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아름다움은 더 많은 아름다움을 잃어버린 후 그 자리에 남아있는 흔적의 일부라는 생각을 합니다. 아기가 예쁜 이유는 모태로 생명수, 영양을 받은 탯줄이 있었음을 우리가 알기 때문입니다. 생명을 이어가는 아름다운 흔적을 인간 모두가 간직하고 있으므로 인간은 성선설로 선하고 이 세상의 인간사회가 아름다운 것입니다. 아름답지만 그 속에서 발생하는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종교인들이 살신성인, 나를 버리고 중생을 위해 평생을 바치고 흰 연기가 되어 산 언저리에 머무는 것입니다. 해안가에 외롭게 서있는 저 바위가 처음 이 세상에 나왔을때는 수천의 돌기둥이 함께 했었지만 바람과 파도와 세월의 흐름속에 바닥으로 내려와 자갈이 되고 모래가 되고 물고기의 비늘이 되어 바다를 떠다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 바위는 매년 찾아오는 가족들이 고래의 지느러미, 또는 작은 물고기의 비늘이 되어 있음을 알기에 바위아래 따스한 작은 동굴속으로 고기들을 품어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단 하루를 행복하게 살기 위해 100년을 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계산하는 詩"라는 제목으로 한수 읊어 보겠습니다. 하루를 행복하기 위해 100년을 버리는 인생, 하루를 즐겁기 위해 10년을 모아가는 세상,
경기도청 최초의 아웃소싱 공무원으로 말하자면 잠사계장과 잠업특장과장입니다. 수원시 문화원장, 민선 수원시장, 국회의원을 역임하신 심재덕 전 수원시장님을 경기도의 원조 계약직 공무원이라 할 것입니다. 1960년대 우리나라가 비단을 생산하는 누에고치를 수출하여 외화를 벌어 산업경제의 기반에 도움을 주었는데 이를 적극 추진하기 위해 당시 고등학교 교사인 심재덕 시장을 특채하여 파격적으로 사무관에 임명하고 이후에는 과장에 승진보직 하였습니다. 그래서 아웃소싱의 원조가 되셨습니다. 이후 심 시장님은 특히 세계 화장실협회 초대회장을 하셨으며 수원시는 물론 우리나라 화장실 문화의 선진화에 크게 기여하셧습니다. 이후 경기도청에 외부 전문가가 자리한 직위는 비서실장, 여성국장, 공보관이었으며 1999년 홍보기획팀장으로 발령받았고 J공보관을 만난 다음 날 기존의 업무가 바뀌면서 새로운 홍보기획이라는 업무를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이전까지 그 자리는 언론인과 접촉하는 자리로서 발령소식에 동료들이 술 많이 먹게 될 것이라는 걱정을 해 주었지만 정작 근무 내용은 서면접촉을 할뿐 언론인을 직접 만나지는 않았습니다. 술을 마실 기회도 없습니다. 부서의 역할을 바꾸신 J공보관은 부임 초부
2006년에도 도정홍보를 위한 언론담당의 임무는 계속되었습니다. 그런데, 연초에 근평자료 확인작업을 하기 위해 1매씩 나누어 주었는데, 동료가 하는 말이 전문교육에 2점정도가 남았다는 말입니다. 확인해보니 직무교육은 받아서 점수를 환산하여 근평점수에 올라갔는데 전문교육을 받은 것이 부족하여 점수를 올릴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말입니다. 그 방법을 알아보니 수원권 어느 국가교육기관에서 일주일 강의를 들어면 2점이 올라간다는 말입니다. 2점을 받으면 근평석차가 0.2단계이니 10등을 올릴 수 있다는 말도 해 주었습니다. 인사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어서 사무관이 되어서 인재개발원, 동두천시 생연4동장, 소방본부 상황담당, 홍보기획팀장을 거쳐 언론담당으로 일하면서 이곳 공보실에서 7년 내리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무관 근무 10년이 넘었으니 승진에도 신경을 쓰라는 충고를 해줍니다. 그래서 불쑥 승진에 관신을 갖기로 했습니다. 우선 건설공무원교육원에 가서 엑셀반 교육을 받았습니다. 아침 7시반에 사무실에 출근해서 기본적인 상황을 체크하고 8시반에 가서 오후 5시까지 강의를 듣고 사무실에 와서 업무를 했습니다. 교육을 간 것인지 사무실에 있는것인지 애매하였습니다.
2008년과 2009년 상반기까지 1년6개월동안 의회사무처 공보담당관실에서 일했습니다. 정말로 부서장이 마음만 먹으면 되는 일이었습니다. 노인학대 예방조례, 헌혈조례 이벤트, 퍼포먼스를 성공적으로 개최하였습니다. 특히 노인학대예방조례를 홍보하기 위해 ‘별이 다섯 개’컨셉으로 나서서 커다른 의사봉을 만들어 본회의장에서 이벤트를 펼쳤습니다. 의회사무처에 근무하면서 공직+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중차대한 상황을 만나게 되었고 부족하지만 슬기롭게 대처하였다는 생각을 합니다. 아찔한 순간이었지만 "제가 잘못했습니다"라는 한마디로 상황악화를 막고 모두가 공감하는 상황이 전개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당시에 적은 글을 여기에 소개하고자 합니다. [미스 매칭 독도 방문] 2008년 8월에 경기도의회 부의장, 당대표, 상임위원장, 재선이상 의원 40여명을 모시고 공무원 8명이 묵호항을 거쳐 울릉도와 독도를 방문하였습니다. 일본의 중등교과서 해설서에 독도를 일본 땅이라 주장한 것을 규탄하는 '독도수호 결의대회'를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2016년에도 일본 교과서 70%가 같은 주장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독도일정 방문에 있어서 이른바 '미스매칭'이 발생하였습니다. 도의회
지방행정연수원(혁신인력개발원)에 다시 들어왔습니다. 동두천시청에 7개월 근무한 후에 장기교육 대상자를 선발하는데 적임자로 평가되어 1년간 교육파견되어 연수생이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참 보람찬 기간이었습니다. 일단은 신세계에 들어선 것이고 그 내용이 참으로 소중한 교육과정이었습니다. 사실은 입교전에 열심히 배워보자면서 등산과 헬스등 운동을 하였습니다. 체중조절이 되고 피부관리가 잘 되었습니다. 늘어나는 체중을 콘트롤하기 위해 식사량을 줄였습니다. 2007년 고급리더반 1년 연수때 금연을 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당시 금연은 어려웠지만 단칼에 해냈습니다. 그당시에는 흡연자가 많아서 더더욱 힘들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장기교육은 10개월간인데 참으로 다양한 교과과정이 편성됩니다. 그래서 평생 접하기 어려운 다양한 현장에 가서 체험하고 느끼고 감동을 받았습니다. 영화, 연극, 건강체험, 해외여행, 지방여행 등 다양한 경험을 하였습니다. 교육기간중에 지방 나들이를 많이 하였습니다. 그 결과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에 인물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왜 경기도 출신 인물이 없을까요? 경기도는 왕의 땅이고 충청도부터는 경상도 전라도는 백성이 터전이라는
2010년 상반기에는 체육과장을 하였고 하반기에는 대외협력담당관으로 일했습니다. 사실 도청 과장은 6개월이나 1년이 임기아닌 근무기간입니다. 자주 바뀌어도 업무추진은 사무관들이 자리잡고 있으므로 과장은 부서의 책임자로서 팀원들이 일하는 분위기를 잡아주는 역할만으로도 그 기능을 다한다고 생각합니다. 과장이 챙기면 복잡해 집니다. 국장님이 업무에 신경을 많이 쓰시니 과장이라도 사무관, 차석편이 되어야 합니다. 과장이 신경을 써도 팀장, 계장들은 힘들어 합니다. 그래서 가끔은 계장과 저녁에 술한잔을 하면서 돌아가는 세상에 대한 비판도 하고 최근에 진행된 업무스트레스를 풀어내기도 합니다. 술은 그 알콜성분이 머리속의 잡다한 생각들을 집어내어 녹여버립니다. 나쁜 것만 잡아내는 백혈구 기능도 하고 좋은 것을 키워내는 적혈고 역할도 합니다. 백혈구와 적혈구에 대한 의학적 상식은 전혀 없으니 참고하여 받아 주시기 바랍니다. 체육과장을 하면서 2010년 2월에 캐나다에서 열린 동계 올림픽기간에 숏트랙 경기와 김연아 선수 금메달 경기를 보았습니다. 입장권을 잘 보관하고 있습니다. 올림픽 경기를 캐나다에 가서 직접 본다는 것은 참으로 고마운 경험이었습니다. 그런데 경기장 먼곳에
2011년은 공직에 있어 격동의 시기입니다. 연초에 전격적으로 언론담당관이 됩니다. 공직에서 공보부서 11년6개월을 채워가는 6개월을 근무하였습니다. 당시에 신문사 유가부수를 측정하는 ABC제도를 바탕으로 상위랭크 언론사만 같이 가자는 주장이 제기되었는데 절대 안된다고 반대했고 그 바탕으로 지금의 경기도청 기자실이 운영되는 줄 압니다. 어찌하는 것이 정답인가는 알수 없고 알아도 무의미한 역사속의 한 페이지가 되겠습니다만 저의 다짐은 모든 언론이 우리의, 행정의 벗이고 친구이고 후원자이며 응원단이라는 생각입니다. 즉 언론은 多多益善입니다. 언론은 홍익인간의 정신을 구현합니다. 공무원이나 공기관 근무자들이 언론을 어려워하거나 불편해 하는 이유는 단하나 자신의 업무를 비판한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공무원, 공기관 임직원, 대기업 홍보실은 늘 독점적 위치에 있다는 점을 대오각성(大悟覺醒)해야 합니다. 我執(자기중심의 좁은 생각에 집착하여 자신만을 내세워 버팀)과 獨善(자기 혼자만이 옳다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일)의 자세가 아닐런지 근신하고 염려해야 합니다. 좋은 표현으로 경기도가 행하면 표준이 된다고 합니다. 정말로 그런 사례가 많습니다만 당시에는 칭찬을 받았지만 훗날
지방행정연수원 교육을 마치고 발령을 기다리는데 아마도 평택시에 소재한 황해경제자유구역청의 본부장으로 갈듯 합니다. 황해경제자유구역청장은 경기와 충남이 교대로 1급 공무원을 보임하다가 몇년전에 충남도 쪽 사업이 종료되면서 경기도 중심으로 구성되어 개발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파견 근무하시는 간부가 복귀하면서 후임으로 내정되었다는 복도통신 연락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발령 10여분 전에 다시 수도권교통본부로 변경되었다는 전갈이 왔습니다. 그리하여 발령장을 받고 내일 출근을 준비하는데 사무실이 서울 남대문 인근에 소재한 고층 건물 중간층에 있다는 설명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서둘러 전철을 타고 명동에 내려 우체국 앞으로 돌고 돌아 남산 기슭에 자리한 사무실에 도착하였습니다. 수도권교통본부는 60명 정도 근무하는데 모두가 경기, 서울, 인천에서 파견나온 공무원들입니다. 발령장에 파견근무 명령하는 내용만 들어있어서 본부장으로 발령된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사무실에 가보니 행정실장은 인천에서, 기술실장은 서울에서 파견나온 공무원이 이미 차지하고 있습니다. 빈방 하나가 교통본부장이 근무하는 곳이므로 들어가 짐을 풀고 업무파악을 시작했습니다. 최근에 수도권교통
수도권교통본부 1년 근무를 마치고 오산시청으로 전보되었습니다. 오산시는 과거 화성군 오산읍이었고 군청이 오산읍에 있을때 5급을류(9급) 공직 발령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추억이 있는 오산시청에 근무하게 되어 고향에 돌아온 심정이었고 실제로 고향마을이었습니다. 오산시청에 근무하면서 소소한 개선, 개혁을 진행하였습니다. 그리고 오산시는 청렴도시입니다. 오산시청 공무원과 시민들 덕분으로 청렴을 주제로 하는 강연도 다녔습니다. 우선 발령 초부터 동료 공무원과의 소통을 위해 다양한 방법을 써보았습니다. 그중 하나가 부서방문입니다. 출근길에 또는 근무시간에 각 부서 사무실에 들어가 인사를 하고 녹차를 타서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처음에는 불편해 하였지만 시간이 가면서 어느 부서 방문한 스토리가 소문이 나면서 우리 과는 언제 오나 기대하는 눈치입니다. 다음으로 저녁식사시간에 자리배치 ‘사다리 타기’를 통해서 마음을 열었습니다. 일단 미리 준비해간 사다리타기 용지에 한 두 줄 더 그어서 공정성에 대한 시비를 타단하고 일단 정해진 사다리를 타면서 “다라라라라라~”로 소통의 길을 열었습니다. 사다리 결과가 어찌 나오든 부시장은 중앙에 안도록 합니다. 구석에 자리 했어도
지난해 말에 교육국으로 전출된다는 이야기가 나왔지만 후임자 조정과정에서 잘 맞지 아니하므로 오산시청에서 계속 근무를 이어갔습니다. 2014년 1월 3일에 근무를 시작하였고 2015년 1월 5일에 경기도 인사가 있어 다수의 공무원들이 자리를 이동하였습니다만 오늘도 오산시청에 신바람나게 출근하여 근무하고 퇴근하여 가족과 대화하고 새벽에 일어나 글을 써봅니다. 오산시에서의 2년차를 시작합니다. 운명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시에서 오랜기간 근무할 운명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인사 막바지에 변수가 발생하고 그 내용을 조율하면서 이동 대상에서 머무는 자리로 결정이 난 것입니다. 누구는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바꾼다고 합니다만 살아보면 내가 바꾸는 운명보다 다른 분이 정해주시는 운명이 더 많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번 신호를 지나고 안 지나고는 버스 기사님의 스타일입니다. 배차시간이 촉박하면 신호등을 지나는 것이고 시간이 여유로운 경우에는 일부러 신호앞에서 멈추어 조정시간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운전자가 빨리 가고 싶어 하는 것 같지만 그 속에는 앞차와 뒷 차와의 거리, 시간을 보면서 시간을 관리하는 분이 있었던 것입니다. 노선버스는 시간을 지키는 이에 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