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님 묘소를 깔끔하게 하고자 형제들이 벌초 이야기를 꺼냈습니다만 이미 둘째형이 고조부 벌초를 마쳤고 증조, 조부, 아버지 등 넓지 않은 묘소의 벌초를 남겨두었다 하므로 이번주 일요일에 날을 잡았습니다. 하지만 그날 저에게 다른 일정이 들어왔으므로 다시 형과 날을 조율해야 하는데 이 또한 쉬운 일이 아닌 듯 합니다. 그래서 인터넷으로 알아보니 예초기 빌려주는 곳이 많다고 하므로 수원의 농기계 가계가 밀집한 매교동 공구상가에서 기계를 빌렸습니다. 매교동으로 이동하여 적정한 기계를 찜하고 다시 수원천변을 잉어와 붕어, 그리고 오리와 물새를 친구삼아 찬찬히 걸어 세교에서 전철을 타고 수원시청역을 지나 매탄권선역에 도착한 후 집에 가서 차를 운전하여 다시 가서 예초기를 차에 실었습니다. 그리고 새벽 5시에 출발하였습니다. 신나게 내달리다가 주유를 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양노2리 발이골이라고 중학생 시절 걸어 다니던 길에 주유소가 있는 것이 기억나므로 가보니 아직 5시반이라 문을 열지 않았습니다. 다시 비봉면과 매송면 경계인 쌍학3리로 돌아가서 주유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길을 달려서 고향마을 태어난 집 앞에 당도하였는데 아직도 어둡습니다. 산에 오르기에는 이를
[국민]학교라 했습니다. [국민학교]라고 워딩을 하면 스스로 [초등학교]라고 교정을 해 줍니다. 그래서 [국민 학교]라고 [OOOO]라고 울타리를 쳐서 워딩하였습니다. 프로그램에 그렇게 수정하도록 입력되어 있나 봅니다. 일본 제국주의 시대에 作名(작명)된 [국민학교]를 초등학교로 개명하였기 때문입니다. 지금 나이 60세 전후 세대는 초등학교가 아니라 [국민]학교를 다녔으므로 요즘 아이들, 손자·손녀들에게 [국민]학교라 말하면 초등학교라고 교정지도를 받습니다. 그 시절에 봄, 가을 소풍을 갑니다. 학교에 모여서 반별로 인원파악을 하고 9시에 출발하여 11시반에 소풍장소에 도착하고 점심을 먹습니다. 어머니, 할머니, 가족들이 함께 보따리를 이고 동행합니다. 도시락에 밥을 퍼담고 반찬으로는 계란전, 멸치볶음, 김치를 준비했습니다. 반장, 부반장은 담임선생님 도시락을 준비하였고 5, 6학년 반장과 부반장은 교감, 교장선생님 점심 도시락을 가져오는 영광을 얻습니다. 요즘에는 말 많은 시대이다 보니 교사들은 따로 식당을 정해서 점심을 먹는다 들었습니다. 하지만 1960년대 소풍지 인근에 식당이 없었습니다. 시골 학교 소풍가는 장소는 사찰인근, 교회인근, 사적지 등이 대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인연입니다. 양친이 돌아가시니 고애자가 되었습니다만 중학교 1학년 때에 아버지가 돌아가시니 孤子(고자)가 되었습니다. 어머니만 돌아가신 경우는 哀子(애자)가 되는 것이니 이제는 孤哀子(고애자)가 되었습니다. 先親(선친)이란 돌아가신 아버지를 이르는 말이니 인사말에서 고자, 애자, 고애자는 부모님과 관련한 설명이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 태어나는 인연을 주신 분이 부모님입니다. 그러니 두 분의 만남이 자식에게는 엄청나게 소중한 인연이 됩니다. 두 분은 부부로 만나는 인연이지만 자식은 태어나는 인연을 맺는 것입니다. 태어남도 300,000,000×3×12월로 계산해 봅니다. 3억의 정자와 3개의 난자가 12개월 동안 인연의 끈이 이어져야 10개월 어머니와의 더 깊은 인연으로 세상에 태어난다고 합니다. 1겁이라는 세월이 사방팔방 15km가 되는 드넓은 철옹성안에 가득한 종자 중에 작은 것 중 하나인 겨자씨가 가득차 있는데 100년에 1개만 꺼내는 세월이라 했습니다. 부모님이 동시대에 5살 전후의 나이 차이로 태어나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습니다. 이 시대 동시대에 잠시 스치듯 함께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다 그렇게도 어러운 인연으로 태어난 아들
토요일 오후에 시작한 술은 어디에서 무슨 술을 마셨는지 기억조차 없이 경기도청이 자리한 팔달산을 배회한 기억만 납니다. 시민회관 인근을 지날 즈음에 옹벽위로 늘어진 철조망에 발이 걸렸습니다. 몸 전체가 붕 뜨는 것 같더니 한참을 날아가서는 풀섭아래로 푹 하고 떨어지는데 오장육부의 순서가 바뀌는 듯 아랫배가 뻐근합니다. 그 충격이 커서 잠시 숨을 멈추는 듯 하기에 애를 써서 잔 호흡을 해 보았습니다. 잠시 후에 긴 한숨으로 가슴속 묶은 공기를 밀어내고 색색 숨을 쉬기는 하니 죽은 것은 아닌 듯 여겨지는데 팔다리가 움직일 것인지 걱정이 됩니다. 취중에서 죽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으니 맨정신이면 그 자리에서 실신했을 것입니다. 오히려 술에 취해 떨어지면 덜 다친다던 선배들의 말씀이 맞은 것 같다고 하구나 생각하면서 그렇게 널부러져서 얼마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다리를 슥슥 움직여보니 구두가 반쯤 벗겨진 발목이 움직여줄 것 같습니다. 허리를 구부리면서 몸을 흔들어 일어나보니 숲속 소나무 가지를 묘하게도 피해서 솔잎 조금 갈린 알바닥에 떨어져 있음을 확인하였습니다. 술에 취해서 절벽 아래로 떨어진 그날의 상황이 이렇게도 생생하게 기억하는 것이 기특하기도 합니다만
‘콤퓨터’라고 워딩을 하면 프로그램이 스스로 ‘컴퓨터’라고 수정해 줍니다. 그래서 ‘콤퓨터’라고 모자를 씌우니 자체수정에 걸리지 않습니다. 요즘에야 모든 공무원과 회사원이 책상 위에 마우스와 키보드를 겸비한 깔끔한 PC를 한 대 이상 보유하고 있고 스마트폰이나 노트북, 태블릿 피씨 등 첨단 장비로 무장하고 있습니다만 과거의 공직사회의 IT 상황은 많이 다릅니다. 1984경, 37년 전으로 돌아가 보면 상황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계장님 양수책상을 중심으로 次席(차석)과 三席(삼석)이 비행기 대형으로 양 날개를 달고 있고 7급 8급의 책상이 도열해 있습니다. 천정에서 내려다보면 항공모함이 동해 바다를 항해하는 형상입니다. 그리고 책상에는 검은색 전화기가 2대1조로 배치되어 총 8대가 있지만 전화번호는 2개입니다. 대개 행정전화 번호는 2121, 4121입니다. 이 전화기는 계장님 책상위에서 시작되어 서무담당에게 연결되어 있어서 흔히 앞 번호로 2번 전화, 4번 전화로 칭합니다. 그리고 책상위에 서류가 몇 장 쌓여있습니다. 결재판과 고무명판이 보입니다. 계장님의 명패와 이름 석자, 그리고 旣決(기결), 未決(미결), 保留(보류)함이 있습니다. 특히 당시에는 당
집집 마다 2개 이상 있는 네모난 요술상자 냉장고는 의인의 창고다 모여있는 재료들이 모두 사람격으로 얼굴을 하고 하루하루를 기다린다 어떤 고기는 냉동된 채 해를 넘기고 어떤 채소는 파랗게 얼어버린 채 신록의 봄을 기다린다 안동에서 온 간고등어는 소금을 머금기 이전의 동해 바다를 생각하며 동면하고 있다 오징어도 작은 플라스틱 그릇에 다리를 구부린 채 주방장의 낙점받을 날을 기다린다 옆방에는 서리태가 온몸을 키워 아침을 맞는다 압력밥솥에 국물을 흘리고 이내 작은 밥공기 위를 건강하게 장식하는 단백질의 보고란다 가끔 보랏빛 팥이 보인다 해독하는 재료이니 자주 먹어야 하는데 냉장고는 얼마전부터 숙성의 방이다 음식은 숙성에서 그 가치가 높아지고 영양분이 고급화된다 된장, 고추장, 청국장, 총각김치, 나박김치 슬로푸드가 우리를 건강하게 한다 일층에서는 조기 12마리가 반냉동 상태로 각각의 기능에 맞는 요리로 탄생하기 위해 때를 기다린다 2층에는 고추장, 된장, 청국장, 과일들이 매일 아침 모여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3층에는 요구르트, 깍두기 그리고 씨레기 방이다 장을 위한 칸이다 4층에는 야채실이다 겨울 야채는 더더욱 소중하다 비타민을 공급해야 하기 때문이다 통문 안에
태어난 고향 동네는 큰 산자락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뒷산은 태행산이라고 하는데 청요리 쪽에서는 태항산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저의 첫 번째 책 ‘공무원의 길 차마고도’를 발간해준 청요리가 고향인 한누리미디어 김재엽 사장이 태행산이라 쓴 원고를 ‘태항산’이라 교정했습니다. 검색해보니 294.8m 높이의 ‘태행산’이 맞습니다. 청요리에서는 ‘태항산’으로 부르고 자안리에서는 태행산으로 칭하겠습니다. 이 산속에는 아버지의 추억이 있습니다. 태행산에 토막집이 있었고 6살 전후에 쌀이나 부식을 들고 심부름 다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그 산 태행산에서 장작불에 밥을 하였고 나무 주걱으로 퍼준 밥에서 느끼는 보리밥 냄새가 지금도 기억이 납니다. 쌀이 귀했던 1963년경으로 생각합니다. 5살이면 냄새는 기억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때 그 산속은 10대에도 여러 번 갔던 곳입니다만 어느 날 나무가 빼곡히 자라나서 그 길을 잃어버렸습니다. 이후에 태행산 치바위에 인삼을 캐겠다고 가보았지만 발견한 것은 자갈과 잡풀, 떨기나무의 허리 굽은 뿌리였습니다. 어려서 先親(선친)께서 인삼씨를 3되 정도 치바위 인근에 뿌렸다는 말씀을 보물섬 지도처럼 머리속에 간직하였던 터이고 10년이 지
[뉴스폼] 홍승표 전 경기관광공사 사장이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민주평통 경기지역 부의장으로 임명됐다고 밝혔다. 지난 29일 오후 청와대 영빈관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주재한 제21기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이하 민주평통) 간부위원과의 통일대화'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민주평통 의장인 윤석열 대통령은 경기지역 부의장에 홍승표 전 경기관광공사 사장을 임명했으며 홍 부의장은 9월 1일부터 민주평통 경기지역 부의장을 맡아 2년간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게 된다. 홍 부의장은 공직을 마친 후 남경필 경기도지사의 초대 비서실장으로 일한 후 3년간 경기관광공사 사장을 맡아 흑자경영을 이끌기도 했다. 그는 관광발전에 기여해 '대한민국 문화관광산업대전 창조혁신부문 대상'을 받았다. 또한 그 경력을 바탕으로 대한민국 국제관광박람회 조직위원으로 활약중이며 경기도여성회에서도 여성발전을 위한 활동에 전력하고 있다. 공직 초년시절부터 소년소녀가장을 후원해 2019년 '어린이 재단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고 2020년 '대한적집자사 회원유공장 금장'을 받았다. 홍 부의장의 봉사활동은 공직자로서는 물론 퇴직 이후에도 이어지고 있다. 특히, 경기도청 간부로 일하면서 인연을 맺은 경기도청 노조간부들과
#고향 동네 걸어서 한 바퀴 2010년 11월 14일아침입니다. 집을 나설 때는 광교산행으로 준비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집과 버스 정류장 중간쯤을 걸어가던 중에 고향이라는 화두가 머리를 스쳤습니다. 전두엽을 거쳐 대뇌로 들어온 그 고향 화두는 오늘의 여행 방향을 180도 바꾸어 버스를 타게 되었습니다. 즉 83번을 타고 13번을 타면 가는 광교산이 아니라 51번을 타고 다시 99번을 타면 가는 비봉면 양노리 방면입니다. G20 의장국 대한민국의 교통체계는 무한한 변신을 거듭하여 경기도내 모든 지역을 환승할인 권역으로 구성해 놓았습니다. 경기도의 광역교통망 정책이 성공한 일면이 환승할인과 심야 광역권 버스노선 설치일 것입니다. 역시나 광교산 코스처럼 양노리 코스도 환승할인이 되는데 약 200원 더 내면 되는 조금 먼 거리입니다. #51번 버스안에서 임 선배를 향수함 토요일 오전이어서 일까? 오가는 행인이 많습니다. 다문화 아저씨와 아가씨도 많이 지나갑니다. 우리나라가 이제 다문화 시대를 준비하는 단계에서 숙성단계를 지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문화는 세계화로 접근할 수 있습니다. 미국이 다문화로 성공한 사례입니다. 다문화로 어려움을 겪기도 하겠지만 이를 바
일제 강점기부터 경찰 제일주의가 있었나 봅니다. 주재소 순경이 모든 민사, 형사사건을 처리하였답니다. 그러니 평소에 주재소 주임과 친밀한 인사는 주변의 사건사고 발생시에 유리한 입장에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생각이 모든 일에 연결되면서 ‘물고 순경이냐?’라는 말이 생겨났습니다. 물고란 논에 물을 대는 수로의 문을 말하는데 물이 부족하면 닫고 물이 넘치면 열어서 물을 아래로 흘려보내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가뭄이 심해지자 서로 문을 잠그게 되었고 다른 이의 논을 통해 물을 공급하는 입장에서 남의 집 논 물고를 이용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른바 ‘물고싸움’이 생겨나게 됩니다. 자신에게 유리한 물고관리를 하려하기 때문입니다. 我田引水(아전인수)라는 말과도 통할 것입니다. 내 밭에 물을 대고자 하는 것이지요. 물고 역시 자신의 논과 밭에 유리하게 운영하다 보니 다툼이 생겨났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싸움에서 불리해진 어르신이 평소 알고 지내는 순경에게 이 싸움을 중재해달라 부탁을 하였습니다. 순경이 오면 상황이 유리해 질 것이라 생각한 것이기도 합니다. 순경이 와서 물고 관리에 대한 질문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상대편 어르신은 다짜고짜 물었습니다. “당신이 ‘물고’ 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