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 종이 울린다. 누구도 암흑의 시월이 올 줄 몰랐지. 미술 시간은 그 시절 제일 난처한 시간이었지. 스케치북 없어 교실 뒤편에 통금시간처럼 앉아 있던 미술 시간 선생님은 수업 시작과 동시에 준비물 검사를 했지. 눈 지그시 감고 생각하면 예닐곱 명은 대 뿌리에 손바닥을 갖다 댔지. 선생님은 한쪽 손으로 늘 때렸지. 우리는 원 밖에 있었고 선생님의 한 손은 늘 바지 속에 있었지. 후끈거리는 손으로 짝지와 장난을 쳤지. 주로 육성회비 못 낸 얘들 사정없이 없는 돈 가지러 집에 보냈지. 아무도 없는 집 가져올 돈 없는 집에 있다가 미안하고 미안해서 며칠 수업과 헛돌고 있었지. 시월의 호각 소리에 골목으로 뛰어드는 아이들도 교사들도 무기력했지. 준비물과 육성회비 때문에 늘 원밖에 머물렀지. 그래도 아이들은 알고 있었지. 암흑 속 도드라지는 건 군화와 표어라고 당신의 무기력한 손도 늘 원 밖에 있다고 그러기에 아이들은 아무런 반항 없이 미술 시간에 암흑과 원이라는 걸 배웠지. 지금 내 손바닥을 붉게 때리네. 갈까마귀 울음 같은 검은 종소리가 박우담 시인 1957년 경남 진주출생 2004년 《시사사》 등단, 《시와 환상》 주간, 제2회 형평문학상 지역문학상 수상 시집
천 년 동안 왕 노릇하는 하늘나라 가는 기도를 하였다 그의 기도는 천국으로 매일 다가가게 하였다 그는 하늘나라 향한 마음뿐이었다 회개하지도 않았다 남을 사랑하지도 않았다 첨탑의 종소리보다 빠르게 그는 승천을 하였다 그곳은 하나님이 계시지 않은 곳이었다 천국으로 간 사람들은 없었다 풀 한 포기 없는 곳이었다 천년을 그곳에서 그는 살아가고 있다 이종만 시인 1949년 경남 통영 사랑도에서 태어났다. 1992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오늘은 이 산이 고향이다』, 『찰나의 꽃』이 있다. 2017년 세종도서 문학나눔에 『찰나의 꽃』 선정, 2021년 경남문화예술진흥원의 문화예술지원금과 제24회 천상병시문학상을 받았다. -시작메모- 이종만 시인은 자연과 함께하는 시인이다. 어쩌면 자연에 순응하며 자연이 건네주는 선물로 살아가는 양봉시인이기도 하다. 40여 년간 양봉을 생업으로 종사했으며 평생 꽃과 벌을 벗 삼아 살아왔다. 그의 시속에는 자연이 살아서 숨을 쉬고 있다. 그가 엮어 낸 시집에는 자연과 인간이 공존해야만 하는 법과 원칙이 담겨 있고 자연에 대한 고마움을 시의 행간 속에 숨겨 놓았다. 「천년」이라는 시를 보자, 천년이라는 긴 세월은 자연의 순리를 거
고향집 늙은 밤나무 홀로 지키는 할머니, 어느 날 수원에 살고 있는 손자가 너무도 보고 싶었대요. 중학교에 다니는 손자는 학교다, 학원이다, 과외다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설날과 추석, 일 년에 두 번 밖에 볼 수 없었대요. 문득, 말티즈를 좋아하는 손자 생각에 사강장에서 한 마리 사왔대요. 그리고 말티즈 한 마리 사왔노라고 손자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이번 주 토요일 당장 내려오겠다고 환호성을 질렀대요. 툇마루에 걸터앉아 밤하늘의 별을 세던 할머니, 강아지를 더 좋아하는 손주에 상처를 입었지만 손자 따라 내려오는 아들 생각하니 초승달이 보름달로 보였대요. 정겸 시인 1957년 경기 화성출생(본명 정승렬), 2003년 시사사 등단, 시집 '푸른경전', '공무원', '궁평항', 공무원문예대전 시, 시조부문 행정안전부장관상, 경기시인상 수상, 현재 칼럼니스트와 한국경기시인협회이사로 활동 -시작메모- 이 시의 모티브는 농촌에 사는 연로한 어르신이다. 금년 4월, 통계청은 농촌의 65세 이상 농가에 대한 고령인구 비율을 2022년 기준 49.8%로 발표 했으며, 2023년에는 약 50%에 육박할 것으로 추산했다. 이는 우리나라 전체의 고령인구 비율 18% 의 3배 가까
세계 너머에 있는 남자 남자는 세계다 실제 보이는 것보다 더 정확한 시계 같은 남자 너머에 외로움이 있다 이미 보았던 남자의 세계는 닳고 닳았다고 말을 흐린다 호흡을, 습관을, 멈추면 다른 세계가 나타나고 짧은 문장의 말속에 고독을 가두어 보네 아픔을 흉내 내려다 말문을 닫고 침을 삼키네 악마 같은 시의 구절들 얼마만큼 처절해야 지극한 남자가 오나 발버둥 치는 계절에 몇 날 몇 밤을 새워도 최승자 같은 세계를 가질 수 없다 시무룩한 지점에 이르러 텅 빈 배처럼 두 손을 쥐어 보네 세계는 결국 남자의 문장이다 [뉴스폼] 김송포 시인이 시집 '즉석 질문에 즐거울 락'을 '시작시인선 0482번'으로 출간했다. 시인은 2008년 시집 『집게』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시집으로는 『부탁해요 곡절 씨』, 『우리의 소통은 로큰 롤』이 있다. 시집은 총 4부로 구성했다. 김송포 시인은 전북 전주 출생으로 2008년 시집 『집게』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그의 시집으로는 『부탁해요 곡절 씨』, 『우리의 소통은 로큰 롤』이 있으며 수상 경력으로는 『시문학』 우수작품상, 포항소재문학상, 푸른시학상 등이 있다. 또한 2021년 상상인 시집창작지원금을 받았으며 2023년 용인문화재
가느다란 발가락으로 지구를 공처럼 굴리던 소똥구리는 어디론가 실종됐다 광막한 우주, 드높은 하늘 바탕에 힘차게 빗금을 그어 대던 별똥별같이 어두운 밤 골목을 떠돌며 깜박깜박 신호등처럼 불 밝혀 날던 반딧불이도 사라졌다 개구리 울음과 귀뚜라미 소리는 점점 가느다랗게 줄어들고 뻐꾸기 노래, 소쩍새 울음이 아득하다 산길 들길 좁은 길을 갈 때마다 앞장서서 인도하던 길라잡이는 도대체 어디로 납치된 걸까? 우리 곁으로 공룡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방사선 우라늄에 취한 흰 돌고래가 위험하다 포획되는 밍크고래가 몹시 위험하다 멸치 한 마리가 방사능에 위험해질 때 오늘 나와 당신의 식탁이 위험하다 찾아와야 하는데, 찾아야 하는데 불러도 도무지 대답 없는 것들을, 어디서 찾아야 하나? 그 많은, 사라진 것들의 주소를…‥ 이복현 시인 전남 순천 출생. 1999년 대산창작기금(시 부문)을 받고, 같은 해 『문학과의식』 겨울호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 1994년 《중앙일보》 시조 장원, 1995년 《시조시학》을 썼고, 신인상으로 등단. 『사라진 것들의 주소』 등 4권의 시집과 시조집을 출간. 아산문학상(시), 시조시학상(본상) 등을 수상. 대산창작기금, 서울문화재단,
대추밤을 돈사야 추석을 차렸다 二十里길을 걸어 열하룻장을 보러 떠나는 새벽 막내날 이쁜이는 대추을 안준다고 우렀다 절편같은 半달이 싸리문우에 돋고 건너편 선황당 사시나무 그림자가 무시무시한 저녁 나귀방울이 지꺼리는 소리가 고개를 가차워지면 이쁜이보다 찹쌀개가 먼저 마중을 나갔다 노천명 시인 황해도 장연출생, 1912년~ 1957년(향년 45세), 이화여자전문학교 영문과 졸업, 조선중앙일보와 서울신문 기자, 부녀신문 편집차장 수필집 『산딸기』, 『나의 생활 백서』, 『여성 서간문 독본』, 『사슴과 고독의 대화』 시집 『산호림』, 『별을 쳐다보며』, 『사슴의 노래』 등 -시작메모- 올 추석은 사상 유례 없는 6일간의 긴 추석 연휴다. 이맘때쯤이면 각 매스컴에서는 추석 중후군 이라는 이색적 병명을 가지고 토론과 논제를 삼아 곱씹는 장면이 왠지 눈에 거슬린다. 이제 코로나 감염병도 풀렸으니 금번 추석은 고향을 찾는 민족 대이동이 최고조에 이를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따라서 성인 남자들은 추석에 쓰일 경비 걱정이며, 모처럼 만나는 시골의 일가친척들에게 선물은 무엇으로 할까 하는 걱정, 또한 고향이 멀리 있는 분들은 고향으로 가는 교통편을 어떻게 해결해서 가
코로나19를 못 버티고 구조조정 대상에 오른 김씨 눈치 싸움에 밀려난 귀농 초년생이다 얼떨결에 고추 배추 호박 백화점식 농법에 아직은 혼란하다 튼실하게 올라온 고추모 배추 호박모의 작은 숨소리 이랑에 가득하다 병들고 나약한 어린 모를 찾아 솎아내기 한창이다 새싹들은 속내를 아는지 모르는지 푸른 웃음으로 세상에 화답하고 있다. 눈동자와 색깔의 빈도에 따라 퇴출 대상이 결정된 순간 가느다란 잎사귀는 작은 경련 일으킨다 병든 녀석과 허리가 굽어진 놈 뽑을까 말까 망서려 진다 시베리아 바람을 몰고 다니던 인사부장이 실루엣처럼 스쳐 지나간다 내 눈은 어느새 악어의 눈을 가진 인사부장 눈을 닮아가고 있다 꽃샘추위 속에서도 솎음질 한창이다. 정겸 시인 1957년 경기 화성출생(본명 정승렬), 2003년 시사사 등단, 시집 '푸른경전', '공무원', '궁평항', 공무원문예대전 시, 시조부문 행정안전부장관상, 경기시인상 수상, 현재 칼럼니스트와 한국경기시인협회이사로 활동 -시작메모- 산다는 것은 어쩌면 고달픈 여정이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주기적 생애에서 별의 별 일을 다 경험하기 때문이다. 인간들은 코로나19와 3년 넘게 싸우고 있다. 지칠 대로 지친 코로나와의
요즘 지방의원들의 본분을 망각한 이탈 행위로 지방의회 무용론이 다시 대두 되고 있다. 경기도 부천시의회에서는 지난 5월 동료의원 성추행 사건에 이어 해외연수 중 동행한 공무원들에게 행한 갑질 문제로 시의원들에 대한 시민들의 반감이 격해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지금은 양자 간 거의 합의가 되어 소강상태로 접어들었지만 의원들의 갑질 행태로 지난 6월 충청북도 음성군 의회와 음성군청 공무원 노조가 갈등을 빚었으며, 경상남도 의령군의회에 대하여 의령군청 공무원 노조는 성명서를 발표하는 등 한때 대치 국면까지 갔었다. 지방의원들은 국회의원과는 달리 면책 특권과 불체포특권이 없지만 적어도 지방행정에 있어서는 국회의원과 유사한 권한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지방자치법과 규정, 그리고 조례를 근거로 하여 지방의 일반 행정과 교육행정, 사회부분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한 번의 당선으로 4년의 임기를 보장 받을 수 있으며 사회적으로 비난 받을 수 있는 직무유기, 직권남용 등 부정행위나 부실한 의정활동을 펼치고 있을 때에도 단죄할 수 있는 제어 장치가 마땅하지 않다. 물론 주민소환제도가 있기는 하지만 그것마저 해당 주민들이 소극적이어서 실효성이 없
[뉴스폼] 자연의 세계는 자연의 현상을 과학의 세계로 100% 증명 할 수 없다. 가정한다면 70%는 과학의 세계이며 30%는 과학 이외의 세계가 아닐까 생각한다. 과학 이외의 세계에서 하루 24시간의 운행을 보면 오행(五行)의 운행시간과 시(示)의 시간, 사람의 기운을 잠식하는 나쁜 사(邪)와 더 나쁜 귀(鬼)의 시간이 운행되고 있음을 엘로드를 통해 알게 되었다. 또한 氣(활동하는 힘)는 지표(地表)위에서만 운행되고 氣運(생물이 살아 움직이는 힘, 눈에 보이지는 않으나 다른 감각으로 느껴지는 현상)은 모든 객체에 적용되고 사람에게도 운행되고 있다. - 김성년 저자의 《자연의 『氣•示』 氣運(邪•鬼)》 中에서 - 氣•氣運 연구 활동가로 왕성하게 활동을 하고 있는 김성년 전 동두천 부시장이 그간 연구해 온 氣•示 氣運(邪•鬼)을 일반 독자들이 알기 쉽게 총 정리해 《자연의 『氣•示』 氣運(邪•鬼)》 제목의 책을 발간했다. 저자 김성년 전 부시장은 “새로운 세계인 6개의 示”와 나쁜 邪의 세계를 찾아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도 엘로드를 통해 연구하였으나 사람은 태어나 살아가면서 거짓 없이 성실하게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복(福)을 짓고 살아 가며는 자연은 기운을
플라타너스 나무가 우거진 가로수에서 매미가 시원스럽게 노래를 부르고 있다. 아마도 팔월 끝자락에 접어들었으니 가는 여름이 아쉬운가 보다. 올 여름은 그 어느 해보다 유난히 무덥고 아픔과 상처가 많았던 계절이다. 길고 긴 장마와 태풍은 우리에게 가장 소중하고 귀한 생명을 앗아 갔으며 많은 재산 피해를 주었다. 특히 전 세계를 대상으로 4년마다 열리는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보리 대회’의 파행 운영과 장소 이전 등 생각하면 할수록 어두운 그림자만 엄습해 온다. 이러한 기억하기조차 힘들었던 여름이 이제 서서히 물러가고 있는 것이다. 하기야 ‘땅에서는 귀뚜라미 등에 업혀 오고, 하늘에서는 뭉게구름 타고 온다’는 처서가 지났으니 이제 아침저녁으로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불어와 가을을 재촉할 것이다. 요즘은 시간이 여유로워 고향집엘 자주 간다. 그 때마다 구순을 넘긴 어머니는 몇 년 후면 칠순을 바라보고 있는 자식이 참비름 나물을 좋아한다고 텃밭으로 엉금엉금 기어간다. 그 정도의 세월을 겪었으면 지금까지 행한 자식의 행동이 효자인지 불효자인지 판가름 났을 법 한데 별로 효자 노릇도 못한 자식을 위해 내리쬐는 땡볕을 고스란히 맞으면서 잡풀 무성한 고추 밭에서 참비름을 뜯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