白沙(백사) 李恒福(이항복) 선생이 어려서 가지에 달린 감과 팔뚝의 주인이 누구인가를 명쾌하게 정리한 일화가 있다. 이항복의 집 감나무 가지가 옆집 권 대감 집으로 넘어가 있으므로 그 집 하인들이 자신의 것이라며 감을 따러 온 이항복의 집 하인을 야단쳤다는 것이다. 이항복의 옆집은 바로 당대의 勢道家(세도가)인 좌찬성 권철의 저택으로서 주인의 권세가 높으니 하인들도 권세를 부렸다고 한다. 이에 이항복은 감나무 뿌리가 엄연히 우리 집에 내리고 있으니 우리 것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다음날에 이웃집 권철 대감을 찾아갔다. 그리고 주먹으로 문 창호지를 뚫고 방안으로 주먹을 내밀었다. 대감님! 그 팔은 누구 팔입니까? 당연히 네 팔이지! 그러면 대감님 댁으로 넘어온 저 감나무는 누구네 것인가요? 대장간에 놀러 온 이항복 선생은 자그마한 쇠붙이를 한두 개 주머니에 넣고 슬며시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양반의 자제이니 어찌할 수도 없었던 대장장이는 어느 날 뜨겁게 달군 쇠붙이를 조금 식힌 후에 이항복 어린이의 시선에 잘 보이는 곳에 두었다. 예상대로 어린 이항복은 슬며시 쇠붙이를 깔고 앉은 후 주머니에 넣을 요량이었는데 수 백도는 되었을 쇠붙이 열기로 인해 옷이 타들어가므
친구인 듯 형제인 듯, 가수인 듯 예능인인 듯한 가수 김종국과 김종민. 두 사람의 대화 중에 “다르다와 틀리다”가 있다.대화 내용을 보면 대부분 틀린 것이 아니라 너와 나의 생각이 다른 것이다. 각자의 주장과 생각을 말하는 것인데 일방적으로 상대방이 틀리다고 하는 것은 맞지 않다. 우리가 대화를 하면서 “아니, 그게 아니고~”를 연발하고 있다. 식당이나 술 한 잔 나누는 자리에서 접하는 대부분의 대화내용을 잘 들어보면 90% 이상 상대방의 의견에 동의하면서도 자신의 주장을 말하기 위한 전제로 “그게 아니다”라고 말한다. “아니, 이친구야! 그게 아니고!”. 일단은 부정의 의미로 “그게 아니고!”라고 전제를 하고 다음 말을 이어간다. 상대방이 말하는 중에 자르고 들어가기도 한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상사의 물음에 대뜸 ‘그게 아니구요!’라고 답한다. 이것은 올바른 대화방식이 아니다. ‘국장님, 과장님 말씀이 맞습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이나 경우도 있습니다.’ 바로 위 상사가 나의 승진을 포함한 직장생활의 興亡盛衰(흥망성쇠)를 좌우한다. 승진하려면 승진이 늦었다면 話法(화법)부터 바꿔보기 바란다. 전에 일 잘하는 한 직원이 윗선에서는 비판을 받고 있었다. 나
이 꽃은 참 아름다운 것 같아요. 바람이 불어 시원한 것 같아요. 방송에서도 시민들의 인터뷰 멘트로 ‘~같아요’라 말한다. 이 꽃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오늘은 어제보다 시원합니다. 정확하고 적확하게 표현해야 한다. 이 말이 혹이 책임을 회피하는 것은 아닐까. 의회답변에서도 ‘~라고 알고 있습니다’라는 말도 아쉬움이 크다. 젊은이들의 대화 중에 ‘안돼요?’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사장님, 여기 공깃밥 하나 더 주시면 안돼요? 손님은 ‘안돼요?’라 말하는데 식당 종업원과 주인은 ‘주세요’로 해석한다. 왜 안 되겠는가. 식당은 돈 받고 밥을 파는 곳이다. 그러니 사장님, 여기 밥 한 그릇 더 주세요. 네 여기 밥을 드립니다. 귀에 거슬리는 ‘안돼요’는 이제 그만 쓰기를 바란다. 혹시 그런데, ‘안돼요?’라는 질문 단어를 많이 쓰는 이유가 부모들의 육아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칭찬을 하면 고래가 춤을 춘다고 한다. 코끼리도 칭찬과 격려를 통해 조련하여 멋진 서커스를 주도한다. 그런데 우리가 아이들을 키우면서 안 된다는 말을 아주 많이 한 것은 아닐까 반성해야 한다. 아이들이 잘한 것은 그냥 보아 넘기고 잘못된 것에만 집중하여 ‘안돼, No~!’를 濫
軍事郵便(군사우편)이라는 청색 스탬프가 찍힌 편지를 처음 본 것은 50년 전이다. 옆집 할머니께서 흰 손수건에 곱게 쌓인 ‘군사우편 찍혀있는 고운 편지’를 가져와 읽어 달라 하셨다. 철없던 아이는 국어시간에 교과서 읽듯 낭송하였고 할머니는 돌아앉아 살짝 눈물을 닦으시고 편지를 곱게 접어 치마 품에 감추셨다. 꽃 속의 나비처럼 편지를 간직하셨다. 할머니의 막내아들이 논산서 힘든 훈련 마치고 두 달 만에 보낸 편지다. 글을 읽지 못하시는 할머니가 아들이 그리워 철없던 초등 2학년 아이의 눈과 목소리를 빌려 군대 간 아들을 만나는 눈물겨운 情景(정경)이다. 겨울날 어느 밤에 군대 가서야 철든 아들은 내무반 차디찬 침상에 엎드려 급하게 적었을 것이다. 엄마가 어머니가 되었다. 군대 간 아들이 입대해서 가장 먼저 배우는 말이 ‘어머님 전상서’다. 요즘쯤인 가을이면 참으로 편지쓰기가 좋다. 요즘 제법 쌀쌀한 날씨에 아버님, 어머님! 기체후일향만강(氣體候一向萬康)하옵신지요. 不肖(불초) 소자는 부모님 염려 덕분에 몸 성히 훈련 잘 받았습니다. 아뢰올 말씀은 다름이 아니옵고……. 건강, 불효반성, 돈 조금만. 어머니와 군대 간 아들을 생명처럼 이어준 군사우편을 전하던 빨강
사전에서 革新(혁신)이란 묵은 풍속, 관습, 조직, 방법 따위를 완전히 바꾸어서 새롭게 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장기연수 때 만난 명강사들의 주옥같은 혁신에 대한 강의 내용을 소개하고자 한다. 강사들은 혁신을 마른 동물의 가죽을 부드럽게 하는 아픈 과정, 용기있는 행동이라고 말했다. 40년을 산다는 하늘의 왕 독수리가 38세에 이르러 嚴冬雪寒(엄동설한), 설산 암벽에 올라가 스스로 깃털을 뽑고 무디어진 발톱과 빈약해진 부리를 바위에 긁어 뽑아낸 후 추위와 배고픔을 견뎌낸다. 그리고 새로운 부리, 날카로운 발톱, 가볍고 날렵한 깃털이 새로 돋아나는 혁신 후에 다시 하늘을 날아 30년을 힘차게 산다는 내용의 강의다. 대략 7번 들었다. 2살에 서커스단에 팔려온 코끼리가 8년 동안 자신을 묶었던 쇠줄을 10살이 되는 해에 연약한 새끼줄로 바꿔주었지만 더 이상 그 줄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는 강의 내용도 5번 들어본 혁신 이야기다. ‘안 깨지는 유리’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깨지지 않는 유리를 발명한 기술자가 왕에게 고하니 그를 즉시 처형하였다고 한다. 왕은 개인 사업으로 유리공장을 운영하고 있었으므로 깨지지 않는 유리가 생산되면 자신의 공장에 불리할 것이기에 인류에
도와 시군에는 도시계획, 건축, 경관심의, 공유재산 등을 관리하는 각종 위원회가 월간, 분기에 개최되는데 필수적인 장비 중 하나가 의사봉이다. 의사봉은 회의의 시작과 중간의 안건별 의결, 그리고 회의를 마치는데 ‘탕!탕!탕!’ 세 번 울리는 필수품이다. 원고대로 “의사봉 3타”를 읽은 위원장이 있었다는 재미있는 이야기도 있다. 위원회가 열리면 10분 일찍 회의실에 도착하여 외부위원들을 안내하고 인사를 드리며 눈높이를 맞추고 소통을 했다. 그리고 의사봉을 가져온 이유를 설명했다. 어느 날에 위원회 회의실에 일찍 도착하여 살펴보니 의사봉이 없기에 담당 팀장에게 오늘 의결하려면 의사봉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하니 화들짝 놀라서 사무실로 뛰어가는 뒷모습이 참으로 안타까웠다. 그래서 의사봉을 두드리는 위원장이 의사봉을 준비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미국 서부영화의 결투장면을 보면 자신의 권총은 본인 허리에 차고 있다. 옆 사람이나 동료에게 총을 맡기고 있다가 필요할 때 총 달라고 하면 必敗(필패)다. 스피드스케이트 경기처럼 0.01초 차이로 승패와 生死(생사)가 갈린다. 총잡이에게 있어 권총은 내 손안에 있어야 한다. 보안관이 총을 허리에 차고 기민하게 뽑을
화학적인 매개 역할을 하는 수은, 황산 등 화학물질을 촉매(觸媒)라 하고 음식이나 와인 등이 생성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박테리아, 유산균 등을 효소(酵素)라 한다면 조직사회에서 소통과 화합의 역할을 하는 이가 있으며 이 사람을 ‘약방의 감초’라고 부른다. 화학이나 물리학, 인문학에 존재하는 이런 기능을 통칭하여 중재자(仲裁者)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자동차, 선박, 비행기, 각종 전자기기에 장착된 엔진을 원활하게 돌려주는 역할을 하는 부품으로는 베어링과 윤활유가 있다. 베어링은 동력이 전달되는 쇠붙이 부품의 사이사이에 쇠구슬을 넣어 원활한 구동이 가능하게 하는 부품이다. 그 중간이나 엔진의 실린더와 피스톤 사이의 미세한 틈새를 원활히 움직이도록 기능하는 오일을 통칭 윤활유라 한다. 그동안 아파트 거실의 매끄러운 바닥에 비닐 재질의 요가매트를 깔고 그 위에 방석을 올려 운동을 했는데 바닥과 매트가 미끄러워서 움직일 때마다 1㎝ 정도 이동을 하므로 10번 정도 운동을 하면 당초에 바라보던 방향에서 50도 정도 다른 방향을 보게 되었다. 요가매트 바닥에 테이프를 붙이기도 하고 고무줄을 붙여보는 등 미끄럼 방지를 위한 노력을 다했지만 시원한 해결책이
경기도청이 1967년 6월23일 서울 정부청사 건너편에서 현재의 이곳 수원 팔달산 중턱에 이사하여 자리한지 51년이 되었다. 1965년 당시에는 수원시도 작은 편이어서 도청사가 인천시로 가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다고 한다. 인천시로 갔다면 1981년 광역시 승격으로 행정구역이 분할되면서 또다시 경기도청은 타 지역 신세를 질 뻔 했다. 경기도청 ‘현판’은 박정희 대통령의 글씨다. 경기도의회 건물은 경기도청 서울청사 시절도 서울 종로구 세종로 76번지에 있었다. 지방의회가 다시 구성되면서 1991년 7월8일 수원시 권선구 인계동 1117번지 문화의전당 내에서 문을 열었다. 의회청사는 1993년 2월11일에 입주했다. 경기도의회 현판은 김영삼 대통령의 친필이다. ‘경기도의회’ 원본은 도의회 사료관에 보존 관리되고 있다. 김문수 도지사님이 취임하면서 도청 울타리 철조망을 걷어내고 정문의 철문도 철거하자 했다. 2009년 2월 어느 날 도청과 의회 정문과 후문의 철거현장에 나가서 경기도청과 경기도의회 현판을 회수했다. 자칫 철골 고물로 사라질 위기에서 구해내어 경기도의회와 경기도청 관련부서에 전달했다. 철거 이전에 문화재부서에 의견을 전했다. 정문의 2개 문패가 달린
열쇠는 영어로 Key라 불리는데 묵직한 쇳덩어리 자물통을 열어주는 기능을 하며 과거 어르신들은 창고나 곳간을 잠근 후 키를 허리춤에 매달아 권위의 상징으로 여겼다. 어르신들은 이를 ‘쇳대’라고 불렀다. 조직의 중요한 인물을 Key Man이라 부르고 글의 중요 단어를 Key Word라 한다. 요즘 새 차의 열쇠는 과거 디지털형 쇠키가 아니라 그냥 동그란 IT덩어리이다. 이 스마트키는 4차 산업의 시대에 걸맞게 디자인되었으며 주머니나 가방 등에 지니기만 하고도 시동을 걸 수 있는 무선 기능을 갖추고 있다. 동시에 차문을 열고 8초간 서서 기다리면 자동으로 차 트렁크를 열어주기도 한다. 20년 전까지도 사람들은 자동차 키를 손에 들고 다녔다. 자동차 차주임을 자랑하기 위함이다. 여사님들도 핸드폰과 함께 반드시 차키를 테이블에 올려놓고 대화를 하고 차를 마셨다. 자동차는 부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 자동차 스마트키를 자랑하지 않는다. 그냥 주머니 속에 있는 것으로 그 기능을 다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차가 없는 것을 자랑(?)하는 시대가 되었다. 편하게 술 한잔 하고 택시 타고 집에 가는 것이 새로운 로망이 되는 시대다. 1990년대 공직사회에 ‘무두일’이라
불교신자가 아니어도 사찰에 가서 대웅전을 들여다보고 주변의 사찰 시설을 살펴보면서 관광을 한 후에 1만 원을 내고 소원을 빌었을 것이다. 친절한 사찰의 보살님은 발원의 샘플을 제시하기도 한다. 가족건강, 취업, 합격, 결혼, 사업성공 등 다양한 소원문구를 적어낸다. 기왓장에 흰 페인트 글씨를 적어냈을 뿐인데 사찰에서는 1만 원을 받으니 참으로 수익성이 높다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 아내와 함께 사찰에 가서 소원을 빌고 기왓장에 몇 가지 바람을 적었다. 세상사 순리대로 살자고 조금은 추상적인 ‘류수부쟁선(流水不爭先)’을 적으면 아내는 그 틈새에 가족건강, 합격기원 등 나름의 구체적인 소원을 추가한다. 4글자를 써도 20자를 적어도 1만 원을 내면 된다. 그런데 이 기왓장과 관련해서 작은 이야기를 한 가지 전하고자 한다. 우선 하고 싶은 말은 사람들은 소원이 적힌 기왓장이 대웅전 지붕은 아니어도 사찰의 어느 건물 지붕에 올려질 것으로 기대했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최근에 방문한 사찰에서 작은 벽채 공사를 하고 있는데 소원이 적힌 기왓장을 쓰고 있었다. 기왓장을 반으로 잘라서 쓰고 있다. 소원을 적어 올린 기왓장이 지붕에 올라가지 못하는 것도 안타까운데 반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