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센타에 걸려 있는 코로나19 플래카드
가을 장맛비에 축 처져있다
장발장이 된 아이들이 헐벗은 모습으로 거리를 배회하고
성냥팔이 소녀들은 아직도 손을 호호 불며
좁은 골목 헤매며 성냥을 팔고 있다
신데렐라는 폐업 신고 된 엠마뉴엘빠에서
향기 없는 꽃을 들고 빙글빙글 춤을 추고 있다
사냥꾼의 합창이 백수들의 합창으로 들리는 저녁
샤일록저축은행 불빛 아래
허리띠를 졸라 맨 개미떼가 진을 치고 있다
텅 빈 식당가에는 양화대교에서
천국행 티켓을 팔고 있다는 소문 퍼져나가고
사람들은 양화대교를 주술처럼 읊고 다닌다
마음씨 좋기로는 세상에서 둘 도 없는 고향동무 박가朴家 놈
삼십년 직장 생활에 부장은커녕 차장도 못했다
버틸 때까지 버티라고 신신당부 했건만
구조조정 사내공지 뜨자마자 그래도 팀장은 달아봤다며
젊은 애들에게 자리 내줘야 한다며
명퇴금조차 받지 못하고 발가벗고 나왔다
제2의 인생 잘 살아보겠다며 택시운전 하던 첫 날
차별화된 콘셉트라며 정장 차림으로 운전대 잡았다
내비게이션 지시에 긴장하는 사이
아차차, 요금 미터기 누르지 않고 목적지까지 달렸다는 사실
사납금 꼬라박을 생각에 한숨 내쉴 때
뒷좌석에 앉은 손님 여기는 늘 다니던 곳이라며
삼만 원을 내민 순간 감격했다며
세상은 아직 살만하다며 들떠 있는 목소리
핸드폰 타고 싱싱하게 들려온다.
정겸 시인
1957년 경기 화성출생(본명 정승렬), 2003년 시사사 등단, 시집 '푸른경전', '공무원', '궁평항', 공무원문예대전 시, 시조부문 행정안전부장관상, 경기시인상 수상, 현재 칼럼니스트와 한국경기시인협회이사로 활동
-시작메모-
코로나19는 우리나라는 물론 전 세계의 경제흐름을 바꾸어 놓은 일종의 경제 대공황이라 할 수 있다. 잘 사는 사람들을 오히려 굳건히 부를 축적하며 빈부의 격차를 더 벌어지게 하고 있다. 골목상권을 주도 해 온 영세 식당업자들은 장사는 안 되는데 고가의 임대료를 요구하는 가진자의 횡포로 거리로 내몰리고 있다.
이런 가운데에서 대기업의 오너들은 경기 하향에 따른 이득금을 비례적으로 낮추어 적게 가져가야 하는데 그 이득금은 그대로 유지하고자 무차별 감원에 노동력 착취의 서곡을 올리고 있다. 그나마 알량하게 가져가던 노동자들의 시간외 수당마저 빼앗아 가려고 정부의 비호아래 근로기준을 법을 개정했다. 노동자들에게 과거 산업화 과정에서 있었던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거리로 내몰린 우리의 민초들은 극단적 선택의 상징이 되어 버린 양화대교를 주술처럼 읊고 다닌다. 양화대교는 마포구 합정동과 영등포구 당산동사이 한강에 걸쳐 있는 다리이다. 양화대교는 가수 자이언티가 부른 가요인데 그 가사에서 보듯이 자살을 암시한 시사성이 있는 노래이다.
" 행복하자. 우리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 아프지 말고. 행복하자.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 그래그래"
퇴근 길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양화대교의 노래가 오늘따라 더 슬프게 들리는 것은 나만의 센티니즘일까.
이유야 어떻든 내 어깨동무였던 박 씨는 긍정맨이다. 세상이 어둠으로 가득 차 있는데도 구조조정 공고에 후배들을 위해 선뜻 손들고 나와 택시운전을 한다.
서투른 요금 미터기 조정으로 제 값을 못 받고 운전을 했는데 정상적 요금을 챙겨주는 착한 손님 덕에 오늘 운수 대박이라고 함박웃음 지으며 전화를 한다.
박가 이놈아 ! 네가 있어 그나마 우리나라가 행복하다.
정겸(시인/한국경기시인협회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