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가 있겠습니까만은 그래도 한밤중이 지나면 새벽이 오곤 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생각해 보니 새벽이 오지 않으면 아침도 없고 아침이 없으면 점심이 존재하지 아니하며 이후 저녁까지 이어질 명분이 없을 것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가 아 있다고 합니다.
아이가 자지러지게 우는 것을 달래다보니 팔뚝에 핀이 꼽힌 것을 발견하였고 어머니는 급한 마음에 핀을 빼면서 날카로운 바늘을 안전하게 관리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고 오늘날 옷에 꽂은 후 바늘을 숨기는 옷핀을 발명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이니 이 세상에 모든 좋은 일의 구심체는 어머니이고 야단치는 사람은 嚴親(엄친)이라 해서 아버지입니다. 대신에 어머니는 자애로운 분이니 慈堂(자당)이라 합니다. 돌아가신 자신의 아버지는 先親(선친)이라하고 남의 아버지는 椿府丈(춘부장)이라 하는데 이는 장수를 기원하는데서 유래합니다.
<검색결과> 춘부장과 자주 헷갈리는 단어로 선친(先親)이 있는데 이건 자녀가 자신의 돌아가신 아버지를 남에게 일컫는 단어라 남이 "자네의 선친께서는~" 식으로 쓸 단어가 아니다. 선친은 망자의 자녀가 "저의 선친께서는~"처럼 자신의 아버지를 일컬을 때만 쓰고, 남이 그 자녀의 죽은 아버지를 일컬을 때에는 선대인(先大人)이라 한다(ex. 자네의 선대인께서 살아생전에~"). 자녀가 자신의 살아 있는 아버지를 남에게 일컬을 때에는 가친(家親)이라 한다.
이 새벽에 일어나서 몸을 움직거리고 생각이라는 것을 하고 그런저런 소소한 일들을 여기에 적어두는 것도 어찌보면 존재의 표현이고 살아있음에 날개짓하는 하루살이 같은 처절한 삶의 모습일 것입니다.
초봄의 어느 날에 벌레가 다음 길을 찾아가려 풀가지에 올라서 몸을 비트는 모습을 보던 선비가 있었습니다. 언제까지 길을 찾아 헤매일까 궁금하여 벌레의 행동을 살피던 선비는 그만 스스로 춘몽에 듭니다. 나른한 봄날의 잔디밭입니다. 선비는 꿈속에 하늘나라로 올라가서 80세까지 아주 많이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리고 하늘나라에서도 수명이라는 것이 있어서 운명하였고 그 행복한 삶이 끝나자 곧바로 현실로 내려와 깜빡하고 잠에서 깨었습니다. 자신이 20세에 하늘나라에 올라가서 80세까지 살았던 바인데 깨어보니 다시 20세의 청년으로 돌아왔고 꿈을 꾸기 전에 보았던 그 벌레는 아직도 갈피를 잡지 못하고 하늘을 향해 꿈틀거리고 있습니다.
주변의 사람들은 유사한 꿈 이야기를 듣고 인생은 '一場春夢(일장춘몽)'이라 칭하면서 열심히 살자고 격려하던 바인데 이 청년의 이야기를 상세히 들어본 훈장 어르신이 다시 인생을 '南柯一夢(남가일몽)'이라 했다고 합니다.
남쪽으로 뻗은 가지위의 벌레를 관찰하다가 하늘나라에 올라가 행복하게 살았지만 깨어보니 다시 현실이고 벌레는 아직도 꿈틀거리더라는 이야기입니다.
실제로 60년만에 돌아왔는데 그 벌레가 자자손손 60년째 길을 찾아서 헤매인 것인가 생각해 볼 수도 있겠지만 청년이 하늘에 다녀온 것은 60년의 세월이 아니라 6초에 이르지 못하는 짧은 순간이었을 것입니다.
우리의 꿈은 아주 짧은 순간에 기승전결에 이른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꿈을 꾼 본인은 자신에 대한 이야기 이니 이를 스토리텔링으로 잘 꾸미고 설명하고 관리하고 기억하게 되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꿈은 기억되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만 오늘 새벽의 꿈은 그대로 기억되고 앞으로도 머릿속에 남아있을 것 같습니다. 따로 적어두었으니 훗날 수필집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꿈을 꾸는 것은 내일을 향한 항해입니다. 지금 품고있는 꿈이 이루어지도록 늘 경계하고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원로정치인 권노갑 선생이 93에 영문학박사에 도전하신답니다. 83세에 최고령 석사를 받으신 분입니다. 골프도 92세부터 늘었다고 자랑을 하십니다.
외국의 어느 노인도 도전정신을 말했습니다. 80세에 러시아어를 배우기 시작한 이유는 90세에 이를때에 10년전에 아무런 도전을 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지 않기 위함이라 말했습니다. 정말로 인간은 살아있는 동안에 무수히 도전할 수 있습니다. 작은 것이든 큰 일이든 인간이기에 도전할 수 있습니다.
다음주에 장애인인식개선강사로서 2시간식 두번 강의를 합니다. 장애인과 장애인을 돕는 분들을 위한 강의를 하면서 오히려 인생을 배우고 있습니다. 장애인의 어려움과 장애인의 도전을 배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최근에 두번 싸우나탕에서 휠체어를 타고오신 장애인을 만났습니다. 선뜻 때밀이를 해드리고 싶었지만 아직은 도전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혼자오신 것으로 보아서 스스로 목욕이 가능하신 분으로 판단했습니다. 비장애인끼리 처음 만나서서 등을 밀어주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요즘 세대 요즘 시대의 분들은 모르는 사이에는 등밀기조차 하지 않습니다.
코로나19이후의 세태이거나 과거 돌리던 소주잔을 개인의 앞잔으로 해서 서로간에 술만 부어주는 방식으로 바뀐 이후에 함께 변한 사회적 행태입니다. 중국에서는 행인이 쓰러져도 빙 돌아서 갈길을 간다고 합니다. 우리사회가 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긍정보다는 부정적인 측면으로 기울어가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새벽이 오고 낮을 거쳐서 다시 저녁을 맞이하듯이 우리사회의 변화도 급하게 오지 말고 빠르게 지나가지 말기를 바랍니다. 이른바 미풍양속이 오래 머물고 公序良俗(공서양속)이 그 채로 자리 잡아서 우리의 사회를 아름답게 꾸며주기를 바랍니다.
일장춘몽, 남가일몽하는 인생이 아니라 일일이 여삼추하는 세상을 맞이하도록 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강석 (李岡錫)
출생 : 1958년 화성 비봉
경력 : 경기도청 홍보팀장, 경기도청 공보과장
동두천·오산시 부시장 / 경기도균형발전기획실장
남양주시부시장 /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현직 :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저서 : '공무원의길 차마고도', '기자#공무원 밀고#당기는 홍보#이야기' 등 수필집 53권 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