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

정겸

 

 

비가 온다

봄 가뭄에 닫혀 있던 마음이 열린다

빗물은 벌어진 틈을 촘촘히 보듬어 주며

상처의 흔적을 가려준다

 

광주에서 담양으로 가는 국도변

도벌꾼에 의해 잘려 나갔던 대나무 숲에서는

푸른 뿌리들이 땅속 깊이 잠을 자고 있다

 

대숲으로 이어진 밭둑 길

반공방첩이라고 쓰인 낡은 표지판이

전봇대에 비스듬히 기대어 서 있다

 

멧비둘기 울음소리 들리는 오후

진초록 마늘잎새 사이로 연두색 마늘종이

조심스레 고개를 내민다

 

아리다.

 

 

 


정겸 시인

경기 화성 출생(본명 정승렬) / 경희대학교 대학원 사회복지학 전공 / 격월간 '시사사'로 등단 / 시집 『푸른경전』 『공무원』 『궁평항』 『악어의 눈』 / 공무원문예대전 시부문, 시조부문 행정안전부장관상 수상 / 현재 경기시인협회 이사, 칼럼니스트로 활동


 

 

-시작메모-

 

녹음방초 승화시절이다. 산록마다 울울창창 생기가 넘친다. 그래서인가 5월은 여러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신록의 계절, 계절의 여왕, 장미의 계절, 가정의 달 등 등, 그래서인지 유독 다양한 축제와 행사가 다른 어느 달보다도 많다. 그러나 진초록의 신록 속에 점차 가려지는 것이 있다. 바로 1980년 5월 18일에 발생한 민주화 운동이다. 광주에서 담양으로 가는 국도변은 광주광역시 망월동 공원묘지와 인근에 자리 잡은 국립5·18민주묘지이다. 이 시에 등장하는 도벌꾼은 당시 신군부세력이고 대나무숲과 푸른 뿌리들은 민주화운동의 희생자들이다. 반공방첩이라는 이데올로기의 희생자가 된 이들, 오랜 가뭄 끝에 내린 빗물로 상처의 흔적은 가려지고 용서를 했지만 마늘종처럼 아리다.

정겸(시인/한국경기시인협회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