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청과 경기도의회의 언론담당관, 그리고 남양주시청, 오산시청, 동두천시청에서 부시장으로 근무한 이강석 전 경기테크노파크원장이 언론 기고문 중 100개를 모아 편집한 본인의 세 번째 책 ‘보리차 냄새와 옥수수 향기’를 2020년 출간한 바 있다.
그는 경기도에서 42년간 재직한 공직자로 공보부서에서 11년 6개월간 근무하면서 언론과 인연을 맺었고 도청 균형발전기획실장, 부시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으로 근무하면서 꾸준히 언론에 기고했다.
또한 경기도테크노파크 원장으로 공직을 마감하면서 ‘언론사의 도움을 받은 바 크다’면서 신문사에 퇴임 인사를 다녀간 친 언론공무원 중 한 명으로 평가받고 있다. 신임인사는 많이 오지만 퇴직자가 언론사를 방문한 예는 드물기 때문이다.
뉴스폼에 게재하는 '이강석의 세상만사'는 책 '보리차 냄새와 옥수수 향기'를 토대로 스마트 시대를 사는 요즘 사람들에게 스토리텔링을 통한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는 코너다.
하나의 마침은 새로운 시작이라는 말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난해 말에 공직을 마치고 민간으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길다 할 수 있는 39년 8개월의 경험중 주사에서 사무관에 승진하는 과정을 설명하고 사무관이 되어서 팀장, 동장, 계장, 담당으로 일하면서 느낀 바를 적어 책으로 엮어내면 후임 동료들에게 작은 참고가 될 수 있겠다는 구상을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전에 적어둔 몇 가지 글을 합하여 300쪽 정도의 소책자를 만들 생각을 하였던 것입니다. 그렇게 시작한 자료집에 금강산 다녀온 이야기, 백령도에서 국토 체험한 스토리, 백두산에서 역사를 만났던 감동을 합해 보았습니다. 쌍둥이 아이 낳고 3년동은 바쁘고 힘들고 기쁘게 키웠던 이야기를 글로 적으니 원고지 20매가 되었고 23세 청년의 무모한 도전으로 강원도 한계령을 걸어서 1박2일만에 넘어간 전체 3박4일 이야기를 써둔 바 있어 이를 함께 모아본 것입니다. 작은 조크는 모든 사무실 동료들에게 활력의 에너지가 된다는 생각으로 노트에 적고 늘 활용해 왔는데 이를 몇개 골라서 추가하였고, 오산시에서 시작된 청렴강의가 지방행정연수원, 양평군, 원주시를 거쳐 이곳 안산시의 추천을 받아 5월말에 간부회의에서 다시한번
중세에 유리 장인이 깨어지지 않는 유리를 발명하여 그 기술을 왕에게 바쳤습니다. 그런데 왕은 그 기술을 활용하지 않고 오히려 그 유리 장인을 죽이라 명하였습니다. 그래서 깨어지지 않는 유리를 만드는 기술은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투명하면서 비바람을 막아주는 유리는 그 쓰임새가 참으로 많습니다만 현재에 와서도 창문이나 식탁을 장식하는 유리는 깨어진다는 부담감을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왕이 깨어지지 않는 유리를 만든 장인을 죽인 이유는 무었일까요. 깨어지지 않는 유리가 나온다면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금과 은, 보석 등의 가치가 하락할 것을 걱정하여 유리장인을 죽인 것이라 합니다. 이와 유사한 일들이 역사속에 얼마나 많이 스쳐 지나갔을까요. 행정에서도 참좋은 제안제도가 있습니다. 추진중인 행정방식을 개선하거나 새로운 일처리 방법을 제시하는 취지가 아주 좋은 혁신창구 입니다. 하지만 어렵게 제출된 제안내용이 담당부서 심사과정에서 왜곡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고 합니다. 어떤 공무원은 평생 단 한 번 제안제도에 출품했다가 혹평을 당하고나서 다시는 제출하지 않기로 결심했다고 합니다. 또 한가지 사례가 있습니다. 제안을 내고 날짜가 잡혀서 설명하러 회의실에 올라갔더니
우리는 대략 2주일 후의 약속을 합니다. 그리고 실제 활동은 일주일 단위입니다. 달력은 12개월치를 한꺼번에 인쇄하여 매달아 줍니다만 실제로 다음달 달력에 약속을 잡는 사람은 전체의 1% 이내일 것입니다. 대략 3년치 약속을 하는 분으로 교황님, 정명훈 연주자, 성악가 조수미, 박근혜 대통령일 것입니다. 남경필 도지사님도 내년 약속을 잡지는 않는듯 느껴지고 곽상욱 시장님 일정은 3달후쯤은 잡혀가는 듯 보입니다. 1%이내 인사들의 스케줄에 대한 개인적 생각입니다. 우리들 대부분은 이번주 토요일까지 약속이 있습니다. 다음주 월요일에는 간부회의나 위원회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하다면 인간의 평균수명이 80년이라 하고 100년후의 약속을 잡는 것은 불가능한 것일까요. 예를 들어서 자녀들에게 2080년 1월20일에 모여서 우리 조상님중 응록이라는 어르신의 일대기에 대해 평가하고 돼지 한마리 잡아서 잔치를 벌이라는 약속을 할 수는 없는 것일까요. 2015년에 근무중인 오산시장님이나 경기도지사님은 임기인 4년치 일만을 하여야 하는 것일까요. 8년 후에 오시는 단체장이 하시도록 지금 장기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이를 추진하여 다음 대 기관장도, 그 다음 기관장도 이어서 추진
동료들과 함께 오리집에 갔습니다. 살아온 이야기를 재미있게 주고 받으며 훈제오리를 구워먹었고 후반부에 된장찌게를 먹고자 주문을 하였습니다. 사실은 종업원이 주방장님 퇴근시간이 임박했다며 식사를 할 것이면 지금 주문하라는 압박을 받으며 메뉴를 받아보니 공기밥+된장찌게, 누룽지, 잔치국수 등이 있습니다. 4명이 누릉지+된장찌게를 주문했습니다. 누룽지를 먹으며 된장찌게 국물을 떠먹는 맛을 알기에 말입니다. 하지만 누룽지만 나오고 된장찌게는 아직 나오지 않습니다. 아마도 일찍 퇴근하시는 존경받는(?) 주방장님이 된장찌게를 끓이시는 중이려니 하면서 기다렸지만 누룽지를 후루룩 다 마시도록 된장찌게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종업원에게 물었습니다. 된장찌게는 언제 나오는 것인가요? 종업원의 대답은 누룽지에는 된장찌게가 나오지 않고 그냥 김치하고 드시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더더욱 재미있습니다. 카운터에서 계산하는 프로그램에 공기밥+된장찌게은 가격이 있지만 된장찌게+누릉지에 대한 가격표가 없어서 나오지 않았답니다. 우리의 기대는 가격표는 공기밥+된장으로 체크하고 실제로는 누룽지+된장을 주시면 되는 일인데 말입니다. 여러명의 종업원이 각각의 코너를 담당하다보니 발생할 수
병우회 모임에 다녀왔습니다. 이제 퇴임한 회원, 자리를 바꾼 회원 등 삶의 행태가 다양해졌습니다. 30세 전후의 예비군들이 막걸리를 마시며 만난 것인데 이제 회갑을 앞둔 초로의 아저씨가 되었습니다. 성성하던 머리에는 흰 눈이 내리고 듬성해진 틈새로 붉은 이마가 반작이는 그런 나이에 이른 것입니다. 소주잔 가득 25도짜리 알콜을 받자마자 원샷 하고 캬~~~소리로 술을 마셨던 시절은 지나고 이제는 주정 19도에도 이르지 못하는 소주 반잔을 받으며 손이 떨리는 것을 어찌하여야 하나요. 세월을 탓할 일은 아닌 줄 알지만 본인을 책망하기도 어려우니 가는 세월 잡아주지 못한 가수 ‘서유석 형’을 원망하든가 저 푸른 초원위에 집을 짓지 못하게 된 자신의 입장을 ‘남진이 형’한테 하소연 하거나 해야 할 판인 듯 보입니다. 결국 마음만 추억에 취하고 마신 술을 향수로 날려보낸 저녁은 그렇게 마감되고 다시 돌아와 옛날 추억을 하면서 누군가가 말한대로 예비군 시절에 찍은 사진이 있는가 앨범을 뒤적거려 볼 일입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아도 당시에 사진을 찍을 일이 없었던 듯 생각합니다. 그때나 요즘에나 예비군 훈련장에 카메라를 들고 가는 예비군 아저씨는 없을 것이고 요즘처럼
멀지도 않은 1970년대에 가정용 전화기는 2가지 유형이 있었습니다. 청색전화와 백색전화가 그 것입니다. 청색전화는 회선(回線)이 부족하여 전화 가입이 어려웠던 시절에 사용권을 양도할 수 없도록 한 가입 전화로서 가입 원부가 청색으로 되어 있어서 붙은 이름입니다. 백색전화는 사용권을 양도할 수 있도록 한 가입 전화로서 가입 원부가 흰색으로 되어 있어서 붙은 이름입니다. 이는 정부가 정치, 경제, 사회 등 각 분야의 문제에 대하여 그 현상을 분석하고 장래의 정책을 수립하기 위해 발표하는 보고서의 표지가 백식이고 민간의 보고서는 청색인 것과 연관이 있어 보입니다. 하지만 당시 전화국에서 우연히 팔지 못하는 전화기 원부는 청색으로, 팔 수 있는 전화기 원부는 백색으로 하였을 수도 있다고 생각 합니다. 백색은 아니어도 청색전화가 청약되면 일단 집 거실에 검정색 전화기를 사놓고 매일 아침저녁으로 먼지를 닦았습니다. 친구들이라도 오면 전화기 자랑을 해야 하니까요. 하지만 이 전화기는 벨이 울리지 않습니다. 아직 전화국에서 회선 연결을 하지 않은 것이지요. 전화기를 사오고 설치한 후 3개월은 더 기다리셔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어머니들은 전화번호가 나온 것만으로도
1994년경 우리 집 쌍둥이 남매가 4살이던 시절에 주공아파트 4층에 살았습니다. 토요일이나 일요일에는 아내는 외출하였고 아이들과 셋이 있는 상황에서 "딸랑딸랑" 鐘(종)을 흔드시는 두부장수가 오시면 두부 한 모를 사곤 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만 두고 밖에 나갔다 오기에는 아이들이 걱정되고, 또는 엄마 아빠 아무도 없으면 아이들이 놀랄 수 있으므로 작은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일단 두부장수 딸랑이가 들리면 베란다로 나가서 큰소리로 외칩니다. 사장님! 여기 두부 한 모 주세요. 사장님은 주변을 두리번 거리지만 사람은 보이지 않고 두부 한모 달라는 외침소리만 들립니다. 여기요 4층입니다. 사장님은 고개를 들고 바라보니 웬 남자가 베란다에서 두부 한 모를 주문합니다. 턱을 올리고 고개를 들어 4층을 바라보시는 그 두부 장사 아줌마의 표정이 참으로 애매합니다. 두부 한모를 4층까지 배달을 해야하나 어찌해야 하나 하는 표정이 확실합니다. 이때 들고 있던 바구니를 휙하고 던집니다. 사전에 줄 길이를 4층에서 바닥에 닿을락 말락하게 재둔 것이므로 빨래집게에 1천원을 물린 채 바구니가 1층으로 내러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두부장수 사장님은 두부한모를 담아주고 400원 거스름돈
흔히 말씀하시기를 입은 하나이고 귀는 둘입니다. 더 많이 들어야 한다는 의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젊어서는 말을 많이 했습니다만 나이가 조금 들면서 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아직도 말하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습니다만 시간이 갈수록 들어야 한다는데 무게를 둡니다. 특히 민원인이 오시는 경우 30분, 50분동안 들어야 해결됩니다. 말씀의 시작 부분에서 변명하려 하거나 설명하려 덤비면 필패입니다. 민원인이 지치실 정도로 기다리며 듣다보면 민원의 핵심이 보입니다. 같은 용어나 말씀을 3번정도 반복하시면 하실 말씀을 거의 다 쏫아낸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민원인 말씀을 들으면서 그분의 입장에서 동조하는 '추임새'가 필요합니다. 아 그러시군요, 그러면 많이 힘드신 일이지요. 그사람들이 참 나쁘게 하였군요. 그것은 법을 지키지 않는 행위라고 보이는군요. 판교 환풍구 사고당시 핵심에서 피한 경우가 있고 귀국하자마자 모든 안전에 대한 책임은 나에게 있다고 팩트있고 엣찌있게 정리한 남경필 도지사님의 인터뷰가 참 멋졌습니다. 도지사 책임이라고 선언을 하였어도 각각의 책임은 관계법과 규정, 약관에 의해 처리되는 것입니다. 도지사님의 말씀이 중요정책의 추진이나 해결의 방안이 되
새마을운동 시절의 시골집 전원주택 이야기입니다. 농촌에서 열심히 농사를 지어 소득이 높아진 부부가 살던 집은 철거하고 밭 가운데에 전원 양옥주택을 지었습니다. 자기 밭 산기슭에 자리한 전원주택은 빨강 벽돌에 보라색 담장으로 멋지게 꾸몄습니다. 아내는 집을 완성하자 자랑을 하고 싶어 서울 사는 친척에게 전화를 걸어서 새 집이 완성되었으니 한번 놀러오라 말했습니다. 서울 친척은 옛날 집을 알기에 버스를 타고 내려와 친척집으로 향했습니다. 생각보다 쉽게 집을 찾았지만 옛집은 사라지고 새로운 집이 밭 가운데 덩그라니 서있는 것을 발견하고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습니다. 우선은 울타리를 찾아보았습니다. 집이라는 것이 울타리가 있게 마련이고 그 수수깡 벽을 따라가면 대문이라는 것을 만나게 되니 이 대문을 통해 집안으로 들어가겠다고 마음먹은 것입니다. 사실 서울 사시는 친척은 아침 출근길에 대문에 인사하고 나오고 저녁에 퇴근하여 집 앞에 도착하면 또 인사를 하면서 집안으로 들어갑니다. 1970년대 서울집은 '보로꼬 울타리'위에 날카로운 유리조각을 세워 도둑의 침입을 방지하는 요새였으며 큰 대문은 설치하는 날 한번 열고 며느리 장농 들어오는 날 두 번 열고 대형 냉장고 입고
1984년이면 40년전입니다만, 당시에는 공직사회 계단위 인원이 7~8명 정도였고 거기에는 계장님, 차석, 삼석 3명 말석 등이 있어서 명확한 위계질서가 형성되어서 각각의 임무가 정해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계장님 결재를 가려면 모든 부서 직원들은 차석의 사전 싸인을 받아야 합니다. 고무인으로 "차석"이라 새겨서 기안문 빈 자리에 스탬프를 찍어서 차석의 서명을 받은 후에야 계장님 결재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연초부터 각각의 집을 방문하는 행사가 열리곤 하였는데 연초에 계장님이 집으로 전직원 8명을 불러 식사를 하고 1달후에 차석이 하고 다음번은 누구라고 정해주었으므로 1년에 2번정도 계장님 차석님 삼석님 집을 갑니다. 결혼전 젊은 직원은 열심히 얻어먹으면 되는 일입니다. 그리하여 계장님 댁에 가면 차석이 사모님께 3만원 정도를 드리고 차석집에 가면 5만원, 젊은 집에 가면 상차리는데 돈이 많이 들었을 것이라면서 7만원 정도를 젊은 부인에게 전하였습니다. 그래서 상차림을 하신 각각의 사모님들은 일단 10만원 정도 들었다 하지만 냉장고에 식재료를 조금씩 남겨 다음날에 요리에 쓰게 되므로 거의 본전정도 챙기는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상차림 비용을 부담하는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