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시대를 사는 우리는 고유한 전통이 오히려 불편하게 느낄 수 있다. 조상의 묘를 돌보는 벌초가 그 일이다. 處暑(처서)가 지나면서 종손들은 벌초를 걱정한다. 고향 떠난 자식들의 입장으로 보면 고향가는 길도 막히고 직장생활에 얽매여 살면서 하루 시간내기가 어렵고 고향을 지키는 맏형이나 아버지 입장도 고향 떠나 도시에 살고있는 30대 동생, 아들, 조카들을 불러 내리기 어려운 것도 매한가지이다. 젊은이들의 심정도 비슷하다. 어린시절 都會地(도회지)로 유학 나온 젊은이들의 고향에 대한 기억이라야 논두렁콩 건너 다니던 학교길과 사계절 바뀌던 뒷동산의 경치가 전부일 것이다. 도무지, 조상을 모시는 일이라야 명절에 두 번과 조부모 제삿날을 시골에서 걸려온 부모님 전화를 받고서야 마지못해 내려가는 실정이 아니던가. 핵가족 시대인 요즈음은 조상님 모시는 일에 관하여 신세대 아내를 설득하는데도 어려움이 따를 것이다. 제사를 지낸다고 나에게 돌아오는 것이 무엇이냐고 따지면 대답이 궁해진다. 할아버지, 아버지가 그렇게 맥을 이어 왔으니 나도 그리한다는 논리가 먹히지 않는다. 매년, 매번 아내를 달래는 일이 어려울 것이다. 그래도, 속마음 감추고 시골길을 먼지 날리며 내려와
설에 가지 못한 성묘를 뒤늦게 다녀왔다. 흩어져 사는 집안 어른들과 일찍 만나기로 약속하였으나 늦은 성묘에 지각을 했다. 아이들과 함께 출발하느라 행장꾸리는데 시간을 많이 썼다. 쌍둥이 남매중 아들은 어제저녁에는 가겠노라 호언을 하였으나 늦잠에 취해 포기 직전까지 갔다가 아빠의 성화에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어제부터 엄마의 응원 아닌 응원으로 동참 의사가 약했던 딸아이는 아들이 가기로 했다고 하자 잠을 털어내고는 스피디하게 준비를 한다. 딸아이의 특징 중 하나는 아들과 똑같이 하고자 한다는 점이다. 아직도 바지만 입는다. 어쩌다 여자아이들이 많이 입는 옷을 사면 엄마와 실갱이를 하곤 한다. 바로 이점이 강점으로 활용된다. 쌍둥이지만 1분 누나인 관계로 아들이 간다고 하자 일어선 것이다. 세 식구는 베란다에서 아이들을 배웅하는 아내의 인사를 받고 출발하여 시골길을 달렸다. 30년을 오가면서 세상 참 좋아졌다를 연발하는 길이다. 초등학교 시절 도시를 처음 구경 올 때 비포장 길을 달리는 붉은색 버스를 타고 관절 마디마디를 뒤흔들며 지나던 길인데 이제는 포장이 잘 되어서 30분 거리로 가까워졌다. 전에는 1시간 반은 걸리던 길이다. 신작로에서 집까지는 걸어서 1시
“수제지건에 대하여”라는 말이 있었다고 한다. 수제지건(首題之件)은 공문서의 제목의 건에 대하여 결재를 한다는 의미로 알고 있다. 공무 출장 후 그 결과를 보고할 때는 “의명 현지에 출장하여”라고 시작한다. “명에 의하여” 출장 다녀온 결과를 보고한다는 말이다. 공무원은 물론 모든 조직에는 보고와 결재가 있다. 보고는 자신이 추진한 업무에 대한 결과나 일어난 상황을 윗사람이나 동료들에게 알리는 일이다. 결재는 어느 조직의 의사결정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추진하고자 하는 업무내용을 글로 적어서 필요한 절차를 거쳐 그 조직의 업무방향을 정하는 일이다. 결재에는 전결이 있다. 사안의 경중에 따라서 과장이 최종결재하거나 국장이 결재하는 것이다. 공무원에게 있어서 결재는 더더욱 중요하다. 10여년 전에는 결재판을 집어 던졌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실무자가 올린 문서에 대해 결재권자가 의견을 달리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공무원 20년 정도면 한 두번은 겪었을 일이다. 결재방법도 다양하다. 집무실 책상앞에 일어서서 실무자를 마주보며 결재하는 스탠드형, 자신은 소파에 앉고 실무자는 부동자세로 세워놓고 서류를 넘기는 히틀러형, 국장, 과장 전결로 결재를 올려도 자꾸 위선으
비단옷을 입고 달밤을 거니는 격이라는 말이 있다. 좋은 일을 하였지만 다른 사람들이 알지 못함을 지적하는 말일 것이다. 비단옷은 잘한 일을 말하고 달밤은 보이지 않는 상황을 뜻하는 것같다. 이 말은 초한지에 나오는 항우가 "부귀한 몸이 되어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는 것은 '비단옷을 입고 밤길을 가는 것(錦衣夜行)'과 같아 누가 알아줄 것인가"라는 말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현대에는 열심히 일하고도 스스로 그 성과를 제대로 알리지 못함을 의미한다. 사실, 교과서적으로 말하면 잘한 일을 일부러 남에게 알리려고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한 것이다. 자화자찬이라든가 자기과시라는 지적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알리는 일은 참으로 중요하다. 기업은 廣告(광고)를 하고 행정기관은 弘報(홍보)를 한다. 기업의 광고는 매출과 직결되는 중요한 일임에 이의가 없다. 행정의 홍보 또한 참으로 중요한 일인데 일부에서는 행정기관의 업무 내용을 알리는 것은 불필요한 것이고 업적과시, 전시행정 등으로 비판하는 것 같다. 행정의 홍보가 중요하다는 사실은 주변에서 자주 볼 수 있다. 토목공사로 인한 도로의 우회, 수돗물이 나오지 않는 기간을 알려주는 일, 민방위 훈련의 예고, 문화행사
새마을운동이 전국에서 가을 단풍처럼 피어나던 때에 새마을 모자에 오토바이를 타고 고향 동네 시골에 출장 온 선배 공무원들의 모습에 매료되어 공무원에 들어 온 지도 20년이 넘었다. 그리고 어느덧 청년 시절 이상형으로 보았던 공무원의 일원이 되어서 나름대로 일하고 있다. 공무원 초년생 시절부터 일찍 출근해서 업무준비하고 요즘 같으면 추곡수매를 권장하고 퇴비증산, 그린벨트 단속 등 처음 접하는 일을 시행착오를 겪어가면서 면장님의 지휘를 받아 토요일, 일요일에도 출근하고 출장을 다녔다. 그리고 지금도 저녁 7시가 조금 지난 시각 사무실에 돌아오면 부서 인원의 반 이상이 일하고 있다. 이런 상황은 우리 부서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대부분의 부서가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가끔 출근을 위해 택시를 타면 이렇게 일찍 출근해야 하느냐는 질문을 받기도 하고 친구들이 어쩌다 급한 연락이 있어 집으로 전화했다가 출근했다는 말을 듣고 사무실로 전화를 하거나 요즘에 너무나 흔해진 핸드폰으로 전화를 하면서 아침 시간 사무실에 있다는 말에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반응이다. 정시에 출근하고 땡 치면 퇴근하는 것이 공무원이고, 월급은 적어도 늦게 출근, 정시퇴근하는 맛에, 그리고 봉급
많은 이가 눈을 기다린다. 청소년은 물론이고 나이 든 어른들도 어린 시절 첫눈에 대한 추억을 되새기며 예년보다 늦어진 첫눈을 기다린다. 아마도 올해 첫눈은 조선시대 정조대왕에 의해 이름지어진 遲遲臺(지지대)고개를 넘어서 오려는지 자꾸 遲延(지연)된다. 눈을 기다리는 어른 중에는 PCS경영진도 포함된다. 올해에는 아직 소식이 없지만 어느 해에는 크리스마스날 첫눈이 오면 자사 PCS가입자에게 복금을 준다는 이벤트도 있었다. 며칠 전 약간의 눈이 오자 대학가에서는 친구와의 통화가 늘어서 PCS폰의 일시적 통화폭증 상황이 있었다. 겨울에 내리는 눈은 불편함도 있지만 필요한 양면성이 있다. 요즘같이 겨울 가뭄이 심할 때는 어서 눈이 오기를 기다린다. 대부분의 댐과 호수에 저장된 물이 줄어서 더 이상 물의 깊이를 잴 필요가 없게 되었다. TV뉴스를 보니 댐 벽면에 수위를 표시하는 흰색 띠의 마지막 5m가 모습을 들어내고 이내 바닥이 보일 것 같다. 첫눈은 연인들에게 있어 필수품이다. 연인들은 올해 첫눈이 오면 무조건 저녁에 만나기로 약속을 한다. 그리고 나중에 만나서 첫눈이 20일날 왔다느니, 그것은 싸래기 수준이고 실제 첫눈은 24일이라느니 하면서 사랑싸움을 하기도
초등학교 때의 일이다. 토요일 오후에 교실 청소를 하라는 선생님 말씀에 따라 열심히 환경정리도 하고 예닐곱 명이 엎드려 걸레질도 하면서 열심히 청소를 했다. 그리고 그 당시에는 급우들이 이유 없이 기피하는 “청소검사”를 받으러 선생님이 계신 교무실로 갔다. 이어 선생님은 교실에 오셔서 환경상태를 살피시다가 학생수가 좀 적게 느껴지셨는지 모두 자기 자리에 앉으라 했다. 당시 한 반 학생은 60명이 넘었는데 반 정도만 남았던 것 같다. 선생님은 화난 얼굴로 야단을 치셨다. “열심히 청소를 한 여러분에게 할 이야기는 아니지만 청소 안하고 도망간 친구들은 참으로 나쁜 아이들”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행정업무 과정에서도 청소검사와 비슷한 경우가 있다. 언론보도에 대한 시각의 차이가 있다는 말이다. 즉, 업무를 추진하는 공무원들은 좋은 기사가 많이 나기를 바라는 반면 언론 보도는 바람직한 사례를 알리는 기사도 많지만 정책을 평가하고 잘못을 지적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행정은 동전과 같다고 한다. 좋은 정책인 경우에도 그 반대의 입장에 있는 사람들이나 단체가 있고, 일을 하다보면 추진이 늦어지는 경우도 있으니 말이다. 따라서 반대 입장의 보도가 나기도 하고 추진하기로
여름에 겨울옷을 디자인하고 생산한다고 한다. 에어콘을 겨울에 사면 냉장고를 덤으로 준다고도 한다.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들은 좀 색다른 생각을 한다고 한다. 그래서 기업의 회장실은 일반직원 사무실보다 넓고 좀더 조용한 곳에 배치한다. 높아서 사무실이 넓다거나 오너이기 때문에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조직의 미래를 계획하고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기 위해 넓은 사무실을 쓰고 비서가 업무를 지원하고 있는 것이다. 공무원 조직에서도 간부들은 별도의 방을 쓰고 있다. 단체장, 부단체장, 국장의 사무실은 따로 있다. 과장들과 회의를 갖기 위한 회의용 탁자가 있고 때로는 부속실에서 비서가 전화받기, 걸기는 물론 자료관리, 일정관리등으로 통해 간부의 업무활동을 지원한다. 과거에는 1실1명의 비서가 있었지만 공무원 구조조정 이후 국장 2명의 방을 1명의 비서가 담당한다. 따라서 간부들은 회의나 결재가 없는 시간, 내방객이 없는 시간에는 넓은 사무실에 혼자서 근무한다다. 그 시간이 바로 조직과 기관의 미래를 생각하고 정책을 구상하는 타이밍이 된다. 그리고 간부들은 다른 간부와 기관장을 만나 업무를 논의하기 때문에 고급정보를 얻을 수 있다. 고급정보를 접하
누구에게나 고향은 마음의 안식처다. 무한한 가능성과 마음대로 되는 것만 같았던 유년시절을 보낸 곳이기에 우리 모두에게 있어 고향은 어머니와 같다. 경기도의 어느 곳에 나의 고향이 있고 조상의 묘가 있어 1년에 몇 번은 다녀온다. 그러나 고향을 떠나와 직장을 다니면서 점차 고향을 잃어버리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직장생활에 바쁘고 가정을 꾸려나가다 보면 어린 시절의 추억이 묻어있는 오솔길과 너댓명이 모여야 용기를 내어 모험 삼아 올랐던 고향 뒷산의 당집, 칡줄기가 유난히 무성했던 그 시절 눈에 보이는 산중 가장 높은 곳에 올라 가슴펴고 야호를 외쳤던 기억들을 망각하곤 한다. 공무원은 대부분 공직을 시작한 기관에서 장기간 근무하게 되지만 때로는 자치단체를 바꾸어 일하기도 한다. 공무원으로서는 제2의 고향이라 할 수 있는 일이다. 2년 동안 경기도 북부지역의 등산코스로 유명한 소요산이 있는 동두천시청에서 근무했다. 공직생활에 3번째 고향이었다. 그리고 떠나온지 2년이 조금 지났는데 요즘 들어 자꾸만 가보고 싶어진다. 같이 일했던 동료들의 근황이 궁금하다. 요즘이면 어느 지역보다 풍성한 신록이 우거졌을 것이다. 2년간 살았던 집도 눈에 밟히고 일했던
사냥꾼이 개 한 마리를 사서 강가로 사냥을 나갔는데 총을 쏘면 쏜살같이 물오리를 물어오는데 어찌나 빠른지 물위로 달려갔다가 다시 물 위로 달려왔다. 아주 신기한 일이므로 사냥꾼은 친구를 불러놓고 다시 사냥을 하면서 사냥개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참 빠른 개라며 자랑을 하자 친구가 말했다. “응, 저 개는 수영을 못하는군!” 우리는 살면서 자신이 만들었거나 속해있는 조직의 틀을 가지고 세상의 모든 일들을 보려고 하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물오리를 사냥할 때 사냥개는 반드시 헤엄쳐서 다녀와야 한다는 자신의 생각만 가지고 보면 물 위를 나르듯이 뛰어 다니는 사냥개가 수영도 못하는 것으로 평가하게 된다. 어린이들의 대화 내용을 하나 더 소개한다. 첫 번째 아이의 삼촌은 해군을 다녀왔는데 풀장에서도 수영을 못한다며 불평이었다. 두 번째 아이의 삼촌은 공군인데 전혀 날아다니지 못한다는 것이다. 어른들 이야기 중에도 되새겨볼 말이 있다. 거대한 건물을 가르키며 저거 내가 지었다고 한다. 수 십층 건물이나 수 백평이 넘는 시설이 설계되고 완공되기까지는 3년은 족히 걸릴 것이다. 아마도 그 사람은 건설기간 중에 관련부서에 잠시 근무했을 수도 있다. 건물이 지어지는 동