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7월 22일부터 24일까지 내린 폭우로 용인과 수원지역에서 비 피해를 입었다. 언론에서는 난개발이라는 신조어를 써가며 용인지역 수해피해 원인으로 도시개발을 지적했다. 7월 26일 12시 연합통신 기사를 보면 ‘이번 폭우기간 중 용인지역 대규모 공동주택단지 공사현장에서 토사가 일부 쓸려 나와 피해를 초래한 것은 사실이지만 주 원인은 사상최대의 집중호우와 농촌지역의 수해방지 투자 不足(부족)에 있다’는 경기도의 주장이 실려있다. 같은 날 연합통신 오후4시 30분 기사를 보면 용인 보전 공동대책위원회는 ‘완만한 구릉지대와 논이 많던 용인은 무분별한 개발로 인해 산림이 깍이고 농지가 사라지면서 저수기능을 완전 상실했다. 이번 폭우에는 난개발지역에서 토사까지 흘러내리면서 하수구 등을 막아 시가지 곳곳이 침수됐다.’고 주장했다. 환경정의시민연대 박용신 정책부장은 ‘지난 98년 하루동안 3백여㎜의 비가 왔는데도 전혀 피해가 없었던 난개발 지역이 수해를 입은 것은 마구잡이식 개발이 분명한 원인이 됐다’는 주장이 보도되었다. 경기도는 수해관련 분석자료에서 (용인을 비롯한) 경기남부지역 수해는 짧은 시간동안의 집중호우에서 비롯된 것으로서 시우량은 이지역 기상관측사상
도민을 위해 일한다는 말을 한 기억이 있다. 공무원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직장을 구하기 위해 지방공무원 시험에 응시했고 1차 시험에 합격하여 면접을 보게 되었는데 면접관의 질문에 그렇게 대답했다. 그리고 20년 넘게 공무원을 하면서 공무원 임용 면접때 한 말을 얼마나 지켰는지 생각해 본 것은 아주 때 늦은 일이기는 하지만 남아있는 공무원 생활에 새로운 잣대를 삼기 위함이라면 스스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70년대 후반까지도 공무원들은 공무원의 신조라는 것을 외워야 했다. ‘국가에는 헌신과 충성을’로 시작해서 5가지 명구를 외워야 하는데, 그 당시 나이드신 선배들은 본인도 외우시는지는 모르나 부면장님 앞에서 시험을 보아야 했고 가까스로 통과하고 나서 머쓱해 하는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때 외우신 내용대로 공무원으로서 일하고 가장으로서 살았다면 그분들은 정년퇴직이라는 명예를 얻었거나 지금도 흰머리 염색하면서 공무원으로 일할 것이다. 하지만 외우지 못한 분이 있다 해도 공무원 임무를 다하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5가지 지표와 또 다른 5개의 신조를 외우고 못 외우고가 중요한 일이 아니라 그 내용을 포함한 品格(품격)으로 일했다면 충분할
10명에게 밥상을 차리는데 5명분 2번 차리는 것과 2명분을 5번 준비하는 것에는 차이가 있다. 밥상만 받아본 사람은 알 수 없는 數式(수식)이겠지만 평범한 주부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이야기다. 그 이유를 쉽게 설명하진 못하겠지만 우선 손을 내저으며 여하튼 다르다는 주장을 할 것이다. 900만의 인구가 살고있는 경기도의 행정은 더더욱 그렇다. 고정된 900만명이 아니라 매년 과천시 인구(71,635명)의 4배에 달하는 27만8천명이 늘어나니 상황은 더더욱 다르다. 도시분야 전문가는 아니지만 난개발이니 불균형이니 하는 말의 의미는 대략 이해한다. 그런데 근복적인 난개발 원인은 따지고 보면 정책과 인력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우선 수도권 정책이 인구 집중을 억제하기 보다는 신도시의 건설로 인구를 증가시켜 왔다. 1990년부터 1999년까지 수도권에는 308만명이 증가했다. 즉, 경기도가 283만명, 인천광역시가 54만 늘었으며 서울시는 29만명 감소했다는 것이다. 지방자치단체도 난개발을 막지 못하는 구조적인 부분이 있다고 한다. 인구가 늘면 행정수요는 증대한다. 인구에 비례해서 증가하지는 않더라도 주민의 편익을 위해 구청을 설치해야 하고 도시화에 따라 관련 부서를
9급 공무원으로 처음 들어왔을 당시에는 모든 이들이 어려운 상사였다. 면사무소에 근무할 때 보조원으로 함께 일하던 使喚(사환)이 있었지만 직장 선배이므로 어렵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20년 넘게 공무원으로 여러 부서, 다양한 과에서 일하는 동안 같은 팀 구성원과 조를 이루어 일하고 있다. 모든 부서에는 부서장이 있게 마련인데 행정기관에서는 과장이 조직의 기초단위로 본다. 도청이나 시청이나 과장은 전결이라고 해서 결재 권한을 위임받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읍면동 사무소에도 5급 읍·면·동장과 6급 사무장, 과장, 계장이 있고 각각이 조직을 구성하고 있다. 상사가 지시를 하면 따르고 결재를 올려서 고치면 수정해서 일 처리를 하고 있다. 조직의 힘은 상사와 소속 직원간의 유대에서 나온다. 조직의 세포라 할 수 있는 개인과 계조직, 과구성이 탄탄하게 연관성을 맺고 움직일 때 그 조직은 큰 힘을 발휘할 것이며 그 연결고리가 약하거나 불협화음이 난다면 그 부서는 약해질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시행착오를 반복하게 될 것이다. 부하직원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일은 상사의 세심한 지도력이다. 어느 직원이 바쁘고, 그 직원의 능력을 파악하고 적절한 지도를 하거나 다른 구성원과
강원도 출신 이형택 테니스 선수의 세계 재패가 세인의 관심을 끌고 있다. 그리고 1월13일에는 최경주 선수가 골프대회에서 2위를 했다. 세계적인 선수들과 맞선 경기에서 2등을 하였다는 것은 아주 높은 성과다. 골프의 박세리 선수가 여성골프의 선두에 나선 이후, 남자선수인 최 선수도 2002년9월 미PGA투어 탬파베이스클래식 우승, 5월 컴팩클래식에서 우승을 차지하면서 국제무대에 나선 것이다. 바둑의 조치훈, 조훈연, 이창호 9단과 비교되는 일이다. 이번 대회에서 최경주 선수는 외국에서도 큰 관심을 보였다. TV중계에 아주 많이 나왔다고 한다. 외국 방송도 최경주 선수 취재에 열정적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신문, 인터넷이나 방송에서는 1등을 하지 못하였다는 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 같다. 11의 이형택 선수를 한국 테니스 100년사를 다시 쓴 쾌거로 보도한 반면, 최경주 선수가 준우승을 차지 한데 대한 기사는 활자나 화면에서 독자·시청자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세계적인 선수들이 대거 참가한 대회(메르세데스챔피언십)에 출전한 일만도 대단한 일인데 2위를 하였으니 더더욱 큰일을 한 것이다. 그런데도 아쉬움을 표현하는 쪽으로 보도를 한 것 같다. 불
인터넷 시대, 글로벌 시대로 일컬어지는 2000년 10월이다. 수많은 정보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장소와 시간의 제약을 뛰어넘어 우리에게 몰려오고 있다. 위성방송시대, 인터넷 방송시대는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실시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고 때로는 정제되지 않은 원시정보들이 인터넷을 타고 들어와 사회질서를 훼손하고 청소년에게도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는 언론의 보도를 보게 된다. 이 같은 정보의 시대에 인구 156만명의 강원도 강릉과 춘천에 지방방송국이 있다 하고, 시군 계장회의도 TV뉴스가 된다고 한다. 다른 지방에서도 비슷하다고 한다. 경기도는 900만명의 인구가 살고 있다. 매년 3.1% 28만명이 늘어나 2003년 안에 인구 1천만명이 될 경기도민들을 연결하는 방송기능이 부족하다. 경기도민은 그래서 정보에 목말라 있다. 어쩌면 도정뉴스와 시군 소식에 대한 갈증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유럽과 시드니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올림픽 경기 내용을 자신의 일처럼 잘 알면서 우리가 살고 있는 경기도 소식, 시군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하고 바르게 전해 들을 수 없다면 크게 잘못된 일이다. 그래서 경기도는 도민을 위한 홍보방법을 가지고 있다. 우선 지방신문을 통한
우리 모두를 붉은 악마로 만들고 젊은이들을 광화문으로, 수원의 만석공원으로 집결시키고 두껍기로으뜸이라는 아파트 벽을 시원하게 뚫어준 2002년 월드컵의 열기가 아직도 우리의 가슴속에 가득하다. 국민적 성원에 보답한 ‘세계 4강 신화’는 앞으로도 쉽게 깨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영광의 뒤편에 남아있는 대표팀 선수와 감독 히딩크에게 쏟아졌던 비난의 기간도 생각해 볼 일이다. 특히 히딩크 감독에게 ‘5:0’이라는 별호를 붙이며 우리의 조급함을 스스로 보여주기도 했다. 그러다가 월드컵 첫 승리를 이룩하자 누구랄 것도 없이 칭찬과 찬사가 이어지고 그동안의 부진을 붉은 악마의 월드컵 경기장 태극기처럼 덮어버렸다. 여기에 더하여 “태극 우리가 이겼다. 2-0으로 이겼다. 그렇게 목말라 하던 월드컵 본선 첫 승리, 그 소중한 꿈일 드디어 이뤄냈다. 얼마나 기다려왔던 순간이었다. 90여분 사투가 끝난 뒤 땀에 젖은 모습으로 함께 그라운드에 뒤엉킨 태극 전사들의 자랑스러운 승리다.”라고 평가했다. 잘한 일에 칭찬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부진하거나 잘못된 일에 대해 비난만 하는 것도 정도는 아니다. 며칠 전 친선 축구경기에서 8:0의 스코어를 기록했다. 0:8
임오년 한 해가 저물어 가고 있다. 직장인들의 수첩과 마지막장 달력에는 유난히 저녁시간 메모가 늘어가고 있을 것이다. 동창회, 총동문회, 과망년회, 係(계)모임, 契(계)모임, 기타 다양한 명칭의 모임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송년회를 비롯한 저녁 모임에 가면 으레 술잔이 오가게 되고, 그러다보면 서로 친밀해지는 효과가 나기는 하지만 술로 인해 낭패를 보게된다. 어떤 땐 ‘병가의 상사’로만 생각할 일은 아닌 심각한 상황도 발생한다. 그것은 음주운전으로 인한 심적, 금전적, 신분적 부담은 물론 조직생활에서도 심대한 손실을 입게됨은 물론이다. 그래서인지 옛 어르신들은 술자리에 나이 어린 자손들을 앉히고는 술을 따르도록 시키고 이것저것을 이야기하면서 술을 먹는 과정을 체험시켰다. 그리고 이른바 酒法(주법)을 전수하는 것이다. 이 주법이라는 것이 가문마다 제례절차가 상이하고 사돈간에도 오이 먹는 풍속이 다르듯이 차이가 있지만 그 주된 내용은 술을 마심으로써 흐트러지기 쉬운 심성의 청정함을 유지하기 위함에 있는 것 같다. 그런데 논문을 쓸 때 형식이 있듯이 어느조직, 어느가문이든 주법에서 공통적으로 맞아 떨어지는 몇 가지 관습법이 있다. 우선은 술을 주고 받는 일은
京畿(경기)라는 명칭을 최초로 사용한 것은 고려 현종9년(1018)이라고 한다. 경기는 왕도가 소재하고 있는 지역과 그 주변의 모든 도·현의 총칭으로 경기는 京(경)자와 기현의 畿(기)를 합친 것이다. 2001년 8월10일부터 10월28일까지 열리는 세계도자기엑스포2001 경기도 土也(토야)가 토와 야를 합해 地(지)를 의미하는 것도 생각해 볼 일이다. 명칭을 처음 정할 때 신중을 기해야한다. 한번 정해지면 바꾸기도 어렵고 바꾸면 일정기간 혼란을 준다. 한번 지은 이름을 바꾸려면 법원의 판결을 받아야 하고 법원은 신청한다고 무조건 改名(개명)을 허가하지 않는다고 한다. 국회의원 중에 이름이 같아 신문과 방송보도시 보충설명이 필요하고 중국 쇼트트랙 선수 중에 양양A와 양양B가 중계때마다 구분하는 설명이 필요했다. 유사한 사례는 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다. 경기도 광주군을 말할 때마다 경기도 광주라고 보충설명을 해야 한다. 6.25전쟁때 연합군은 청주와 청주를 혼동하였다고 하고, 화성(수원성)의 4대문중 남문과 북문을 알면서 팔달문과 장안문을 모르는 경우가 있다. 또 용주사와 함께 조선시대 정조왕의 효행을 상징하는 융건능은 융능과 건능을 합한 말이다. 경기도내
고종황제께서 61세 회갑을 맞으신 1912년에 고명딸 덕혜옹주를 얻으십니다. 고종은 요즘 유치원의 嚆矢(효시)랄 수 있는 시설을 마련해 덕혜옹주(德惠翁主·1912-1989) 교육에 정성을 들입니다. 덕혜옹주의 교육을 위해 덕수궁(경운궁)에 처음으로 유치원이 설립된 것입니다. 우리나라 유치원 1회 졸업생이 덕혜옹주입니다. 덕혜옹주는 9세까지 ‘복녕당 아가씨’로 불리다가 1921년에 덕혜옹주로 봉해졌습니다. 1925년 일제가 유학이라는 명분을 세워 일본으로 데려갔습니다. 일본에서 영친왕과 한집에 살면서 학교를 다녔고 19세에 소다케유키(宗武志)와 정략 결혼해 딸 하나를 낳았는데 일찍 그 딸을 잃고 맙니다. 딸을 잃은 아픔과 이혼, 그리고 해방된 조국에 귀국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겹쳐서인지 1946년에 조현병으로 입원합니다. 그리고 신문기자의 노력으로 1962년 대한민국으로 귀국해 창덕궁 낙선재에서 기거하십니다. 영화는 여기까지입니다. 그리고 역사는 면면히 이어져 덕혜옹주는 1989년 4월21일에 세상을 떠나시고 남양주시 금곡동에 소재한 아버지 고종황제의 홍유릉 인근에 묘소에 안식처를 마련하고 영면하십니다. 영화 ‘덕혜옹주’가 개봉된 그날 오후 남양주시 공무원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