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일흔살까지 산다는 것은 예로부터 드문 일이라 해서 칠십세 생신 잔치를 고희연(古稀宴)이라한다. 당나라의 시성 두보(杜甫)의 곡강시에 ‘인생 칠십은 고래로 드물도다(人生七十古來稀)’라는 구절이 나온다. 어려서 본 기억으로 61세 회갑을 맞으신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흰 머리카락에 얼굴에는 깊은 주름이 많았다. 회갑 잔치상을 받은 분들은 나이가 많으신 할아버지 할머니로 느꼈다. 하지만 요즘에는 69세에도 할머니라 하면 싫어하신다. 사모님, 여사님으로 호칭되기를 원하신다. 아마도 1990년대까지 회갑잔치가 있었고 10년을 기다려서 칠순잔치를 여는 분도 많았다. 회갑잔치에는 부조금을 가져갔다. 그런데 칠십 고희를 맞은 잔치에서는 봉투를 받지 않는 분들이 많았다. 결혼해서 살아오는 동안 신세를 진 분들에게 70세 장수를 하였으니 감사의 잔치를 베푼다는 해석을 들었다. 하지만 요즘의 신세대 어르신들은 회갑을 부부여행으로, 칠순은 집안잔치로 치룬다. 그래서 칠순잔치에서 신명나게 노래하며 즐기는 모습을 보기는 어렵다. 그리고 팔순잔치를 여는 경우는 거의 없다. 어르신의 나이를 표현하는 한자가 재미있다. 산수(傘壽)는 80세다. 傘자를 八과 十, 파자(破字)로 해석한 것
같아서 좋은 것이 있고 비슷해서 싫은 것이 있다. 같은 옷을 입은 친구를 만나면 유니폼 같아서 기분이 좋은 경우가 있고 교복 같아서 싫은 상황도 있다. 모처럼 옷 한 벌 마련했는데 백화점 현관에서 같거나 비슷한 옷을 입은 사람을 만나면 덜컥 화가 날 수 있다. 왜 저 사람이 거기에서 나와! 옷가게에서 방금 구매한 디자인, 색상, 분위기가 비슷한 옷을 입은 사람을 만난 것은 참으로 딱한 일이다. 갑자기 새 옷이 싫어지고 “택도 떼지 않고” 면허증처럼 장롱에 들어가 긴 세월을 기다리거나 새로운 입양자를 만나야하는 처지가 된다. 옷으로서의 기능과 함께 멋을 창출하기는 하겠지만 다른 사람의 시선에서는 자신이 느끼는 만큼의 가치나 멋스러움이 보이지 않을 수 있다. 그런데도 부부 단체여행을 가보면 옷의 중요성이 커진다. 첫날에는 평범하고 검소한 옷차림이지만 하루, 이틀 지나면서 과감해지고 공격적인 옷의 향연을 볼 수 있다. 여행일정 후반부에 가면 부인들은 마치 인생의 마지막 여행인 양 화려한 옷으로 경합을 벌인다. 같은 옷을 연이어 입는 것은 단체여행에서 금해야 하는 에티켓인가 싶다. 여행 가방은 빵빵하고 아침 출발시간은 지연된다. 아침까지 입고나갈 옷을 결정하는 고심
상전벽해(桑田碧海)란 뽕나무밭이 푸른 바다가 되었다는 말이다. 뽕나무는 논밭도 아니고 산도 아닌 애매한 산기슭에서도 잘 큰다. 집에서 가까우면 농약이나 담배 냄새가 배어서 누에가 먹지 않을 것이고, 아주 멀면 아낙과 딸들이 뽕잎을 따러 가고 오는데 힘들것이니 상전의 거리 또한 적정해야 했다. 그 뽕밭이 바다가 되려면 아주 큰 비가 오거나 땅속이 요동을 쳐서 내려앉아야 가능한 일이다. 계란으로 바위를 치면 알이 깨진다. 바위는 끄떡없이 그 자리를 지킨다. 되지 않을 일에 무모하게 도전함을 말한다. 하지만 수 백년 한자리로 떨어지는 물방울이 바위를 뚫는다. 한옥에 부연을 달고 기와를 올리면 당년에 추녀끝에 빗방울 자리가 생겨난다. 모두가 눈을 들어 지붕의 석가래를 셀 때에 나 홀로 고개숙여 빗물자리를 발로 밟아가며 정확하게 세었다. 이 규수는 왕비가 되었단다. 창의적 발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 다음 아름다운 꽃을 쓰라는 시험지의 답안에 벼꽃과 목화꽃이라 적은 것은 금상첨화(錦上添花)였다. 벼꽃은 곡식이고 목화는 옷이다. 연목구어(緣木求魚)란 나무에서 고기를 찾는다는 것으로 도저히 불가능한 일에 도전하거나 되지 않을 일에 몰두하는 모습을 말한다. 우리나라의 역
다시금 전문가들의 글을 자세히 꼼꼼히 읽어보게 된다. 기회를 얻어서 이처럼 글을 올리는 입장이 되고보니 다른 분들의 글에 관심이 가고 신문 사설도 읽어보게 된다. 그리고 하나같이 짧은 문장속에 옥수수알처럼 빼곡하게 담아내는 꼭 필요한 단어의 조합과 융합에 감탄한다. 적재적소에 사람을 배치하듯 꼭 필요한 자리에 한자, 사자성어, 숙어를 재료삼아 사우디 부호들의 카펫 엮어가듯 사각과 네모의 아름다움을 만들어 낸다. 도대체 한글과 한자를 가지고 만들고 짜낼 수 있는 모자이크는 얼마나 많고 그 바닥은 얼마큼 넓은 것일까. 우선 짧은 2글자 제목이 마음에 든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두 글자 제목에서 반이상 설명한다. 시의적절이다. 제목을 보는 순간 필자의 생각 절반이 마음에 들어온다. 그리고 눈으로 문장을 살피면서 공감을 하게 된다. 현악기의 화음처럼 제목과 내용이 잘 맞아 돌아간다. 그리고 기승전결. 그렇게도 깔끔한 문장의 이어감이 마지막에서 한 잔의 사이다처럼 청량하다. 이런 생각을 하시는 분이구나. 감탄과 탄복을 하게 된다. 그런 글을 쓰시는 분이 즐비한 세상이다. 볼수록 존경심만 가득하게 하는 분들이다. 펜으로 키보드로 오케스트라 80명을 지휘하는 모습이 연상
어려서 3권짜리 삼국지를 읽었다. 표지가 떨어져나간 이 책을 동네 청년들이 돌려가며 보았다. ‘새농민’이라고 월간지가 우체부 아저씨의 붉은 가죽가방에 담겨 배달되었다. 아마도 당시 농어촌 사람들을 계몽하기 위해 만든 잡지였을 것이다. 거기서 고바우 영감을 처음 만났다. 이마에 머리카락 한 올 세우고 세상을 비평하는 4칸짜리 만화였다. 세월이 흘러 책이 줄어들고 모바일이 늘었다. 전기만 통하는 철선인줄 알았는데 전기줄 속으로 말이 오간다. 시골마을 이장집에 전화기가 들어오자 동네사람들이 줄을 선다. 도시에 나간 아들딸에게 소식을 전하고 그 자녀들이 전하는 이야기를 듣기 위해 줄을 서니 이장님 집 앞은 줄서는 맛집(!)이 되었다. 이장님댁 전화를 쓰기위해서는 10원짜리 동전이 필요했다. 시외전화 전용전화기로 시내전화가 되는 줄을 누군가가 알아냈다. "유레카~!" 대단한 발견이었다. 시외전화 되는 기기이니 시내는 당연히 되는데 시외만 거는 줄 알았을 정도로 착하게 몰랐다. 모바일은 무선으로 연결된다. 이제 4살 아이도 그림책을 문지르다 화면이 바뀌지 않으니 책을 내던진다. 매일 오전, 오후로 예쁜 사진을 주고 받는다. 참 좋은 글을 어디서 구했는지 긴 문장을 정성
인간의 생활현장을 들어다보면 참으로 수많은 소품이 필요하다. 아기를 데리고 외출하는 엄마의 짐은 작전 나가는 군인들의 배낭무게를 넘을 것 같다. 의식주(衣食住)를 메고 들고 다니는 듯 보인다. 우유병, 분유, 보온병은 ‘먹일 식’(食)이고, 기저귀, 손수건, 티슈, 면봉 등은 ‘옷 의’(衣)이며 유아차로 개명하자는 유모차, 양산, 지붕 등은 ‘주택 주’(住)라 하겠다. 반면 사자와 호랑이는 천적의 속도를 따라잡는 탄력스러운 네다리와 방향을 조절하는 꼬리, 뾰족한 송곳니, 후각, 빠른 판단력으로 먹고 산다. 방송에서 동물의 왕국을 보면 그 처절함이 보인다. 물소나 양 등 큰 동물을 공격하는 모습에서는 사자의 위엄보다는 먹이를 구하려는 가장으로서의 애잔함이 느껴진다. 그래서 가끔은 사자에게 뿔이 있으면 더 쉽게 사냥에 성공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신은 뿔을 주지 않았고 사자는 뿔 없이도 밀림의 왕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 대목에서 떠오르는 화면은 사자, 호랑이, 표범, 하이애나 등 맹수들의 공통점이 뿔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뿔을 쓰지도 않을 것 같은 소, 누우, 사슴, 산양 등 비교적 약한 초식 동물에게는 뿔이 주어졌다. 그리고 ‘동물의 왕국
분재는 고개를 숙인 자에게 진면목(眞面目)을 보인다 하고 아는만큼 보인다고도 한다. 올라올 때 못본 꽃을 내려갈 때 보았다는 시가 있다.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 (그 꽃 전문, 고은) 여기서 꽃은 사람일 수도 있고 정말 꽃이기도 하겠다. 바쁘게 살다 보니 다 살피지 못하는 인생이다. 아들딸 자식보다 손자 손녀가 더 예쁘다는 역설이 역설이 아니라 정설이란다. 젊어서는 직장을 다니면서 아들딸 키우기에는 버거웠고 인생 중 청춘이 바빴다. 그러다가 나이 들어 꼬물거리는 슬하의 손자·손녀가 예쁘단다. 자식은 내리사랑이란다. 과거 봉건시대에 시골에는 아들은 미워하여 외면하면서 손자·손녀를 귀엽다하는 할아버지가 많았다. 그래서인가 세상사는 보는 시선과 시야에 따라 달리 보인다. 색안경을 쓰고 보지 마라는 말로 풀어본다. 잘할 것이라는 동료가 틀렸을 때 오는 실망감보다 못할 것이라는 후배가 잘했음을 알아내지 못하는 선배가 걱정이다. 우리 사회는 끊임없는 선배와 후배의 연결고리로 이어간다. 그리니 가정이든 직장이든 정치사회이든 지역사회 모임에서조차 상대의 입장을 배려하고 그 사람의 시각과 시선을 공유해야 한다. 자신의 고정 프레임을 고수하는 것은 '슬기
1974년 2월 소인이 찍힌 5원짜리 관제엽서는 초등학교 은사인 황인각 선생님이 봉담초등학교 재직 중에 보내주신 고등학교 합격을 축하하는 편지다. 세필 붓으로 “축! 합격, 진심으로 합격을 축하합니다”라고 정성스럽게 적어 보내주셨다. 이 엽서를 앨범에 넣어두고 간직하다가 10년 전부터 자랑을 시작했고 지금도 애지중지(愛之重之)하면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지인들에게 보이곤 한다. 요즘에는 손 편지를 거의 보내지 않으니 우표값을 알지 못하겠지만 1998년에 아이들에게 보낸 편지를 다시 찾아보니 우표 170원이 붙어있다. 2003년 6월에 아이들이 수련회 가서 보낸 편지의 우표는 190원이고 2006년 편지에는 220원, 2018년 엽서는 330원이다. 요즘에는 편지보다 소포가 많은데 책 한 권 보내는데 4,000원을 지불한다. 안산 소재 직장을 다닐 때는 가끔 아내와 아이들에게 편지를 보냈다. 편지를 우체통에 넣으면서 손편지 쓰기를 확대하자는 의견을 SNS에 올렸다. 기자가 보고 기사로 올렸다. 아내와 자녀들에게 평소 하지 못한 진심을 담은 편지를, 자리를 옮긴 동료에게는 의례적인 문자메시지 대신 손편지를 통해 축하인사를 전하고 있다는 내용이 들어갔다. 손편지 사
1982년 공직의 회식에 4급 부서장이 30분 늦게 도착했다. 먼저 자리한 30명 직원들의 불만이 일기 시작하더니 7급 중간쯤 되는 선임들이 몰래 반찬을 먹기 시작했다. 요즘 부서장이라면 자신이 늦으니 먼저 식사를 시작하라 연락을 하겠지만 당시의 공직 상층부 어르신들은 그런 배려를 하면 안 되는 줄 알았다. 그래서 몰래 시작된 접시빼기는 한동안 진행되었고 결국 상다리 아래에는 10개가 넘는 빈 접시가 쌓였다. 1985년 회식 중반에 술을 강권하는 간부를 조력(?)하면서 또 문제의 그 7급 선배들이 건네준 사이다가 든 소주병을 서빙하다가 혼자서 다 뒤집어 쓰고 벌주를 하사(!)받았다. 그날 회식은 음식 먹은 기억없고 벌주로 마신 소주의 진한 진향만 기억난다. 25도 톡 쏘는 소주의 송진 맛을 당시 젊은이들은 진맛이라 했다. 8급까지는 당하는 줄 알면서 피하지 못했던 회식의 아픈 기억이 참으로 많기도 하다. 2015년경 세월이 흘러가니 이제는 회식을 주관하는 입장이 되었다. 그래서 일찍 도착해서 동료들을 기다렸다. 참석 인원만큼 사다리를 그려서 자리를 정했다. 복불복으로 결정되는 자리이니 방석배정에 대한 불만이 없고 옆자리, 앞자리에 누가 앉는가는 그날의 운이다
어려서 동네 할아버지로부터 들은 이야기로 옛부터 뱀은 ‘業’이라 하여 ‘집지킴이’로 모셨다. 어르신들 말씀중에 “부잣집 업나가듯 한다.”는 말이 있는데, 이말은 큰 구렁이가 재물을 늘게 해 주는 집지킴이로 있다가 슬며시 나가면 집안이 기울어 간다고 믿어 왔다. 그런데 어린시절 농촌의 어르신들은 뱀뿐 아니라 집안에 사는 모든 동물을 바로 業으로 여기신 것 같다. 비가 많이 오는 날 집 밖으로 나온 달팽이, 지렁이, 두꺼비, 하늘에서 떨어졌다는 미꾸라지조차 귀하게 대했다. 우리의 재산을 지키고 가족의 吉凶禍福(길흉화복)을 관장하는 신격화된 동물로 대우받았다. 이들 業 동물들은 아무도 모르게 자신의 집을 옮겨간단다. 재산싸움, 무모한 욕심,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를 다하지 못하는 집에는 더 이상 머물지 않는다는 것이다. 재산이란 본인의 노력에 의함도 있지만 주변의 성원, 소비자, 정부정책 등 다양한 요인에 의해 증식되는 생물체라 할 것이다. 그러니 증식에 합당한 세금을 내고 사회에 환원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하지 못한 부자를 일러 ‘猝富(졸부)’라 하고 갑자기 돈을 번 사람이 돈을 제대로 쓸 줄 몰라 일탈된 행동을 하는 증상을 졸부증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