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오년 한 해가 저물어 가고 있다. 직장인들의 수첩과 마지막장 달력에는 유난히 저녁시간 메모가 늘어가고 있을 것이다. 동창회, 총동문회, 과망년회, 係(계)모임, 契(계)모임, 기타 다양한 명칭의 모임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송년회를 비롯한 저녁 모임에 가면 으레 술잔이 오가게 되고, 그러다보면 서로 친밀해지는 효과가 나기는 하지만 술로 인해 낭패를 보게된다. 어떤 땐 ‘병가의 상사’로만 생각할 일은 아닌 심각한 상황도 발생한다.
그것은 음주운전으로 인한 심적, 금전적, 신분적 부담은 물론 조직생활에서도 심대한 손실을 입게됨은 물론이다.
그래서인지 옛 어르신들은 술자리에 나이 어린 자손들을 앉히고는 술을 따르도록 시키고 이것저것을 이야기하면서 술을 먹는 과정을 체험시켰다. 그리고 이른바 酒法(주법)을 전수하는 것이다.
이 주법이라는 것이 가문마다 제례절차가 상이하고 사돈간에도 오이 먹는 풍속이 다르듯이 차이가 있지만 그 주된 내용은 술을 마심으로써 흐트러지기 쉬운 심성의 청정함을 유지하기 위함에 있는 것 같다.
그런데 논문을 쓸 때 형식이 있듯이 어느조직, 어느가문이든 주법에서 공통적으로 맞아 떨어지는 몇 가지 관습법이 있다. 우선은 술을 주고 받는 일은 두 손으로 한다는 것이다. 술을 권하는 이도 받는 사람도 늘 두 손을 모은다.
확인된 것은 아니지만 술잔을 두 손으로 주고 양손으로 받는 것은 원시시대 부족간 싸움에서 진 부족장이 패배를 인정하는 뜻으로 술을 바친데서 비롯되었다는 말을 들었다.
오른손으로 잔을 권하고 오른손으로 술을 따르는 것은 싸움에서 진 부족장이 칼 등 흉기가 없음을 보여주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다음으로 술잔을 주고받을 때 최선을 다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술을 권하는 이는 받는 이에게 존경스러운 마음을 가져야 하고 받는 측도 같은 생각을 가져야 할 것이다.
송년회장에 술병이 빠지지 않고, 부서의 직원들이 모여서 식사를 할 때 술을 마시는 것은 지난날의 잘못을 용서하고 조직의 발전을 위한 조직원간 화합을 도모하는데 그 취지가 있기 때문에 존경하는 마음으로 술을 주고받는 일은 참으로 중요하다.
우리 선조들이 膝下(슬하)의 자식에게도 술을 따르도록 한 것도 어린 시절부터 酒道(주도)를 생활화하도록 해서 사회생활에 도움을 주기 위함일 것이다. 그리고 주도를 엄격하게 만든 것은 술은 사람의 마음을 흥분시키고 그로 인해 말실수, 행동거지의 잘못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최근 10년 동안에 새로운 사회문제에서 중요한 자리를 잡고있는 음주운전에 대한 어르신들의 가르침이 있어야 할 것이다. 술에 취해 차를 운전하면 자동차도 같이 취하기 때문에 돌이킬 수 없는 엄청난 실수와 큰 사고를 당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시인 조지훈 선생의 ‘주도 18단계’를 보면 1단계 불주(不酒 : 될 수 있으면 안 마시는 사람)에서 18단계 폐주(廢酒 : 일명 열반주, 술로 인해 다른 세상으로 떠난 사람)가 나온다.
그런데 조지훈 선생은 음주운전으로 인해 세상을 떠나거나 그 피해자가 되는 상황은 생각하지 않았나 보다. 따라서 서정과 낭만의 상징처럼 느껴지는 “주도18단계”를 개정해서 “패가망신주”를 새롭게 끼워 넣어야 할 것 같다.
[저자 약력]
-1958년 화성 비봉 출생
-경기도청 홍보팀장, 공보과장
-동두천·오산·남양주시 부시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화성시 시민옴부즈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