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년 전에 공업용 '우지라면'사건이 크게 보도되어 온 국민이 관심을 가졌던 일이 있었습니다만 공업용 우지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고 소에서 기름을 발라낼 때 공업용으로 쓸 요량으로 비위생적으로 관리하여서 문제가 된 것으로 압니다. 소를 도축하면 나오는 흰색 덩어리 기름은 식용보다는 공업용에 쓰이고 있다 합니다. 하지만 1970년대 우리의 시골 정육점(푸주간)에서 매주 매일 강조하는 오늘의 표어는 "고기는 냉장고에 있습니다."라는 흰 바탕에 붉은색 아크릴 표찰입니다. 좋은 고기는 냉장을 해야 하니 쇼윈도우에 걸어두지 못합니다. 그러니 혹시 손님들이 고기가 떨어져서 없는 줄 생각하고 발길을 돌릴 수도 있으므로 고기가 많이 준비되어 있다는 의미의 아크릴 표찰을 내걸었던 것입니다. 증조할아버지 제사를 맞이하여 어머니께서는 초등생 아들에게 5km 걸어가서 다시 걸어오는 면사무소 인근 윤씨 정육점에 가서 소고기 반근(300g)을 사오라 하십니다. 말표 검정색 고무신을 신고 타박타박 걷고 걸어서 두 고개를 넘어 면소재지 중심부에 자리한 정육점에 도착합니다. 소고기 반근을 주문하니 炙(적)꺼리냐 찌게꺼리냐를 물으십니다. 어머니 말씀대로 적거리라 답하니 마블링으로 기억
### 이제부터 자신을 소개하는 자료에 경희대학교 국문과 주관 전국 고교생 백일장에서 4등을 하였다는 사실을 표기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동안에는 비봉중학교 수성고등학교 방송통신대학교 행정학과 경기대학교 행정대학원 도시및지역개발행정 전공 석사를 학력으로 내놓았는데요 고등학교 3학년인 1976년 10월8일에 받은 상장을 이력에 넣기로 하였습니다. 당시 상장문안은 다음과 같습니다. 제1982호 상장 산문부 참방(장원 차상 차하 참방- 참방은 4등임), 수원 수성고등학교 이강석, 위 사람은 경희대학교 학도호국단 주최 제12회 총장기 쟁탈 전국 남녀 고교생 백일장 대회에서 두서와 같이 입상하였기에 상장과 부상을 드립니다. 1976년 10월8일 경희대학교 총장 조영식. 상장과 함께 받은 한자 옥편은 지금도 잘 보관하고 가끔 활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대학에 원서를 냈고 거기서 낙방하고 공무원 9급 시험(당시 5급을류)에 합격하고 후기대학 떨어지고 공무원의 길로 들어서서 이제 39년8개월을 기록하고 명퇴하였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아도 참 짜릿한 날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날 수상으로 인해 가슴속에 마음속에 문학 DNA가 백혈구처럼 증식되어 온몸을 떠돌기 시작하고 지금
### 앉아서 생각하면 글이 나오는 것은 아니라 하고 그래도 글을 쓴다고 자부한다면 자신의 존재가치를 위해서도 글쓰기가 어렵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글을 쓰는 일은 힘든 것은 아니지만 쉽지도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사실 써놓고도 세상에 내놓기가 어려울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이 글을 나의 생각을 쓴 것이요 하면서 사람들에게 보인다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젊은 시절 언론사와 수시로 연결하면서 글을 써서 신문에 기고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참으로 겁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얕은 생각과 부족한 지식으로 수많은 독자들이 보게 되고 후대에 자자손손 역사에 남을 신문인데 설익은 생각과 척박한 의견을 제시한 것이 송구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글쓰기가 겁이 나는 것을 보니 조금 나이가 들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른바 철이 든다는 말은 계절을 알지 못하는 '철부지'가 아니라 시와 때를 아는 '철을 안다'는 의미로 생각합니다. 정말로 철부지 시절에는 세상의 모든 것이 청춘을 위해 존재하는 듯 생각했습니다만 돌이켜 곱씹어 보니 이 세상은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에서 연결되어 3.1정신과 8.15와 6.25와
### 필요하면 찾게 됩니다. 화성군 팔탄면 사무소에서 회계업무를 보다가 경기도농민교육원으로 전근되어 또다시 서무회계를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매일매일 이런저런 구매가 있고 강사님 수당을 드리기 위해서는 경기은행에서 공금수표를 현금으로 찾아와야 합니다. 철물점도 가야하고 약국에서 구매할 것도 있습니다. 식품은 매일매일 배달차가 와서 신선한 야채와 곡식, 육류, 생선 등을 가져옵니다. 매일 오전에 한번 시장과 은행에 가야하고 가끔은 경기도청 총무과 회계과 지방과를 들러야 하는데 차량은 4대, 운전하시는 분은 3명으로서 통근버스 운전자는 승용차를 운전하는 임무를 받지 않았으니 매번 부탁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적극적인 자세를 가진 공무원은 이일 저일 가리지 않고 열심히 하겠지만 서무 회계와 달리 운전업무는 늘 책임이 뒤따르는 법이니 우리 공직의 업무구조상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기는 참 어렵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이거나 오히려 과거보다 현재에는 불필요한 책임소재로 인해 조직의 창의력을 발휘하는데 걸림돌이 더 많아 보입니다. 농기계 교관들은 운전면허가 있으므로 급할 때 부탁을 하였지만 이 또한 3년1개월을 근무한 사업소 생활
### 오늘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안 되는 날이 있습니다. 글을 쓰려하나 키보드가 움직이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최근에는 더더욱 그런 느낌이 들어서 걱정입니다. 깊은 생각에 잠기지 못하는 것입니다. 조선시대에 붓으로 책을 집필하고 해방 전후에 잉크를 찍어 펜촉으로 원고지를 메워갔다고 하는데 요즘 작가들 중에는 키보드를 이용하여 빠르게 글을 쓰기도 합니다. 물론 들어보면 아직도 만년필로 12,000장의 원고지에 꾹꾹 눌러쓰는 맛으로 글을 쓰시는 김홍신 작가가 있습니다. 앞으로는 과학계가 조금 노력하시면 키보드를 이용하여 마구 생성되는 글과 문장을 빠르게 정리하시는 기술이 나올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눌러쓰는 글씨에서 오는 문장의 깊은 소고기 국물 같은 무게감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키보드는 펜글씨보다 빠르게 진행될 수 있습니다. 더 나가면 우리의 생각을 읽어 타자해 주는 첨단 기기와 스마트폰 어풀이 개발되어 시장에 나올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은 혹시 작가님의 머릿속에는 이미 여러 권의 책이 들어있는데 이를 연도에 맞추고 주변의 상황을 보아가면서 내어 놓으시는 것인가 하는 상상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생각들이 평소에 나기 보다는 키보드를 잡고
### 1985년경에 수원에서도 신식 공중 목욕탕이 유행했습니다. 퇴근 후 7시에 장안문 인근 '황실장'으로 모이라는 전갈이 옵니다. 장급 여관이 유행하면서 목욕탕이 좋아야 공무원의 여관작업(?) 공간으로 활용성이 높았습니다. 여관작업이란 시군공무원들이 모여서 세입, 세외수입, 각종 결산자료를 집계하는 합산작업을 말합니다. 당시 7급 선배들이 주축이 되어서 남문 인근 송산목욕탕에 모이기도 합니다. 일단은 목욕을 하고나서 저녁을 먹고 소주한잔 한 후에 퇴근하여 집으로 갔습니다. 8급 직원으로서 장안문 주변 皇室莊(황실장/신식 목욕탕 간판)에서 옷을 입고도 만나기 어려웠던 당시 도청 기획관리실장님을 벌거벗은 알몸으로 친히 謁見(알현)하는 황송한 일이 더러 있었습니다. 수원 팔달문(남문)인근 송산탕에는 당시 oo과장님과 oo계장님이 저녁시간에 피로를 푸는 곳으로 알려졌습니다. 두 분 모두 술을 드시지 못합니다. 체질적으로 술이 받지 않는다 들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두 분 어르신은 목욕탕을 자주 가십니다. 또 한분 국장님은 목욕탕에서 4시간을 버티신다고 합니다. 이마에 수건을 두르시고 청산리 벽계수가 상류에서 흘러 하류까지 가도록 자리를 잡고 땀을 빼십니다. 참 대단
### 아침에 일어나면서 감사할 일이 많습니다. 우선은 전방을 지켜준 국군아저씨께 감사, 다음으로 범죄로부터 우리를 지켜준 경찰관에게 감사, 화재와 여러가지 위난으로부터 지켜준 소방관에게 감사, 가스를 보내준 가스공사, 전기를 보내준 한국전력, 인터넷 통신을 보내준 회사, 케이블방송 사장님과 임직원 여러분에게 감사드립니다. 아파트에 물을 보내주신 시청 상수도사업소장, 밤새워 아파트를 지켜낸 경비아저씨, 신문배달 아줌마, 우유와 요구르트를 신선하게 문 앞에 놓아주신 분등 참으로 감사할 분들이 많습니다. 가족에게도 감사합니다. 잘 자고 일찍 일어난 아이들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밤새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하고도 새벽에 일어나 부엌살림을 정리하는 아내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이 세상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정말로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모든 것을 내리고 모든 것을 낮추는 그런 삶을 살고자 합니다. 내려놓을 것이 더 없을 때까지 내려놓고 가는 자세를 유지하겠습니다. 아마도 내려놓을수록 무게중심이 아래로 내려가니 더더욱 안정적인 인생이라는 빌딩을 잘 관리하고 유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무거운 짐을 머리와 어깨위에 두면 몸이 무겁고 허리에 부담이
### 2017. 10. 11에 경기도인재개발원 역랑개발지원과를 방문했습니다. 인재개발원이 3과였다가 2과로 축소되어서 과장님 인사발령이 있습니다. 아는 분들을 만나서 반갑게 이야기를 나누고 차 한 잔 하고 돌아왔습니다. 1991년4월24일에 6급으로 근무하고 5년만인 1996년4월3일에 5급 요원으로 다시 발령받은 저로서는 승진의 현장입니다. 이후에 과장으로 근무하다가 2007년에 1년간 지금 경기도인재개발원이 자리한 건물에 있었던 행정자치부 지방혁신인력개발원에서 1년 장기교육을 받았고 이후 연수중에 배운 골프연습을 위해 자주 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동두천시청에 근무한 후 2012년에 이곳에서 조금 다른 장기교육 1년을 연수했습니다. 자료집 2권을 내고 국내여행, 해외여행, 그룹 활동 등 공직 후반에 보람찬 일들이 많았던 장기교육을 받은 곳이어서 늘 이곳에 오면 기분 좋은 추억들이 봄날의 아지랑이처럼 사르르 피어나는 곳이기도 합니다. 개인적인 추억도 있지만 오셔서 보시는 분은 누구나 공감하시겠지만 이곳 경기도인재개발원 주변은 ‘가을전어’처럼 가을경치가 특히나 아름답습니다. 이제 막 시작한 단풍의 초입에서 이처럼 아름다운 채색화를 보이는데 10월말 경 제대
### 40대 나이에는 그냥 키보드를 잡으면 되든 말든 활자의 조합이 이어졌습니다만 얼마 전 부터인가 그냥 백지상태의 화면에 아른거리는 아지랑이도 없고 하늘의 흰 구름도 보이지 않으며 가을 깊은 산속 형형색색 단풍잎도 떠오르지 않는 것입니다. 혹시 그것이 이 세상에 함부로 글을 내놓는 것은 송구한 일이라는 자각에서 그리된 것이라면 조금은 다행스럽다 하겠으니 젊은 치매 초기증상이라면 이 또한 안타까운 일이라는 걱정을 하게 됩니다. 얼마전 TV에서 본 영화 '혹성탈출'에서 유인원 중에 머리가 깨기 시작하고 응용력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과정을 자세히 볼 기회가 있었는데 그런 발전적 상황이라면 반길 일이겠으나 그 반대로 매일 하루를 지내면 수만개의 뇌세포가 사라지고 다시 일부는 보충되지만 늘 부족한 상황이므로 어제 써둔 글에 오늘아침, 감동하는 어처구니 없는 자기만족의 상황이 오는 것은 아닐까하는 우려를 합니다. 2만장 원고지를 만년필로 채웠다는 작가 김홍신 선생님을 생각해 봅니다. 젊은 시절의 경험으로 '인간시장'이라는 책으로 100만권 셀러가 되신 분입니다. 이분 김 작가님이 키보드를 쓰신다면 책은 더 자주 더 많이 아주 두껍게 나올 것이라는 가정을 하는 것
8월 14일 월요일이 샌드위치 휴일이므로 오래전에 휴가를 하기로 마음 먹었지요. 4인 가족으로 예약을 하였다가 3인으로 갔다가 다시 2인으로 축소되면서 부부가 출발하게 되었습니다. 아침에 과일과 물을 가득 싣고 출발하여 달리다가 고속도로상에서 정말로 졸음이 掩襲(엄습)하므로 이해서는 안 되겠다 하고 그냥 고속도로를 벗어나니 속리산 법주사가 나옵니다. 법주사에 들어가 미륵불을 만났습니다. 금색으로 잘 관리하고 있습니다. 미륵불이 서계신 단 아래에는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집니다. 그 안에 수많은 부처님 상으로 장식하였고 살아계신 분의 좋은 일을 축원하는 일, 그리고 저승길에 이르신 분들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살아있는 이들의 지극정성이 보입니다. 들어갈 때 못본 세조의 正二品(정이품)송이 나올 때 보이므로 차를 세우고 몇 장 사진을 찍었습니다. 평소 자신의 사진찍기를 피하는 바이지만 그 자리에서는 셀카를 찍어보았습니다. 정2품송과 함께하는 셀카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시 길을 달리고 달리니 경부고속도로를 다시 만나고 드디어 대구에 들어섰습니다. 대구는 참으로 넓은 도시이고 산으로 둘러쌓인 분지입니다. 그리고 저녁에 도착하니 크게 돌아다니기도 어렵고 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