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박우담

수업 종이 울린다.

누구도 암흑의 시월이 올 줄 몰랐지.

미술 시간은

그 시절 제일 난처한 시간이었지.

스케치북 없어 교실 뒤편에 통금시간처럼

앉아 있던 미술 시간

선생님은 수업 시작과 동시에 준비물

검사를 했지. 눈 지그시 감고 생각하면

예닐곱 명은 대 뿌리에 손바닥을 갖다 댔지.

선생님은 한쪽 손으로 늘 때렸지.

우리는 원 밖에 있었고 선생님의 한 손은 늘

바지 속에 있었지.

후끈거리는 손으로 짝지와 장난을 쳤지.

주로 육성회비 못 낸 얘들

사정없이 없는 돈 가지러 집에 보냈지.

아무도 없는 집

가져올 돈 없는 집에 있다가

미안하고 미안해서 며칠 수업과

헛돌고 있었지. 시월의 호각 소리에

골목으로 뛰어드는 아이들도 교사들도

무기력했지. 준비물과 육성회비 때문에

늘 원밖에 머물렀지. 그래도 아이들은

알고 있었지. 암흑 속 도드라지는 건

군화와 표어라고 당신의 무기력한 손도

늘 원 밖에 있다고

그러기에 아이들은 아무런 반항 없이

미술 시간에 암흑과 원이라는 걸

배웠지. 지금 내 손바닥을

붉게 때리네. 갈까마귀 울음 같은

검은 종소리가

 


박우담 시인

1957년 경남 진주출생

2004년 《시사사》 등단, 《시와 환상》 주간,

제2회 형평문학상 지역문학상 수상

시집 『계절의 문양』 외 다수


 

-시작메모-

 

시라는 장르에서 시간이라는 소재 혹은 주제는 어떤 의식의 흐름 같은 느낌을 갖게 한다. 화자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어린 시절의 미술 시간을 소환하여 이미지화 했다. 한국전쟁 이후 태어 난 베이비부머 세대들이 겪어야 했던 아픔과 상처가 이 시편에 고스란히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시대에 지독한 가난을 겪어야 했던 어린이들, 초등학교 입학 때부터 육성회비를 걱정해야 했던 세대들, 훈육을 빙자한 아동체벌이 난무했던 시절, 미술시간은 비교적 준비물이 많이 요구되어 경제적으로 부담을 주는 당시의 풍경을 상징화 했다. 유엔과 미국에서 구호품으로 나누어준 옥수수 죽을 얻어먹는 날은 행운이었고 허기진 배를 채우려고 우물가로 모여들어 냉수 한 대접으로 빈 뱃속을 채우던 시절, 크레용과 크레파스는 이들에게 사치였다. 이는 어쩌면 한 세대의 서사적 이야기를 시학으로 풀어 낸 화자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이 시를 천천히 읽어 내려가면 행간 속에서 지금도 갈까마귀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정겸​(시인/한국경기시인협회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