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원도 가족여행 ▤
-삼척솔비치, 촛대바위, 환선굴, 정선하이원리조트, 한반도지형, 법흥사, 단종역사관, 청령포(잠시 배를타고)- 2020. 7. 16~ 7. 18
2020년 7월16일 아침에 출발을 준비합니다. 우리의 차는 물과 음식과 옷과 개인용품을 가득 싣고 기우뚱 거리면서 오랜만에 동수원 IC를 올라서서 강원도길로 달리기 시작합니다.
참으로 시원스럽게 내달리고 달려가서 삼척 솔비치에 도착하였습니다. 바리바리 준비한 짐을 들고 끌고 숙소에 들어가 각자 자리를 잡았습니다. 무한 리필 횟집에 갔습니다.
2시간 무한이라 합니다만 매운탕이 없어서 우리는 C-1코스를 선택했습니다. 평소 식사량이 많은 편이 아니기에 양보다는 맛으로 정했습니다.
처음에 회가 나오는데 그냥 막회입니다. 물회에 넣기 직전의 회처럼 싱싱한 회를 그냥 접시에 올려다 주었습니다. 주방장님이 꾸밈보다는 신선과 신속인 듯 보입니다.
빨리 나오고 싱싱합니다. 처음에는 양이 적다는 생각을 하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코스 전체를 돌고나면 회는 적정량이었습니다. 그 다음에 다양한 바다 잔치가 이어지고 매운탕으로 마무리하니까요.
중간에 조개구이 타임이 가장 맛나고 재미있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여러 가지 조개가 나왔고 이를 가스 불에 구우니 바글바글 끓어올라 국물이 잦아질 즈음에 육수와 함께 먹는 맛이 있습니다.
긴 여행의 피로를 뜨거운 물로 풀고 오전을 여유롭게 맞이했습니다. 새벽바다의 파도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저 파도는 어제저녁부터 자정을 지나 새벽까지 끊임없이 이곳 삼척의 솔비치 해안가 모래를 몰았다가 흐트렀다가 다시 모으는 작업을 이어왔습니다.
백사장에 나름의 그림을 그렸다가 지우기를 반복합니다. 저녁 9시부터 시작했다 치고 아침 5시까지 그리했다하면 8시간입니다. 8시간이면 480분입니다.
1분에 10번 파도를 친다면 4,800번을 밀어주고 당겨주는 반복의 시간입니다. 밤새워도 3,000배를 올리기 어려운데 파도는 매일밤마다 5,000배를 올리는 구도승의 마음으로 저녁을 맞고 아침을 이어갑니다.
그 시간 그 과정에서 그려지는 모래위 사연과 바다속에서 움직이는 물살의 반복으로 이 세상이 꾸려지는가 생각합니다. 파도가 치는 것은 바람의 힘이기도 하겠지만 달이 밤새 잡아당긴다 합니다.
지구에 다가서는 달의 인력으로 바위와 흙은 움직이지 못하지만 물과 공기를 당기고 그 틈새에서 모래가 움직이며 이런 모습을 보는 중생의 마음속에 어떤 큰 깨달음이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바다가 움직이지 않고 바람이 멈추며 하늘 위 별마져 반짝이지 않으면 이 세상은 고요와 정적만이 있을 것입니다.
파도소리 철석 거리는 소리에 아침잠을 깨는 이곳 강원도 해안가 주민들이야말로 축복받은 곳에서 태어난 것인데 그런 줄 모르고 힘들게만 생각하시는 것은 아닐까 걱정을 해 봅니다.
산속에서 사는 이, 들판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에게 새벽 파도소리를 들을 일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사람들은 코로나19를 피해서 강원도로, 강원도 해안가로, 산속으로 달려옵니다.
우리 가족의 2박3일 여행코스도 첫날은 바다, 둘째날은 환선굴 지하, 셋째날은 하이원 리조트 산속과 산정상의 적멸보궁 입니다. 참으로 절묘한 여행코스입니다.
다음 날 아침 모든 짐을 싣고 전원이 승차하여 동해의 바닷가를 산책하였습니다. 삼척과 동해시의 경계입니다. 외국인 자전거 여행자가 스탬프 박스에서 메모하고 촬영하고 도장을 찍습니다.
아예 노트 한 권을 가지고 다니면서 적고 찍고 기록합니다. 멋진 젊은이의 아름다운 여행 공책이 될 것입니다. 바닷가에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촛대바위는 죽은 남편의 혼령이라는 전설이 있다고 합니다. 아름다운 바위가 많이 올라서 있는데 주변에서 공사를 하는 타워크레인의 기둥과 겹쳐서 멋진 뷰는 나오지 않습니다.
환선굴에 도착하였습니다. 환선굴은 1662년 허목선생이 저술한 척주지에 최초 기록이 나옵니다. 1966년 국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고 (178호) 1996년에 군립공원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우리나라 석회암 동굴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웅장하고 거대합니다. 총연장 6.2km이고 1.6km구간을 개방합니다. 5억3천만년 전에 생성된 것으로 추정하며 39종 생물이 서식하고 있고 온도는 10~14도 습도 86~96%를 유지하면 수온은 10~13도입니다.
전체 관람은 2시간이 소요되고 09:30~17:00에 가시면 동하절기 모두 관람 가능합니다. 입장료는 4,500원이고 경로와 청소년 3,000원, 어린이 2,000원입니다.
4식구가 용기를 내어 입구까지 30분 넘게 가파른 고갯길을 걸어서 올랐습니다. 바로 옆으로 모노레일이 지나갑니다. 402m이지만 평지로 치고 마음으로 보면 1,000m가 넘겠습니다. 4식구가 밀고 당기면서 쉬면서 올라갔고 내려올 때는 엄마 아빠는 편도 4,000원을 내고 모노레일을 타고 내려왔습니다.
입구 100m부터 지하동굴의 찬 공기가 느껴집니다. 차분히 습기 찬 길을 걸어들어갑니다. 정말로 경외에 찬 마음으로 차분히 한발두발 걸어가야 합니다.
새신을 신고 깡총 뛰듯하면 안됩니다. 무수한 철판계단이 습기를 머금어 미끄럽습니다. 더구나 눈과 얼굴은 동굴의 천정을 보느라 팔다리의 자세가 평소와 다릅니다. 몸의 균형이 맞지 않으니 더더욱 발거름에 신경을 써야합니다.
경외에 찬 모습으로 입을 벌리고 놀라도 됩니다. 천연기념물인 동굴을 보존하기 위해 조명을 낮게 하였으므로 옆사람의 얼굴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니 입을 벌려도 그 모습을 보는 이가 없습니다. 사진을 찍어도 흐리게 나옵니다. 낮은 조명과 습도가 적당하게 가려줍니다.
며칠 전에 강원도에 큰 비가 내렸습니다. 동굴속 폭포가 여러곳에서 분출하고 동굴 바닥으로 거대한 시냇물이 흘러갑니다. 그 물이 조금전 올라오면서 바라본 길게 흐트러져 내려가는 폭포수입니다. 그 폭포가 환선굴 입구에서부터 시원스레 반겨주는 계곡의 하천을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비가 내려 흐르는 물이 석회암을 녹이고 그 물이 지하로 흘러 동굴의 천정에서 방울방울 떨어져서 석순을 만들고 있습니다. 자료에서 설명드린 바 대로 5억3천만년전부터 시작한 미완의 조형물 작업이 오늘도 이어지는 것입니다. 동굴속에서 지구의 역사와 인간의 존재에 대해 생각하고 자신의 시간을 느껴봅니다.
지옥의 계단을 지나갑니다. 크레바스라는 단어가 떠오릅니다.
[사전] 크레바스 (crevasse) 빙하의 표면에 생긴 깊은 균열. 빙하가 유동(流動)할 때 암반의 경사 변환부, 굴곡부, 곡벽(谷壁) 근처 따위에 생긴다.
크레바스란 빙하의 얼음이 균열으로 깨진 틈 사이를 말합니다. 통상 크레바스는 깊고 좁으며 직벽 상태로 구성되어 있고, 대량의 빙하 녹은 물이 급류를 이루어 흐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크레바스는 수시로 생성과 이동이 빈번하게 발생하여 위치 파악이 어렵다고 합니다. 하지만 환선굴의 지옥계단 아래 무서운 계곡은 늘 그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바위와 빙하의 차이인가 생각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만리장성 구간이 있는데 정말로 중국의 만리장성처럼 둘러쳐진 병풍같은 구간이 있습니다. 거꾸로 매달린 양 모양의 저 종유석이 생성되는데는 얼마의 시간이 걸렸을까 생각해봅니다.
100년이 1,000번도 더 지나갔을 것입니다. 함부로 손을 대서는 안 됩니다. 손으로 슬쩍 문지르기만 해도 그 부분은 100년 과거로 돌아갈지도 모릅니다.
환선굴을 나서니 점심시간이 많이 지난 오후 2쯤 되었습니다. 맛집을 찾아야 합니다. 굴에 입장할 때 빵, 과자 등으로 간식을 먹었기에 크게 배고픈 것은 아니지만 식사 때가 지나갔습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했습니다. 여행은 구경도 좋고 맛집을 찾아가는 행복도 있습니다. 길을 내려오다 만난 막국수집에 들어갔습니다. 노부부가 하시는데 한창때는 손님들이 2시간을 기다린 곳이라 자랑하십니다.
조금 늦기는 했어도 이시각에도 밖에 줄을 서야 하는데 코로나19로 인해 5~6세 아이를 데려온 젊은 부부와 우리 4식구가 전부입니다.
엄마와 현아는 비빔보통, 현재와 아빠는 물막국수 곱을 주문했습니다. 막국수의 맛은 비빔입니다만 물막국수에는 장뇌삼이 들었다는 말씀에 커피를 타 마시다 말고 남은 국물을 원샷 드링킹했습니다.
현재는 조금 남겼습니다. 일단 면발이 좋고 탱글하므로 기분이 좋았습니다. 위치로 보나 노부부의 말씀을 들어보아도 이 근방, 환선굴 손님을 맞이해온 맛집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기분좋게 늦은 점심을 먹고 나서는데 다음 숙소 하이원리조트에 5시전에 도착해야 알파인코스터를 탄다고 하므로 스피드를 내서 달려보았습니다. 약 15분을 당겨서 충분한 시각에 내려주고 부부는 짐을 날랐습니다.
35평이라는데 넓지는 않습니다. 공유면적을 내주면 손님에게 다가오는 평수는 크지 않습니다. 시골집 단칸방 5평은 넓은데 리조트 20평은 좁아 보입니다.
하지만 주방의 인덕션은 큰 소리를 내면서 맹렬하게 데워주고 끓여냅니다. 시원스럽게 돌아가는 압력밥솥에 밥을 지어 저녁을 먹으면서 소주 한팩을 하였습니다.
3인은 저녁산책을 나갔지만 아빠는 술에 취하고 운전에 취해서 잠들고 말았습니다. 얼결에 잠이 들었고 밤 12시에 기상하여 소파에서 자다가 다시 방에서 잠을 청한 후 5시에 기상하여 108배를 어렵게 올렸습니다.
절방석이 없으므로 베개를 방석삼아 절을 하고자 하니 많이 불편합니다. 목베개는 빼도 절방석은 여행품목 리스트에 추가하고자 합니다. 어느날에는 절방석 풀세트를 가져가서 1,000배에 도전해야 하겠습니다. 절을 마치고 산책을 나갔습니다.
저녁형 인간인 남매와 달리 아빠는 아침형입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하는 일이 많습니다. 차분히 집을 나서서 걷고 가다보니 산길이 나옵니다. 뱀을 조심하라 합니다. 하지만 산책길이 넓으니 안전합니다.
그냥 차분히 힐링하는 마음으로 걷고 오르다보니 산 준령을 타고 올라가는 길에서 약식 목어를 발견했습니다. 세상의 물고기를 깨운다는 목어입니다.
막대를 들어서 100번 두드렸습니다. 108배를 올리는 심경으로 열심히 물고기의 기상을 독려했습니다. 아침형 인간이 되라고 늦잠을 자는 모든 중생에게 힘찬 목탁으로 경종을 울렸습니다.
산을 내려와 숙소에 드니 4,000보입니다. 아침 108배를 합하면 5,000보라 해도 되겠습니다. 다시 차분히 아침을 기다려야 합니다. 이번 여행은 양보여행, 배려여행, 힐링여행이므로 급하게 서두르지 않기로 했습니다. 존중하고 배려하고 신경쓰는 단체활동을 다짐하였습니다.
이제 영월의 단종왕릉으로 갑니다. 왕세손, 세손, 왕, 상왕 등 짧은 시간동안 조선시대 모든 왕중에 가정 높은 수준의 왕이 되는 절차를 갖춘 분이지만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습니다.
[설명] 단종은 조선 제6대 왕(재위 1452∼1455). 문종의 아들로 어린 나이에 즉위하여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상왕이 되었다. 이후 단종 복위운동을 하던 성삼문 등이 처형되고 서인으로 강등되어 결국 죽음을 맞이하였다.
[청령포 설명] 1971년 12월 16일 강원도기념물 제5호로 지정되었다가 2008년 12월 26일 명승 제50호로 변경되었다. 영월군 남면 광천리 남한강 남한강 상류에 있다. 강의 지류인 서강(西江)이 휘돌아 흘러 삼면이 강으로 둘러싸여 있고 한쪽으로는 육륙봉(六六峰)의 험준한 암벽이 솟아 있어서 마치 한반도처럼 생긴 지형이다.
1457년(세조 3) 6월 조선 제6대 임금인 단종(端宗)이 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유배되었던 곳이기도 하다. 그해 여름, 홍수로 서강이 범람하여 청령포가 물에 잠겼다. 단종은 강 건너 영월부의 객사인 관풍헌(觀風軒)으로 처소를 옮기기 전까지 두어 달간 이곳에서 생활하였다.
워낙 지세가 험하고 강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단종이 이곳을 '육지고도(陸地孤島)'라고 표현했다고 전한다. 청령포에는 단종이 그곳에 살았음을 말해 주는 단묘유지비(端廟遺址碑)와 어가, 단종이 한양을 바라보며 시름에 잠겼다고 전하는 노산대, 한양에 남겨진 정순왕후를 생각하며 쌓은 돌탑, 외인의 접근을 금하기 위해 영조가 세웠다는 금표비(禁標碑)가 있고 관음송(천연기념물 349)과 울창한 소나무숲 등이 남아 있다. 단종은 그해 10월 관풍헌에서 17살의 어린나이에 숨졌다.
관음송은 단종의 슬픈 인생사를 알고 있다. 하지만 큰 나뭇가지를 꼬아올릴뿐 다른 말이 없다.
[설명] 나무의 높이는 30m 정도로서 우리나라에서 자라고 있는 소나무 중에서는 가장 키가 큰 나무이다. 나무의 지상 1.2m 정도에서 두 개로 갈라져서 자랐는데 갈라진 줄기의 밑둘레는 3.6m와 2.95m이다. 수관의 너비는 동서쪽 23.3m, 남북쪽이 20m이며 지상 12.5m에서 가지가 갈라져서 학의 날개처럼 퍼져 있다.
수령은 약 600년 정도로 추정되는데 이것은 단종 유배시의 수령을 80년 정도로 보고 계산한 것이다. 이 나무의 주변에서 자라고 있는 나무는 이 나무의 종자에서 퍼져나간 나무일 것이라고 한다.
단종은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이곳에서 유배생활을 하고 있을 때 자주 이 나무에 걸터앉아서 서울쪽을 바라보며 오열했다고 한다. 그래서 단종이 이 나무에 걸터앉은 비참한 모습을 보았으며(觀), 오열하는 소리(音)가 들렸다고 하여 관음송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법흥사 적멸보궁에 도착하였습니다.
[설명] 강원도 영월군 무릉도원면 법흥리에 있는 절. 자장(慈藏)이 643년(선덕여왕 12) 당나라에서 돌아와 평창 상원사(上院寺), 정선 정암사(淨巖寺), 양산 통도사(通度寺), 인제 봉정암(鳳頂庵) 등에 부처의 진신사리(眞身舍利)를 봉안하고, 마지막으로 이 절을 창건하여 역시 진신사리를 봉안했으며 흥녕사(興寧寺)라고 이름 붙였다.
이후 절중(折中)이 중창하여 사자산문(獅子山門)의 중심도량으로 삼았으며, 891년(진성여왕 5)병화로 소실되었고 944년(혜종1)에 중건하였다. 그 뒤 다시 불타서 천년 가까이 소찰로서 명맥만 이어오다가 1902년 비구니 대원각(大圓覺)이 중건하고 법흥사(法興寺)로 개칭하였다.
1912년에 다시 화재로 소실된 뒤 1930년에 중건하였으며, 1931년의 산사태에 옛 사지 일부와 석탑이 유실되었다. 법흥사는 신라시대 자장율사가 부처의 진신사리를 봉안하고 창건한 흥녕사이다.
법흥사의 적멸보궁에 올랐습니다. 참 좋은 자리에 모셔졌습니다. 부처님 진신사리를 친견하기 위해 올라갔는데 적멸보궁의 바위틈새에 구렁이가 몸을 틀고 있습니다.
주변의 신도들에게 알리고 함께 관람하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땀을 벌벌 흘리면서 108배를 올렸습니다. 땀이 후드득 떨어집니다. 아마도 적멸보궁에서 구렁이를 만난 일은 평생 기억할 것입니다. 사진도 있으니까요.
적멸보궁 안에는 부처의 삼존불이 없고 뒤쪽으로 뻥뚫린 창만 하나가 있습니다. 산 전체가 부처의 몸이라고 전하는 법흥사 적멸보궁의 뜻이라 합니다.
다음으로 한반도 지형을 보았습니다. 아주 지루한 길을 걸어가니 산 절벽에 이르고 건너편에 차분히 흐르는 강 위에 한반도가 나타납니다. 누군가가 여러 번 보다가 대한민국 지도와 비슷하다는 점을 확인하였을 것입니다. 정말로 여유롭게 흘러가는 강물과 함께 한반도의 평온을 기원하는 모습입니다.
여행의 일정을 마치고 고속도로를 달리고 달려서 여주를 지나 이천을 거쳐서 용인의 현재 단골집에서 자장면과 탕수육을 먹었습니다. 엄마는 매운짬뽕을 잘 먹었습니다.
3일만에 집에 돌아오니 할 일은 빨래입니다. 아빠는 장거리 운전에 지쳐서 그냥 앉아만 있습니다. 영화 벤허를 보면서 쉬고 있습니다. 빨래 등 정리를 한 엄마가 잠시 쉬면서 함께 영화를 보았습니다.
여행기간 내내 함께하면서 배려하고 격려하고 칭찬해준 가족 모두에게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푹 쉬시고 일요일도 쉬신 후 월요일부터 다시 일상의 일을 할 것입니다.
올여름 휴가는 이렇게 보람차고 재미있고 맛있게 마치겠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아빠가 씀!!!
차량일지 44,612 - 44,006 = 606km

이강석 (李岡錫)
출생 : 1958년 화성 비봉
경력 : 경기도청 홍보팀장, 경기도청 공보과장
동두천·오산시 부시장 / 경기도균형발전기획실장
남양주시부시장 /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현직 :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저서 : '공무원의길 차마고도', '기자#공무원 밀고#당기는 홍보#이야기' 등 수필집 53권 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