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2~3급 인사를 보니 일하는 공무원이 승진한다는 진리를 확인하게 됩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일하면 본인도 모르는 사유로 3급 국장에 보임되고, 부단체장으로 발령을 받는다는 경기도청 인사의 진면목을 이번 인사에서도 보여주었습니다. 여성간부의 전진배치도 크게 보이고 비고시의 안배도 있기는 합니다만 과거 도지사의 고시출신 중용의 여파로 그동안 키워온 비고시 과장들은 대부분 공로연수를 생각하는 나이에 이른 것으로 보이고 그래서 공직사회가 무겁게 움직이는 것인가 느낌이 듭니다. 여성간부 중용은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한 바이겠으나 깊이있게 들여다보면 고시출신 공무원 간부는 대부분 남성이어서 비고시 여성간부의 약진의 기회를 주고 있다는 분석이 가능해 보입니다. 이러한 추세는 공무원통계자료를 바탕으로 심도있는 분석을 통해 앞으로 5년내 여성공무원의 흐름도를 파악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도정은 주무관과 사무관이 기초를 담당한다는 점에서 고시출신 간부의 약진은 조직력을 약화시킨다는 점에서 고민이 있고, 고시출신 도지사, 부지사, 실장, 국장의 지휘부가 큰 조직을 원활하게 이끌어 나가기 위해서는 비고시의 중용도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군대에서는
1988년경 경기도내 모든 소방서는 도 민방위국 소방행정과(4급 과장)에서 종합관리하는 도의 기관이었습니다. 조직, 인사, 예산을 소방행정과에서 지원했습니다. 30년이 지난 2019년에는 1급 소방본부장에 3급 간부가 5~6명정도 되고 소방관 정원이 일반직 도청 공무원보다 많습니다. 소방관은 시군지역에 근무해도 경기도청 소속 공무원입니다. 현재 경기도내 소방서 근무 소방관은 8,900명이며 2019년에 911명을 추가 채용한다고 합니다. 119를 연상하게 하는 911명도 홍보전략이 가미된 듯 보입니다. 과거에는 119 불자동차라 해서 화재가 나면 싸이렌을 울리면서 달려가는 것이 소방서 기능의 전부라 생각했지만 요즘에는 그 분야가 확장되어서 모든 사건사고 현장에 가장 먼저 달려가는 소방관이 되었습니다. 화재현장에 소방관이 달려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교통사고, 건물 붕괴, 수해, 한해, 산불 등 자연재해, 재난 등 모든 사건사고의 현장에 소방관이 출동합니다. 소방과 防護(방호)를 설명하는 참 좋은 강의를 들은 기억이 납니다. 소방은 불이 났을때 달려가서 진화를 하는 것입니다. 반면 방호는 불이 나지 않도록 사전에 취약지를 점검하고 교육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
옴부즈만(Ombudsman)이란, 스웨덴어로 '대리자, 후견인, 대표자'란 뜻입니다. 행정기관의 위법, 부당한 행위로 제기된 민원을 조사하고 해결해주는 사람을 말합니다. 1809년 스웨덴 의회에서 최초로 도입되었습니다. 다른 기관의 공식자료에 ‘옴부즈맨’이라는 표기가 나옵니다만 화성시의회가 의결한 조례에서는 ‘화성시옴부즈만’이라 칭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옴부즈만이라 표기하고자 합니다. 옴부즈만 제도는 현대 행정국가에서 행정부의 권한이 강화되는 행정국가화 현상이 일어나자 국민권리의 보호와 행정통제를 위해 일반화되었으며 주로 의회에 의해 신분이 보장되며 행정, 사법부에 대한 감시기능을 하였다고 합니다. 옴부즈만의 권한은 보통 시정 권고의 임무를 수행합니다. 옴부즈만은 일반적으로 직무상 독립성이 보장되며, 신청에 의한 조사가 일반적이지만 직권조사가 가능하다고 합니다. 화성시 시민옴부즈만의 구성 및 운영에 관한 조례는 목적에서 '부패방지 및 국민권익위원회 설치와 운영에 관한 법률'에서 위임된 사항과 그 시행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직무는 제6조에서 정하고 있는데 주민들의 권익보호, 규제와 관련된 사항과 민원을 조사처리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민원
공보실이나 홍보실에 근무하신다면 이 글을 읽으시고 몇가지 고민을 해결하시고 마음 편안하게 술 한 잔 드시기 바랍니다. 혹시 운명적으로 어느날 홍보부서에 근무하게 된다면 그때가서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작은 고민 한 두가지를 해소하시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공보 공무원이 아니고 회사의 홍보실 직원이 아니어도 이책에 나오는 주법을 읽으시고 그동안 주석에서 고민한 3가지 정도의 갈등을 풀어내시기를 소망합니다. 여기에서 드리고자 하는 이야기는 공직근무 중에 만난 언론인과 그 현장에서의 기억과 느낌과 감동과 아픔을 적은 내용 입니다. 언론 전문가의 글이 아니고 언론 현장에서의 고민을 바탕으로 적어둔 글입니다. 현장에서 보고 어깨너머로 바라보면서 공무원이 힘들어 하는 언론, 언론인들이 불편해는 공무원에 대한 견해를 필기했습니다. 공감하지 못하시거나 경우에 따라 반대의 입장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문제점이 발견되는 경우 알려주시면 깊이 반성하고 더 고민하고 의논해서 대안을 찾아가겠습니다. 거대한 언론현장에서 다양한 경우의 수를 바탕으로 적어낸 글이니 정답은 아니고 경험담입니다. 하지만 언론의 한편만 바라보는 일반부서 공무원의 입장에서는 그 속의 치열함을 알기 어렵고,
대변인실에서 언론사 출입기자에게 보도자료를 배포하는 업무를 담당하던 1989년 어느 날입니다. 자료를 제공해 준 부서의 담당자가 전화를 해서 신문에 기사는 나지 않고 사진만 보인다고 항의인지 어필인지 애매하게 따지듯 물어왔습니다. 홍보의 전략으로는 행사전에 예고기사를 내고 행사하면 당일 기사를 올린 후 그 결과와 성과를 한번 더 기사화 하거나 언론사 간부의 컬럼이나 논설위원의 사설을 받으면 홍보의 단계상 금상첨화라 생각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부서의 행사는 중간단계인 사진만 나왔으니 담당자로서는 조금 부족한 느낌이 들었을 것입니다. 담담하게 답을 하였습니다. 제 실력으로는 신문 지면 반을 주어도 그 사진의 내용을 다 설명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기사 중에 으뜸은 사진이고 다음이 활자입니다. 교육을 받을때 視→聽→覺(시청각)의 역량에 대한 설명을 들은 기억이 있는데 첫째가 보고 이해함이고 다음으로 듣고 아는 일이며 마지막이 느끼는 것이라 합니다. 혹시 다음 기회에 신문지면 한 장을 생각하시고 그 사진을 묘사해 보시면 어떨까 상상해 봅니다. 부서 담당자의 어필에 대해서는 긴말을 피하기 위해 '제가 부족했다'고 얼버무렸지만 오늘날에도 신문 초벌에 사진이 올라가는
다산 정약용(1762~1836)은 차를 좋아해서 호를 다산(茶山)이라 했다. 그런데 다산은 한강을 의미하는 열수(洌水)라는 호를 더 좋아했다고 한다. 22세에 과거에 장원 합격했다. 혁신군주 정조(1752~1800)는 10살 동생뻘인 정약용을 중용했다. 다산은 정조를 보좌하면서 한강에 배 다리를 건설하고 1793년 31세 나이에 화성을 설계했다. 현재의 경기도청이 자리한 팔달산에 화성을 축성하는 공사를 총괄했다. 다산은 일생 저술에도 힘써 500권을 집필했다. 이중 ‘일표이서’라 불리는 경세유표, 흠흠신서, 목민심서를 통해 군주권의 절대성과 우월성을 내용으로 하는 왕권강화론을 제시했다고 한다. 1800년 승하하신 정조대왕, 1801년에 강진으로 귀양가 정치권에서 밀려난 다산=열수 정약용 암행어사. 두 분에게 10년 정도 왕과 신하로서의 역사 시간이 조금 더 주어졌다면 조선 후기와 현대에까지 크나큰 발전적 변화와 긍정적 혁신이 있었을 것이다. 다산의 글 중 일부를 소개한다. 병든 아내가 치마를 보내 천 리 밖에 그리워하는 마음을 부쳤는데 오랜 세월 홍색이 이미 바랜 것을 보니 서글피 노쇠했다는 생각이 드네. 잘라서 작은 서첩을 만들어 그나마 아들들을 타이르는
오늘은 봄의 노래를 쓰려고 준비한 연필로 하얀 낙서만 잔뜩 합니다 자유를 외치는 군중에게 총을 쏘는 무자비처럼 쿠데타 같은 악문만 써 대다 암술머리에 꽃밥을 갖다 대어도 불안과 이상 반응 밑씨가 없어 씨로 발달하는 과정이 생략된 불량한 꽃에게 어울리는 병명은 뭔가요 성대를 꼿꼿하게 세우지도 못하고 엄마나 산파도 없이 혼자 태어나는 아가처럼 웁니다 통증은 악습이 쌓인 예로부터 온 건가요 나무가 없는 숲을 게워 버리는 저 새는 내 이름도 말해 주지 않네요 새도 자기를 모르는 중병에 걸리나요 가지는 종양 같은 기억을 헤집으며 쌓인 울음으로 혈전을 만들다 눈이 부시고 이 꽃밥 꽃부리는 옛 기억이 하얗게 내리는 유행 지난 장신구 같아요 겨울 속에 박힌 등장인물들을 차례차례 연필로 콕콕 찔러 죽입니다 봄바람에 기대어 이제 단잠을 좀 자고 싶어요 강순 시인 본명 강수원.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박사 과정 졸업. 1998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 『이십 대에는 각시붕어가 산다』, 『즐거운 오렌지가 되는 법』, 『크로노그래프』가 있음. 경기문화재단 우수작가 창작지원금 수혜. 전국계간문예지 우수작품상 수상.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 창작지원금 수혜. 현 수원
[스토리텔링] #새벽에 일어난 선비가 글씨를 쓰기 위해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런데 더 일찍 잠에서 깬 새 한마리가 창틀 밖의 나뭇가지에 앉아있으므로 선비는 기분 좋게 새조자를 한획 그어보았습니다. 早鳥~~~~~! 일찍 일어난 새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글씨에 힘이 빠지고 영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종이를 버리고 다시 새조자를 여러번 썼지만 결국 글쓰기를 마치게 되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어느 양반집 사랑채에서 하룻밤을 묶고 아침을 맞이하였는데 8폭 병풍 글씨중에 자신의 글씨가 표구되어 있습니다. 선비가 쓴 글인데 마음에 들지 않아 버렸던 것인데 그 글씨가 양반집 사랑채 8폭 병풍에 한자리를 떠커니 자리를 잡고 있으므로 신기하기도하고 또다른 한편으로는 마음에 들지 않은 글씨였으므로 잠시 붓을 들어 새조자의 불화변 ,,,, 점 4개를 ''''로 힘을 주어서 가필을 하였습니다. 양반 어르신이 방에 들어와 병풍을 살피던 중 새조자가 변형된 것을 발견하고 선비에게 물었습니다. 아니 이 새조자가 참 의미있고 멋드러진 필체인데 이것을 누가 가필을 하였구려. 선비가 그리하였습니까? 이에 선비가 전후사정을 이야기 했습니다. 자신의 글씨인데 마음에 들지않아 버렸던 것이고 오늘
1988년 올림픽이 열린 해 상반기에는 지방신문이 경인일보 1개사였고 하반기에 경기일보, 기호일보, 인천일보가 창간되어 지방 4사 언론사 시대를 열었습니다. 초기에는 공직사회 모든 부서에 신문이 보급되지 못하였으므로 공보실의 신문 스크랩이 중요한 홍보매체로 활용되었습니다. 여기에다 중앙지의 1~2단 기사, KBS, MBC, SBS의 뉴스를 모니터링해서 신문 스크랩 앞에 편철하여 배부하였으므로 언론의 집대성이랄 수 있는 스크랩은 중요한 업무가 되었습니다. IT시대에는 신문기사를 인터넷 글로 복사하기도 하고 방송에 나온 내용을 화면으로 스크랩하기도 합니다만 1988년에는 신문기사는 칼로 오려내어 풀로 붙이고 방송기사는 글로 적어서 보고했습니다. 그리하여 아침 7시반에 9명이 출근하여 조간신문을 면별로 정독하고 경기도 기사가 나온 것을 칼로 오렸습니다. 스포츠면에도 가끔 경기라는 한글이 나와서 깜짝 놀라기도 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지방지, 중앙지, 방송 뉴스내용을 스크랩하는 직원의 재량권이 크다는 점입니다. 중앙지 신문을 다 정독해 보았지만 경기도 기사가 없으면 정부 기사중 행정 관련한 것이라도 하나 건져냅니다. 어느 날에는 도정기사가 많으므로 큰 기사
1988년에는 신문은 대부분 세로쓰기가 기본이었고 일부 가로쓰기가 병용되는 시기였습니다. 그래서인지 세로쓰기는 비판기사이고 가로쓰기는 홍보기사라는 말도 나왔습니다. 실제로 홍보기사 제목에는 비단 무늬가 들어갔고 비판이 실리는 경우 제목은 그냥 흑백의 흰글씨이거나 반대의 검은 글씨였습니다. 즉 가슴에 강하게 느껴지는 기사 제목은 검은글씨가 아니라 흰글씨를 부각시키는 배경의 검은색 면이었습니다. 신문에 도배를 하였다는 말은 바로 비판기사의 글씨가 흰색이고 나머지를 검은색으로 칠한 경우를 말하는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검은 페인트로 칠하듯 검은 종이를 벽에 붙이듯 도배를 하였다는 표현이 아주 실감나는 시절이었습니다. 사실 신문의 생명은 편집기술에서 태어납니다. 현장 취재기자의 원고는 제목없이 들어와 엄청난 크기의 글씨로 제목을 달고 새 생명을 얻어 지면에서 탄생의 고고한 목소리를 울립니다. 신문기사의 경중은 제목 작명의 기술에 의해 판단되고 좌우됩니다. 좋은 기사는 제목이 강하지 못합니다. 반면 비판기사의 제목은 날카롭고 무겁고 차갑습니다. 어쩌면 편집부 기자들은 같은 사안을 보고도 이렇게 상반된 생각을 이끌어 낼 수 있을까요. 흔히 말하듯 소주가 반병밖에 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