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3월에 우리 남양주시에서도 3·1만세운동이 일어났습니다. 3·1독립만세를 부른지 100년이 지났습니다. 1919년에 승하(昇遐)하신 고종황제는 사후에 대한민국 백성들이 독립만세를 외치는 3·1운동을 이끌어 주셨습니다. 고종황제(1852~1919)와 명성황후(1851~1895)를 홍유릉(洪裕陵·사적207호)에 모셨습니다. 홍릉(洪陵)에 고종황제와 명성황후를 모셨고, 아버지와 어머니의 왕릉에 등을 기댄 듯 위치한 유릉(裕陵)에는 순종황제와 순명황후, 순정황후가 영면하십니다. 명성황후(明成皇后)는 고종과 국정을 논의하는 파트너였으며 당시 외국의 세력들이 고종보다 예의주시했던 권력의 중심에 있었던 인물이라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가문의 배경이 없는 분이라서 황후(왕비) 자리에 올랐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홍유릉을 지나 뒷산으로 가면 영친왕을 모신 영원(英園), 이구 황세손을 모신 회인원(懷仁園)이 자리합니다. 의친왕묘가 같은 자락에서 마주하며 특히 고종황제의 외동딸 덕혜옹주 묘가 참으로 단아하게 우리를 맞아줍니다. 고명딸 덕혜옹주(1912~1989)의 교육을 위해 고종황제께서는 덕수궁에 우리나라 최초의 유치원(幼稚園)을 설립했다고 합니다. 정략결혼과 따님을
대화기법을 제시한 좋은 글을 보았습니다. ▲말 한마디에 천금이 오르내린다 ▲훌륭한 말은 훌륭한 무기다 ▲오늘 생각하고 내일 말하라 ▲말이 많으면 쓸 말이 적다 ▲길은 갈 탓이고 말은 할 탓이라 ▲유쾌한 대화, 유쾌한 말 ▲한 번 던진 말은 어디든지 날아간다. 舌禍(설화)의 의미를 사전에서 보면 연설이나 강연 따위의 내용이 법률에 저촉되거나 타인을 노하게 하여 받는 재난, 타인에 대한 중상이나 비방 따위로 받는 재난이라고 풀이하고 있습니다. 세상사에서 말로 풀어낼 수 있는 일이 많지만 말로 인해서 문제가 되는 경우는 더 많은 듯 보입니다. 말 한마디로 천냥의 빚을 갚는다는 말이 현대의 실생활에서 통하고 있습니다. 불협화음이 있을 때 일방이 먼저 진솔하게 신속하게 사과를 하면 해결되고 이전보다 敦篤(돈독)한 관계를 형성할 수 있을 것인데, 서로 자존심을 앞세워 사과를 하지 않아서 불편한 관계가 지속되는 사례를 보았습니다. 공직에서 말을 잘해서 승진하고 출세를 한 경우가 있고, 말로 인한 舌禍(설화)를 입어서 공직발전에 후진기어로 밀려난 경우도 보았습니다. 한마디만 참고, 말의 강도를 조금만 낮췄다면 발생하지 않을 일인데 말을 과하게 해서 징계위에 올라가는 경우가
경기도청 최초의 '아웃소싱' 공무원으로 말하자면 잠사계장과 잠업특작과장을 역임하시고 퇴직 하신 후 수원시 문화원장, 민선 수원시장, 국회의원을 역임하시고 얼마 전 작고하신 심재덕 전 수원시장님을 들 수 있습니다. 1960년대 우리나라가 비단을 생산하는 누에고치를 수출하여 외화를 벌어 산업경제의 기반에 보탰다고 하는데 이를 적극 추진하기 위해 당시 고등학교 교사를 공무원으로 특채하여 파격적으로 사무관에 임명하고 이후에는 과장에 승진 보임하였다고 합니다. 심 시장님은 공직 재직시절에 세계 화장실협회 초대회장을 하셨으며 수원시는 물론 우리나라 화장실 문화의 선진화에 크게 기여하셨고 외국의 화장실 발전에도 힘쓰신 분입니다. 지방자치가 시작되면서 경기도청에 외부 전문가가 자리한 직위는 비서실장, 여성국장, 공보관 등이 있습니다. 제가 1999년 홍보기획팀장으로 발령받았고 J공보관을 만난 다음 날 기존의 업무가 바뀌면서 새로운 홍보기획이라는 업무를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이전까지 그 자리는 언론인과 접촉하는 자리로서 발령소식에 동료들이 술 많이 먹게 될 것이라는 걱정을 해 주었지만 정작 언론인을 직접 만나지는 않았고 인터뷰자료를 통한 간접 접촉이 대부분의 업무였습니다.
일단은 공보실이나 대변인실 등 언론을 고객으로 생각하고 도민과 시민을 설득하기 위한 업무에 전념하는 부서에 근무하는 공무원에게는 혁신과 미래에 대한 나름의 주관적 판단을 하는 전략적인 사고방식이 필요합니다. 정치인 김종필 버전으로 세상을 만나고 김대중의 설득력으로 이야기 하고 김영삼의 전략으로 사안을 조율하는 역량이 필요합니다. 이른바 '삼김' 세분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세분이 화려한 三金(삼김)시대를 이끌었기 때문입니다. 삼김은 늘 뉴스메이커였고 그 뉴스를 바탕으로 정치를 이끌어갔습니다. 공보실 근무자는 옆 돌 빼서 그 다음 자리에 메우는 전통적, 또는 현대적 공무원과는 많이 크게 달라야 합니다. 늘 자신의 기준보다는 객관적인 상황을 보고 매번 만나는 사안마다 각기 다른 판단을 내려야 합니다. 늘상 같은 기준으로 말하면 안됩니다. 어제와 오늘은 그 상황이 그만큼 변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의 대장님(도지사, 시장군수)의 임기가 하루 지나갔으면 그만큼 언론을 대하는 공보실 직원의 표정이 달라야 합니다. 취임 초 공보실과 임기 3년이 지나 1년 남은 상황에서의 공보실 대처방식이 千篇一律的(천편일률적)이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천 개의 글이 하나같이 비슷하다면
공직에서는 행사장에 참석하면 다음 날 아침 기사에 이름이라도 나오고 어느 행사는 사진까지 게시되니 그 존재감의 무게가 제법 나갈 수도 있습니다만 공직을 나오는 다음날부터는 아무런 일이 없습니다. 공식적인 직함이 없으니 마지막 직책으로 가지고 있던 명함도 하루아침에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처럼 폐기됩니다. 그리고 깊어가는 가을날의 은행나무 잎새처럼 길바닥 보도와 아스팔트길을 나뒹굴 뿐 어디에서도 내밀어 댈 종이쪽지가 아닙니다. 지방선거에 나가기 위해 공직을 6년 정도 미리 나간 어느 간부가 말했습니다. "공직을 나가니 명함을 만들 길이 없더라". 솔직히 공직자는 사무실에서 명함을 찍어줍니다만 별도의 멋진 명함을 자비로 인쇄해서 지니고 다니는 공무원도 만나게 됩니다. 풍족한 자부심이고 아름다운 공직자의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명함을 내돈으로 만든다는 것이 공직에서는 멋진 일인데 밖으로 나와서는 힘든 일입니다. 그냥 이름 석자에 전화번호만 새기기도 쑥스러운 일반인으로서는 내 주머니 돈을 꺼내고 개인신용카드로 결재해도 좋으니 명함을 새길 일이 생겨나기를 간절히 바랄 것입니다. 그래서 내려놓기와 파고들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내려놓음은 과거 공직자일때
갑질이란 조금 우위에 있거나 고용관계 사주의 불공정한 근로관계를 지적하는 말로 시작된 듯 한데요, 그 상황이 사회 전반에 퍼지면서 업무 추진과정에서의 작은 갈등과 논쟁조차 갑질이라는 무대에 올려놓고 공격하고 비난하고 사회적인 처벌을 하기도 합니다. 기업체 사장이 운전기사에게 인격적인 모멸감을 준 것이 단초가 되어서 사과를 하고 공직자가 업무 처리과정에서 좀 더 좋은 대안을 마련하고자 토론을 하는 과정에서 언어폭력이라며 갑질로 분류되어 처벌을 받은 사례도 많습니다. 더구나 국민의 관심과 사랑을 수입원으로 하는 탤런트, 영화배우, 정치인은 ‘공인’이라 해서 사회통념에서 조금 벗어난 행동으로 공분을 사고 결국 공개사과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혹자는 이것도 사회적으로 공격을 받을 일인가 하는 정도의 언행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다수가 그렇게 생각하고 언론이 그처럼 끌고가는 경우 돌이킬 방법이 없습니다. 물이 허리위까지 차오르면 스스로 몸을 가누기 어려운 것처럼 사회적으로 비난을 하고 언론에서 반복하여 보도하면 이른바 대세에 밀리게 됩니다. 그러니 갑질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갑질이란 이 일을 이렇게 했으면 한다고 할 것을 ‘이렇게 밖에 못하나?’라고 해도 갑질로
요즘 광역자치단체장 1급 관사와 기초자치단체장의 관사운영에 대한 논란이 있습니다. 광역단체장의 경우 과거의 유산인 경우도 있지만 차지하는 땅도 넓고 건물도 크며 그 안에 들어가는 각종 가구 등도 고가의 예산이 들어간다는 지적을 받고 있습니다. 특히 기초자치단체장의 경우 해당 시군에 거주한다는 전제가 있을 것이라는 언론의 지적이 있고 어떤 경우에는 살던 집을 전세 주고 관사로 이사하였으니 재테크를 하고 있다는 비판도 받습니다. 이처럼 권한이 있는 단체장이 언론앞에 서는 경우 실무진은 늘 고민을 하게 됩니다. 물론 좋은 내용으로 인터뷰를 하는 경우라면 점수도 따고 언론에도 나오니 즐거운 일이겠습니다만, 관사문제와 같이 답변이 어려운 경우라면 담당부서는 참으로 힘이 듭니다. 그래서 언론앞에 나서는 단체장의 경우를 살펴 보고자 합니다. 우선은 취임식, 취임 100일, 취임 1년 등 언론에서 어떤 계기를 활용한 홍보전략을 제시하기도 하고, 발빠른 공보부서의 간부는 바둑으로 치면 선수잡고 언론에 제안을 하기도 합니다. 그리하여 언론과 인터뷰를 하고 사업장을 촬영하게 되는데 우리가 촬영하면서 기대한 큰 그림이 방송에 나오지는 않습니다. 아주 많이 찍었지만 그 중에 우리가
초등학교 자연시간에 인간의 코는 후각이라는 냄새를 구분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는데 다른 감각기관에 비하여 쉽게 마취되어 그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취약점이 있다고 한다. 나는 어려서부터 코가 약간 작은 편이어서 식구들이 농담으로 화장실 등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없는 곳에서는 손으로 코를 잡아 당기라 했다. 그래서 정말로 화장실에 앉아서 코를 당겨보았지만 콧등만 빨개지고 콧날은 제대로 서지 못하고 늘 그 모습 그대로이다. 또 다른 방법중 하나는 코에 밀가루 성형을 하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이것도 또한 농담이었는데 마음속으로 정말 콧날을 세우는 수술이 있다면 받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였다. 하지만 이 방법도 나에게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였다. 고등학교에 들어와 콧날이 엄청 크신 윤리선생님께서 수업중에 자신의 코를 자랑하시면서 콧날의 크기와 기후에 대해 말씀해 주셨다. 콧구멍의 기능은 공기를 데워서 폐에 이르게 하는 것인데 아주 추운 러시아 지역에서는 찬 공기를 데워야 하므로 콧구멍 통로가 길어졌고 아프리카 흑인마을은 더운 지역이므로 긴콧구멍이 필요하지 않아 납짝코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 동양계 사람들의 코는 러시아 사람의 코와 아프리카인의 들창코 중간지
도지사와 시장군수의 인사발령은 단체장의 권력중 가장 큰 힘을 가진 행정행위라고 봅니다. 인사발령을 거부하면 공직을 그만두고 집으로 가야 합니다. 인사발령은 논산훈련소에서 이발병, 목공, 석공 주특기를 데려가고 남은 자원을 보병으로 보내는 군대식이 아니라 100명을 100자리에 보내야 하는데 행정, 보건, 토목, 건축, 위생, 환경 등 다양한 직열이 있고 9급부터 4급까지 직급이 있는 공무원을 개개인에게 맞춰서 자리에 보내야 하는 고도의 과학과 수학적 고충을 내포한 사람배치의 과정입니다. 그래서 과거에 ‘6급은 많은데 주사가 없다’고 했습니다. 하마평 인사는 많은데 정작 발령은 쉽게 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6월중에 상방기 부시장 인사를 해야하고 그 속에서 실국장이 자리를 바꿔야 합니다. 연말인사는 더더욱 힘들어서 교육을 마치고 온 간부와 현재 근무중인 공무원중에 그만큼의 인원을 교육대상자로 지정해야 하는 더더욱 어려운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그러니 인사발령이 나거든 그대로 수용하고 잘된 인사라고 평가해야 합니다. 누구도 이만한 인사배치를 잘 할 수 없으니까요. 더구나 그 와중에 챙겨야 할 인물이 몇 명 있다면 더더욱 힘든 인사과정이라 할 것입니다. 인
아침에 출근한 기자는 무슨 일을 할까요. 우선 출근하여 부장, 차장에게 인사를 하고 커피도 마시고 복도에 나가 담배도 피웁니다. 과거 한참 시절에는 기자 책상위에 대형 유리 재떨이가 있어서 오전에 한 웅큼 채운 후 비우고 오후에 출입처에서 돌아온 3-4시부터 6시까지 한 번 더 채워준 후 오늘 밤에도 담배를 더 피울 요량이었습니다. 喫煙(끽연)자의 천국이랄 수 있는 1980년대에는 공무원 책상위에도 재떨이가 있고 기자 책상위에도 동그란 그릇이 있다는 사실이 공통점이라면 저녁 8시 이후 공무원 책상위에는 전화기만 달랑 남아있는 반면 기자님 책상 위 자료는 3년 4년 이어진다는 사실이 차이점입니다. 기자 책상위의 자료들은 정치부에서 사회부, 경제부에서 문화부로 발령이 나야 잠시 정리되었다가 후임자가 와서 1개월 쯤 지나면 본모습 그대로 자료가 쌓이게 마련입니다. 이는 출입처 기자실에도 마찬가지인데요 10년이상 출입한 기자의 책상 위 자료가 쌓인 모습을 보면, 마치 지질학자가 쌓이고 싸인 모래 퇴적층에서 고생대 중생대를 구분해 내듯이 갱지와 복사지가 연대별로 쌓이면서 태양에 숙성된 정도에 따라 그 자료 단면의 색이 초코렛 색에서 연한 홍차색으로 변하는 이른바 컴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