에서도 조심하겠습니다. 그리고 책에서 언급한 사회자의 실수는 현역 진행자들이 가슴에 새겨주시기 바랍니다. 행사 중간에 시의원님을 소개할때, 바쁘신 일정속에서 오늘 행사에 참석하신 의원님이라 소개해 주시기 바랍니다. 절대로 '뒤늦게 오신 시의원님을 소개한다'고 상투적으로 말하지 마시기를 간곡히 바랍니다.

이강석 (李岡錫)
출생 : 1958년 화성 비봉
경력 : 경기도청 홍보팀장, 경기도청 공보과장
동두천·오산시 부시장 / 경기도균형발전기획실장
남양주시부시장 /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현직 :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저서 : '공무원의길 차마고도', '기자#공무원 밀고#당기는 홍보#이야기' 등 수필집 53권 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