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석 (李岡錫)
출생 : 1958년 화성 비봉
경력 : 경기도청 홍보팀장, 경기도청 공보과장
동두천·오산시 부시장 / 경기도균형발전기획실장
남양주시부시장 /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현직 :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저서 : '공무원의길 차마고도', '기자#공무원 밀고#당기는 홍보#이야기' 등 수필집 집필중
1977년에 공직에 들어와 비봉면사무소에 근무했습니다. 당시에는 지방행정의 중심에는 새마을운동이 있었습니다. 면사무소 총무계의 고참 7급직원이 새마을운동 업무를 담당했습니다. 당시에 모친께서 동네 부녀회장을 하셨는데 면 새마을담당 선배님의 추천으로 전국 새마을지도자대회에 참석하셨습니다. 1박2일 행사이고 당시 박정희대통령이 참석하여 축사를 하던 시기였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의 당시 축사를 보니 격세지감이 있습니다. 1978년 행사의 축사내용중에는 '지난 8년동안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1천만건 이상의 새마을사업을 위하여 정부는 무려 9천700억원 이상을 투입했으며, 3천600만 우리국민 모두가 적어도 스물네번이상 사업장에 나가서 일한 셈'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전국에 투자한 새마을사업 1년 예산이 1조원이 되지 않는데 무려 큰 예산을 투입하였다고 연설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의 연설문중 비교가 될법한 말씀은 '호당 농가소득은 80년대초의 목표 140만원을 이미 작년에 넘어섰고, 금년에는 178만원 이상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는 대목입니다. 기억하기로 1977년 9급 공원 월급이 5만원이었으니 연봉은 60만원. 4인가족이 140만원이니 대략 계산이 맞아가는 상황입니다.
1985년에 8급 4년차, 공무원 8년차로 근무했습니다. 왕성하게 먹고 마시던 27세의 청년시절이니 설탕커피, 요즘의 믹스커피를 많이 마셨습니다. 누군가를 만나면 구내식당에 가서 100원짜리 커피를 주문했습니다. 식당 테이블에는 커피를 위한 설탕과 베트남산 야자수열매 가루로 만든 프림이 상비약처럼 자리하고 있습니다. 구수한 커피맛에 익숙해지고 당시 평범한 말로 인이 박혀서 하루에도 여러잔의 커피를 걱정없이 부담없이 마셨습니다. 세월이 흘러 고희를 향해 달리는 나이에 이르고보니 음식에 攝生(섭생)을 합니다. 커피는 여전히 마시고 싶은데 '건강걱정증'으로 인해 마셔야하나 그만 먹어야 하는가에 대한 기로에 찬 고민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래도 수십년간 익숙해진 커피를 한잔 더 마시고 싶은 욕망은 사라지지 않고 있고, 그래도 오늘의 '커피총량'을 넘기는 경우가 많은 듯 생각이 듭니다. 500년 조선사에서 초기의 이성계, 이방원, 세종대왕의 식생활은 이후 영조, 정조대왕으로 이어지면서 큰 변화가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조선시대 초기와 후기의 공통점을 들어보면 전기가 없었고 그래서 냉장고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커피도 조선에 들어오기 전입니다. 그렇게 긴 세
유명 게그우먼의 조크중에 본인은 “체끼라는 것을 모른다”는 대목에 눈길이 간다. 평소 맛있는 음식을 한상 차리고 동료들과 먹기를 좋아하는 모습을 방송에서 자주 보았던 바이다. 음식을 많이 먹어도 소화가 잘 된다는 의미와 함께 음식에 호불호가 없으며 모든 음식을 좋아한다는 의미로 들리기도 한다. 살면서 과식하여 체한 느낌을 받지 않고 산다면 이는 행복한 일 중의 하나로 꼽을 만하겠다. 그래서 스스로 반성하며 생각해보니 살면서 '봉사의 행복'을 얼마나 느끼는가 반문하고 반성하게 되었다. 솔직히 남을 위한 봉사활동을 자발적으로 한 일은 없어서 하는 말이다. 좀 더 젊은 시절에 남을 위한 봉사에 나섰으면 얼마나 풍요로운 삶이 되었을까는 가늠이 되지 않는다. 그 게그우먼이 체끼를 느끼지 못하듯이 봉사의 행복을 알지 못하는 삶을 살고있음을 자인하는 바이다. 그래도 다행인것은 공직생활중 1년 장기교육에서 몇번의 봉사활동에 강제로 참여한 것이 고마운 일이라 생각된다. 연수프로그램으로 최일도 목사님이 주관하시는 '밥퍼' 현장에 투입되어 전문가 선생님들과 채소를 다듬고 배식하는 봉사활동에 참여했다. 점심을 위해 9시부터 채소를 손질하고 양파를 썰고 국을 끓이는데 힘을 보탰다.
기제사는 집에서 부모, 조부모, 고조, 증조할아버지 할머니 조상님께 올리는 제례이고 시제는 가을에 날을 정해 5대 이상의 윗대의 조상님 묘역에서 올리는 제사이다. 제사절차는 전문가라야 이해하고 절차대로 진행할 수 있다. 다른 절차보다 제사상을 차리는데 신경을 쓰게된다. 동네마을의 여러성씨의 대표들이 모여서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당제사에서는 문중간, 집안간에 제례절차로 논쟁을 벌이다가 정작 가장 중요한 신주는 개가 물어가도 모른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제사는 절차와 의식에 엄중함이 있다는 말로 읽힌다. 신기하게도 포털사이트에 화성시 매송면 야목리 당제사에 대한 설명이 상세하게 나온다. 이 제사는 새마을운동때 미신을 타파한다고 해서 없어졌으나, 그 후 마을에서 사고가 자주 발생하고 쌍초상까지 나는 일이 벌어졌다고 한다. 이 일때문에 무당에게 문의를 했고, 당제사를 안지냈기 때문이라는 답을 들었다고 한다. 이후 당제사를 다시 지내는 것이 좋겠다는 동네사람들의 여론으로 1985년부터 다시 부활시키게 되었고 그 후부터는 동네가 편안하고 풍파도 없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기제사, 시제, 당제사 등 모든 제례에 올리는 과일을 살펴본다. 홍동백서(紅東白西), 조율이시(棗栗
언제부턴가 영화배우, 연극의 희극인들의 통칭이 '탤런트'로 바뀌었습니다. 사람들은 누군가를 칭찬할때 그사람에게는 '탤런트가 있다'고 말 합니다. 탤런트(talent)란 텔레비전에 출연하는 연기자를 말하고 top talent는 대중으로부터 연기력이나 스타성을 인정받아 그 인기가 정상을 달리고 있는 탤런트이며, 멀티 탤런트(multi talent)란 여러 방면에 재주가 있는 사람을 표현하는 단어입니다. 어린시절에는 TV에 나오는 배우만을 탤런트라 부른다 생각했는데 맞는 말이지만 방송분야 아닌 타 분야에서도 탤런트를 발휘하는 이가 많습니다. 하지만 방송에 출연하는 배우를 탤런트로 표현하게 되고 방송이 우리사회와 사람들의 삶속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아주 높아졌으므로 통상의 이해로는 방송에 나와서 연기를 하는 분들은 탤런트라 하고 희극쪽에서 활약하는 젊은 층은 개그맨, 개그우먼으로 부릅니다. 방송뉴스에서 탤런트나 개그맨이 나오는 경우 매니저나 주변사람들은 모자이크로 처리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 이유는 이들 탤런트, 개그맨, 그리고 유명배우들은 대중의 인기를 받고 대중적 지지와 인지도를 바탕으로 개인차가 있다고 합니다만 수입을 얻기에 '공인'으로 분류한다는 소극적 해석도
감히 노벨문학상을 받은 한강 작가의 일상과 노벨위원회 발표이후 적막스러운 여유에 깊은 공감과 감동을 받고 있습니다. 여야가 2:2로 무승부를 기록했다는 지방선거에서 승리한 후보가 한강 작가가 노벨상을 마주하는 바와 같은 모습을 보였다면 유권자들은 후보자의 건강을 걱정하게 될 거입니다. 하지만 한강작가의 무게감있는 여유로움에 대해서는 누구도 반론이 없이 그대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입니다. 그래서 더더욱 작가의 작품에 경의를 표하게 되고 수상작가의 작품을 다 읽지못한데 대한 송구한 마음마져 드는 바입니다. 오히려 주변의 평론가나 언론에서 전해주는 작가의 삶이나 작품, 노벨문학상을 받는데 주인공이 될 작품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 경외심과 함께 그런 방식의 문학활동을 전개해야 하겠다는 포부를 꿈꾸게도 됩니다. 평소에는 글로 표현하지 못하였고 듣지못했던 작가의 세밀한 표현을 보면서 크게 공감하고 동경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간에 스스로 써온 글에 대한 반성의 기회가 되었습니다. 작은 글 하나를 쓰는 과정에서 좀더 고민하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고 글을 쓴 후에도 돌아와서 다시 살피고 문맥을 조정하고 단어를 고민하는 새로운 글쓰기의 자세를 정립하고자 합니다.
노벨상은 스웨덴의 발명가 노벨이 1895년 작성한 유언을 기려 스웨덴과 노르웨이의 관련 기관들이 "매년 인류를 위해 크게 헌신한 사람"에게 시상하는, 세계적으로 크게 권위있는 상입니다. 1901년에 처음 시상되었으며, 물리학상, 화학상, 생리·의학상, 문학상, 평화상의 5가지 상에 더하여 1968년 제정된 노벨 경제학상으로 이루어집니다. 다른 상들은 스웨덴의 스톡홀름에서 수여되는 반면, 노벨 평화상은 노르웨이의 오슬로에서 수여됩니다. 각 상은 모두 그 분야에서 매우 권위있게 여겨집니다. 대한민국의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습니다. 원작자의 품격과 높은 수준의 저작을 평가받은 것은 당연한 일이겠습니다만 여기에 보태어 작품을 번역한 작가에 대한 평가도 높은 줄 압니다. 수준높은 작품을 외국어로 번역하는 일이 노벨문학상을 받게하는 초석이 되었을 것입니다. 나아가서 세종대왕이 창제하신 한글의 우수성을 확실하게 인정받은 일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문화, 영화, 음식, 한복 등 여러분야에서 대한민국의 위상을 전세계에 알리고 있고 이번에 문학분야에서 최고봉에 이르는 쾌거에 온국민이 기뻐하고 있습니다. 국회 상임위 기간중에 발표되어 위원회별로 수상을 축하하는 화면을
어린시절 재미있게 보았던 미국 수사물 드라마 '형사콜롬보'를 떠올려봅니다. 설명자료를 검색해보니 이 드라마에서는 도입부에서 살인범이 누구인지 시청자에게 밝히고, 콜롬보가 용의자를 물색하고 범인을 잡아내는 과정을 보여 주었습니다. 어수룩해 보이는 콜롬보가 범인을 살짝살짝 떠보면, 그때마다 범인이 머리를 쥐어짜서 거짓과 변명을 늘어놓거나, 추가 범행을 일으킴으로써 사건을 은폐하거나 콜롬보의 관심을 딴 곳으로 돌리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다 범인은 마침내 모순을 일으키고 트릭이 무너지면서, 두뇌 싸움에서 패배를 인정하고 유죄를 시인하는 장면으로 끝이 납니다. 당시에 흑백TV로 본 드라마에서 주인공 형사 콜롬보는 범인을 밝혀내고도 담백하고 침착하게 시청자들이 다 아는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장면도 기억이 납니다. 혐의자와의 질문과 토론을 통해 기싸움을 벌이는 모습에서 시청자들이 더 긴장하기도 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국회 청문회장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말과 수싸움을 봅니다. 청문회는 대상자의 의견을 듣는 자리라고 알고 있는데 의원들은 묻는 말에만 답하라 합니다. 정해진 시간은 질문에 소비하고 답변은 나중에 하라고 합니다. 청문회 질문, 국감질의, 5분발언 등 국회와 의회에서
비가 내리는 수원천의 초가을 경치가 아름답습니다. 오늘은 다행스럽게 지렁이 살리기를 하지 않아도 됩니다. 맑은 날, 뜨거운 낮에는 시멘트 산책길을 힘겹게 횡단하는 지렁이를 발견하게되고 아직 목숨이 붙어있다면 진흙과 물이 있는 삶의 터전으로 돌려보내주었습니다. 남양주시 홍유릉길에서 시작된 지렁이 구하기는 수원천에서도 이어지고 있으며 정확한 기록을 하지는 않았지만 구해낸 지렁이는 어림잡아 50마리에 이를 것입니다. 사실 지렁이는 낚시의 미끼로 쓰입니다. 조사들은 진흙속에서 꿈틀거리는 지렁이를 반으로 잘라 바늘에 돌려끼운 후에 저수지 떡붕어와 잉어를 향해 던져넣습니다. 바늘이 허리를 관통하여 찔렸어도 모진 생명력으로 꿈틀거리고 그래서 물고기의 표적이 되는 것입니다. 물고기는 반토막 지렁이를 먹기위해 무모하게 달렸다가 5m낚시대에 걸려서 어망으로 들어가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맑고 더운 날에 땅속의 지렁이는 아마도 몸을 식히기 위해, 또는 좀더 나은 땅을 찾아서 길을 떠나는 듯 보입니다. 하지만 인간이 만든 시멘트길, 아스팔트길을 건너는 것은 지렁이에게 있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거리도 멀거니와 메마른 흙길에 몸이 마르고 그 길에는 수많은 인간의 발길로 인해 지렁이
네가 부모되어 알아보기를 바람 (전)남양주시부시장 이강석 시인 김소월님의 시를 후배들이 감상하고 작곡하여 노래하고 있습니다. 낙엽이 우수수 떨어질 때, 겨울의 기나긴 밤, 어머님하고 둘이 앉아 옛이야기 들어라. 나는 어쩌면 생겨나와 이 이야기 듣는가? 묻지도 말아라, 내일 날에 내가 부모 되어서 알바보랴. 마지막 네 글자의 시는 실제 가사에서는 '내가 부모되어 알아보리라'로 부릅니다. 어버이 친자를 분석하는 글이 있습니다. 親(친)자를 풀어보면 나무위(木)에 올라서서(立) 저멀리를 바라본다(視)는 의미입니다. 시골 마을에 모녀가 살았습니다. 물건을 팔러 장에 간 아들이 늦은 시각까지 집으로 돌아오지 않으므로 이를 걱정하는 어머니가 장터가 있는 방향의 고개마루까지 마중을 나갔습니다. 아들의 모습이 보이지 아니하므로 고개마루 소나무에 올라서서 더 먼 곳을 바라보며 아들을 기다립니다. 여기에서 어버이 친자가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애간장이 끊어진다는 말을 합니다. 새끼사슴을 어미사슴앞에서 결박하여 끌고가니 어미가 따라왔습니다. 계속 새끼를 괴롭히는 모습을 보더니 어미사슴이 절명했습니다. 사람들이 어미사슴의 배를 갈라보니 이미 창자가 마디마디 끊어져 있었습니다.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