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자신이 가장 불행하다 주장하지만 가장 행복한 것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자신이 불행한 줄 알거나 그러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 행복임을 강조하는 바입니다. 그러니 지금의 자신을 불편해하지 말고 강점과 장점을 살려나가면서 스스로 행복의 길을 찾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렇게나 행복한 사람들이 행복한 줄 모르고 저렇게 불행의 길로 가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오늘 아침 절을 하였다는 사실이 행복입니다. 숨을 쉬고 있는 자신의 숨소리, 코고는 소리가 행복입니다. 부부가 언쟁을 하고 삐치고 토라지는 것은 부부가 함께하고 있는 것이니 행복입니다. 도대체 부부싸움을 할 수 있는 부부가 행복한 부부입니다. 남남간에는 버스안에서 발을 밟아야 싸울 수 있습니다. 옷깃을 스쳐야 인연이라 말할 수 있지만 옷이 닿았는 줄도 모르고 바쁘게 살고 있습니다. 아들이 논산 훈련소 들어가는 날에 눈물을 흘리는 어머니는 행복합니다. 아기를 낳았으니 행복하고 아들을 낳았다고 기뻐했을 것입니다. 딸을 낳아도 기뻐합니다. 그런데 아들을 낳았으므로 논산훈련소에 동행한 것입니다. 딸들은 본인이 원해야 입대할 수 있지요. 그러니 눈물을 흘릴 일이 아니라 자랑스러워할 행복한 일입니다. 그런데 왜 눈물
▩ 後孫(후손) 100년을 이어가지 못하는 종이와 서류는 보통의 가정에서 제대로 이어가기가 어렵습니다. 조선시대 왕실의 문서는 별도의 사고를 4개 지어서 보관했다고 합니다만 벼슬을 지낸 영의정 등 관료나 당대의 학자들이 남긴 책이 지금까지 이어지는 데는 집과 토지, 농지가 함께할 때 더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자자손손 집을 이어 살고 농지를 경작해 먹고 살면서 집안에서 관리하는 고문서를 잘 보존했습니다. 이것이 참으로 소중한 자산임을 며느리와 아들, 손자들이 알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문서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한 중국 명의 화타의 부인은 남편이 죽자 소중한 의서를 아궁이에 불태웠고, 이를 예견한 제자가 달려와서 반쯤 불타고 있는 문서를 아궁이에서 꺼내어 급하게 불을 꺼서 구해낸 것이 오늘날 중국의 한의학 수준이라고 합니다. 화타의 아내가 의서를 불태우지 않았다면 지금 의술의 3배 이상 높은 수준에 이르렀을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겠습니다. 우리 주변의 사대부 집안에서도 놋그릇을 내다 팔고 스텐레스 그릇으로 제기를 바꾼 며느리가 많았습니다. 옛날 돈을 모아서 부자가 된 국민학교 선생님도 있다 들었습니다. 조선말 우표를 모아서 큰 돈에 내다 판 경우도 있습니다.
살면서 누군가를 평가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비교평가는 더욱더 어렵습니다. 부분적인 일부를 보고 그 사람의 성과를 평가하는 것은 신경을 써서 해야하는 업무입니다. 평가자는 금방 잊어버리겠지만 평가를 받은 사람은 그 결과에 따라서 큰 차이를 겪게 됩니다. 최선을 다한 결과가 기대 이하로 나오면 마음이 아플 것입니다. 판사님도 틀린 판결을 내려서 30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하기도 합니다. 외국에서 30년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도 9억원 상한선 기준으로 인해 더 받아야 할 보상을 밪지 못한 뉴스를 보았습니다. 마찬가지로 누군가를 평가하거나 합격 불합격을 결정하는 면접관으로 임하는 자세는 가히 무거워야 합니다. 편안하게 필기시험 잘 받은 후보자를 합격시키는 나름 마음 편안한 방법이 있기도 합니다만 실제로 면접관을 해보면 필기시험 성적 이상으로 대인관계나 민원인을 잘 모시는 자세를 갖춘 젊은이를 판별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미안한 마음이 들지만 필기시험 2등을 합격시키고 1등을 탈락시킨 경험이 있습니다. 최근에 강의를 다녀 와서 평가를 받았습니다. 아주 낮게 나왔습니다. 40여명이 2시간 강의를 듣고 자신의 기준을 바탕으로 내린 결과이지만 받아들입니다. 대신에 지방자
어제 강의에 대한 회고를 하면서 복기를 합니다. 바둑에서 지난 판을 다시한번 수순을 정리하면서 경우의 수를 생각해 보는 것처럼 강의결과에 대하여 수강생들의 평가가 나오기 전에 혼자서 돌아보는 것입니다. 잘한 것을 자랑하고, 못한 것과 기대에 올라가지 못한 부분, 미리 준비했지만 실전에서 활용하지 못한 강의 소재들을 돌아보고 다음에는 좀더 큰 글씨로 워딩을 준비해서 교단에 올리고 살펴보면서 여유를 가지고 시간조절도 하고 반응을 보면서 소재활용 시간을 맞춰나가고자 합니다. 나름 열정으로 준비한 소재를 이야기해도 듣는 공무원들의 반응이 약하면 즉시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야 하는데 일단 시작한 말을 중간에 정리하기가 어렵습니다. 스킬이 부족한 것 같고 경험도 貧寒(빈한)하고, 특히 수도권, 경기도 강의에서는 비대면, 인터넷, 노트북 강의였기에 반응을 피드백하는데 한계가 있었는데 비수도권은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대면 강의를 하기에 반응을 살필 수 있습니다. 중간에 수강하는 공무원들의 움직임을 의식하면서 강의를 진행하였지만 역시 대면강의는 어렵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비대면에서는 강의를 듣는 반응을 살피는데 한계가 있었지만 실전에서는 반응이 곧바로 나오니 어렵다는
전남 구례 여행을 하였습니다. 화엄사, 사성암, 천은사를 방문하고 구례 여러 곳을 다니면서 자연 친화적인 경치와 마을을 구경하였습니다. 아마도 이처럼 자연스럽게 내려앉은 산맥의 공시선이 흔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강원도의 치열함이 없고 경상도의 광활함과는 다른 평온한 들판의 경치와 풍광이 한 자락 깔고 있는 여유스런 경치입니다. 화엄사, 천은사는 고찰로서 정말로 오래된 목재로 지어진 사찰의 여러 건물이 잘 보존되어 검은 집으로 자리하고 있고 빼곡하게 들어선 사찰의 배치가 다른 지역에서 확인할 수 없는 사찰의 멋짐입니다. 이처럼 건물배치가 바쁘게 된 것을 확인할 수 있는 곳이 호남지방의 특징인가 생각합니다. 화엄사는 544년 緣起(연기) 조사님께서 창건하였습니다. 연기 조사는 화엄경과 비구니 스님인 어머니를 모시고 지리산 자락 황전골에 전각 두 채의 작은 절을 지었습니다. 화엄경은 부처님의 세계, 깨달음의 세계를 기록한 경전이니 화엄사가 곧 부처님의 세계이고 깨달음의 성지라는 뜻입니다. 고택 쌍산재는 TV프로 윤스테이에 나온 이후 더 유명해졌습니다. 후손들이 이어 살다가 어느 날 방송국 피디의 제안으로 아마도 한국식 호텔을 운영하였고 방송에서 인기가 높아
김문수 경기도지사님이 재야운동을 함께 하시던 동지의 요양원을 방문했을 때 소방서의 최신형 앰블런스를 알아보기 위해 119에 전화를 한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직접 119에 전화를 하니 소방관이 전화를 받았습니다. "나, 도지사 김문숩니다."라며 대화를 시작합니다. 그러자 소방관은 메뉴얼에 따른 듯 동문서답으로 대화를 이어갑니다. 도지사라 말하면 '네 도지사님, 소방관 아무개입니다'라고 답하면 '앰블런스를 이용하려면 어찌해야 하는가?'질문 할 순서였습니다. 하지만 소방관은 '도지사 김문수'라는 말을 흔하게 접하는 장난전화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입니다. 나중에 진짜 도지사임을 파악한 소방당국이 소방관 교육용으로 만든 녹음파일이 언론에서 취재하였고 인터넷으로 퍼져나가서 여러번 당시의 대화상황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여러 번 반복 청취를 해 보았지만 어느 구석에도 "나 도지사" 라며 "갑질"을 한 부분은 없습니다. 오히려 친절하게 “나는 도지사 김문수입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소방관의 응대를 기다립니다. 결국 대화가 길어지고 애당초 앰블런스를 알아보려던 의도는 사라지고 그냥 소방서에 장난 전화를 한 도지사 목소리를 흉내 낸 상황이 되고 말았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
1980년 5월10일에 팔탄면에 발령되었습니다. 軍 복무를 마치고 복직을 신청하였으나 당시에는 이른바 빽 있는 공무원은 교통이 편리한 곳이나 근무에 유리한 부서로 배치하였고 별로 빽이 없는 공무원은 奧地(오지)로 보내는 시절이었습니다. 郡廳(군청) 행정계의 권한이 하늘을 찌르고 날아가는 새의 가는 길을 바꿔버릴 정도의 세도를 부리던 시절입니다. 그리하여 복직원을 냈고 비봉면에 빈자리가 있다하고 인근 매송, 반월, 남양으로 발령받으면 집에서 버스타고 비봉 내려서 다시 갈아타면 되는 것이고 매송면은 5정거장 더가면 면사무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같이 여건 좋은 곳은 예를 들면 도청 계장빽, 군청 과장의 인척 등이 있는 것인지 나에게는 주어지지 않는 그림의 떡, 畵中之餠(화중지병)의 자리였나봅니다. 군청 선배 지인에게 동향을 물으니 양감이나 팔탄 등 비봉 집에서 먼 곳으로 보낼 것 같다면서 지금 홀딩하고 있으니 조금만 기다리라 하십니다. 하지만 일주일이 지나도 소식이 없어 전화를 하였더니 아직도 검토 중이랍니다. 그리하여 그냥 아무 곳에나 군청 행정계가 편안한 곳으로 발령을 내달라 했습니다. 어디를 가나 공무원 9급 3호봉은 다 같을 것이니까요. 당시의 이 같은
이렇게 하루 이틀 일주일 한 달이 참 쉽게도 내달리고 있습니다. 다라나는 기차 같기도 하고 흐르는 강물처럼 가는 듯 보이는 세월이 이렇게 흐르고 쌓여서 62년을 채웠습니다. 그 동안 흘러간 세월이 참으로 많은 만큼 맞이할 시간도 그만하다 생각을 하기로 하고 마음 느긋하고 평온하게 살아가렵니다. 가수 보아의 오빠는 40세인데 3~6개월 생존한다는 진단서를 공개하면서 열심히 관리하면서 살아간다고 밝혔습니다. 뱃속의 복막이 아프다하는데 그 고통이 심하다고도 합니다. 그냥 암으로 생존할 날이 길지 않다는 것도 힘든 일인데 그 암이 고통을 수반한다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40세 나이면 그동안 준비한 인생을 바탕으로 자신의 삶을 크게 넓게 펼쳐나가는 시기인데 말입니다. 어느 인생이나 40이면 아름다움의 최고봉이지요. 20까지 공부하고 28세까지 군대 다녀오고 배움을 바탕으로 자신의 삶을 꾸려나가는 나이이지요. 정말로 40세를 돌아보니 참으로 바쁘기도 하였지만 삶의 황금기였음을 이제야 알게 됩니다. 그런 기간을 바탕으로 열심히 노력하겠다는 신념을 바탕으로 살아온 바 오늘 이 같은 글을 쓰고 있다는 것도 참 고마운 일입니다. 사실 평생 신문에 글 하나 쓰지 않은 분,
최양락 팽현숙 부부의 삶을 알려주는 초코양락 까페에 회원이 되었습니다. 어제 24,846명이었는데 오늘 아침 6시27분에는 25,600명입니다. 100,000만 회원가입의 날이 멀지 않은 듯 보입니다. 100만명 회원이 되면 그 자체로도 큰 힘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최양락의 아내 팽현숙은 게그우먼으로 유명했고 한식, 중식, 일식, 양식 모든 조리자격증을 받았다고 합니다. 열정과 노력의 주인공입니다. 그래서인가요 남편을 대하는 모습은 우리 주변의 '궁서체' 에게는 익숙하지 않습니다. 김치, 파로 싸대기를 치고 머리끄댕이를 잡아당기는 등의 모습이 안타깝습니다. 나름 캐릭터인가는 모르겠으나 조금은 과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경기 가평군의 청평소재 대 저택에서의 생활모습을 보아도 궁서체들은 어렵습니다. 해서 조금은 톤을 낮추고 서로 양보하면서 존중하면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언제까지나 긴장을 하면서 그렇게 사시기 보다는 조금 여유를 가지고 릴렉스하면서 차분히 각자의 삶을 존중하고 나름의 여유를 가져 보시기 바랍니다. 지금의 모습은 60세 이전까지만 유지하시고 이후에는 조금 넓은 마음의 정원을 가꾸시기 바랍니다. 어제 재방송에서 팬 까페 만드는 과정에서
경기도청 공보실에서 11년간 근무하고 퇴직한 이강석(64) 전 경기테크노파크 원장은 페이스북 글을 통해 도와 시군의 행정홍보를 위한 여러 가지 준비사항 중 도지사, 시장, 군수의 사진은 밝은 사진, 결의하는 모습, 걱정하는 표정 등 3가지 이상의 사진을 준비해야 한다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말했다. 그는 보도자료와 관련해서 “주무관이 국민교육헌장처럼 매끄럽게 만들어낸 보도자료보다는 원시자료를 제공하는 것이 시정홍보에 보다 더 효율적”이라고 강조하고 “그 이유는 절임배추와 채썬 무를 제공하면 김치라는 하나의 반찬이 나오지만 무와 배추를 통으로 받은 주방장이 김치는 물론 소고기뭇국, 겉절이, 배추전, 해장국, 깎뚜기 등 다양한 반찬을 만들 수 있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이강석 전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보도자료는 식재료, 조리하지 말고 제공하라" "기관장 사진은 3가지 컨셉으로 준비하라" "언론은 비판·비평적, 공직자로서 이해해야" 이어서 “원재료를 받은 언론인들도 다양한 형태의 보도를 통해 행정홍보를 지원하게 된다”고 강조하고 “언론은 우리 행정을 돕고 시정발전을 위해 협력하는 역할을 하지만 언론인은 늘 비판, 비평의 시각을 가지고 있으니 여기에 맞는 공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