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가 꼭대기에서 아파트 쪽으로 이어진
여러 줄의 전선 끝에
반달이 쉼표처럼 걸려 있다
꽁지가 긴 새들과 초저녁별 두어 개도
새초롬하게 전깃줄 위에 앉아 있다
돌아오는 이들을 위해
하늘에다 마련한 한 소절의 악보
손가락 길게 저어 흔들면 쪼르르 몰려나와
익숙한 가락을 몇 번이고 되풀이할 것 같은
노래 한 도막을 누가
어두워지는 하늘에 걸어 놓았을까
이제 그만 일터의 문을 나와
한 사람의 여자로 돌아오라고
누군가의 아빠로 돌아오라고
새들이 꽁지를 까닥거리며
음표를 건너가고 있다
도종완 시인
1954년 충북 청주 출생, 충북대 국어교육과 및 동 대학원 졸업, 충남대 문학박사,1984 동인지《분단시대》를 통해 작품 활동 시작,시집 『접시꽃 당신』,『접시꽃 당신2』,『지금 비록 너희 곁을 떠나지만』,『당신은 누구십니까』,『사람의 마을에 꽃이 진다』,『부드러운 직선』,『슬픔의 뿌리』,『해인으로 가는 길』,『세 시에서 다섯 시 사이』 등, 산문집 『지금은 묻어둔 그리움』, 『그대 가슴에 뜨는 나뭇잎 배』,『그때 그 도마뱀은 무슨 표정을 지었을까』,『모과』,『마지막 한 번을 더 용서하는 마음』,『사람은 누구나 꽃이다』,동화집 『바다유리』 『나무야 안녕』 등,신동엽 창작상, 2006 올해의 예술상, 거창평화인권문학상, 정지용 문학상, 윤동주상 수상 등 다수.
- 시작메모-
한때, 전깃줄이나 전화선은 개발과 문명의 소통 줄로 상징화 된 적이 있다. 어쩌면 산모와 연결된 갓난아기의 탯줄과 같은 신체 일부분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 전선을 통하여 문화적 질이 높아지고 최신 미디어 산업 등 문명의 꽃이 활짝 피어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의 현실은 환경 단체들이나 자연보호 단체들은 사방으로 얼기설기 뻗쳐 있는 전선이 도시 경관과 미학을 해치는 흉물이라고 지하 매설을 주장하고 있다. 인류가 소중하게 여겨졌던 문명의 이기가 이제는 문명의 장애물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럼에도 시인은 도심의 하늘을 그물망처럼 널려 있는 전선을 음악적 감각으로 되살리며 차분히 시로써 풀어냈다. 여러 줄의 전선을 마음속으로 잘 정리하여 오선지로 끌어내며 서정적 이미지로 접근한 것이다. 일상의 생활에서 인간이 만든 문명의 배설물들을 자연 친화적 기법을 활용하여 친자연적 이미지로 변모시킨 것이다. 시인은 여러 줄의 전선에 걸쳐 있는 반달의 모습이나 잠시 쉬고 있는 새들의 모습, 초저녁에 반짝이는 별을 보고 하나의 악보를 연상하며 인위적 자연물을 시로써 승화 시킨다. 전선이 만든 악보는 고단한 하루의 삶을 마친 우리의 어머니 아버지, 누이동생들에게 아름다운 선율로 바뀌어 순간이나마 하루의 시간을 위로한다. 해지고 땅거미 밀려오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일터의 문을 나와 잠시의 휴식을 위해 가족들이 기다려주고 반기는 따뜻한 보금자리로 돌아간다. 전선에 나란히 앉아 있는 달과 별, 그리고 새들은 피곤한 근로자를 위하여 전선 위에서 작은 음악회를 열어 달빛 협주곡을 연주하고 있다.
정겸(시인/한국경기시인협회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