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그치는 듯 보이므로 광교산 등반을 결행하였고 열심히 한걸음 두걸음 형제봉 정상을 향해 걸었습니다. 보통의 경기대에서 주차후 출발하는 코스를 피해서 조금 가까운 문안골을 지나서 영동고속도로 지하도를 거쳐서 형제봉 인근의 나무계단 부근으로 직행하는 등산로를 선택했습니다.
비가 내리는 날씨이고 국경일 대체휴무일인 월요일이어서인가 시민들의 발길이 뜸해서 아주 편안한 산책을 즐기게 되었습니다.
혼자만의 생각에 잠긴 채 길을 걸어 오르는데 잘잘한 상수리나무의 도토리가 보입니다. 깊어가는 가을이고 마침 비가 내려서 상수리 껍질이 부드러워진 터라서 하나 둘 도토리가 떨어지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리고 등산객도 적으므로 떨어진 도토리가 쉽게 눈에 띄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도토리는 이 길가에 떨어져서 등산객의 관심을 끌기 위한 것이 아니라 부드러운 땅위에 떨어져서 깊이 박힌 후에 다람쥐 등 산짐승 천적의 공격을 기하고 차가운 겨울을 거친 후, 내년봄에 도토리의 양분으로 땅속에 뿌리를 내리고 그 뿌리의 힘으로 지상에 푸른 잎을 올려보내어 태양을 만나서 광합성을 통해 또하나의 어미나무, 아비나무를 닮은 묘목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거치고자 어미몸에서 분리되어 낙하한 것입니다.
아마도 어미나무는 지난 봄부터 이른 가을까지 도토리를 키워내고 그 작은 알갱이 속에 올 가을부터 앞으로 200년을 살아갈 유전적 인자들을 한가득 담아주었을 것입니다. 인간이 만든 컴퓨터 100대 이상의 용량이라고 상상해 봅니다. 혹은 컴퓨터로는 알 수 없는 프로그램이 저 도토리 몸속에 저장되어 있겠지요.
이처럼 거대한 정보를 담은 도토리가 인간이 만든 등산로에 떨어지면 그냥 등산화에 밟혀서 으스러지거나 아이들의 장난감이 되어 서랍장에서 말라 버리거나 할머니 손에 잡혀서 도토리묵 가루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또 하나의 나무가 되기 위해 떨어진 도토리의 사명을 다하도록 하기 위해 올라가는 길에 길가에 떨어진 도토리를 주워서 산위 풀숲으로 던졌습니다. 가서 좋은 자리를 잡고 그 생명의 역할을 다하라는 염원을 실어서 보냈습니다.
형제봉 정상에 올라 수많은 아파트와 건물을 바라보면서 참으로 집이 많다는 생각을 하였고, 이어서 이 산속에서 올해 가을에 땅으로 떨어진 도토리 숫자와 비교해 보는 엉뚱한 상상을 했습니다. 그리고 떨어진 도토리는 아파트 방수보다 많겠지만 내년봄에 싹을 틔우는 숫자는 아파트를 따라잡지 못할 것이라는 나름의 결론을 내려보았습니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도토리의 발아 확률을 높이는 방법을 생각해 냈습니다. 내려오는 길에 만난 도토리는 들고 온 우산대로 이 도토리가 큰 나무로 성장할만한 자리를 콕 찍은 후 그 안에 넣었습니다. 그냥 던지는 경우보다 싹이 날 확률이 높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대략 14년전에 어느 사찰 벤취에서 잠시 홀로 명상을 하던 중 머리위에 서있는 나무에서 커다란 도토리가 바람의 작은 흔들림을 신호로 떨어지더니 어깨를 때리고 데구르르 굴러갔습니다. 이 광경을 보고 운명적 만남인가 하는 생각을 한 바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소감을 적어서 글로 남긴 바가 있습니다.
과거 출근길이나 최근 산책길에 길을 횡단하는 지렁이를 발견하면 작은 나뭇가지로 들어서 풀밭으로 보낸 바가 있습니다. 지렁이는 태초에 지구의 거친 돌을 갈아서 오늘의 옥토를 만들어냈다고 가정합니다.
그래서 어쩌면 지렁이가 이 옥토의 주인일 것이라는 문학적 상상을 하곤 했습니다. 그래서 인간이 만든 시멘트길로 인해 지렁이가 무참하게 죽어가는 것을 몇 마리라도 살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지렁이 구하기’에 나섰던 것입니다.
그런 생각으로 등산로에서 만난 도토리, 밤을 주워서 산위로 던지거나 내려오는 길에 땅속 적당한 깊이에 심어주는 것은 나무로부터 맑은 산소, 쾌적한 환경을 제공받아 생존하고 있는 우리 인간이 해야 할 최소한의 임무, 의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수원시에서 등산로 초입에 흙이 담긴 자루를 쌓아놓고 등반하는 사람들이 한포씩 들고 올라가 산정상에 뿌려달라는 당부를 했던 해가 있습니다. 환경분야에 관심이 높은 염태영 시장(2022년 현재 경기도경제부지사)의 시책 중 하나였습니다. 하지만 요즘에는 그런 환경을 살리는 프로젝트를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이처럼 작은 일이라고 지구를 위하고 환경을 생각하는 노력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 만나 땅속에 심은 도토리가 내년에 싹을 틔우고 100년, 200년후에 오늘 만난 큰 상수리나무를 대신할 것이라 기대합니다.
광교산 등산로에서 이런 작은 상상을 하면서 오르고 내리니 어느새 집에 도착하여 광교산에 오르고 내리는 동안의 상상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이강석 (李岡錫)
출생 : 1958년 화성 비봉
경력 : 경기도청 홍보팀장, 경기도청 공보과장
동두천·오산시 부시장 / 경기도균형발전기획실장
남양주시부시장 /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현직 :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저서 : '공무원의길 차마고도', '기자#공무원 밀고#당기는 홍보#이야기' 등 수필집 53권 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