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하는 특별한 사명감과 봉사정신으로 1998년 8월 집중호우로 많은 수해를 입은 동 주민의 손과 발이 되어 수해복구 작업에 많은 힘을 경주하여 조속한 시일에 복구되어 생업에 종사토록 한 공로에 보답고져 동 주민들의 정성을 모이 본 패를 드립니다. 1998년 10월 10일 동두천시 생연4동 11통 주민 일동. 이 패를 시청 월례조회에서 전하시겠다 하시므로 아니라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동장근무를 마치고 수원으로 복귀하면서 소중하게 품에 간직하였다. 1998년 동두천 수해는 아주 심했다. 당시에 동사무소 공무원들이 모두 나서고 시청에서 지원나온 공무원들의 힘을 보태서 이재민을 구호하고 피해를 복구하였다. 중간에 공무원들이 힘들다 할때마다 참고 견디자 말했다. 22년이 지난 지금도 당시의 어르신들과 1년에 두세번 통화를 하고 한 두번은 상호 방문을 한다. 지난해 장인의 빈소에도 여러분이 오셨고 당시의 공무원중에도 간부가 되어 먼 길을 달려왔다. 발령이라는 것은 인사부서의 여러 가지 요인에 의해서 이러저리 결정되는 것이지만 그 발령장 이후의 상황은 참으로 긴긴 이야기가 된다. 그래서 운명적인 일이라고도 한다. 이후에 더 큰 인연으로 만나게 된 것도 이미 그런 운명이
어제 하루종일 집에서 컴퓨터에서 시간을 보낸 관계로 오늘아침 절하기는 조금 힘이 들었습니다. 어제밤에 벤틀리와 윌리암형제를 보느라 늦게 잠자리에 든 바이므로 아침 5시50분에 기상하여 불교방송 아침 108배를 따라가는데도 힘이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어제 등산을 하거나 하천변을 걸었다면 오늘아침 108배를 올리는 다리와 허리의 힘이 용솟움칠 것인데 어제하루 의자생활만 한 것이 아침 108배에 그대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用不用說(용불용설)이라는 학설이 있습니다. 다윈의 진화론과 견주게 되는 학설로서 쓰면 발전하고 안쓰면 퇴화한다는 말입니다. 인류와 지구 생태계를 살펴본 다윈은 생명체는 현실에 맞게 진화한다는 학설을 내놓았고 이는 인류에게 큰 파장과 교훈과 인식의 변화를 주었습니다. 손으로 파리를 쫓을 수 있으니 인간의 꼬리는 퇴화한 것이고 소는 긴 꼬리로 엉덩이 부분의 파리를 뿌리치는데 꼬리를 스고 있습니다. 소꼬리를 보고 자동차 후방 윈도브러시를 만들었을까요? 하지만 말은 속도가 나서 파리가 앉은 시간조차 없으니 꼬리는 작아지고 바람을 가르는 목의 갈기는 잘 자라고 풍성해지고 있습니다. 수놈 사자의 갈기 또한 암사자에게 멋을 선사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고등동물
몇 년 전에 화성시 제부도에 여행을 가서 절벽에 매달린 소나무를 촬영하여 강의자료로 쓰고 있다. 부서지는 절벽의 돌 틈에 뿌리를 내리고 치열하게 바람의 흔들림과 파도의 울림을 버티고 있는 소나무를 보면서 우리의 삶을 돌아보고 미래를 향해 나가자고 역설하곤 했다. 그러다가 충남 홍성군 용봉산의 보물이라는 '옆으로 크는 소나무'를 알게 되었고 그 치열한 모습을 사진으로 보여주면서 삶의 의미를 강조했다. 절벽 바위틈에 뿌리를 내린 소나무를 보면서 그 씨앗이 바람을 타고 날아올라 그 돌틈으로 끼어들어갔고 이후 모세관현상으로 올라오는 틈새의 물을 양분으로 삼아 싹이틔우고 뿌리를 키웠을 과정을 상상해 보면 생명력의 치열함에 경이로움을 느낀다. 요즘에는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으로 강의한다. 경기도내 시청에 가서 적극행정에 대해 강의를 했다. 시청 4층 전산실에서 강의를 하는 줄 알았는데 강의 직전에 1층 재난상황실로 장소가 변경되면서 시간을 맞추기 위한 공무원들의 바쁜 모습을 보았다. 젊은 날 힘들었던 추억을 소환해 보았다. 비대면 이어서 강의 반응을 살필 수는 없었지만 절벽의 소나무, 바위틈에서 옆으로 크는 소나무 이야기는 감성 풍부한 젊은이들의 마음에 들어가기에 충
요즘 공직을 회고하는 글을 쓰고 있습니다. 글을 쓰면서 한일은 적은데 쓸 글은 많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글쓰기가 소일꺼리가 되는 것 같습니다. 전에는 글쓰기가 부담이었는데 이제는 행복의 그릇이 되고 있습니다. 윗몸 일으키기의는 몸의 균형을 잡는데 도움을 줄 것입니다. 108배를 올리고 나서 아침에 윗몸일으키기 운동을 하면 장이 편안해지고 뱃살이 부드러워집니다. 운동은 인체를 밝고 맑게 해주면서 정신을 바르게 만들어 줍니다. 초등학교때 1등을 여러 번 차지한 친구는 대학가서 경제학분야를 공부하고 증권회사에 들어가서 열심히 일했습니다만 경기가 흔들리는 과정에서 어려움이 있었는지 일찍 가족과 이별했습니다. 안양의 상가에 가서 조문을 했던 것이 10년이상 넘었습니다. 지금 십수년째 영겁의 세월을 향한 여행을 하고 있습니다. 아침에도 그 자리 저녁에도 움직임이 없습니다. 가끔 선산에 가면 하늘을 바라봅니다. 아주 긴 세월 바라볼 하늘을 기억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납골묘의 소나무도 바라봅니다. 조상 대대로 모셔진 이곳에서 다시 긴 세월을 살아야 할 것이라는 상상을 해보곤 합니다. 상상이 아니라 현실인 것을 인정하기도 합니다. 일본 나카소네 전 수상이 2
제29회 전국장애인체육대회가 9월21일부터 25일까지 여수시를 비롯한 전라남도 지역에서 열렸습니다. 목포, 순천, 나주, 광양 등 어려 곳의 경기장에서 개최되었습니다. 이번 장애인 체전 개막식에 참여하였고, 경기도 선수가 나서는 경기장을 방문하였습니다. 장애인들이 뛸 수 있는 종목이 참으로 많습니다. 축구경기는 시각, 지적, 청각, 뇌성으로 구분되어 경기가 펼쳐집니다. 휠체어 댄싱, 휠체어 테니스, 휠체어 럭비 등 속도경기 이외에도 많은 휠체어 스포츠 종목이 있습니다. 그리고 휠체어 농구도 있습니다. 오늘은 이 휠체어 농구에 대해 보고 들은 바를 알려 드리겠습니다. 일반 농구와 룰이 大同小異(대동소이)합니다. 출전선수도 양 팀 각각 5명입니다. 다만, 선수들이 모두 휠체어를 타고 농구경기를 합니다. 휠체어에 선수가 앉는 자리의 최대 높이는 54cm입니다. 그런데 키가 큰 선수는 더 높기 앉아있고 키 작은 선수는 낮게 앉아 있습니다. 그 이유는 개인적인 운동 능력의 차이때문이라고 합니다. 다리와 허리를 어느 정도 쓰는 선수는 높게 앉아서 공격을 하거나 수비를 하지만 어떤 선수는 가슴 위쪽만 움직일 수 있으므로 안정을 위해 낮게 앉을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가황 나훈아의 공연을 보니 모니터에 접속한 많은 방청객들이 박수를 치고 환호한다.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랜선관객으로 들어왔다. 공연 내내 춤을 추는 외국의 가족 모임도 있다. 제주도에서도 여사님들이 들어와서 환호했다. 멋지게 디자인한 앰블램을 자신이 보고 흔들었다. 다음번 다른 랜선공연을 준비하는 PD가 고려했으면 한다. 화면에는 거꾸로 나온다. 이를 지적하는 직업병에 대한 이해를 청한다. 코미디프로그램에서는 랜선이 양방향으로 움직인다. 랜선관객의 화면에 X가 여러개 보이면 개그맨은 퇴장당한다. 검은 옷을 입은 건장한 체구의 경비원이 끌어낸다. 분위기를 다운시킨 잘못을 징벌하는 것이다. 짧은 코미디 공연시간에 풀타임으로 나오고 싶을 것인데 초반에 끌려나가면 아쉬움이 크겠다. 최근에 행정안전부 지방자치인재개발원과 연결하여 지정강사로서 '적극행정 면책'에 대한 강의를 했다. 처음에는 전북 완주시 소재 행정안전부 소속의 지방자치인재개발원에서 대면강의로 준비했는데 코로나19로 인해 두 번 연기되었고 랜선강의로 변경되었다. 인터넷이나 노트북에 익숙하지 않아서 긴장이 컸다. 라이브 방송 30분 전부터 긴장하고 기다렸다. 화면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면서 이야기를 시작
"네가 만약 늙은 어미보다 먼저 죽을 것을 불효라 생각한다면 이 어미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너의 죽음은 너 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것은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짓이다. 네가 나라를 위해 이에 이른즉 딴맘먹지 말고 죽으라." 사형 전, 안중근 의사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가 아들에게 보낸 편지다. 이 편지는 이렇게도 요약 기록되었다. "옳은 일을 하고 받는 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걸하지 말고 대의에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다." 2012년 공무원 장기연수프로그램 첫날에 이 편지에 대한 강연을 들었다. 낮에 국립현충원 참배를 하였고 오후에 2박3일간의 현장 합숙교육이 이어졌다. 공무원 교육에서 정말로 필요한 내용이라는 공감을 했었다.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 조마리아(1862~1927) 여사는 러시아 동부 각지를 돌며 동포들의 독립의식과 민족의식 고취를 위한 강연활동을 전개했다. 1907년 7월 안중근은 독립운동을 위해 고국을 떠나고자 돈의학교 교장직을 사직하고 모친인 조마리아에게 작별을 고하자 여사는 아들 안중근에게 “집안일은 생각하지 말고 최후까지 남자답게 싸우라”격려했다. 어머니의 가르침은
1977년 5월16일에 공직 발령을 받고 비봉면사무소에 도착하니 안희창 선배가 반겨줍니다. 저에게 처음으로 이서기라는 말을 하신 분이고 근무중 홍무표 면장님 퇴임식날 저녁 회식에서 소주를 많이 마시고 회의실 천장의 서고로 올라가 써러진 이강석을 깨워서 숙직실에 재웠습니다. 술에 취해 초임 공무원의 애환과 술주정을 들어주시고 다음날 아침에 라면을 끓여주셨습니다. 어느 날 이 같은 기억을 말씀드렸지만 기억나지 않는다 하십니다만 그당시에 나눈 말씀으로는 술취해서 하는 말이 모두가 하나같이 초임 공무원의 고충이어서 공감이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당시의 선배님들을 기억하고 마음속으로 새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병무청 신체검사를 받고 군에 입대하기 위하여 휴직을 하고 면사무소를 떠났습니다. 1977년 5월16일부터 1979년 2월3일까지 21개월17일을 근무하고 휴직하여 14개월간 군복무를 하였고 1980년 4월14일에 軍(군) 제대후 화성군청에 복직을 신청합니다. 그런데 화성시청, 당시 군청에서 곧바로 빈 자리에 배치하지 않고 잠시 기다렸다가 교통여건이 어려운 팔탄면사무소에 배정합니다. 1980년 5월10일자로 발령을 받고 팔탄면사무소에서 근무를 시작하였는데 5월
▧ 434년 전에도 1998년 - KBS 보도/ 2020년 기준 434년전 지금부터 430년 전인 1586년 6월 1일 안동시 정하동에 살던 고성 이씨 양반(이응태)이 병마를 이겨내지 못한 채 31살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다. 임신중이던 아내는 병이 중한 남편의 쾌유를 위하여 자신의 머리카락을 삼 줄기에 묶어 엮은 미투리와 함께 언문(한글)으로 쓴 편지를 남편의 가슴에 얹어 남편을 묻는다. 1998년, 택지 개발이 한창이던 경북 안동시 정상동 기슭에서 주인 모를 무덤 한 기의 이장(移葬) 작업이 있었다. 시신을 보호하는 외관(外棺)은 갓 베어 놓은 듯 나뭇결이 살아 있어 혹시 최근에 조성된 무덤이 아닌가 추측 되기도 했다. 그러나 야간까지 이어진 유물 수습 과정에서 무덤은 수백 년 전의 것으로 판명되었다. 유물을 절반쯤 수습했을 무렵 망자의 가슴에 덮인 한지(韓紙)를 조심스레 벗겨서 돌려 보니 한글로 쓴 편지가 있었다. 남편의 갑작스런 죽음을 맞으며 아내가 쓴 이 편지는 수백 년 동안 망자(亡者)와 함께 어두운 무덤 속에 잠들어 있다가 이장하는 과정에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사랑하는 이를 잃은 슬픔을 고스란히 전하며 심금을 울렸던 이 편지는 남편
초등학생 때는 그림일기를 그리고 단어 한두개를 그림 사이에 써넣었다. 고학년이 되면서 노트에 연필로 일기를 적었다. 그날의 중요한 일들을 기록하는 일기는 선생님의 숙제이기도 하니 열심히 적어보았다. 사실은 그런 습관이 글짓기의 역량을 보충해 준 것 같다. 억지로라도 글을 쓰다보니 문장을 만드는 머릿속 생각이 넓어지고 대략 문장을 끊고 마감해야 할 감이 잡히는 것 같았다. 중학생이 되어서는 잉크에 펜촉을 찍어서 글씨를 썼다. 뾰족한 금속의 필기감은 연필과는 달랐다. 펜촉으로 열심히 글씨를 쓰면 더 아름답고 멋진 글씨를 기록할 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스스로 위로하니 수재 惡筆(악필)이다. 공부좀 하고 머리가 좋으면 글씨를 못 쓴다고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신은 공평하다고 말한다. 예쁜 얼굴을 주는 대신에 거친 목소리로 말하도록 만들어진다고 주변 사람들을 위로한다. 그래서 펑펑 우는 여자아이를 달래보니 우는 이유가 美人薄命(미인박명)이란다. 중국의 미녀 楊貴妃(양귀비)는 속병이 있었다 한다. 속이 쓰려서 얼굴에 인상을 쓰는데 그 모습에 당태종이 반했다는 것. 여인은 속이 아프다는데 그 모습이 예쁘다는 말이다. 그러니 미인박명은 누구나 쓸 수 있는 단어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