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스는 1980년대에 모사전송이라 해서 공문서를 우리 사무실 기계를 전화선으로 상대편 기기에 연결해서 문서를 복사해서 전달하는 획기적인 문서발송 수단이었다. 당시로써는 과학적인 일이었고 요즘으로 말하면 자율주행 자동차의 초기단계를 보는 것 같았다. 동시에 같은 청사 내에서 바로 옆 과에 팩스로 문서를 보내는 것을 보고 당황스럽기도 하였지만 참 귀찮은 스타일의 직원이라는 생각을 한 기억이 난다. 이 팩스에도 물론 기록지가 있기는 한데 실제로는 문서의 내용까지 확인되는 것은 아니고 우리 편 몇 번 전화번호를 타고 상대방에게 몇 시에 도착하였다는 정도의 증거만 남는 초기적인 인증시스템이다. 그래서 통상은 팩스를 보내고 받았는가를 전화해서 확인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처럼 장황하게 팩스에 대한 사전 설명을 하는 이유가 있다. 개인 일로 신청한 일이 다른 업무와 중첩되면서 잠시 유보를 해야 할 상황이므로 그 내용을 적은 신청서를 팩스로 보냈다. 그리고 3일이 지났다. 혼자 상상했다. 아마도 그 기관의 팩스기에 이곳저곳에서 보내는 홍보전단지 등에 나의 서류가 섞이면서 이면지 함으로 직행하는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래서 이번에는 원본을 다시 뽑아서 빠른 등기우편으로
호텔이나 컨벤션에서 열리는 조찬모임, 강연회에 가면 홀 한편에 옷걸이가 있어서 웃옷이나 코트를 걸어두고 강의를 들을 수 있다. 남녀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옷걸이는 주최 측이 마련한 최상의 서비스라는 생각이 들고 이처럼 배려 깊은 준비한 콘퍼런스에 온 것이 자랑스러워 가슴 뿌듯하기도 하다. 그리고 여기에 더하여 행사장 한켠에 가로세로 50cm 정도의 개인 금고를 행사장 규모에 따라 20~50개 정도 설치했으면 한다. 행사에 참가하는 여성 모두는 귀중품이 들어 있고 그 자체가 명품이고 귀중품인 핸드백을 둘 곳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행사장이나 공공장소에서 옆 사람에게 맡기기도 부담스러운 소중한 가방을 개인 금고에 넣고 비밀번호로 잠그거나 나만의 열쇠를 준다면 참으로 깔끔하고 기분이 좋을 것이다. 호텔 방안 개인 금고처럼 행사장에도 귀중품을 넣고 나만의 비밀번호를 설정할 수 있는 캐비닛이 있다면 이용자의 마음이 행복할 것이고 그 시설이나 호텔에 대한 깊은 신뢰를 바탕으로 영업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최근에 여러 날치과를 다니고 있다. 지난해 여름에 개업한 이 치과의 대기실 한편에는 개인 옷장이 있다. 외투와 가방, 핸드폰을 넣고 잠근 후에 키를내 손
치과진료를 받고 있다. 어금니 골절로 1/3쯤 갈아내고 그 위에 덧씌우기를 한다. 신경치료를 4번 받았다. 어금니의 뿌리와 몸속에 연결된 신경을 끊어내고 녹여 없앴으므로 실금으로 인한 치아 통증은 사라졌다. 그 위에 임시치아를 붙이고 일주일을 지내고 치과에 갔다. 이리저리 작업을 한 후에 의치를 올렸는데 치아는 잘 맞았지만 입 안쪽 잇몸과 어금니에서 작은 틈새가 느껴진다. 수많은 치과 진료를 해오신 원장님은 즉석에서 혀끝의 불편한 느낌이 있을 것이라면서 일주일 후에 다시 맞춰보잔다. 일주일간 더 불편함을 드려서 죄송하다 하신다. 눈 가리고 누워있는 사람에게 사과를 하셨지만 입을 크게 벌린 상태라서 손가락으로 OK 사인을 보냈다. 새로 주문한 주물 의치는 아마도 어금니 아래쪽의 잇몸과 만나는 부분을 좀 더 길게 하고자 치아 부분을 더 절삭했다. 혀에는 눈이 없지만 눈 이상으로 정확한 구조물 판단 능력이 있다. 오죽하면 부하나 동료를 평가할 때 ‘혀 같은 사람’이라는 말을 한다. 우리의 치아도 예민하다. 입안을 둥글게 차지하는 성곽처럼 우직한 치아인 듯 보이지만 치아도 혀만큼 예민하다. 갈아내서 작아진 어금니를 일주일 이상 그대로 두면 자신의 역할이 없어졌다 생
언급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언론사의 광고는 곧 생명과 같다. 신문사나 방송사가 광고 없이는 운영이 어렵다. 광고가 없으면 언론도 없다. 공영방송 KBS도 협찬이라는 형식의 사실상 광고가 있다. 신문사는 매일 수십 건의 광고를 실어야 하는데 광고주는 신문사 광고국에 전화하지 않는다. 그런가 하면 광고가 잘되는 신문사 광고부장은 광고주를 피해 다니고 잘 안되는 신문사 광고부장은 광고주를 따라다닌다는 말이 있다. 기업으로서는 제품이 잘 팔리라고 광고를 싣지만 어떤 경우에는 영업실적을 올리기 위해 광고를 내는 경우도 있다. 광고효과가 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이번 광고가 얼마만큼 매출에 효과를 올렸는지를 평가하기는 참 어려운 일이다. 언론사는 늘 자기 독자와 시청자를 자랑하지만, 광고주는 그만큼 인정하는 눈치가 아닌 듯 보인다. 그래서 광고를 내는 광고주가 나서기보다는 광고매체인 신문사가 광고에 앞장서는 경우가 있다. 우리 신문사에 광고를 내면 효과가 높다고 주장하지만, 그것을 증명할 방법은 충분하지 않다. 더구나 앞서 말한 대로 광고효과가 그 신문사의 파워에 의한 것인가를 상호 간에 증명할 방법이 적다. 1999년 이전에는 공고를 내는 것이 행정기관 광고의 전부였다.
1966년경에 아랫마을 전기 방앗간 3선 동력 전선에서 110v 전기를 뽑아내서 50촉짜리 전구를 켜면 2㎞ 떨어진 윗마을에서도 주변의 건물이 환하게 보이던 시절이 있었다. 문명의 상징이라 할 전기가 밝기도 하지만 어려서는 지금보다 시력이 더 좋았을 것이고 공기 중 미세먼지가 적어 청명하였기에 멀리서도 잘 보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설극장 영화가 상영된다는 방송을 들은 동네 젊은이들은 저마다 쌀 반 말을 가슴에 안고 나방이 불빛에 몰려들 듯 천막 영화관을 행해 달려간다. 가는 길 사거리 가게에서 쌀을 돈으로 사서 지전과 동전을 꼭 쥐고 뛰어간다. 쌀을 주고 돈을 받으면서 ‘쌀을 산다’고 하고 돈을 주고 쌀을 받으면서 ‘쌀을 팔아온다’는 역설적 표현은 농경문화의 자존심이라고 한다. 그러니 쌀을 사면 내 손에는 돈이 들어온다. 그 돈으로 영화표를 산다. 고모는 어린 조카를 오버코트 속에 숨겨 극장 천막 안으로 들어간다. 기도 아저씨는 알면서도 눈감아 주었다. 영화가 끝나면 추첨으로 이어지는데 내 손의 표와 같은 번호가 적인 짝표가 저 추첨함 안에 들어 있다. 늦은 시간 길가의 긴 풀잎새에 이슬이 맺힐 때까지 우리는 추첨을 기다리고 결국 바가지 1개를 탄 동네
경기테크노파크는 도내 중소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설립된 공기관이다. 경기도와 안산시, 그리고 정부에서 투자했다. 안산시 상록구 해안로 한양대학교 캠퍼스 후문 쪽에 있으며 중소기업 제조업 본사가 입주한 10층 높이 기술고도화동을 비롯하여 6개의 건물로 구성되어 있다. 도내 중소기업의 현장기술을 통한 기술 고도화, 즉 기술닥터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도내 중소, 중견 제조 기업을 대상으로 1단계 현장 애로 기술 지원, 2단계 중기 애로기술 지원, 3단계 상용화를 지원한다. 그리고 전주기적 문제해결 지원책으로 시험분석, 설계, 시뮬레이션 등을 지원한다. 신속한 업무처리를 위해 333원칙을 기준으로 삼고 있다. 기업에서 기술 지원을 요청하면 3일 이내에 3명의 전문가가 3번 현장을 방문하는 것을 말한다. 간소한 신청절차, 신속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도비 35억 원을 지원받았고 시군에서 24억 원을 매칭하고 있다. 그리고 경기테크노파크는 경기도 지식재산 전담기관으로서 유망 중소기업을 3년간 집중 지원하는 IP스타기업육성, 창업기업에 대한 지식재산 역량강화를 위한 IP 창업존과 IP 디딤돌사업, 수출경쟁력을 확보하고 있으며 글로벌히트 상품을 목표로 하는 특허·브랜
정말로 꿈을 기록할 수 있다면 참으로 재미있을 것이고 작가에게는 소재가 될 것이며 청소년들에게는 미래의 希望峯(희망봉)이 될 것이다. 초등학교 1~2학년 쯤에 동내 뒷동산 풀밭에서 깔끔하고 큼직한 하모니카를 습득하였다. 그 하모니카를 지금까지 가지고 있다면 아마도 지금쯤 전국은 아니어도 지방의 작은 음악가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이렇게 공무원 39년 재직 후 직장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을 보면 음악과 인연이 조금 부족했나보다. 그날 홀로 산책을 하다가 동네 언덕 잔디밭에서 하모니카를 拾得(습득)했으므로 어린 마음에도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어 소독을 한다고 라면 끓이듯이 물에 삶아 버린 것이다. 문제의 하모니카 외부는 철제로 만들어졌지만 그 속의 공기를 통과시켜 소리를 조율하는 다양한 크기의 셀들은 플라스틱이다. 지금도 선명히 기억한다. 펄펄 끓는 100도가 넘었을 온도를 견디지 못하고 플라스틱 부분이 여름날 초콜릿처럼 쭉 늘어져 밖으로 나와 버렸다. 결국 하모니카는 폐기됐고 어린 한국판 모차르트의 꿈은 녹아내린 하모니카 플라스틱 셀처럼, 여울목의 泡沫(포말)처럼 눈앞에서 사라졌다. 이후에도 음악가로서의 길을 가지 못했고 사연을 反芻(반추) 하는 글
할아버지에게 깨진 항아리가 있었다. 할아버지는 아침저녁으로 깨진 항아리와 새 항아리를 대나무 자루에 매달고 물을 길어왔다. 물을 채우는 우물에서는 두 항아리 모두에 물이 가득했지만 깨진 항아리의 물이 새는 바람에 집에 돌아오면 반항아리만 남는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늘 깨진 항아리를 길 오른쪽에, 성한 항아리는 길 중앙선 쪽으로 하여 어깨에 메고 집으로 돌아와 물통에 물을 채웠다. 깨진 항아리는 늘 반항아리 물을 길어오는 자신이 창피하고 할아버지에게, 할머니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어느 날 깨진 항아리는 용기를 내어 할아버지에게 속내를 말했다. “할아버지, 제 몸이 부실하여 깨진 항아리라서 물을 반밖에는 못 길어오니 늘 죄송합니다. 저는 깨진 항아리라서 마음이 아픕니다.” 할아버지는 깊은 주름 속에 밝은 미소를 지으시며 말했다. “깨진 항아리야. 걱정하지 말아라. 네가 얼마나 소중하고 중요한지 함께 밖으로 나가보자.” 집을 나와 매일 물을 길어오는 길가에 나가보니 길 왼쪽에 아름다운 꽃이 피어있었다. 할아버지가 찬찬히 설명해 주었다. “우물에서 물을 길어 집으로 올 때 나는 늘 너를 오른쪽에 두고 걸어 왔단다. 집으로 오면서 가득 찬 네 물의 절반은
요즘 공직사회에서 퇴임식을 보기 어렵고 동시에 훈장을 전수하는 행사도 거의 열리지 않는다. 기관장은 바빠 훈장 전수식을 준비하지 못하고 부단체장은 기관장의 눈치 보느라 퇴직 간부의 훈장을 전하는 행사를 주관하지 못하는 것 같다. 더구나 명퇴하고 한두 달, 6개월이 지나면 또 다른 인사발령으로 그 부서의 서무담당, 주무팀장, 과장이 바뀌고 국장급 인사는 더 자주 발표되므로 막상 훈장을 받으러 근무한 기관이나 부서에 가기에도 쑥스럽다는 것이 퇴직 공무원 대부분의 공통적인 이야기다. 퇴직 공무원의 훈장 전수식 참석을 기피하는 것이 먼저인가, 기관에서 행사를 준비하지 않아 참석하고 싶어도 못 가는 것인가는 ‘닭이 먼저인가 계란이 먼저인가’를 논하는 것과 같다. 헌법 제80조에 ‘대통령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훈장 기타의 영전을 수여한다’고 규정했다. 소중한 훈장은 퇴직후 6개월, 1년후 택배로 보내기도 한다니 훈장이 명예가 아니라 서무 담당자에게는 애물단지가 되고 있다.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기에 공직자로 일한 분들이 헌법정신대로 예우를 다하는 가운데 자랑스럽게 훈장을 받도록 몇 가지 해야 할 일의 순서를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행정안전부 담당 부서에서는 퇴
동경(東京) 동경(憧憬) 동경(銅鏡) / 2017-12-18 일본에 東京(동경)이 있다. 일본을 憧憬(동경)하는 것은 아니지만 생애 처음으로 일본에 가보니 그동안 듣고 읽은 일본을 조금은 이해하고 동감하는 기회가 된다. 우선은 일본 동경시내 건물과 시설과 사람과 차량의 질서다. 상대를 배려하는 사람들, 경적을 울리지 않는 차량이다. 동경시내를 조망해 보면 높이 올라간 것의 으뜸은 도쿄타워이고 도심 한가운데를 넓게 차지한 거목의 숲은 신궁이다. 자료를 찾아보니 메이지 신궁은 1912년 제122대 왕인 무쓰히토(메이지)가 사망하고 1914년 왕비 쇼켄이 사망한 후 두 사람을 기리기 위해 1915년 건설을 시작하여 1920년 11월1일 창건하였으며 신궁(神宮)은 역대 일본 왕을 기리는 신사로, 다른 신사보다 높게 친다고 한다. 동경타워는 1958년에 건립됐다. 프랑스 파리에 1889년 프랑스혁명 100주년 기념 파리 만국 박람회 때 세워진 324m의 에펠탑을 모델로 하여 철강 4천t으로 333m 높이로 건설했다. 9천700t의 철강이 들어간 에펠탑보다 7m 높다. 70년의 시차와 기술의 향상으로 철강을 절반 이하로 쓰면서 더 높게 건설한 것이다. 1975년에 세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