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항구라 하였는데 너는 이별이라 하였다 나는 물메기와 낙지와 전어를 좋아한다 하였는데 너는 폭설과 소주와 수평선을 좋아한다 하였다 나는 부캉,이라 말했는데 너는 부강이라 발음했다 부캉이든 부강이든 그냥 좋아서 북항, 한자로 적어 본다, 北港, 처음에 나는 왠지 北이라는 글자에 끌렸다 인생한테 패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디로든지 쾌히 달아날 수 있을 것 같았다 모든 맹서를 저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배신하기 좋은 북항, 불꺼진 삼십 촉 알전구처럼 포구에 어선과 여객선을 골고루 슬어놓은 북항, 이 해안도시는 따뜻해서 싫어 싫어야 돌아누운 북항, 탕아의 눈밑의 그늘 같은 북항, 겨울이 파도에 입을 대면 칼날처럼 얼음이 해변의 허리에 백여 빛날 것 같아서 북항, 하면 아직 블라디보스토크로 가는 배편이 있을 것만 같아서 나를 버린 것은 너였으나 내가 울기 전에 나를 위해 뱃고동이 대신 울어준 북항, 나는 서러워져서 그리운 곳을 북항이라 하였는데 너는 다시 돌아오지 못한다 하였다 안도현 시인 1961년 경북 예천 출생, 원광대학교 국문과 졸업, 단국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석·박사) 졸업, 대구 매일신문 신춘문예 당선,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등 저서『서울
신혼부부에게서 깨가 쏟아진다고 하고 참기름 냄새가 난다고도 합니다. 정말로 농부로서는 참깨 수확하는 행복은 신혼부부의 사랑과 견줄만하다 해서 깨가 쏟아진다는 말을 붙인 것 같습니다. 우선 참깨는 팔각모양의 사찰 탑처럼 생긴 씨방에 8줄 깨알이 한 줄로 늘어섭니다. 한여름에 참깨밭에 15줄기씩을 베어 묶어서 세워 말려둔 참깨를 수확하러 갑니다. 행정용어로는 小束立乾(소속입건)입니다. 작은 단으로 묶어서 세워 말린다는 말입니다. 잘 마르면 할머니는 검은 천과 부지깽이 막대를 가져갑니다. 세워둔 참깨 묶음 바로 옆에 검은 천을 펼치고 두 손으로 정숙 보행하여 묶음을 이동시켜 검은 천 안에 안착시켜 줍니다. 그리고 나서야 묶음을 거꾸로 들고 준비한 부지깽이로 톡톡 건드려줍니다. 한여름 태양열에 바싹하게 마른 씨방안의 흰 깨알들이 소르륵 쏟아져 나옵니다. 농부의 수확의 기쁨이란 이런 것입니다. 신혼부부의 행복입니다. 들깨는 회생의 동그란 씨앗입니다. 참기름은 고소하고 들기름은 향긋합니다. 들깨는 자라면서 깻잎을 제공합니다. 삼겹살에 싸 먹는 쌈 중에 깻잎은 들깨잎입니다. 참깨잎은 타원형인데 작기도 하거니와 거칠어서 쌈으로 먹지 않습니다. 특히 참깨잎은 장어나 삼겹살을
상가 꼭대기에서 아파트 쪽으로 이어진 여러 줄의 전선 끝에 반달이 쉼표처럼 걸려 있다 꽁지가 긴 새들과 초저녁별 두어 개도 새초롬하게 전깃줄 위에 앉아 있다 돌아오는 이들을 위해 하늘에다 마련한 한 소절의 악보 손가락 길게 저어 흔들면 쪼르르 몰려나와 익숙한 가락을 몇 번이고 되풀이할 것 같은 노래 한 도막을 누가 어두워지는 하늘에 걸어 놓았을까 이제 그만 일터의 문을 나와 한 사람의 여자로 돌아오라고 누군가의 아빠로 돌아오라고 새들이 꽁지를 까닥거리며 음표를 건너가고 있다 도종완 시인 1954년 충북 청주 출생, 충북대 국어교육과 및 동 대학원 졸업, 충남대 문학박사,1984 동인지《분단시대》를 통해 작품 활동 시작,시집 『접시꽃 당신』,『접시꽃 당신2』,『지금 비록 너희 곁을 떠나지만』,『당신은 누구십니까』,『사람의 마을에 꽃이 진다』,『부드러운 직선』,『슬픔의 뿌리』,『해인으로 가는 길』,『세 시에서 다섯 시 사이』 등, 산문집 『지금은 묻어둔 그리움』, 『그대 가슴에 뜨는 나뭇잎 배』,『그때 그 도마뱀은 무슨 표정을 지었을까』,『모과』,『마지막 한 번을 더 용서하는 마음』,『사람은 누구나 꽃이다』,동화집 『바다유리』 『나무야 안녕』 등,신동엽 창작상,
냉장고의 냉동칸과 냉장박스에 들어가면 "모든 식품이 영구히 안전하다"는 타성에 젖은 우리는 음식을 만들어서 그릇에 담아 냉장칸에 넣고 하루, 이틀, 사흘동안 꺼내어 먹고 다시 넣고 다시 꺼내는 셔틀냉장을 이어갑니다. 어느집 냉동칸은 음식을 담은 비닐이 흰 벽을 구성하고 있기도 합니다. 식재료마다, 음식과 반찬마다에는 나름의 유효기간이 있을 것인데 우리는 그냥 냉장에 넣으면 보름은 가고 냉동에 넣으면 다시 한해가 바뀌어 그날이 다시와도 탱탱 얼어있으니 문제없다고 생각하나 봅니다. 위생당국에서는 유효기간과 유통기간을 정하고 단속을 합니다만 이는 편의점 등 오픈된 장소에서는 수시로 행해지는 행정지도단속이지만 정작 식품을 만드는 큰 공장에서의 위생에 대해서 편의점만큼 알뜰하게 관리하는가에 대한 확신은 부족하다 봅니다. 대형공장에서 제조일자, 유통기한, 유효기간의 일자를 쉽게 확인하기 어려운 부위에 흐릇하게 찍어내어 마트, 편의점 등에 공급하고 소비자들은 그 날짜를 확인하면서 작은 두뇌게임을 하고 있습니다. 유통기한 만료일이 임박한 제품은 진열대 앞에 놓고 조금 여유있는 물건은 뒷편의 꺼내기 어려운 곳에 전시합니다. 이에 소비자들은 일단 구매할 제품을 정하면 앞부분의
시골동네에서 양조장 집 딸 다음으로 패션을 리드하는 2·8청춘 처자는 방앗간 집 딸입니다. 양조장 집 딸은 부모님이 돈이 많으니 풍족하게 패션을 꾸밀 수 있는 것이고 방앗간 집 딸은 나름의 용돈 전략이 있습니다. 방앗간 집 딸은 친구와 함께 2인1조로 삭대를 이용한 쌀 수집을 합니다. 삭대란 장성의 지휘봉을 예리한 칼로 아랫부분을 대각선으로 내리친 결과물로 상상하시기 바랍니다. 손에 잡고 있으면 점 없는 느낌표입니다. 끝부분을 곡식이 든 가마니를 찌르면 소량이 흘러내립니다. 아버지가 낮술을 하시고 주무실 때에 허리에 찬 방앗간 쇳대를 잠시 빌리는 것입니다. 친구와 함께 방앗간을 열고 들어가면 어제 오늘 방아를 찧어서 쌓아둔 쌀 포대가 가득합니다. 삭대로 쌀과 보리 등 곡식의 포장망을 찔러서 내용물을 조금씩 꺼냅니다. 주인집 딸은 삭대를 찌르고 그녀의 친구는 삼태기를 들고 따라가면서 쌀을 받는 것입니다. 30분 동안 300번을 찌르면 쌀 2말이 나옵니다. 쌀 2말을 자루에 담아서 동네 쌀가게에 가져가면 큰 돈을 내어 줍니다. 이 돈으로 읍내에 나가서 삼원색 원색이 들어간 원피스를 살 수 있습니다. 너풀거리는 원피스 자락을 흔들면서 온 동네를 청소합니다. 아랫동
술은 알콜입니다. 시골에서 직접 만드는 술은 3가지를 말할 수 있습니다. 동동주, 막걸리, 곡주로 만드는 소주입니다. 우선은 密酒(밀주) 중에 동동주입니다. 술을 담그는데 필요한 재료는 쌀, 수수, 누룩, 항아리입니다. 우선 꼬두밥이라고 시루에 쌀을 올리고 무쇠솥에 올린 후 시루와 솥의 테두리를 쌀가루 떡으로 봉합을 합니다. 솥단지 안에서 끓어오르는 수증기압력이 옆으로 새지 않고 시루 아래 뚫린 구멍을 통해서 올라가 쌀을 익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쌀이 잘 쪄지면 넓은 멍석 위에 펼친 후 누룩가루를 뿌려 줍니다. 밥쌀 알에 누룩가루가 고르게 묻힌 후에 항아리에 넣습니다. 항아리는 조금 전에 불붙은 창호지를 넣어서 그 열기로 소독을 하였습니다. 항아리에 남아있는 다른 균을 제거하고 잡귀를 내보내는 효과가 있습니다. 그리고 항아리안에 들어온 누룩밥은 오로지 누룩이 가지고 있는 효소에 의해 술로 익어갈 것입니다. 누룩은 통밀을 갈아서 물에 반죽하여 메주 크기로 만든 후에 생으로 베어온 쑥으로 감싸줍니다. 일주일쯤 지나면 발효되어 누룩곰팡이가 생성됩니다. 이 누룩곰팡이가 가득한 누룩의 푸른 곰팡이 가루는 빗자루로 쓸어내고 누룩속에 들어있는 곰팡이로 술을 빗는 것입
카인의 후손들이 살고 있는 도심으로 손돌바람 몰아치자 전선줄은 일제히 발정 난 암고양이 울음 토해냈다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누군가를 흘긋흘긋 훔쳐보며 좀비 영화의 엑스트라처럼 종종걸음으로 사라졌다 하나 둘 불이 켜지고 있는 베스트실버요양병원 고양이 한 마리 음식물 쓰레기통 옆에 웅크리고 앉아 있다 가시 덮인 청미래넝쿨 숲을 뚫고 흙먼지 날리는 황토길 달려 왔다 날카로운 발톱으로 짙은 어둠을 밀어 내고 빛을 모았다 크로노스가 작곡했다는 쉼표도 없는 악보 속에서 난이도가 높은 음계 따라 파도를 타며 살아 왔다 아다지오와 안단테가 표시되지 않은 악보 속에서 보이지 않는 오아시스를 찾아 거친 사막을 가로질러 가야만 했다 삶을 끌고 가던 주파수가 끊겼다 이어지고 다시 끊긴다 희미해지는 전파채널을 잡으려 양쪽 귀와 꼬리를 곧추 세워본다 음파가 멈춘 난청지대에서 안테나를 조절하며 주파수를 찾고 있지만 이제는 잡음조차 들리지 않는 침묵이다 무뎌진 발톱 보듬고 허공 향해 앞발 치켜들며 휘젓는 늙은 고양이 잡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다시 비틀거리며 걷는다 길 옆, 폐휴지 가득 실은 낡은 리어카 가로수에 몸 지탱하고 있다. 정겸 시인 1957년 경기 화성출생(본명
나이 65세를 넘은 농촌 출신이라면 밀가루 포대에 붉은 색 성조기 문양으로 두 손 주먹으로 겹쳐서 악수를 하는 디자인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시골 동네에 작은 저수지가 있다면 그 뚝방은 거의 같은 부피의 밀가루로 축조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자료를 찾아보니 1962년 3월에 미공법 제480호에 의한 잉여농산물 도입협정을 맺었다고 합니다. 미국산 밀이 들어왔고 밀가루를 생산해서 농업생산기반이랄 수 있는 저수지를 축조하는 인건비로 활용했던 것입니다. 어린 나이에 동네 어르신들이 가족단위로 아버지와 아들이 합세해서 저수지 바닥을 파내는 이른바 浚渫(준설)작업을 하는 모습을 본 기억이 납니다. 감독관이 정해준 자리의 흙을 파내서 밖에다 버리는 작업을 한 후 심사에 통과되면 밀가루 한 포, 반 포를 받았습니다. 엄마들은 밀가루를 반죽해서 수제비로 뜨거나 좀 더 찰지게 반죽을 해서 넓게 밀어 밀가루를 뿌린 후 칼로 썰어서 칼국수를 만들었습니다. 배추 등 야채, 애호박 채, 멸치, 대파 등을 넣고 푹 끓이면 되는 救荒(구황)식단이었습니다. 이 수제비라는 것이 급하게 덜 익은 것을 퍼 주거나 물기가 들지 않은 부분은 흰색으로 남아서 텁텁한 맛을 더하기도 했습니다. 날 밀
아저씨가 군대에 가서 훈련을 마친 후에 자대 배치를 받았는데 이발 기술자를 불렀을 때 얼결에 나갔습니다. 매일 밤 빠따와 얼차레가 힘들어서 이발병으로 가면 덜할까 하는 나름의 꼼수였습니다. 하지만 가위조차 잡아본 일이 없는 아저씨는 병사가 이발을 하러 오면 배가 아프다며 화장실로 도망을 치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얼결에 병사의 머리를 깎게 되었고 3년이라는 숙련의 기간을 거친 후에 고향으로 들고 온 이발기계로 동네 아이들 상고머리를 깎아주게 됩니다. 대략 50호가 사는 동네에 누가 누구의 형·동생인지 다 아는 터이므로 봄부터 가을까지 한 달에 두 번정도 이발을 한 값은 가가호호로 다니면서 1인당 벼 1말을 받았습니다. 가을 수확을 한 벼를 말리는 멍석의 한자락에서 모말로 벼 한말을 고붕으로 담아서 가져간 자루에 담아 모아서 방아를 찧어 쌀을 받아가는 것입니다. 이른 여름에 보릿고개 때에도 가가호호 다니면서 보리 한 말을 이발비로 받아갔습니다. 아무 날이나 이발소집에 가면 부부가 이발을 합니다. 아내는 미용자격이 없지만 중학교 여학생의 단발머리를 다듬어 주고 면도를 했습니다. 이발사 아저씨는 손잡이는 녹이 슬고 날만 반짝이는 이발기계로 기계충 잔뜩 먹은 아이들
(뉴스폼) 포천시 신북면 가채리에 가면 ‘채산사(茝山祠)’라는 사당이 있다. 가채리에서 태어난 항일 의병장 최익현 선생을 봉향한 사당이다. 최익현 선생은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전북 정읍에서 의병을 일으켜 항일 의병 운동을 전개했다. 이후 최익현 선생은 일본 헌병대에 체포되어 대마도로 압송됐고, 식음을 전폐하고 항거하다 끝내 순국했다. 올해도 8월 15일 광복절이 돌아왔다. 광복을 맞이한지 78년째 되는 날이다. 일제로부터 해방되고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애국지사와 순국선열들의 정신과 역사는 여전히 우리 마음 속에 살아 숨쉬고 있다. 채산사를 비롯해 포천과 가평 곳곳에 있는 역사적 유산과 상징물들은 우리로 하여금 역사를 기억하고 추모하게 만든다. 우리는 35년간 나라를 잃었던 비극의 역사를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고 배웠고, 미래세대에게 가르치고 있다. 그렇다면 왜 이러한 비극의 역사를 잊지 말아야 하는가? 그러한 역사적 비극과 과오를 다시는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다. 1945년 8월 15일 광복 이후 우리는 갖은 노력 끝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뤄냈다. 이는 힘이 없어서 나라를 잃고 국민을 지키지 못한 역사를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는 ‘역사적 교훈’이 원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